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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님의 서재입니다.

천사가 사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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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딕
작품등록일 :
2021.07.26 19:45
최근연재일 :
2023.11.09 16:15
연재수 :
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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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01,857

작성
23.02.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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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5 - 12. 날개 달린 것들

DUMMY

"천사가 포착되었습니다."



텔레우스가 천사라 말하자,


숨 쉬는 소리조차 버거울 정도의 정적이 이 대강당 속으로 길게 이어졌다.


텔레우스는 길게 이어지는 정적 속에서 비석을 지나쳐 용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두 팔을 펼쳐 들었다.



"그것도 아~ 주 커다랗게 말이죠."



텔레우스의 농담 같은 가벼운 어조가 기나긴 정적을 무심한 듯 부수니,


용사는 잔바람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가, 텔레우스 앞에서 나타났다.



"뭐?"



용사는 믿을 수 없다는 의구심과 진한 살기를 엮어,


텔레우스에게 동그래진 눈을 들이대면서 의문을 토해냈다.



"밖에 나가자마자 알 수 있을 겁니다... 천사 한 마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깐요."



텔레우스는 용사의 뚫어질 듯한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감은 것 같은 눈매로 평온하게 미소지었다.



----------



나는 진한 햇살에 눈을 떴다.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무아지경에,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침대에 앉아, 이 낯선 방을 두리번거렸다.



'... 실베스타!'



익숙한 목소리가 이 방안에서 메아리쳤다.


나는 이 익숙한 목소리에 그만, 입을 틀어막았다.



'아아... 나의 아이야... 내게 사랑을 다오.'



기억났다.


나랑 가장 친했던 테델의 모습과 토악질 날 정도로 아름다운 천사의 꿈이...


내 동공으로, 그 거대한 천사의 머리통이 테델의 얼굴로 변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새하얀 날개를 조아리면서 자비롭고도 상냥하게 내 뇌에 날개를 달아,


흔들리는 따스함을 풍겨대는 것 같았다.


나는 비틀대며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보이는 문을 몸으로 부딪혀 열었다.



"...?"



베란다 앞으로 펼쳐진, 커다란 천사 한 마리.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왜 꿈속에서 보았던 천사가 하늘에...


... 꿈인가?


그래, 꿈일 것이다.


나는 입을 막고 있던 두 손을 눈앞으로 펼쳐 들었다.



"... 잠에서 깨어났군. 실베스타."



내 머릿속에서 어제 들었던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 내가... 미친 걸 거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겠지..."



그래, 이게 만약 꿈이 아니면 내가 드디어 돌아버린 거겠지.


나는 빙그르르 도는 시야에, 베란다에서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 것인가?


아버지에게 연락해봐야 하나?


아니... 아버지는, 분명 나에 대한 것들을 모른 척할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떠났을 때, 나에 대한 것들도 놓아 버린 것 같았으니까...



"네가 베란다에서 본 거대한 천사는 어젯밤에 널 찾아온 천사다."

"..."

"그 천사는 아무래도, 널 원하는 것 같더군."

"...... 당신은 누구죠?"



이 이름도 모를 자.


류안과 대화를 나누던, 의문의 남자.


그는 처음엔 내가 미쳐서 나온 또 다른 인격인 줄 알았는데...



"나는 박사다. 널 만든 자이지."

"날 만들었다고...?"

"영혼을 잡아 두기 위한 그릇. 너는 류안이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생체 인형 중 하나로, 나도 그 실험에 동참했었지."

"...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말 그대로 네 아버지, 셀베르니는 류안과 함께 생체 인형을 연구하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나는 머리를 좌우로 휘저었다.



"... 기억에 혼돈이 생긴 것 같군... 일단 쉬면서 생각을 정리해라. 말종이긴 하다만, 용사가 있는 이상은 천사가 이 새장에 내려오지 못할 테니."



내 머릿속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침대에서 다급히 일어났다.



"어...? 괜찮아?"



류안이 두 명의 메이드와 함께 방으로 들어오며, 침대에서 일어서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제 그 남자가 머릿속에서 말을 걸었어요... 제... 제가 드디어 미친 걸까요?"

"일단, 씻은 뒤에 옷부터 갈아입어. 그리고서 이야기하자."

"..."



좋은 생각이다.


류안의 말대로 씻으면 세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이 개운해지도록 차가운 물로 세수했다.


양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하지만, 세상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또렷하게 이 세상이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류안이 건넨 옷들을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방으로 나왔다.



"너도 봤지? 거대한 천사..."



변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류안이 침대 앞에 놓인 화장대 의자에 앉아 내게 말했다.



"네..."



나는 침대에 걸쳐 앉으며, 류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나도 모르겠어... 그러니... 실베스타라고 했지? 혹시 어제 그 박사님을..."

"그건 천사고, 아무래도 이 소년의 사력에 이끌린 모양이더군."



내 목소리가 또 그 박사라는 자로 변해, 류안에게 말했다.


류안은 갑자기 바뀐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는가 싶더니,



"... 사력... 책에서 읽었어요. 그건 신비한 힘이라고... 류안이 영혼의 형태라고 하던데..."



금방 진정돼 말을 걸었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결국 사력이란 생명 에너지라고 보면 돼. 류안은 그걸 인간의 근본적인 형태라 주장했지만, 나는 단순한 에너지라고 정의했었지."



내 몸이 멋대로 류안을 바라봤다.



"인간은 불안정하다. 그렇기에 ‘살린다는 개념’은, 그저 ‘구현하다’라는 것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류안은 끝내 이걸 부정하더군. 그의 편집광적 사랑이, 이성을 상실한 거겠지."

"... 그렇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신비한 힘이 있는데 그것이 영혼인지는 모르는 거 아닌가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군. 그는 사랑하던 여인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이 ‘그녀가 진짜 그녀인지’ 의문을 품기 시작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그에게 있어 그녀는 이미 죽어버린 연인이었으니, 그녀가 꾼 꿈마저도 크게 와닿았던 거겠지."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류안 앞에 섰다.



"자... 그러면 서론이 좀 길었다만, 이제부터 자넨 류안이 연인을 살리느라 연구했었던 ‘사력’에 관한 책들을 챙겨 텔레우스라는 남자를 찾아가라."

"...? 갑자기 왜..."

"저 거대한 천사를 만든 장본인이 류안이 연구했었던 사력에 눈독 들이는 거 같으니, 텔레우스가 너를 지켜줄 거다."



박사의 말을 들은 류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썹을 구기면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천사를 만들었다고요?"

"그건 겉으로 보기엔 천사처럼 보이지만, ‘생체 병기’와 다를 바 없어... 아무튼, 네 메이드들이 너를 텔레우스에게 안내해 줄 테니 그녀들에게 명령해라."

"생체... 병기?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메이드들이라면..."



류안은 방문 앞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두 명의 메이드를 바라봤다.



"그녀들이라면 천사 때문에 위험하다고 여기서 나가지 못하게 할텐데..."

"이 저택에 있는 메이드들은 전부 류안이 만든 생체 인형들. 이 외부로부터 단절된 새장에선 적당한 인재를 구하기가 힘들지. 그래서 류안은 자신을 보조할 인력들을, 이런 생체 인형들로 대체했다. 덕분에,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말에는 절대복종할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마."

"... 그런 말을..."

"이제 슬슬 이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 다음번엔 내 쪽에서 찾아올 테니, 나를 불러도 대답은 없을 거다."



나는 몇 번의 헛기침을 끝으로, 다시 몸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괜찮아?"

"... 텔레우스라면 류안님을 이은 가드너들의 대장인데... 진짜 류안님 맞으시죠?"



비록 내 세대는 아니지만, 아직도 류안은 우리 새장에서 영웅으로 통하며 특히 아버지뻘 세대는 텔레우스보다 류안이 더 인기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미디어에서 내비치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것도 모자라, 마치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니.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침대에 몸을 걸쳐 앉았다.



"그게... 어...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실베스타는 이 방에서 쉬고 있어."



류안은 내 말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도망치듯 두 메이드들과 함께 방에서 나갔다.


나는 류안이 나간 방문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베란다 너머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이 내 등을 소름 끼치게 비춰, 나는 커튼을 치고 침대에 누웠다.



----------



실베스타와 이야기를 마치고 방에서 나온 김두원은,


복도를 걸으며 슬쩍, 곁눈질로 양옆에서 나란히 걷던 두 메이드의 얼굴을 바라봤다.



'저게 진짜 인형이라고...?'



아무리 봐도 저건 분명 사람이었다.


피부에 나 있는 미세한 주름이며,


머리카락에 흐르는 윤택이며,


확실히 굉장한 미인이긴 했지만, 그걸 떠나 사람이 아닐 수 없는 얼굴인데...



"혹시... 두 메이드 분은... 제가 만든 인형인가요?"



사람한테 인형이라니...


김두원은 뭔가 굉장히 웃긴 질문이란 건 알았지만,


박사라는 자에 말이 맞는지도 확인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타협점으로 정면을 바라본 채 혼잣말하듯이 말했다.



"네. 전 도련님의 충실한 인형이랍니다."

"네 저도 도련님의 절실한 인형이랍니다."



이런...


이전에 이런 상상을 해보곤 했다.


나를 따르는 아리따운 미인들이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막... 그... 야한 짓을 하면서... 기분 좋지 않을까?


재벌가로 옆에 미인들을 끼고... 그러면 그것이 천국이 아닐까?


라고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상상할법한, 망상이란 걸 해본 적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여자 손도 못 잡아 본 자신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막상 이렇게 자신을 노골적으로 따르는 ‘생체 인형’이라는 것들을 직접 마주하니,


김두원은 어딘가 소름 끼치고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면, 여기 저택에 있는 모든 메이드들은..."

"당연히 도련님이 만드신 인형들이랍니다."

"그... 그렇군요."



부자에다가, 잘생겼고, 자신을 따르는 미인 메이드들이 이렇게 많은데...



'박사라는 자의 말론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류안은 죽었다고 했지...?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 그 박사, 진짜 믿을 만한 거야?'



김두원은 갑자기 나타난 박사가 실베스타라는 소년의 몸을 통해 말하는 이 상황 자체가 의심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 ‘그나마’ 내 처지를 아는 사람이기에, 김두원은 이 매끈한 류안의 턱선을 긁적이면서,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이 몸에 대하여, ‘경각심’을 다지려고 할 때,



"도련님."



복도 저기 멀리에서 자신에게 걸어오는 메이드장의 모습에,


그녀에게 ‘경각심’으로써 ‘인형’이 아니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긴장이라도 했는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일단은 보류했다.



"실베스타가 말했던 테델이란 소년의 사촌 형 집을 확인 결과, 대량의 혈흔과 신체 조작이 발견되었습니다."

"... 그렇다는 건..."

"실베스타가 말했던 대로, 그 소년은 두 사람을 먹은 것 같습니다."

"..."



... 진짜... 사람을 먹다니.


그러면서 제대로 기억도 못 하고, 박사에 의해 몸을 조종당하고 있다고?



"... 저기, 혹시 텔레우스라는 남자가 누구죠?"

"텔레우스는 도련님을 뒤이어 가드너의 리더를 맡은 사람입니다. 가드너란, 우리 새장을 외부로부터 지키고, 또 외부 새장에서 ‘여러 기술’을 배워오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새장... 은 뭐 나중에 알고... 그러면 그 텔레우스라는 남자는 신용할 만 한가요?"

"그는 가끔 저택에 찾아와 도련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으로, 그는 사람을 떠보기 굉장히 좋아하지만, 사람만 놓고 봤을 때는 신용할 만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텔레우스라는 남자는 박사님을 알고 있을까?


김두원은 박사가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그를 만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또 메이드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사력에 관한 책들을 챙겨 텔레우스를 만나야겠는데... 혹시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요?"

"... 도련님... 도련님은 우리에게 부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니깐요. 물론, 도련님이 위험해지실 부탁이라면 말리긴 하겠지만, 저희는 당신의 메이드들, 언제든 명령해주세요."



언제나 무표정하게 꾹 다물고 있던 엄한 선생님의 입술을 느슨하게 풀면서 다소곳한 미소로 말하는 메이드장.


김두원은 언제나 차갑기만 했던 그녀의 기운이 선뜻 봄바람처럼 밀려와, 방금까지의 경각심을 단숨에 확- 놓아 버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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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6 - 4. 쟁탈전 23.06.24 19 0 12쪽
86 6 - 3. 쟁탈전 23.06.05 22 0 12쪽
85 6 - 2. 심해족 23.05.20 25 0 12쪽
84 6 - 1. 심해족 23.05.06 25 0 12쪽
83 5 - 19. 나무 23.04.22 35 0 13쪽
82 5 - 18. 일상 23.04.08 28 0 12쪽
81 5 - 17. 일상 23.03.26 31 0 12쪽
80 5 - 16. 일상 23.03.18 32 0 12쪽
79 5 - 15. 일상 23.03.04 34 0 13쪽
78 5 - 14. 서막 23.02.26 34 0 12쪽
77 5 - 13. 서막 23.02.18 36 0 12쪽
» 5 - 12. 날개 달린 것들 23.02.11 41 0 13쪽
75 5 - 11. 날개 달린 것들 23.02.04 39 0 13쪽
74 5 - 10. 날개 달린 것들 23.01.28 44 0 14쪽
73 5 - 9. 들판 23.01.21 40 0 13쪽
72 5 - 8. 들판 23.01.14 44 0 12쪽
71 5 - 7. 천사와 악마 23.01.07 54 0 12쪽
70 5 - 6. 천사와 악마 22.12.31 56 0 13쪽
69 5 - 5. 낙원 22.12.17 57 0 12쪽
68 5 - 4. 낙원 22.12.10 53 0 12쪽
67 5 - 3. 낙원 22.12.03 57 0 13쪽
66 5 - 2. 주인공 22.11.26 54 0 12쪽
65 5 - 1. 주인공 22.11.19 61 0 12쪽
64 4 - 19. 주인공 22.11.12 5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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