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5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50
쾅!
무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루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무당의 진형자가 태양장의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연락이라도 주셨으면 한 달음에 달려왔을 텐데.... 송구합니다.”
순간 주루 안은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소장주는 놀란 눈으로 무진을 쳐다본다.
‘대체 이놈의 정체가 뭐야? 어떤 때 보면 삼류 무사처럼 보이고, 어떤 때는 전대 무림고수처럼 행동하고, 근데 이건 또 뭐야? 점쟁인가? 점쟁이도 이놈처럼 영험하진 못할 거다.’
놀라는 건 소장주만이 아니다. 주루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무진에게 집중된다.
“그 참 이상하네. 대무당의 장로라고 그렇게 어깨에 힘을 주더니 지금 보니 깨뿔도 아니네. 아들보다 어린놈에게 허리를 숙이는 것도 모자라 목숨이라도 내 놓을 기세야. 이런 걸 무당 제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야.”
“네..네놈이 여긴 어쩐 일이냐?”
진형자는 무진을 알아보곤 깜짝 놀란다.
“네놈? 으하하하! 저 새파랗게 어린놈은 소장주님이고, 대무당에 하늘같은 은덕을 베푼 난 놈이란 말이지? 영감탱이, 다시 말해봐라. 방금 뭐라고 했어?”
무진은 진형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며 되묻는다. 하지만 진형자는 그의 기세에 눌려서 감히 입을 열지 못한다.
‘이 새끼가 미쳤나? 감히 소장주님을 어린놈이라니? 근데 이 분위기는 뭐지? 모두 이놈을 피하는 눈치다. 소장주님마저도....’
그제야 진형자는 상황 파악을 한다.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여긴 자네가 있을 자리가 아닐세.”
다소 부드러워진 했지만 무진의 눈높이를 맞추기엔 턱 없이 부족하다.
“후후후! 행복원주가 말한 게 정확하네.”
“뭐..뭐라고? 네가 원주를 어떻게 아느냐?”
“어떻게 알긴? 노예가 한 놈 필요해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그 인간을 소개해주더군. 근데 말이야. 영감이 그쪽 세계에선 꽤 유명인사더구먼. 저놈도 마찬가지고.”
무진은 소장주까지 끌어들인다. 그리고 그 작전은 성공한다.
“나라면 안 움직이겠다. 이게 뭔지는 알지?”
소장주는 몰래 암기를 날리려다 멈칫한다. 무진이 들고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
“미소통이다!”
적마대의 무사가 소리친다. 미소통은 무림삼대 살수집단인 미소야의 암기이자 무림이대암기 중의 하나다. 다른 하나는 사천당가의 만천화우이다. 무진의 손바닥 위에 있는 건 손가락 길이 만 한 죽통이다. 그 속에 오십 개의 침이 있고, 그 침에는 특수한 장치가 돼 있어서 날아가면서 상대에게 독을 뿌린다.
장치에 의해서 워낙 빨리 날아가기 때문에 절대고수들도 피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암기가 불과 오십 개에 불과하지만 무림이대암기에 든 것이다. 무진은 천마경극단의 단장에게서 몇 개 받았다.
“후후후! 네놈은 아무리 봐도 태양장의 장주가 될 재목은 아니야. 적마교의 단원도 네놈보단 간땡이가 크겠다. 이게 가짜일 수도 있단 생각은 안 하냐?”
“으음!”
무진의 말에도 어느 누구 하나 긴장을 늦추진 못한다. 그 정도로 미소통이 무섭다는 뜻이다.
“후후후, 그건 그렇고 하던 말은 계속해야지. 그래. 말을 많이 하면 구경꾼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간략하게 하지. 영감, 이게 내 마지막 경고다. 한 번만 더 인신매매에 관여하면 그땐 원시천존의 노여움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 게 될 것이다. 장문인에게도 그대로 전해라. 그리고 겁쟁이 네놈도 잘 들으라. 그 동안의 정리를 봐서 충고하는데 인신매매로 사들인 애들을 행복원으로 다시 돌려보내라. 기한은 한 달이다. 물론 내 경고를 받아들이든 말든 그건 니 자유다. 하지만 대가는 치러야 할 거다. 내가 그 동안 네놈에게 당한 것까지 더해서 돌려줄 테니까 기대해라. 그리고 소천 그놈에게도 전해라. 한 번만 더 내 눈에 띠면 껍질을 확 벗겨버린다고. 가자!”
무진은 그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호란이 버틴다.
“난 싫다. 여기 음식이 먹고 싶단 말야. 싫다. 싫어!”
“음식은 맛있는데 썩은 내가 진동해서 못 먹어.”
“그래도 싫다.”
“대신 만두 사줄게.”
“만두?”
“그래. 니가 좋아하는 만두. 어때?”
“맞다! 맞다! 난 만두가 좋다. 만두는 맛있다. 빨리 먹고 싶다. 아찌, 가자!”
호란은 그대로 뛰어 올라 무진의 등에 업힌다.
“그래. 가자. 인간들의 썩은 내가 덜 나는 곳으로.”
무진은 무거운 표정으로 주루를 나선다. 그가 유유히 빠져나가는 데도 아무도 막지 않는다. 아니, 막질 못한다.
잠시 후, 주루는 완전히 난장판이 된다. 분을 못 이긴 태양장의 소장주가 난동을 부린 것이다.
무진은 무당산의 중턱에 통나무집을 한 채 지었다. 비록 방 두 개에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아담한 것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모두 그가 손수 마련한 것이다.
지금은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어제 들여온 집기며 살림살이를 적당한 곳에 배치하고, 아궁이불도 지펴서 방도 따듯하게 해놓았다.
“들어가도 되겠소?”
“예, 정랑.”
무진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방안으로 들어간다.
“방은 따뜻하오?”
“예, 정랑의 마음이 온기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하하하! 당신이 좋아하니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소.”
“호호호! 이리 와 보세요.”
“왜요?”
“정랑의 마음이 얼마나 따스한지 확인해보려고요.”
“그런 건 어떻게 확인하는 거요?”
“와 보세요. 제가 가르쳐 드릴게요. 어서요!”
호란의 재촉에 무진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건 말이에요. 이렇게 확인해요.”
호란은 무진이 가까이 오자 그냥 그 위로 덮친다.
“어어어! 왜 이래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런 산골짜기에 누가 온다고 그래요? 그리고 정랑의 마을을 확인하려면 이렇게 해야 해요.”
“이 방법밖엔 없소?”
“방법이야 많지만 이게 가장 확실하죠.”
호란은 말을 하면서 무진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그럼 나야 좋지만, 내 마음이 워낙 복잡해서 확인하려면 밤을 새야 할 텐데 괜찮겠소?”
“그거야 말로 제가 원하는 거예요. 가슴 저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많이 들죠.”
“후후, 당신은 욕심이 많구려. 근데 어떡하나?”
“왜요?”
“만약 당신이 무림맹이나 태양장이라면 우릴 그냥 두겠소?”
“호호호! 제가 상태는 좀 나쁘지만 바보는 아니랍니다. 당장 공격해서 절 납치하겠어요. 오라! 방해꾼이 나타났군요. 모처럼 분위기를 한 번 잡아보렸더니.... 혼내 주세요.”
“당신보다 내가 더 화가 났소. 다시는 걸어 다니지 못하게 만들 거요.”
“호호호! 그러다 무서운 사람을 만나면 어쩌시려고요? 어? 명수다!”
호란은 방문을 열더니 갑자기 엉뚱한 소릴 한다. 명수는 무진의 제자이다. 월계 마을을 떠나기 전에 두 사람은 사제의 연을 맺었다. 호란은 명수를 알지 못한다. 월계 마을에 같이 있긴 했지만, 부상으로 그녀는 명수를 보질 못했다. 다만 무진에게 많이 들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월계는 이곳에서 천 리도 넘게 떨어져 있다. 더구나 무진이 수련에 열중하라고 당부를 했기 때문에 명수가 올 이유가 없다. 그녀가 명수라고 한 이유는 상대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멀리서 천천히 산을 올라오는 사람은 머리카락이 허연 노인이지만 키가 작다. 그래서 기억에도 없는 명수를 떠올린 것이다. 명수 만 한 키에 동안인데 백발이라 한 번 보면 결코 잊어지지 않을 그런 사람이다.
“밥 많이 먹어라. 아찌! 저 할배 밥 두 그릇 줘라. 두 그릇. 그래야 키도 커지고 다리도 길어져.”
호란은 바보 놀이가 재밌는지 시키지도 않는데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정말 재밌게 생겼네. 머리에 남은 거라곤 겨우 허연 머리카락 몇 가닥뿐인데, 피부는 팽팽하고 말이야. 저런 걸 신구의 조화라고 하나?”
무진은 마치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난 싫어. 키 작고, 나이 많은 사람은 싫어! 밥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라!”
호란은 아예 키를 가지고 놀려댄다.
“헐헐헐! 재밌는 아이들이구나. 네놈이 무진이냐?”
“영감, 그 나이에 벌써 치매야? 다 알고 왔으면서 뭔 엉뚱한 소리야?”
무진이 마당에서 노인을 맞이한다.
“영감이라. 헐헐헐! 태양장주도 그렇게 부르지 않거늘....”
노인은 태양장주를 거론한다. 그만큼 자신이 중요인물이란 걸 과시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다른 걸로 하지 뭐. 영감탱이! 이건 어때?”
“쯧쯧, 어리석은 놈, 건방도 상대를 보고 떨어야지.”
노인의 인내심이 대단하다.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겨우 남의 똥구멍이나 핥고 다니는 주제에 그런 말을 하고 싶을까?”
“으하하하하! 어린놈이 말 하나는 시원스럽게 하는구나. 근데 말이야. 난 입이 빠른 놈들치고 실력이 쓸 만 한 놈을 본 적이 없거든. 제발 네 놈은 아니길 바란다.”
“영감탱이, 누구 말대로 착각은 자유야. 하지만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지 마라. 난 지금까지 입으로만 살아오진 않았으니까. 영감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네. 누가 보면 반로환동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라고 착각할 수 있으니까.”
“흐음!”
결국 노인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말로는 무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넌 내가 왜 왔다고 생각해?”
“내가 점쟁이야? 영감이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
“계집을 데리고 가야겠다.”
“란이를? 후후후, 늙은이가 욕심이 많네. 그 나이에도 아침에 서? 괜히 헛물켜지 말고 그냥 사창가에 가서 포주들이랑 놀아라.”
“죽일 놈! 갈가리 찢어주마.”
“그건 두고 봐야지. 찢어죽일지 찢겨죽을지.”
노인은 태도는 급변한다. 그때까지 조용히 서 있더니 갑자기 기운을 끌어올리자 주위에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분다.
휘이이이잉!
“우욱!”
무진은 기운에 밀려서 뒷걸음질 친다. 순간 노인이 오른손을 내밀어 강력한 기운을 뿜어낸다.
“크윽!”
찌이익!
무진은 간신히 몸을 피하지만 상의가 찢겨나간다. 이렇게 시작된 노인의 공격은 무려 이십 회나 계속된다. 그건 무진이 스무 번이나 넘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서야 간신히 숨을 고른다.
“여..영감탱이! 정말 너무하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숨은 쉬게 해줘야지. 안 그래?”
무진은 그 상황에서도 약을 올린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제까지 피하는지 보겠다.”
“같은 값이면 다람쥐라고 해줘라. 품위 떨어지게 쥐새끼가 뭐냐? 아이쿠!”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더 강력한 기운이 밀려온다. 게다가 장법뿐만 아니라 손과 발을 다 사용한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