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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

아포칼립스의 마물 포식자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뭉작가
작품등록일 :
2021.09.05 21:10
최근연재일 :
2022.01.15 01:48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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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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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05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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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1부] EP.14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고

DUMMY

[1부] EP.14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고


C마트로 돌아오자 생존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서예진은 내 팔이 무사한 걸 몇 번이나 확인했고, 김씨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오늘 밤은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을 줄 알았다.

이계의 왕을 토벌했고 끝냈고, 데스티의 방해 작전도 막아냈고.

무엇보다 잘린 팔까지 복구시키는 [페이즈 2] 스킬을 얻으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심장을 꿰뚫리지만 않으면 어떤 부상도 문제가 없다는 뜻이니까.

스킬 쿨타임이 24시간이나 되었지만, 장점을 생각하면 타당한 조건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었다.

난 새롭데 뜬 알림창을 보면서 입술을 짓씹었다.


[ ‘페이즈 2’의 독성이 생존자의 몸에 침투합니다. ]

[ 이계 침식률 5% ]

[ 이계 침식률이 100%에 도달하면 이계의 주민으로 취급되면, 생존자의 권리를 모두 박탈당합니다. ]


“그럼 그렇지. 너무 잘 풀린다 했어.”


< 대아시 >에서 생존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마물과 싸워야 하는 등장인물들이다.

그들은 이야기라는 무대의 배우이기에 몇 가지 권리가 주어진다.

‘진행자는 생존자를 직접적으로 해할 수 없다.’, ‘생존자는 독좌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 등이 [생존자의 권리]에 해당한다.

전자의 권리 덕분에 데스티가 날 직접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계의 주민으로 취급되면 난 어떤 규칙에 의해서도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

데스티가 알게 되면 곧바로 내 목을 꺾으러 올 것이다.


“꼭 필요할 때를 제외하면 못 쓰겠네.”


하긴 말도 안 되는 스킬이긴 했다.

부상과 체력을 완전히 회복시켜주고 공격력, 방어력 버프를 20%나 넣어주는 스킬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양심 없는 능력이다.


“정말 이렇게 자도 되는 건가······.”


생존자들은 밤새 새들에게 시달렸던 기억에 걱정했다.

그러나 그간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곧 곳곳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두 명씩 불침번을 지정해줬다.

본인도 피곤할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한 집단의 리더로는 나보다는 저런 사람이 더 어울린다.

난 스스로를 가장 우선적으로 챙기는 이기적인 놈이니까.


“아직도 느낌이 쌔하네.”


잘려나갔던 팔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복구되었다 해도, 그때의 고통을 잊을 순 없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계획과 실제는 천차만별이었다.

[광폭화]한 케리크로우가 내 팔을 날려버렸을 때, 난 잠시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지 못했다.


“앞으로가 걱정이군.”


시나리오를 거듭할수록, 마물들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를 시작할 때쯤엔 케리크로우 같은 녀석은 귀엽게 보일 거다.

그때쯤엔 팔다리 잘려나가는 부상은 흔한 일이 되겠지.


난 고개를 돌려 구석진 자리에 누워있는 둘을 바라보았다.

두 개를 이어붙인 매트리스에 서예진과 연수희가 누워있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이미 잠든 것 같았다.


내가 큰 부상을 당해도 서예진이 있으면 회복은 가능할 것이다.

개인 특성으로 [메딕]을 고른 힐러는 육체능력레벨이 70에 도달하면 [신체수복]을 배울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최소 이틀 동안은 한 팔로 지내야 한다.

만약 나 혼자서 싸우다가 다리라도 잘리면, 도망도 못 가고 죽어야 하는 것이다.


“트롤이나 슬라임 같은 놈들이 없는 게 아쉽군.”


이들은 모두 재생능력이 뛰어난 마물들이다.

자르고 베어도, 심장이나 핵이 뚫리지만 않으면 무한정 재생하는 괴물들.

발견하기만 하면 포식해서 [재생] 스킬을 흡수하겠지만, 그런 특수 마물들은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잠깐.”


곰곰이 생각하던 중, 재생형 마물들을 찾는 방법이 떠올랐다.

난 매트리스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이고 비상계단으로 나갔다.

불침번을 제외한 모든 생존자들은 코를 골거나 뒤척이며 잠들어 있었다.


문을 닫자마자 그레고리를 부르려할 때, 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


“양반은 못 되네.”


머릿속에서 띠리링거리는 전화벨소리가 들렸다.

예전에는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던 놈이 이젠 문명의 산물을 이용하는 것조차 귀찮은 듯 보였다.

그의 전화를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왜?”


대답을 하자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딸칵거렸고 곧 목소리가 들렸다.


[ “작가님, 대우주플랫폼 PD그레고리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죠?” ]

“누구 놀리냐?”


‘살아계셨네요?’라고 묻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엔 무슨 일인데?”

[ “제 동료직원이 작가님께 큰 실수를 했더군요. 그래서······.” ]


데스티 때문에 온 거였군.

잘못한 거 알아서 다행이네.

솔직히 [페이즈 2] 없었으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그럼 데스티는 진행자의 권한을 박탈당하고, 그녀가 관리하던 시나리오는 개판이 되겠지.


[“ 같은 진행자로써,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

“네가 사과를? 나한테?”


나 괴롭히는 맛에 살던 놈이 왜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이지?

뭔가 기분이 찝찝한데······.


[ “이계의 왕을 토벌하던 모습. 숨겨왔던 스킬로 그 후의 위기까지 타파하는 완벽한 결론. 이번 시나리오에는 저도 크게 감동했습니다.” ]


그레고리는 말끝에 미세한 악센트를 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꿍꿍이가 있다는 의심이 들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대우주플랫폼에 구독좌들 좀 늘었나 보지?”


신들은 대우주플랫폼의 < 대 아포칼립스 시대 >를 구독해야 이 세계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아마 이번 시나리오로 꽤나 많은 신들이 독좌가 되었을 것이다.


[ “덕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작가님께 좋은 제안을 드리고 싶군요.” ]


난 ‘좋은 제안’이란 단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다.

여기부터가 녀석의 본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저와 후원자 계약을 맺지 않으시겠습니까?” ]


***


그레고리가 계약을 제안하는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갔다.

진행자의 입장이 아니라 후원자로써 날 관리하고 싶은 거겠지.


[후원자 계약]이란 독좌, 즉 신과 인간이 맺는 일종의 화신계약이다.

계약을 맺은 독좌는 화신에게 골드를 후원하거나, 자신의 신기(神技)를 빌려줄 수 있다.

여기서 ‘신기’란 해당 독좌와 관련된 스킬을 뜻한다.

쉽게 말해, 독좌들은 마음에 드는 화신을 캐릭터로 골라 생존게임을 하는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후원자가 생기면 여러 방면에서 제약이 생긴다.

독좌들은 화신에게 많은 걸 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널 후원하고 있으니 내 말을 들어라 뭐 이런 식이다.


“후원자 선택은 2부 시나리오부터 시작되잖아.”

[ “시스템적 문제는 제 힘으로 조작이 가능합니다. 신기를 빌려드리면 바로 들키겠지만, 골드를 후원하는 건 문제될 게 없겠죠.” ]

“진행자란 놈이 조작이라니······. 그런 얘기 독좌들 앞에서 막 해도 돼?”

[ “그건 걱정 마십시오. 검열에 걸린 말들은 묵음 처리되거나,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할 테니까요.” ]


이거 완전 사기꾼이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면 데스티랑 다를 게 없잖아?


[ “저와 계약하시면 매일 10만 골드를 후원해드리죠.” ]


난 후원금액을 듣는 순간 계약을 승인할 뻔했다.

아포칼립스가 터지고, 내가 이틀 동안 개고생하면서 벌어들인 골드가 대략 10만 골드.

그레고리는 그걸 공짜로, 그것도 매일 주겠다는 소리였다.

난 슬쩍 녀석의 의중을 떠보았다.


“솔깃하긴 한데······, 이야기 관리나 잘 하면 되지. 화신은 얻어서 뭐 하게? 넌 진행자라 어차피 후원전쟁에도 참여 못 하잖아.”

[ “전 신들의 세력다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흥미입니다. 작가님이 계속 흥미로운 스토리를 보여주셨으면 하거든요.” ]


그레고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가 말하고 있을 때 속으로 [원작 출력]을 발동했다

무슨 생각인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정확하게 확인하고 싶었다.


[ 강한 정신방벽이 ‘원작 출력’을 튕겨냅니다. ]

[ 스킬 발동에 실패했습니다. ]


혹시나 하고 써봤는데 역시 최고신 등급한테는 안 먹히네.


[ “제 생각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 지금 진심이니까요.” ]


역시 이런 건 들키는군.

근데 누가 봐도 거짓말로 들려, 임마······.


“음, 그러면.”


앞으로 레벨업에 필요한 골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필요한 아이템도 점점 비싸질 것이다.

녀석과 계약하면, 난 어떤 생존자들보다도 앞서나갈 게 분명했다.

또 동료들을 육성시키는 것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난 그레고리의 제안을 거절했다.


“미안, 다른 사람 찾아봐.”


그레고리처럼 많은 골드를 가지고, 격이 높은 후원자를 얻을 기회는 앞으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한 신과 계약을 맺을수록 그에 따른 제약 또한 커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레고리를 후원자로 두면 절대 최종 시나리오를 클리어할 수 없다.


[ “유감이군요. 좋은 팀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

“좋은 팀은 무슨······. 그 제안 받아들였다가 나 망하라고?”

[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전 그저 동업자의 마음으로 말씀드렸던 겁니다.” ]


교활한 새끼······, 나 이용해서 플랫폼 키우고 마지막에 버릴 생각이었으면서.

내가 원작 작간데 그것도 기억 못하겠냐?


“야, 그것보다 부탁 하나만 하자.”

[ “흠, 글쎄요. 생존자의 개인적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


우와······, 거절했다고 바로 태도 돌변하는 것 봐.


“아까 동료직원이 잘못한 거 사과하러 전화했다며. 이번 일은 전적으로 데스······, 가 아니라 인과율의 법칙이 벌인 일이니까 너한테도 책임이 있지.”

[ “편하게 데스티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 단어도 검열대상이니까요.” ]

“고맙다······. 안 그래도 죽을 뻔 했어.”


데스티가 그렇게까지 막 나갈 줄 알았겠냐고.


[ “책임이라······. 작가님 말씀도 맞네요. 그럼 한 가지만 들어드리죠.” ]

“아, 그럼.”

[ “단, 랜덤박스 당첨확률을 올리는 것, 레전드 등급 장비, 골드 선물 세트 같은 부탁이라면 미리 기각하겠습니다. 이 세계의 진행자로써 뇌물이나 확률조작 같은 짓은 할 수 없거든요.” ]

“너 아까는 시스템 조작까지 하면서 날 화신 삼겠다고······.”

[ “이 세계의 규칙을 어기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부탁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


예나 지금이나 지 마음대로인 건 똑같네.

이러니까 내가 널 못 믿지.


난 그레고리와 통화를 하기 전부터 생각해던 요구사항을 말했다.


“히든 퀘스트를 발생시켜줘.”

[ “퀘스트는 시나리오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 독단으로 그걸 생성하는 건 명백한 조작행위입니다.” ]

“새로 만드는 거 말고. 원래 닷새 뒤에 열리기로 되어있는 퀘스트 있잖아?”


그레고리는 흠칫 놀라며 신음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 “작가님은 당해낼 수가 없군요······. 300화가 넘는 에피소드를 다 기억하시는 겁니까?” ]

“나도 조금 전에 생각났어. 그건 예정되어 있던 거니까 괜찮지?”

[ “확실히······, 문제될 사항은 없을 겁니다.” ]

“그럼 부탁 좀 한다. 데스티가 사고 친 건 잊어줄게.”


난 다시 한 번 데스티의 실수를 끄집어내며 그레고리에게 요구했다.


[ “글쎄요, 이거 또한 생존자의 개인적 부탁이라 쉽사리 결정하긴 어렵군요.” ]


녀석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내가 [후원자 계약] 제안을 거절했으니 들어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아니, 넌 들어줘야 할 거야.”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우리 둘의 관계에서 갑은 나라는 사실을.


“내가 활약해야 대우주플랫폼도 구독좌수를 늘릴 수 있을 것 아냐. 지금 나 덕분에 댓글창 웅성거리는 거 안 보여?”


말은 저렇게 해도 그레고리는 절대 날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활약할수록 독좌들은 날 원할 테고, 내가 사라지면 플랫폼의 구독좌수는 하락할 테니까.


[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게이트는 몇 시에 열어드릴 까요?” ]


그레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요구를 들어주었다.

난 녀석의 한숨 소리에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내일 저녁 5시. 그전에 남아서 할 일이 좀 있어.”


히든 퀘스트는 게이트를 통해 이계로 건너가야 발생한다.

새들의 행성 ‘버드로아’의 주민들이 지구로 넘어온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이계를 탐험하는 것이다.


[ “알겠습니다. 대신 히든 퀘스트 할당 인원은 1명으로 제한하겠습니다.” ]

“왜? 조금만 늘려줘.”

[ “시나리오가 끝났으니 그에 속한 히든 퀘스트도 원래는 사라지는 게 맞습니다. 작가님께 드리는 특혜를 다른 생존자에게도 허락할 순 없습니다.” ]


그런 부분에선 쓸데없이 디테일하다니까······.

뭐, 이정도도 많이 얻은 거니까.


“알겠어. 들어가 봐.”


짧은 인사말과 함께 그레고리의 목소리가 끊겼다.

난 조심스럽게 비상구를 열고 마트 안으로 되돌아갔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생존자들은 곳곳에 깔린 매트리스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여러 개의 손전등과 유리컵에 넣은 촛불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모두를 이끌어줬던 김씨, 그를 잘 따르던 어린 여자아이와 중학생 소녀.

그리고 쌀포대와 페인트 통을 함께 나르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계 러시]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버텨야 했던 어제가 떠올랐다.

어렵게 얻은 하룻밤의 평화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심할머니가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마트 생존자들이 내 명령에 의구심을 가질 때, 가장 먼저 내 말을 따라준 사람이었다.


“그때 고마웠다는 말도 못 했네.”


난 할머니께 미소로 답하고 매트리스에 누웠다.

솔직히 저들을 꼭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힘을 키우고, 동료들을 훈련시키고 싸운 것밖에 없었다.


송장까마귀들을 토벌하고 여기로 돌아왔을 때, 생존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모든 생존자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가 잠자리에 들고, 난 차가운 밤바람에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했다.

모두를 구하겠다는 같잖은 영웅심은 생존에 불필요하다.

아니, 오히려 죽음을 부르는 신호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목숨과 함께 싸워주는 동료들의 목숨이다.

예진씨, 현웅 아저씨, 진주, 영주, 수희.

대 아포칼립스 시대에선 그들을 지켜내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때 건너편 유리벽 쪽 매트리스에서 누군가 일어났다.


“어? 아저씨, 안자요?”


중학생 여자아이가 눈을 비비며 지나갔다.

교복을 보니 수희와는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았다.


“잠이 안 오니?”

“생각해보니까 아까 화장실을 안 다녀왔어요.”


내 옆의 촛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건 이미 중학생의 표정이 아니었다.

세월의 풍파를 겪은 심할머니와 비슷한 얼굴이었다.


좀비와 새들에게 쫓기며 산 이틀.

그 시간은 중학생 아이에게서 사춘기란 시절을 빼앗아갔다.

그녀는 날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처럼 조용한 밤이 얼마나 이어질까요?”

“아마······, 얼마 못 갈 거야.”

“시나리오라는 게 시작되면 아저씨가 또 지켜줄 수 있어요?”


난 입술을 열었지만 말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어렵겠지.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으니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섣부른 약속은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난 실망한 표정을 예상했다.

그러나 중학생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저씨.”


아이는 오히려 날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로 향하려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러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괴물들한테서 생존하는 법 같은 거 알려줄 수 있어요 아저씨가 그런 거 잘 안다던데.”


보나마나 영주가 신나게 떠들었겠지.

여기서 내 얘기 제일 많이 하는 건 걔니까.


“내일 가르쳐줄게.”

“약속이에요. 가능하면 아저씨처럼 강해지는 법도요.”

“그래, 약속.”


중학생 아이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화장실을 향했다.


난 매트리스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영웅심을 버리겠다고 결심했지만 저런 아이들을 보고나면 가슴 한 편이 답답해졌다.


“내일 가르쳐 줄 거나 생각해둬야겠다.”


난 어떻게 하면 마물과의 전투법을 효과적으로 알려줄지 고민했다.

그때 알림창이 뜨며 내일의 히든 퀘스트를 예고했다.

그레고리가 빠르게 일처리를 한 것 같았다.


[ 내일 저녁 5시, ‘리제넨 대륙’으로 이어진 게이트가 열립니다. ]

[ 생존자 최경호는 4시 55분까지 지정된 게이트 발생 지역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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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1부] EP.18 트롤 동굴( 4 ) +1 21.11.30 548 11 14쪽
60 [1부] EP.18 트롤 동굴( 3 ) +2 21.11.26 573 11 13쪽
59 [1부] EP.18 트롤 동굴( 2 ) 21.11.25 584 13 13쪽
58 [1부] EP.18 트롤 동굴( 1 ) +2 21.11.24 634 13 13쪽
57 [1부] EP.17 또 한 명의 포식자 21.11.23 656 14 13쪽
56 [1부] EP.16 리제넨 제국( 6 ) 21.11.23 659 18 14쪽
55 [1부] EP.16 리제넨 제국( 5 ) 21.11.20 714 17 15쪽
54 [1부] EP.16 리제넨 제국( 4 ) +1 21.11.19 750 20 13쪽
53 [1부] EP.16 리제넨 제국( 3 ) 21.11.18 815 19 14쪽
52 [1부] EP.16 리제넨 제국( 2 ) 21.11.17 858 18 14쪽
51 [1부] EP.16 리제넨 제국( 1 ) 21.11.15 908 25 12쪽
50 [1부] EP.15 생존자의 자격( 5 ) +3 21.11.13 977 26 14쪽
49 [1부] EP.15 생존자의 자격( 4 ) 21.11.11 941 25 14쪽
48 [1부] EP.15 생존자의 자격( 3 ) +1 21.11.10 977 25 14쪽
47 [1부] EP.15 생존자의 자격( 2 ) +6 21.11.09 1,024 28 14쪽
46 [1부] EP.15 생존자의 자격( 1 ) +1 21.11.08 1,074 26 14쪽
» [1부] EP.14 첫 번째 시나리오가 끝나고 21.11.05 1,214 34 17쪽
44 [1부] EP.13 데스티( 2 ) 21.11.05 1,184 30 15쪽
43 [1부] EP.13 데스티( 1 ) 21.11.03 1,197 30 13쪽
42 [1부] EP.12 보스전( 3 ) 21.11.02 1,189 33 12쪽
41 [1부] EP.12 보스전( 2 ) +2 21.11.01 1,204 32 12쪽
40 [1부] EP.12 보스전( 1 ) +2 21.10.29 1,234 34 14쪽
39 [1부] EP.11 이계의 왕( 10 ) +4 21.10.28 1,232 34 12쪽
38 [1부] EP.11 이계의 왕( 9 ) +2 21.10.27 1,208 34 12쪽
37 [1부] EP.11 이계의 왕( 8 ) +2 21.10.26 1,220 35 12쪽
36 [1부] EP.11 이계의 왕( 7 ) 21.10.25 1,254 33 13쪽
35 [1부] EP.11 이계의 왕( 6 ) 21.10.22 1,304 37 15쪽
34 [1부] EP.11 이계의 왕( 5 ) 21.10.21 1,340 3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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