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
“그럼 나도 니 찌찌 만진다.”
“그래. 만져. 자, 자! 나도 성깜때야. 히히히!”
그녀는 가슴을 옷 밖으로 드러낼 기세다.
“그럼 우리 란이 찌찌 한 번 만져볼까?”
“그래. 만져. 아찌는 마구 만져도 돼. 히히히.”
무진은 정말 손을 뒤로 해서 호란의 가슴을 주무른다. 원래 사람을 업은 상태에서 팔을 그렇게 뒤로 꺾을 순 없다. 하지만 그는 관절을 전후 좌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게 만진다. 더구나 자연스러운 것이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헤헤헤! 아, 좋다. 하아아! 가...간지러워. 그럼 나도 아찌 성깜때 만진다?”
“란이가 계속 만지면 아찌는 참기 힘들어. 히히히!”
무진은 호란에게 맞춰주며 같이 즐겁게 논다. 그걸 지켜보는 태민 사형제의 마음은 복잡하다. 삼 일 전 처음 시작했을 땐 말려도 보고 야단도 쳤지만, 호란이 워낙 막무가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젠 포기 상태다. 그래서 이럴 때마다 화재를 다른 곳으로 돌리곤 한다.
“운이 넌 어젯밤에 잘 잤니?”
“왜요? 사형은 잠을 못 잤소? 어! 정말 눈이 퀭하네.”
“꿈속에서 어떤 여인이 얼마나 슬피 우는지. 몇 번을 깼는지 모른다.”
“사형도 그랬소? 난 꿈이 아니라 실제로 옆방에서 우는 소리에 밤을 새우다시피 했소. 근데 여인이었소? 난 남자 갔던데.”
“그래. 처음엔 호란 누님이 우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분명 남자 목소리였어. 얼마나 칠칠맞지 못하면 그렇게 울어댈까?”
두 사람은 어젯밤의 일을 얘기한다. 아마 어제도 무진이 명상을 하면서 가려와 아들을 떠올린 모양이다. 두 사람은 말하면서 무진을 쳐다본다. 그 역시 그들을 빤히 쳐다본다.
“대협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괜찮아. 난 원래 울보고, 찌질이야. 어렸을 적부터 잘 울었거든. 하지만 소리 내 울 정도로 찐따는 아니다.”
“누군 찐따라고 이마에 써 있답디까? 사람이 있을 땐 멀쩡하다가도 혼자 있으면 밤새도록 울어대니까 그렇지.”
태운이 제법 강하게 나온다. 하지만 무진은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능글맞게 나온다.
“니들도 내 입장이 돼 봐라. 종일 코흘리개 비위 맞추랴. 멍청한 놈들 수련시키랴. 뿐이냐? 어떤 놈들이 공격할지 신경 써야지. 이러다간 제 명에 못 죽겠다. 니들이라고 안 울고 별 수 있을 것 같니?”
“흥! 사형, 이제 얼마나 걸릴까요?”
태운은 혹시 무진이 반격할까 봐 화제를 돌린다. 경험 상 무진이 이렇게 당하고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름 정도면 도착하지 않을까 싶다. 연락이 갔을 테니 조만간 마중을 나올 테지.”
태민은 개방 방주의 도움으로 무당에 서찰을 보냈다.
“무당에 도착하면 호란 누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태민은 말을 하면서 무진의 눈치를 본다.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무당에서 쫓겨날 텐데....”
호란의 얘기가 나오자 무진도 더는 뭐라고 하진 않는다.
“글쎄 그건....”
태민이 대충 말을 얼버무리자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저기서 쉬었다 가자.”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무진이 나선다. 일행은 커다란 느티나무 옆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한다.
“란이가 한숨 잘 때까지만 쉬자.”
그는 혈도 짚어서 호란을 재우더니 바위에 눕힌다. 그런 다음 나무 옆의 공터로 나선다.
“비무를 하자는 겁니까?”
태운은 제법 세게 나간다.
“건방진 놈. 그 실력으로 나랑 붙으려고?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그럼 왜 멈추는 겁니까?”
“설마 몇 마디 놀렸다고 복수하려는 건 아니죠?”
태민까지 나서서 사제 편을 든다.
“쯧쯧! 내가 니들처럼 삐돌이냐? 운이 너 나랑 붙어서 이기고 싶지?”
“그야 뭐... 당연하죠. 나도 무림인인데.”
“날 이기고 싶으면 익혀라.”
무진은 공터로 나가서 자세를 잡는다.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자 태민과 태운은 당황한다. 무진을 놀려 먹으려고 장난삼아 시작한 건데 오히려 무공을 전수하겠다니 머쓱해진 것이다. 그보다 자신들은 남에게 무공을 전수받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무 대협! 고마운 말씀이나 우린 무당의 제자입니다.”
태민은 정중하게 사양한다.
“후후후, 그래서 명수한테 신법을 배웠냐? 그리고 니들은 소림과 화산의 무공은 안 배웠어?”
원래 각 문파들은 제자들에게 정사파를 막론한 대부분의 무공을 가르친다. 다른 문파와의 대결에 대비해서 무공별 장단점을 익히려는 것이다.
“그..그건 아니지만.”
태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인다.
“10살 꼬마에게도 당하는 주제에... 무당까지 가려면 배우고, 아니면 안 배워도 된다.”
10살 꼬마는 무진의 제자인 명수이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언제까지 날 부려먹을 생각이냐?”
태민의 거듭된 거절에 무진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건 앞으로 열심히 해서....”
“시끄럽다. 격권(擊拳)이란 놈이다. 동작은 단순해도 무식할 정도로 과격한 무공이다. 가르쳐 준 혈도대로 하루에 최소한 두 시진 이상 운기조식과 수련을 해야 할 거다.”
“대협, 내공 수련도 우리로선 받아들이기 곤란합니다.”
“그 새끼 그거 정말 말 많네. 누가 들으면 지금까지 안 익힌 줄 알겠다.”
무진의 말대로 두 사람은 그 동안 세 개의 혈도를 반복해서 순환하는 내공 수련을 해왔다.
“그게... 죄송합니다.”
“도사가 아니랄까봐 고지식하기는. 무당에서 익힌 내력에는 해가 없으니까 확인해봐!”
“정말입니까?”
태민은 무진의 대답도 듣기 전에 확인한다. 태민 사형제는 둘 다 태극신공(太極神功)을 익혔다. 그 동안 혹시 태극신공과 무진의 내공법이 충돌할까봐 단 한 번도 서로 섞어보질 않았다.
헌데 두 번의 운기조식을 번갈아 한 뒤 섞어 봐도 전혀 이상이 없다. 오히려 서로 보완이 되면서 상승작용을 해 각각의 기운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해진다.
“무 대협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내력을 확인하곤 무진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한다.
“감사는 나중에 하고 바로 시작한다.”
“크악!”
무진의 몸이 움직이는 순간 태민은 무려 열 걸음 이상 튕겨 나간다. 단순히 어깨로 부딪혔을 뿐인데 그렇게 된 것이다.
“사...사형!”
태운은 달려가서 태민의 상태를 살핀다.
“난 괜찮다. 무 대협, 이게 뭡니까? 내력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런 공격이 나옵니까?”
“일어나라!”
“커억!”
태민은 일어나는 즉시 다시 튕겨 나간다. 그렇게 다섯 번을 반복한 다음에야 설명을 시작한다.
“격권은 신체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무공이다. 굳이 따진다면 권법에 가깝다. 몇 개월만 익혀도 어디 가서 얻어터지진 않을 거다.”
“고작 몇 개월이라고요? 그럼 대성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만들었지만, 나도 대성했다고 말하긴 어려우니까.”
“예에? 직접 만들었는데 대성을 하지 못했다뇨?”
“으음! 그런 게 있다.”
무진은 뭔가를 설명하려다 대충 얼버무린다.
“아까도 봤겠지만 동작은 단순하다. 하지만 익히기는 쉽지 않을 거다. 천천히 따라 해라.”
무진은 기본자세를 취한 다음 천천히 변화를 준다.
“사형, 우리도 해봅시다.”
태운의 말에 따라서 두 사람도 자세를 잡고서 흉내를 낸다.
“동작은 모두 열 가지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대신 그걸 완전히 익히면 수많은 동작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따악!
“아야! 왜 때려요?”
무진이 태운의 뒤통수를 친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자세가 뻣뻣하고, 유연성과 순발력이 떨어지잖아?”
“이제 시작인데 처음부터 어떻게 잘 할 수 있겠.... 아얏!”
“건방진 새끼, 니가 요즘 조금 실력이 늘더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요즘 무당에선 겸손을 안 가르치니? 세상이 얼마나 넓고 인재가 많은 줄 아니? 니가 첫날이라고 대충하는 동안 그 인재란 놈들은 한 번에 무공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런데도 개뿔, 재능도 없는 놈이 노력도 하지 않고, 잘난 체를 해?”
“죄송합니다.”
태운은 금방 수긍하고 고개를 숙인다.
“끝까지 들어! 한심한 놈. 물론 니가 천하제일인이 될 마음이 없다면 관계없겠지. 그 정도만 해도 어디 가서 욕먹을 정도는 아니니까. 하지만 니가 겨우 무당에서 밥을 얻어먹고 있을 때, 니 사형은 최소한 무림 십대고수, 아니 천하제일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겸손한 자와 주제 파악을 못하는 자의 차이다. 알았느냐?”
“예에... 명심하겠습니다.”
무진은 태운을 호되게 야단친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자, 봐라. 이 무공의 특징은 상대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화접목과는 약간 다르다. 이화접목(移花接木)은 순전히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것이다. 이건 상대의 기운에 내 기운을 더해서 새로운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각을 해봐라. 그 어떤 상대와 싸워도 그보단 더 강한 기운으로 공격하는데 질 수가 있겠니?”
“으음! 대협의 말씀대로라면 천하무적이군요.”
“그만큼 배우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지.”
“예. 근데 자세가 조금 요상합니다.”
“잘 봤다. 난 이 무공을 동물이 교미하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그 중에서 제일이 사람이지. 그 어떤 순간보다 열정적이고 최선을 다하니까.”
“예에?”
“허! 교미하는 모습이라고요?”
두 사람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失笑)한다.
“교미(交尾)라는 말이 듣기 불편하면 거시기라고 하자. 동물이나 사람이 거시기를 할 때 최대한 자신의 힘을 이용한다. 그걸 정리해서 만들어봤다.”
“혹시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기운을 만들어낸다는 말씀인가요?”
“후후후! 제법이네. 잘 봤다.”
무진은 태민의 말에 웃으면서 칭찬한다.
“이걸 신법에 적용한다고 생각해보자.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적은 힘으로 더 빨리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이다.”
무진은 이번에는 신법 자세를 취한다.
“요즘 제법 노력을 하는 것 같던데, 속도가 안 늘지?”
“예. 그게 자세와 관련이 있나요?”
이번에도 태민이 대답한다.
“바로 그거다. 니들 자세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 하지만 자세란 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의 신체 기능이 다르듯이 근력이 약하면 그걸 보완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으음!”
태민 사형제는 무진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시한다.
“운이 넌 사형보다 키가 크다. 근데도 자세는 똑 같다. 그래선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단다. 반면에 민이는 키는 크지 않아도 하체가 길다. 그런데도 운이랑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다. 그래선 효과적인 신법을 펼칠 수 없다. 그에 반해 동물들이 교미를 할 땐 본능적으로 최적의 동작을 취한다. 그걸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무진은 동작을 하나하나 취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그의 말대로 대부분의 동작이 동물들의 교미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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