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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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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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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857

작성
22.11.1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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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 - 1. 주인공

DUMMY

그날의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 후부터,


이 따뜻한 천사의 품속에서 기어나와 한땀 한땀 바둑 두듯이 미래의 판을 설계했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과오를 범했다.


검은 가면... 그것은 내가 과거의 과오를 만회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에서부터 시작된 것.


그것은 끊임없이 기원을 파헤치는 탐구자이자,


내가, 비로소 나라는 존재에서 벗어났을 때 생겨난 종잡을 수 없는 의식 덩어리.


내가 설계한 미래를 뒤엎을 수 있는 ‘유일한 나’이기에,


나는 암-바야드라는 존재를 막아야 한다.



"방금 추락한 승천자의 부유 기구에서 암-바야드의 정보는 어느 정도 추출했어."



나는 서진수와 최지환이라는 두 학생 앞에 섰다.



"역시 이쪽은 당연히 미끼, 암-바야드는 여전히 전이 실험을 진행 중일 거야."



두 학생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오묘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박사님 맞으시죠?"



최지환이 나를 향해 여전히 믿기 어려운 듯이 물었다.



"맞아... 나는 서진수가 이 세상에 남을 거라 해서 겸사겸사 이곳으로 나왔어. 앞으로 조금 바빠질 것 같아서 말이야."

"그게 그럼 지금까지 봤던 박사님은 뭐... 수트 같은 건가...?"

"수트라... 아니. 그것 또한 나야... 신기한 모습이지?"

"아니.. 신기하다기보다는 이미지 차이가 너무 나서요..."



그럴 법도 하다.


나의 본체는 내가 처음 봤을 때도 상당히 기괴했으니까.


머리를 뒤덮는 하얀 가면에 창백한 육체,


거기다가 박사라는 이미지에 맞게 하얀 가운을 입혀두었으니,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괴짜 박사나 정체가 불분명한 괴생명체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름 최대한 덜 기괴하게 보이도록 머리를 쥐어 짜낸 거라,


이게 최선의 형태이긴 했다.



"아 죄송해요... 저희에게 하실 말이 있으셨죠? 흠흠..."



최지환은 내게 말하면서, 서진수를 향해 슬쩍 고개를 돌렸다.



"뭐, 할 말이라긴 보다는..."



나는 한 팔을 뾰족한 날붙이처럼 변화시켜, 앞에 서 있던 최지환의 복부로 꽂아 넣었다.



"진실이란건 꽤 가혹한 법이니까..."



나는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서진수를 바라봤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는 듯 최지환의 복부를 관통한 내 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기분... 역시 썩 좋지 않다.


꽤 오래 살아왔건만, 많은 이들을 죽여왔건만,


아직도 이 단백질 덩어리로 이루어진 세포의 기억을 소거하는 일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무... 무슨..."



서진수는 바닥을 향해 쓰러지는 최지환을 두 팔로 받아냈다.


늘어진 몸은 무거울 텐데 아직 몸이 신수라서 그런지, 가볍게 받아내는 것 같았다.



"... 갑자기 왜..."

"천사는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야 가야 한다고 했지? 그걸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몰라도... 그래, 나는 네 말처럼 세계대전과도 같은 혼돈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사람들도, 날개를 먹어, 하늘로 날아가야 하는 법. 그게 이 새장 속에서의 규칙이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서진수는 눈시울까지 붉히면서 나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기억이란, 잔잔히 내려앉는 고동과도 같은 것. 잔잔히 내려앉으면서,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 기억이란 게 무서운 이유이지. 너는 어떻게 생각해?"

"...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

"지금의 너는 내가 어떻게 보이지? 그저 나쁜 놈으로 보이나?"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그래... 그렇겠지. 그럼, 여기서 질문. 나는 정말, 최지환만 죽였을까?"



안타깝지만, 죽여야 한다.


나의 불찰인가?


나의 잘못인가?


이런 질문 이전에... 문제였다.


이 세상은, 불공평함으로 이루어진 세상, 중에서,


새장 밖에 세상은 공평하고도 아름다운 천사의 날개와 같은 곳.


모든 것이 공평하게 죽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니까...


그렇지 라프...?



"얘들아!!!"



서진수는 내 말을 듣고는, 다급히 학생들이 거주 중이던 한 방으로 뛰어갔다.



"우웩"



저기 멀리 한 방에서 들려오는 서진수의 구토 소리.


나는 그 소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 왜... 대체..."



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인 채로 바닥에 널브러져 죽은 연희라는 학생,


그 옆에서 서진수는 두 무릎을 바닥에 꿇고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이 세상의 새장 밖은 잔혹하고도, 자유롭지. 이게 이 세상의 현실이야. 이 세상에 남으면 네 세상에서의 빚은 전부 청산되겠지만, 앞으로 마주칠 ‘현실’은 이보다도 더 끔찍할 수 있지."

"..."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구토하던 서진수의 매서운 눈동자가 나를 베어갈 것처럼 흔들렸다.



"... 마치 우리를 위해줄 것처럼 말하다가 인제 와서 무슨 짓이죠?"

"내가 부유선 갑판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던 건 천사 때문도 있었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어. 서진수, 너는 내가 아무리 말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거야. 자... 그러면, 이제 넌 내가 말한 3가지의 자격 중 하나인 냉정을 실천할 때야."



서진수는 내 말을 듣고도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면, 넌 이 세상에 남지 못하니까."



서진수.


저쪽 세상에서 넘어온 남학생.


암-바야드의 실험체로써, 신수로 변한 학생 중 한 명으로,


호야의 증언으로는 방에서 나온 뒤로 몇 초 후 이성을 상실하여,


자신을 제압한 뒤 부유선에 타고 있던 학생들을 전원 살해함.


가까스로 울란드가 서진수를 막은 데 성공했지만,


지금까지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



삐익---


차에 치였다.


순식간이었다.


오랜만에 뚱뚱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도중,


내 몸보다도 훨씬 커다란 트럭이 나를 치고 갔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죽은 뒤에는 어떤 느낌일까?


찰나였지만, 김두원의 머리로 이런 흔한 생각들이, 스쳐 가...



"전이 실험가동."

"...?"



김두원은 두 눈을 끔뻑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낯선 풍경...


낯설다 못해, 완전히 달라진 풍경.


유럽풍의 주택과 아파트 단지가 섞여 있는 이 희한한 풍경 속에,


공중에 두둥실 떠다니는 다양한 생김새의 보드들.


더불어 간혹 보이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마저 바퀴 없이 공중에 떠다니니,


김두원은 두 눈을 손으로 비비적댔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아니면 사후 세계는 원래 이런 곳인가?


김두원의 머릿속으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멍-함이, 훑고 갔다.



"저기... 괜찮으세요?"



김두원은 자신을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뒤로 주춤 몸을 뺐다.



"엇...!"



수인?


생긴 건 사람처럼 생겼지만,


머리에 뻗어 있는 고양이와 같은 뾰족한 귀,


허리춤에 뻗어 나온 줄무늬 꼬리.


설마 수인... 아니, 이건 코스프레 같은 걸 것이다.



"아... 죄... 죄송해요. 괜찮아요."



상황도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사람과 대화해보는 거라,


그것도 여자와 대화해보는 거라,


말까지 더듬으면서 말한 김두원은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귀여우시네요... 혹시, 이 새장에 사시나?"



흠? 방금 이 여자가 내게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귀엽다니... 이 나마저도 보기 흉한 몸이 어딜 봐서...


김두원은 두 발을 가리거라 예상되는 툭 튀어나온 배로 고개를 숙였다.



'뭐야? 나...'



뱃살이 안 보인다.


그러고 보니, 몸도 무척이나 가볍다.


김두원은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복근도 있어... 안경도 안 썼어?'



팔짝 뛰면 날아다닐 것 같은 이 기분.


숨쉬기도 편하고, 정신도 해맑은 이 기분.


진짜... 색다르고 기분 좋았다.



"아... 아 뭐, 그럼 수고하세요... 하하"



고양이처럼 생긴 이 여자는 내가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게 이상해 보였는지,


머리에 달린 쫑긋 선 귀를 까닥거리면서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지도 이상한 주제에...'



거리 한복판에서 움직이는 코스프레를 입은 채 귀까지 쫑긋거리며 말하는 주제에,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피하다니...


김두원은 점차 멀어져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두 손을 펼쳐 눈앞으로 올렸다.



'그나저나 이게 진짜 어떻게 된 거야?'



꿈이라도 꾼 꾸고 있는 것인지,


교통사고로 머리 쪽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김두원은 너무나 생생한 이 장면에,


잠시 자리에 서서, 눈앞에 펼친 두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봤다.



"...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로 와라. 그러면 네 의문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이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김두원의 귓가 바로 옆으로 속삭이듯이 흘러들었다.


김두원은 흘러든 목소리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 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김두원은 천천히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뗐다.


지금 이렇게 있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어쨌거나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건 현실이 분명하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고 있으니,



'이게 바로 만화책에서나 봤던 이세계 전이라는 건가?'



... 만약 그런 거라면, 진짜로 대박이다.


이제 이 판타지와 같은 세상에서,


잘생긴 외모... 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럴 것 같고...


멋진 몸은 확실한 것 같으니까,


이걸로 이쁜 여자와 데이트 하면서,


전이하면 흔히 주어진다는 ‘특별한 능력’ 같은 거로 탱자탱자 놀면서 살 수 있겠지?


원래 세계에 미련 따위는 없으니까.


원래 세계의 자신은, 이 세계에서 자신이 뭐가 되었든 간에 훨씬 추했으니까...


김두원은 일단 뭐가 어떻게 영문인지는 뒤로 미루고,


목소리가 시킨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은 안 보이는데.'



이 세계의 거리는 탈것과 건물의 형태는 달랐지만,


인도와 차도를 구분시켜놓은 거나 횡단보도의 형태는 거의 똑같았다.


심지어 읽지 못하는 간판들이었지만,


어디가 카페이고 음식점이고 식료품점인지 그 분위기조차 비슷했기에,


김두원은 딱히 무리 없이 이 세계의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건축물은 대체... 음?'



김두원은 주변을 대충 둘러왔지만 그런 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이라니...


그런 게 과연 어떻게 생겼을지 김두원은 지금까지 봐 왔던 판타지 속, 부유 건물의 모습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엇...!?'



그러자 한눈에 보아도 커다란,


반타원형을 세로로 세워 둔 것 같은 느낌으로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


암석 덩어리 위에는 중세 시대의 성처럼 뾰족한 탑들이 잔뜩 배겨 있어,


탑들은 또 하나의 거대한 원기둥 탑을 둘러싸고 있었다.



"... 왐마..."



김두원의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이곳은 그야말로 판타지 세상이다.


흔히 소설책이나 웹툰이나 만화책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웅장함을 넘어, 신비함까지 만발하고 있는 판타지 속 부유성.



'내가 저기로 가라고...?'



저 성으로 이어지는 레프트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이곳에 있는 탈 것들은 전부 날아다니니까,


뭐... 공중 부양 버스 같은 거라고 있는 건가?


김두원은 부유성의 모습에 압도되어 삐져나오는 소름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부유성 주위를 훑어보았다.



"도련님! 여기에 계셨군요...! 후... 후..."



검은 양복 차림의 한 여자가 김두원에게 헐레벌떡 뛰어와,


손으로 무릎을 짚고 거칠어진 호흡을 뱉어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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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6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3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5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76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1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5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5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7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8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4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8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5 0 12쪽
» 5 - 1. 주인공 22.11.19 62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63 4 - 18. 운명 22.10.29 5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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