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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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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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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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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1.1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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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8. 들판

DUMMY

"지금부터 어쩌냐?"



나는 새장 밖, 거대한 철장을 바라봤다.


밤이라 집중해야지만 보이는 새장 밖 거대한 철장은,


공중에 두둥실 떠 있는 성 뒤로, 우리의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 이곳을 벗어나는 건 힘들테고... 완전 새장 안, 새 꼴인데?"



우리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우리 새장에서 범죄율이 전무 한 건 바로 이 때문이었으니까.


땅이 조금 넓다 한들, 결국엔 새장 안.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고,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관리되고 있었다.


인구수도 우리 새장 같은 경우엔 38만 명.


한 마디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한다면, 그건 자신과 주변인들이 이 새장에서 매장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


마치... 나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테델도 내가 바라보고 있던,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철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법을 위반하고 우리 새장에서 뛰쳐나간 어머니는 ‘이탈자’로 분류되어 범법자가 되었다.


덕분에 나와 아버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우리를 이탈자의 가족으로 손가락질하며, 범죄자 취급했다.


집의 현관문에는 스프레이로 일탈자 가족이라고 낙서되 있었고,


학교 책상 위에는 유성 매직으로 이탈자 가족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회는 우리를 지켜주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매장되나 싶었지만,


아버지가 뭔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시청에 소속된 사람들이 찾아와 아버지가 개발한 기술을 받아가고는,


우리의 생활이 완전 새롭게 써졌다.



"... 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사촌 형이 여기가 C동 동부에 이사 왔다고 하던데..."



테델이 문뜩 기억난 것처럼 밤거리를 두리번거리다가.



"한 번 연락해 볼게."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



용사,


그는 들쭉날쭉하게 나 있던 수염을 쓰다듬으며 계단에 주저앉아,


허벅지에 팔을 올린 채 그 위에 얼굴을 얹었다.



"이야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니~ 그러면 그 노망난 장로들은 전부 죽었나?"



용사는 진갈색의 눈동자로 텔레우스를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들은 영혼을 천사의 기술력과 합쳐, 아직 생존하고 있죠."



텔레우스의 가느다란 눈매 속, 작은 눈동자가 용사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노망난 녀석들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니, 말세네 말세야."



용사는 허공에 새겨진 짙은 어둠을 향해 추억에 잠긴 사람처럼 인상을 지피다가,


무릎에 손을 짚으며 계단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야. 실눈. 너 아까부터 계속 내게 뭔 짓을 할 셈인 것 같은데, 좋게 말할 때 그러지 마라. 이 몸은 뒤끝이 있어서, 앞뒤 안 가리고 뒤질 때까지 달려들거든."



용사는 재밌다는 듯이 텔레우스를 향해,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난 롱소드를 겨누었다.



"크... 나도 계속 멈춰 있어서 그런지 인내심이 생겼단 말이야... 옛날 같았으면 그냥 먼저 달려들었을 텐데 역시 세월은 세월인가?"



용사는 본인의 행동에 감탄이라도 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용사님... 그럼 어서 올라가실까요? 위에서 가드너들이 용사님을 모시기 위해 마중 나와 있습니다."



텔레우스는 가느다란 눈매에서 삐져나온 두 눈을 슬며시 감으며, 두 손으로 정중하게 계단 위를 가리켰다.



"아니. 그 전에... 가장 중요한 걸 까먹은 것 같은데."



하지만 용사는 텔레우스의 정중한 가리킴을 무시하며 눈 깜빡임처럼 다시 신전에서 생겨나,


함께 봉인되어 있었던 기다랗고 커다란 식탁에 앉았다.



"나를 왜 풀어 줬는지는 말 안 한 것 같네? 우리 느긋하게,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나 나눠보자고~"



용사는 포크로 식탁에 얹어진 커다란 고기 한 점을 집으며, 텔레우스를 시작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한 번씩 바라봤다.



"이봐 텔 형씨~ 이 용사님 들었던 것과 다르게 꽤 마음에 드는데? 우리 배고프니까, 뭐라도 먹자고."



그러자 테이야 이노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용사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오지 마라. 여기에 있는 건 전부 내 것이다."



수잔도 식탁에 앉으면서, 음식들을 마구잡이로 입속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 오호... 이 두 녀석은 말길을 잘 알아먹는군. 자~ 와서 자네도 만찬을 즐기세."



용사는 이제야 시간이 흐르는 음식들을 향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두 팔을 펼쳐 들며, 두 다리를 식탁에 올렸다.



"흠... 저희도 용사님을 이곳에 가둔 걸 후회하고 있는데 말이죠."

"오~ 그래? 그거참 다행이네."



용사는 식탁에 발을 올린 채 의자 앞다리를 들어 까닥거렸다.



"만약... 용사님을 봉인하지 않았더라면, 용사님이 그 ‘소년’을 더 빨리 뵐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용사는 텔레우스에게서 소년이라는 말을 듣자 두 눈이 커다래져, 그의 능청스러운 실눈을 바라봤다.



"뭐?"

"흠? 왜 그렇게 놀라하시는지... 그 소년과 용사님은 친분 있는 사이 아니었나요? 뭔가 일이라도 있었나요?"

"... 하하하 하마터면 속을 뻔했어. 여러모로 나를 놀라게 하는 녀석이군. 그 소년은 죽었다. 내가 직접 심장을 터트렸으니 잘 알고 있어."



용사의 커다래진 두 눈이 텔레우스를 향해 작은 불씨를 지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용사님이 조각냈었던 태초의 새장은 회복이 끝나, 부활한 공주님을 맞이하려 하고 있죠. 그리고 소년... 전설 속 그는 이젠 미친 과학자가 되어 천사들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요."



텔레우스의 가느다란 눈처럼 속이 보이지 않는 그의 말투가,


용사의 작은 불씨를 음미하듯 훑고 갔다.



"... 그 미친 과학자가 소년이라는 보장이 있나?"



용사는 텔레우스 바로 코앞에서 생겨나, 부릅뜬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천사는 신이라는 존재와 인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존재. 혹은 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 내려온 사자. 용사님. 전 당신이 왜 소년을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가 언젠간 돌아올 거라는 것도 예상하셨죠?"



텔레우스는 용사의 부릅뜬 눈을, 자상하고도 포근한 말로 뒤덮었지만,



"... 너, 뒤지고 싶지?"



용사의 한 마디가 차가운 강바람이 되어 그곳에 있던 사람들에게 휘몰아쳤다.



"전 용사님이 이 세계의 주인이 되셨으면 하는데요?"

"나를 놀리는 건가?"

"전 이 세계의 원래 주인이 ‘인간종’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이나 신수 같은 신화 속 괴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완벽한 사람’이죠."

"..."



용사는 텔레우스의 가만히 바라보다가 덥수룩한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를 허공에 휙- 집어 던졌다.


그러자 롱소드는 땅에 닿기도 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완벽한 인간이라... 선택받은 그런 녀석과 비교하면, 나야말로 인간을 위한 존재지. 후..."



용사는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일단 올라가자고. 그 소년이 진짜 살아 있는 거라면... 이번에는 되살아나지 못하게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지. 그리고... 그 공주님도 말이야."



----------



"... 그 말 진짜야?"



현관문 앞에 서서 우리의 말을 믿지 못하며, 인상을 찌푸리는 테델의 사촌 형.


커다란 키에 다부진 몸과 깎지 않아 조금 너저분한 수염을 지닌 테델의 사촌 형은, 한눈에 보아도 드워프 종족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나는 일단 그 내용은 꾹 참은 채로, 그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주기 바빴다.



"... 그래그래... 일단은 알겠으니 집으로 들어와라. 시간 늦었어."



어느덧, 자정을 가리키고 있는 휴대폰 시간.


나와 테델은 사촌 형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 그나저나, 테델의 친구는 집에서 부모님이 걱정 안 하시나? 이것도 뭔가 사정이 있는 건가?"



테델의 사촌 형이 앞장서 걸으면서, 내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 전 실베스타라고 해요. 아버지는 출장 중이시라 집에는 아무도 없어요."

"그래? 테델과 비슷한 처지구나. 그러면 뭐... 아, 내 이름은 우스민이야. 만나서 반갑네."



우스민의 집은 혼자 살기에는 좀 큰, 방도 3개에다가 거실과 부엌도 딸린,


새장에서 주로 가정용으로 지급하던 집이었다.


게다가, 그런 큰 집에는 케이블이 여러 개 꽂힌 컴퓨터들이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어,


나는 무언가 로봇이라도 나올 것 같은 집 분위기에 매료돼, 주변을 열심히 두리번거렸다.



"조금 너저분하지? 나는 말이지... 그래, 난 외부 새장으로부터 사이버 공격을 막는 화이트 해커라서 말이야. 요새 부쩍 외부 새장에서 공격이 자주 들어와, 꽤 큰일이었는데..."



우스민은 모니터가 여러 개 설치된 컴퓨터 앞 의자에 앉으며,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밤부터 공격이 완전히 멈춰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너희들이 온 거지."

"... 그게 저희를 공격했던 그 소년과 관련 있을까요?"

"너희 말이 진짜라면, 아마 그렇겠지?"



우스민은 의자에 기대 쭉- 기지개 켰다.



"뭐...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거짓말할 정도로 나쁜 녀석들은 아닌 것 같고..."



우스민은 말 수가 조금 줄어든 테델을 슬쩍 바라보다가, 컴퓨터 쪽으로 몸을 획- 돌렸다.



"테델... 실베스타와 함께 이 새장을 떠나는 건 어때?"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테델이 우스민의 말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도 뜬금없는 우스민의 말에, 순간 내가 무슨 말을 들었나 싶었다.



"... 테델과 실베스타. 너희 두 명을 즉시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이미 신상은 전부 공개되었고..."



우스민의 목소리가 나와 테델을 관통하다시피, 지나갔다.



"아까 내가 너희 두 명을 믿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던 건 너희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야."

"... 왜... 왜... 우리가 나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얼마 전 드워프 할아버지가 실종됐다는 거 알고 있지?"

"당연하지."

"거기에서 일이 시작된 되어, 지금 우리 새장의 보안 수준은 최상. 외부의 모든 것을 배제한다는 지침이 내려졌어. 그건... 외부와 접촉했던 내부의 사람도 포함이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테델의 눈이 갈피를 잡지 못하며, 우스민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도... 지금 이 상황에, 적지 않게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은데... 너희들이 만났던 그 소년... 그래, 답은 그 소년에게 있겠지..."



우스민이 바라보고 있던 컴퓨터 속 환한 모니터가, 내게로 뻗어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소년...


천사의 날개가 달린 소년.


다시금 내 시야로 광활한 들판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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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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