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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 님의 서재입니다.

마하나라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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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비공
작품등록일 :
2006.10.22 23:49
최근연재일 :
2006.10.22 23: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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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0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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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마녀(魔女)

DUMMY

몽롱한 환상의 방, 외부의 침입이 불가능한 오직 둘만의 세상, 어지러울 정도로 천장과 벽과 바닥이 흔들리지만 둘은 평소처럼 마주앉아 대화를 나눴다.


"이키니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카르닌이 돕고 있고."

"모햐카가 잘했나 보지?"

"의외로…… 소질이 없어 보이더니 잘했나 봐."

"원래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에게 속아 넘어가기 쉽지. 그것이 진실이라면 더 잘 넘어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것은 음모를 좋아하는 자들의 한계야."

"그럼 너도 마찬가지겠네."

"뭐? 호호호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앞에 나서지 않기 때문에 괜찮아."


로히나에게도 어쩔 수 없는 자만심이 있다는 것을 로티나는 느꼈지만 지적하지는 않았다.


"참 모햐카가 하린의 몰골을 묻던데?"

"왜? 걱정돼서 아니면 비웃어 줄려고?"

"모햐카의 말이 걸작이었어. 기분 더러울 때 상상하면서 기분전환하고 싶데."

"호호호 모햐카가 하린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겠어. 뭐 나라도 그 짓을 당하면 증오할 수밖에 없겠지. 그래 하린에 대해 말해줄게. 하린은 다시 본가로 들어갔지. 자신이 가지고 온 영혼석들을 팔아서 말이야."

"영혼석을 팔았다고?"

"그래 가족의 영혼석을 팔았어."


로티나는 잠시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가모가 가족의 영혼석을 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가모가 있다면 다시는 가족의 신뢰를 얻을 수 없었다.


"미쳤군."

"미쳤어 아틸렌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지. 그녀는 복수만을 생각하고 있어."


로히나는 기쁜 듯이 웃었다. 파티장에서 우연을 가장하고 다가온 크라미 남작을 통해 초췌한 하린을 만났다. 그리고 하린을 통해 얻은 정보와 그 동안 얻은 정보로 합쳐 아틸렌의 약점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가문을 가질 거야.'


로히나의 생각은 로티나를 흥분시키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


모든 결투가 끝나고 5명의 대대장들과 4명의 참모 및 특수부대 대장들이 관람실 안으로 모였다. 테헤라 권속을 데리고 떠난 부리를 제외하고 제홉크, 룽카, 필캬스, 쟈론, 부커는 각기 1000명을 지휘하는 대대장이 되었고, 라피타, 아리, 레힐리나, 에드워드 4명이 합쳐져 칸 군의 수뇌부를 이뤘다.


그들은 제홉크를 중심으로 필요한 훈련과 물품을 다시 짰고 보고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칸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명령이 너무 당황스러워 웅성거렸다.


"결론적으로 도망치는, 아니 후퇴하는 방법 아닙니까?"


룽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전사들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맞다. 도망치는 법을 병사들에게 훈련시켜라."

"왜 입니까?"

"지휘관이 적도 전장도 모른다면 도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은가?"


가이아 전사들에게 도망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었다. 특히 남성들에게는 싸워 이기는 것만이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기에 도망이란 치욕이었다.


"어디를 가도 우리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상전사들은 얼굴을 붉혔다.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전쟁터에서 바보가 되기 싫다. 병사들을 훈련시켜라."


대대장들은 전쟁터에 대해 말 할 수 없기 때문에 칸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바보가 되기 싫다'는 말을 대대장들은 칸이 자존심 상해 한말로 이해했다. 그들은 서로를 보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알겠습니다."


제홉크가 책임을 지고 나섰다.


"한 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대대장들에게 칸은 일침을 넣었다.


………………………………………………


칼리 아래 달빛 날개는 환상처럼 펴져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아래 티아는 검이 된 두 손의 마력을 풀었다. 두개의 하얀날을 가진 쌍검은 티아의 팔에서 분리되어 다시 차가운 금속이 되었고 하나가 되어 사라졌던 곱고 작은 손은 쌍검을 잡았다. 쌍검을 양 허리에 묶인 검집에 넣고 무릎 꿇어 쓰러진 시누의 상처를 돌봤다.


시누의 마법 날개는 찢어져 있고 무표정한 얼굴은 멍한 눈 밑으로 심한 상처가 지나갔다. 두 다리를 잘려 허공에 버둥거리면서도 일어서려 애썼다. 달빛에 하얀 시누의 나신에는 상처들이 그물처럼 덮여 있었고, 마력의 피가 땅으로 떨어지며 붉은 안개로 변해 주위를 붉게 만들었다. 그러나 8개의 황금빛 마법의 날개는 그림자처럼 그녀 주변을 떠나지 않고 거대한 크기를 자랑했다.


"왜 정신을 차리지 못하죠?"


티아는 꼼꼼하게 시누의 상처에 치료수를 발라줬다. 치료수는 상처 깊숙이 들어가 새살을 돋게 만들지만 고통을 선사해 살들은 퍼덕이며 비명들 질렀다.


"그녀의 영혼은 강해요 한낱 마법사의 영혼 따위에게 질 영혼이 아니에요 그런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레아는 티아가 흘리는 눈물에 고개를 돌렸다. 피에 젖은 평야가 보였다. 시누의 앞길을 막았던 이름 모르는 군대는 칼리가 눈을 뜨자 평야에 시체를 남기고 물러섰다. 시누의 마력이 대단하고 티아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군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레아가 달빛검무를 추지 않았다면 시누의 육체는 대지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를 만나봐야겠다."

"누구요?"

"그녀의 주인."


티아는 눈물을 닦고 본체로 현신한 레아를 올려다보았다. 달빛아래 가장 아름다운 칼리의 딸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아란트 성으로 가자."


그녀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찾지 않았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그를 하루 한시라도 잊은 적이 없었지만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그를 만나면 자신은 부서지리라 산산 조각나 허공에 사라지리라. 그것은 본능적인 두려움이며 자신을 지키려는 최후의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시누보다도 레아의 그리움이 더 컸다.


……………………………………………


칼 디오의 군대가 나놈의 마법사와 달빛검 레아의 공격으로 크게 당하자, 출전이 늦춰졌다. 칸 군이라도 먼저 떠나보내려고 귀족들이 아리에나를 압박했지만, 아리에나는 세계의 틈으로 가는 길을 열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들어 거부했다.


"3개월의 시간을 더 벌었습니다. 나놈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처음입니다."


준비하는 자들은 시간이 연기 된 것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칸은 준비하는 자들의 초조함을 보았다. 모두 전쟁을 치러본 자들이지만 조급해했다. 칸은 자신을 돌아봤다. 준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조하지도 않았다. 돌아서 부하들을 보았다. 몸에 덕지덕지 붙인 근육과 손들, 보조용 촉수들, 피부 밑으로 눈을 반짝이는 식귀들, 룬으로 새겨진 비싼 무기와 갑옷들. 그것들이 그들을 여유롭게 하지 못했다.


그들과 자신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칸이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칸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힘과 무기와 경험은 낮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알지 못하며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비교하지 마라."


칸은 그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네? 남작님?"

"아니다.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러나 그들은 준비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


아리티나(아리)는 좀 더 온화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고집 세고 멍청한 딸이고 이기적인 언니였다. 그것을 알게 되고, 아리에나가 용서하자, 아리티나는 껍질을 벗게 됐다. 그녀의 용서는 그녀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용서이기도 했다. 용서 받은 자는 죄책감에 벗어나게 되고 희망과 기쁨을 얻는다. 아리는 편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아리는 온화한 눈길로 두 여성이 싸우는 모습을 바라봤다. 작작해라 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었다. 온화한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열 번은 더 말했지만 들어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술은 웃고 있지만 이마에는 혈관이 틔어 나올 정도로 상기되어 있었다. 이 무슨 여성 망신시키는 짓들이란 말인가? 아리는 한 숨이 나왔다.


"내가 할 거야!"

"내 차례야!"

"아니야 내일이야 내 차례야!"


아리엘은 루나를 밀었지만 루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루나의 눈이 싸늘해지면서 공기조차 싸늘해진다. 그녀의 권능은 살육에 미친 전사들의 정신을 제압하는 힘이었다.


"내가 할 거야!"


그러나 루나의 정신력은 꿈꾸는 자를 깨우지는 못한다. 아리엘의 정신을 장악하기에는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강하지 않지만 미묘하기에 단순한 전사들의 정신과는 달랐다. 싸늘한 눈빛과 미묘한 눈빛이 부딪치며 허무하게 사라진다.


다툼은 별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다른 여성들이 보았다면 수치라고 생각할 일이지만 칸의 시중을 드는 두 여성에게는 주도권 다툼이나 마찬가지였다. 칸의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을 준비하고 잠자리를 준비하고 옷을 준비하는 일들은 둘이 하기에는 적었지만 혼자 하기에는 많았다. 따라서 일을 분담하는 여성들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루나는 의기소침해 있는 경우가 많았고 아리엘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나가 조금씩 당당해지고 아리엘이 점차 자신의 위치가 좁아지는 것을 느끼자 다툼이 일어났다.


아리엘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데니아가 떠난 후에 그녀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아리엘의 꿈은 외로웠다. 쓸쓸한 꽃밭에서 홀로 꽃을 따 하늘로 올렸다. 사람들은 낮이 되면 잊어버리지만 아리엘은 언제나 그녀의 꽃밭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요즘은 샤리도 데니아도 레키조차 없었다.


아리는 초대해도 같이 놀지 않는다. 루나는 아리엘보다 더 외로워한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아리엘의 꿈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의 환상에 빠져있다. 아리엘에게 칸만이 있었다. 하지만 칸은 그녀의 꿈속에는 없었다. 그는 아리엘의 꿈을 지켰다. 지키는 자는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리엘은 루나의 불안함을 안다. 그녀는 중심을 잃었다. 그녀도 기댈 자를 찾고 있었고, 칸과 아리에게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루나가 기대는 사람은 아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칸의 사랑을 잃는다면 아리도 잃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칸에게 사랑 받는 것만이 그녀가 살아 남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알기에 동정할 수는 없었다. 루나의 불안함만큼 아리엘도 불안했다. 그녀는 데니아가 떠날 때 자신을 두고 떠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칸을 위해 스스로 남았다고 말했지만 자신은 고칠 수 없는 병을 가진 자, 신전을 가더라도 상급이 될 수 없었기에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리엘은 자신의 두 눈에 손을 가져갔다. 촉촉했다. 눈물이 흘렀다. 원망스러웠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지만 볼 수 있는 것은 못 보는 눈 그렇기 때문에 청향자로 길러졌지만 더 이상 칸이나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신이 서러웠다.


아리엘이 숨죽여 울자, 루나도 구석에서 울기 시작했다. 버려진 자들의 아픔이 서로를 상처 입게 만들었다. 아리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고 둘을 위로하기 위해 기다렸다. 실컷 울기를 기다려 달래야 했다.


…………………………………………….


불, 불꽃이 타오른다. 영혼석을 녹이며 새빨간 불꽃이 새파랗게 변해간다. 슈리는 불꽃과 함께 타오르는 자신의 영혼석을 느껴졌다. 처음에 그 느낌은 끔찍했다. 영혼로에 영혼석을 녹인다는 말은 가장 심한 욕이었다. 영혼석은 내 영혼, 내 존재가치, 내 기억이었다. 그것이 한줌의 불꽃으로 사라진다. 사라져 무가 된다. 그것은 끔찍한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슈리는 불꽃과 타올라 버리는 나를 보았다.


"슈리님"

슈리는 옆에서 깨우는 불지기를 멍한 눈으로 돌아보았다. 아직도 그녀의 눈 안에는 불꽃이 타오른다.


"조심하세요. 영혼로가 부르는 유혹에 빠져 한줌의 재가 된 불지기는 흔합니다."


불지기는 엉터리였다. 때문에 슈리가 영혼로 관리에 매이게 되었다. 하지만 엉터리 불지기라도 불지기의 금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영혼의 불꽃이 부르는 유혹을 모르는 불지기는 없었다.


"아…… 그래."


슈리는 억지로 불꽃의 세계를 외면한다.


"영혼석을 더 넣어야할 때입니다. 물러나 주십시오."

"알았어."


불지기는 괴수들에서 빼온 영혼석을 조심스럽게 넣는다. 영혼로에 사람의 영혼석을 넣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다르게 사람의 영혼석은 영혼로에 적합하지 않다.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슈리는 불지기가 은막대로 영혼석을 집어 영혼로의 불꽃에 넣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연기와 함께 환상처럼 흩어지는 괴수의 기억들이 비춰진다. 그리고 검은 연기들이 피어오른다.


"이놈의 악령들이 지랄이네."


영혼석을 태우면 악령들이 나온다. 검은 연기는 악령들의 집합, 타락한 기억들이었다.


'악령들이 나오는 걸까?'


슈리는 검은 연기가 불꽃에 살라 먹히는 것은 본다. 영혼석을 태우면 검은 연기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혼석이 타면 악령들을 배출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까? 슈리는 굴뚝에 숨어있는 악령들의 충혈된 눈동자들은 보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굴뚝에 숨어 타오르는 불꽃에 일렁이는 것일까? 슈리의 생각은 끝없이 흘렀다.


영혼석을 넣으며 불지기는 땀을 흘린다. 피라미드에서 교육 받은 정식 불지기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불꽃에 대한 열망은 언제나 진지했다. 그래서 멍하니 불꽃에 빠진 슈리를 이해했다.


불은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그 안에 타오르는 것이 무엇이든 불은 순수한 빛과 열로 나타난다. 아무리 추악한 괴수의 영혼석이라도 아름다운 불꽃이 된다.


영혼석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돌아서 슈리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슈리의 열망이 무엇인지 알기에 불지기는 슈리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4명의 식구를 책임지는 가모였다. 남들처럼 가문을 세울 힘은 없지만 불지기로 일하며 가족을 돌보는 가모였다.


불지기는 입술을 씹으며 돌아섰다. 불처럼 순결하게 타오를 수는 없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악령들에게 대항하기에 불지기의 힘은 너무 약했다. 세상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한숨을 쉰 그녀는 사랑스럽다는 듯이 영혼로를 쓰다듬고 슈리와 불을 피해 자리를 떠났다.


'인간의 영혼석은 영혼로에는 맞지 않아. 폭주하기 쉽고 심하면 영혼로가 터질 수도 있으니까'


불지기는 슈리에게 이 말을 전하지 않았다.


불지기가 떠난 영혼로의 불길은 더욱 깊고 선명해 졌다. 슈리의 의식은 불과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텅 빈 머릿속에서 불타는 불춤이 남아 모든 기억을 살라 먹었다. 불은 점점 붉어져 파랗게 넘실거리고 슈리의 머릿속에서도 불춤은 뇌를 녹일 듯이 타올랐다.


탄다. 타오르다. 춘다. 불이 춤춘다. 살라 먹는다.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끝없이 불타오른다. 타오른다. 빛은 강렬해지고 열은 높아진다. 뜨거움이 도를 넘어 이글거렸지만 슈리는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무엇이 찾아온다. 아니 무엇이 살라 먹힌다. 머릿속에서 막고 있던 장벽들이 통째로 살라 먹히고 있다. 너머에 무엇이지? 무엇이 있지? 녹아드는 장벽너머에 위험한 백색이 넘실거린다.


백색은 위험하다. 하얗게 타오르는 백색은 위험했다. 그것은 슈리에게 너무나 위험한 기억이다. 나를 불살라 재조차 남기지 않는 불길한 불길이었다.


파랗게 타오르던 영혼로의 불길이 파랑을 넘어 흰색을 띠었다. 악령들은 몰려든다. 터진 둑을 차고 나서는 물길처럼 흰빛의 불로 달려든다. 달려들어 불나방처럼 탄다. 불타 없어진다. 백색은 유혹의 빛, 악령들을 위한 축제며 구원의 빛, 그들은 본능적으로 구원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얗게 타오르는 불에 영혼로는 쩍쩍 갈라지고 녹아들지만 슈리도 악령들도 불빛에 취해 움직이지 못한다. 오라 이리로 이 깊고 깊은 순결한 불 속으로 오라. 불은 태우며 천천히 일어선다. 모든 것은 그와 하나가 되어 불춤을 추리라. 영원히, 타올라 한줌의 재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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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마녀(魔女) +8 06.09.08 7,629 46 18쪽
93 마녀(魔女) +9 06.09.08 7,700 5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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