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3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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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38
“총사, 놈들이 무당으로 들어가기 전엔 기회가 없소이까?”
풍종우는 여세를 몰아서 화제를 무진 일행에게 집중시킨다.
“기회를 만들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무당과 전면전을 펼쳐야 하오.”
“그렇습니다. 그건 우리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총사의 설명에 곤륜 제일장로 궁일호가 거들고 나선다.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계집이 무당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소.”
총사는 별다른 방법을 내놓지 못한다.
“꼭 그렇지만 않습니다.”
결국 제갈세가의 부가주 제갈헌이 나선다. 그는 무림 최고두뇌집단 출신답게 뭔가 계획이 있는 모양이다.
“하하하! 제갈가의 부가주께서 나섰으니 해결책이 나오겠군요. 말씀해 보시오.”
총사는 금방 표정이 밝아진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부가주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흘러나온다.
“그런 문제에 정통하신 분은 따로 계시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용히 시립한다. 그러자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온다.
“아..아니 소장주님이 아니십니까?”
태양장의 소장주인 유현이다. 그 뒤에 부하인 천소의 모습도 보인다.
“소장주를 뵈오이다.”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모아 인사를 한다. 그들은 모두 소장주를 알고 있다. 이것만 봐도 태양장이 무림사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참으로 한심들 하오. 대체 그 동안 뭘 했소?”
소장주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장로들을 추궁한다.
“그게... 죄송합니다.”
총사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간신히 사과한다.
“각설하고 장로들이 직접 무당으로 가시오. 가서 직접 그년을 취조하시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소장주님도 아시다시피 계집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려졌습니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속임수라면 어떡할 거요?”
“예에? 그건 쉽지가 않을 겁니다. 우리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다친 건 분명합니다.”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소?”
“으음!”
점창 대장로 풍종우는 괜히 나섰다가 체면만 구긴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이건 무림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요. 만약 무당이 고금제일인의 비밀을 푼다면 무림은 그들의 세상이 될 거요. 그래도 좋소?”
“안 됩니다. 그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렇소이다. 고금제일인의 유물은 절대 무당의 것만은 아니오.”
소장주의 말에 참석자 모두가 반대한다.
“좋소. 여러분의 뜻이 그렇다면 태양장의 이름으로 약속하오. 고금제일인의 유물은 무림맹의 소유로 하되 찾는 문파에게 우선권을 주겠소.”
“하하하! 현명한 결정입니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방향이.”
“그렇소. 계집은 반드시 우리 손에 넣어야 하오.”
우선권을 준다는 말에 참석자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고금제일인의 유물 좋아하시네. 설사 그런 게 있다 해도 니들에게 줄 순 없다. 멍청한 놈들, 열심히 물어뜯어라. 한꺼번에 처리해줄 테니까. 흐흐흐!’
각자 동상이몽을 꿈꾸는 장로들을 보면서 소장주의 입가에는 미소가 흐른다.
무당산(武當山).
호북성 균현에 위치한 중원의 명산 중의 하나다. 무림인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고 뭉클함을 느낀다.
<저 멀리 광활한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산. 그 산을 오르려면 완만하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따라가야 한다. 왼편으론 우람한 거목들이 줄지어 서 있고, 오른편으론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걸음을 재촉 한다.>
무진은 호란을 업고 대열의 제일 후미를 가고 있다.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코흘리개 시절 동무들과 놀던 곳을 찾았건만, 옛사람은 모두 떠나고 추억만 남았구나.
“와아! 참새구름이다!”
조금 전까지 잠자던 호란이 깨어난다.
“아찌! 저거 봐. 구름이 아찌 콧구멍처럼 생겼어. 와, 구름이 산에 걸려서 꼼짝을 못하네. 나도 저기 가보고 싶다.”
그녀는 산중턱에 걸려 있는 구름을 가리키며 좋아한다. 잠은 깼지만 정신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커다란 공터가 나오고, 해검지(解劍池)라는 글이 쓰인 집채만 한 바위가 나타난다.
“누구냐?”
일행이 해검지로 접근하자 숲속에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해질 무렵이라 일행을 분별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거기 오시는 분이 태민 사형이오?”
“그래. 태형이구나.”
“사형! 어, 운이도 있네. 아..아니. 사..사숙!”
“진운자 사숙이 돌아오셨다!”
“사질들이 사숙을 뵈옵니다.”
태민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어 나오던 무당 제자들이 진운자를 보곤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됐다. 피곤하구나. 올라가자.”
“예. 근데 이분들은 누구신지....”
태형이 무진과 호란을 본 모양이다.
“무당의 손님이시다.”
“하지만 병기는 놓고 가셔야 됩니다.”
무진의 허리에 매달려 있는 쇠몽둥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괜찮다. 내가 모시고 온 분이다.”
“그러지 뭐. 여기에 두면 되나?”
진운자가 괜찮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쇠몽둥이를 뽑아서 병기들이 놓인 곳이 던져버린다. 진운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그리 한 것이다.
잠시 후, 일행은 무당파란 커다란 현판이 걸린 문을 통과한다. 드디어 무당파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쉬고 계십시오. 곧 찾아뵙겠습니다.”
“형님, 이제 고생은 끝입니다. 앞으론 동생들이 형님을 살필 테니 걱정 마십시오.”
“후후, 말이라도 고맙구나.”
진운자와 태민 사형제가 큰소리를 치지만, 무진의 표정은 밝질 않다.
“후후, 그게 니들 맘대로 될지 모르겠다.”
그들이 태형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자 무진이 혼잣말로 한다.
“왜 그런 말을 하세요? 오라버니가 그동안 저들을 지키느라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 사이 호란은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물론 그녀는 계속 무진의 등에 업혀 있다. 이건 두 사람간의 약속이다. 당분간은 호란의 상태에 대해서 함구하기로. 그러자면 당연히 이전처럼 행동해야 한다.
“두 분은 저를 따라 오시오.”
잠시 후, 무당 제자가 두 사람을 안내한다. 하지만 그들이 따라 간 곳은 손님을 위한 숙소가 아니다.
“여긴 어디요?”
“잠시만 기다리면 데리러 올 거요.”
한참 뒤에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경내에게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한 작은 창고이다. 누가 봐도 숙소라고 할 순 없다. 오히려 감옥에 가까운 곳이다. 입구에는 아예 보초가 두 명 서 있다.
“감금당한 건가요?”
“대접받을 거라 생각했니?”
“그건 아니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요.”
“후후후, 조금 있으면 더 재미난 일도 경험하게 될 거야. 기대해도 좋다.”
“난 이런 게 싫어요.”
“적마교에서도 이런 식이었느냐?”
“항상 이랬죠. 외할아버지가 전임 교주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으니까요.”
“근데 여긴 왜 왔어?”
“아버님의 뜻이었어요.”
“늦지 않았다. 니가 원하면 여길 나갈 수도 있다.”
“아니에요. 전 당분간 여기에 있고 싶어요?”
“니 아비 때문이냐?”
“예, 무당은 아버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잖아요?”
“으음!”
순간 무진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히히히! 난 여기서 아찌랑 놀 거야. 아찌!”
갑자기 호란은 무진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럼 나야 좋지. 우리 란이 찌찌가 얼마나 더 커졌는지 한 번 볼까?”
무진은 자연스럽게 손을 그녀의 옷 속으로 집어넣는다. 당연히 그녀도 손을 넣어 그의 가슴을 만진다.
“아! 좋다. 아찌 가슴은 너무 넓고 편안해.”
“니 가슴도 따스하고, 포근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꼭 안고서 한참을 그렇게 보낸다.
“자니? 갔어.”
한 시진 정도 지나자 호란은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다.
“으음, 아찌. 난 아찌가 좋아!”
무진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잠꼬대까지 한다.
“나도 니가 좋단다. 에잉? 이게 무슨 소리야? 남사스럽게.”
그는 말해놓고도 민망했던지 살짝 얼굴을 붉힌다.
“자식들이 확인을 했으면 돌아갈 것이지 한 시진이 넘도록 지켜볼 게 뭐냐? 지겹다. 지겨워.”
아마 감시자가 있어서 그렇게 한 모양이다.
‘으음! 이 아이는 이미 완쾌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이전처럼 행동한다. 이유가 뭘까? 맨 정신으로 나를 대하기가 불편해서 그런가? 사실 불편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이제 정말 이 아이와 헤어질 때가 온 건가? 아무튼 여기에 있을 동안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자.’
그는 호란을 옆에 바로 눕히곤 자리를 잡아 명상에 든다.
‘혼자 지낼 때는 내공을 쓸 일이 없어서 못 느꼈던 건데, 최근 이 아이를 치료하면서 내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단전은 여전히 변화가 없지만, 전신의 혈도는 다르다. 정체 모를 기운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분명히 내 몸 속에는 기운이 단 한 점도 없었다. 그럼 어디서 생긴 걸까? 만약에 내가 기운이 부족해서 나도 모르게 주위에 흩어져 있던 기운들을 받아들였다면.... 자연무예를 익히게 된 셈인데.... 결국 그 책을 봐야 하나?’
무진은 천천히 눈을 뜨더니 바닥에 누워 있는 호란을 살핀다.
파팟!
그는 그녀의 혈도를 짚는다. 최근에는 웬만해선 강제로 잠을 재우지 않는다. 상처가 많이 호전되기도 했지만, 그녀 혼자서도 충분히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 딴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는 봇짐에서 옷을 꺼내 바닥에 깐 다음 그녀를 그 위로 눕힌다.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늦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푹 자.”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조용히 사라진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금방 찾아오겠다던 진운자는 물론이고, 태민 사형제의 모습도 볼 수가 없다. 무진은 예상을 했는지 그런 것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대신 호란의 치료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엔 두 가지 노림수가 있다. 하나는 무당 지도부에 그녀의 상태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이다. 그렇다고 100% 거짓은 아니다. 상처는 완쾌했지만, 아직 머리 상태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치료 과정을 통해서 뭔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언뜻 봐서는 연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치료 방법은 똑 같다. 혈도를 순서대로 자극하거나 주무르는 방식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건드리지 않던 머리의 혈도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녀는 머리를 다치면서 전신의 혈도와 뇌를 연결하는 고리가 손상되었다. 다행히 초기에 머리에 고인 죽은피를 제거했기 때문에 문이 완전히 막히진 않았다. 혈도를 자극하는 것도 그때 막힌 좁은 문을 뚫기 위함이다.
지난 삼 개월 동안 끊임없이 시도한 결과 지금은 통로가 거의 다 회복되었다. 그 마지막 과정으로 뇌의 혈도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호란은 치료만 된 게 아니라 내력도 상당히 많이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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