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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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5
“어디로 가고 싶니? 내가 아는 곳이라곤 북망산천뿐이라서 말이야. 그곳도 좋다면 데려다 주마.”
“누...누구냐?”
“나? 네놈을 저 세상으로 데리고 갈 저승사자다. 개자식아!”
퍼억!
“크아악!”
이때부터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된다. 당가의 부하로 변신한 사람은 바로 무진이다. 대전에서 정문의 상황을 보고한 부하도 바로 그다.
얼마나 맞았을까? 당군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고서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크흐흐흐흑!”
말이 한숨 돌리는 거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됐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무진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진운자가 나선다.
“후후후!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일단 맞고 보자.”
그는 곧바로 구타를 시작한다.
빠지직!
“끄아아악!”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당군의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개자식! 성에 차진 않지만, 제자들 때문에 이 정도만 한다.”
진운자는 당군의 팔과 다리의 관절을 모두 꺾고 분지른 다음 태민과 태운에게 넘긴다. 이렇게 당군은 무당의 모든 제자들에게 두들겨 맞고 수십 번도 더 기절했다 깨어난다. 이 정도로 맞았으면 제 아무리 고수라 해도 회복하긴 힘들 것이다.
이상한 것은 무진은 물론이고, 무당 제자 전부가 멀쩡하단 것이다. 입에서 흘러내린 피도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짐승의 피를 잠시 머금었다 뱉은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황천에 녹아 있던 영약의 효능 덕분이다. 이 자리에 있는 무당 제자들은 모두 백독불침의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걸 지켜본 화산의 제자들은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이게 해독약인가?”
진운자는 당군의 품속에서 약병을 여러 개 꺼내놓고 확인한다.
치이익!
“이크! 큰일 날 뻔했네.”
첫 번째 것은 독약이다. 바닥에 뿌리자 돌조차 녹아내린다.
“이거로군. 이걸 화산놈들에게 먹여라. 그리고 우린 철수한다.”
“예에? 저 인간들을 그냥 두고 간다고요?”
“사부! 그건 안 됩니다. 화산은 우릴 배신했습니다. 엄정히 처벌해서 본보기로 삼아야 합니다.”
태민 사형제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저놈들은 이미 단전이 파괴됐다. 무 대협의 뜻이기도 하고.”
진운자는 무진을 보며 말한다.
“그럼 당가 놈들은 요? 우리가 만든 독이 사람을 죽이진 못하잖아요?”
“자식이! 전에는 돈독에 오르더니 이젠 살인에 맛 들였냐? 그렇게 사람을 죽이고 싶어?”
무진은 태운을 놀린다.
“그게 아니라.... 당가놈들은 어떻게 할지 몰라서...”
“네놈 생각엔 우리와 화산놈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당가놈들을 죽이고 싶겠냐?”
“그거야 당연히 화산놈들.... 아!”
“참, 니 사부가 누군지 모르지만 걱정된다. 걱정돼. 이놈아! 그런 걸 머리라고 달고 다니니까 무당이 욕을 먹는 거야. 이런 수모도 당하는 거고. 쯧쯧쯧!”
무진은 모처럼 만난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태운을 놀려먹는다.
“뭐해? 빨리 철수해야지.”
태운은 괜히 친구들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해독약을 먹고 치료를 마친 화산파의 육장로 천풍자와 화산구검은 검을 들고 쓰러져 있는 당가의 무사들 앞에 선다. 비록 해독은 됐지만, 독이 너무 강해 내공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더욱 악에 받쳐서 잔혹하게 검을 휘두른다. 그들이 떠난 뒤엔 숨이 붙어 있는 당문 제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잔인한 놈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몰살을 시키냐?”
무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마당을 벗어난다.
“으잉?”
그는 막 발걸음을 옮기려다 장원 뒤편의 숲을 쳐다본다.
“후후, 또 네놈이냐? 기다려라 조만간 만나게 될 테니까.”
숲에서 누군가가 사천당가의 분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태양장의 소장주는 아니다. 얼마 전부터 무진 일행을 지켜보는 자가 있다.
신양(新陽).
낙양을 떠난 무진 일행은 무당산이 있는 호북성으로 가는 길목인 신양에 도착한다. 일주일 만이다.
무당 제자들은 모처럼 긴장을 풀고 신양 시내를 구경하고 있다. 특이한 건 무진과 진운자는 물론이고, 제자들과 호란까지도 모두 옷차림을 바꿨다는 것이다.
무당의 도사복이나 무사복을 벗고 평상복을 입고 있다. 태진과 태수도 즐거운 마음으로 시장을 구경하는 중이다.
“태수야, 우리 저거 해볼래?”
“저건 야바위잖아?”
시장 한 구석에 수십 명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다. 태수 말처럼 작은 탁자에 그릇을 올려놓고, 그 밑에 숨겨진 주사위를 찾는 일종의 도박이다.
야바위꾼은 그릇을 수도 없이 바꾸며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단순하면서도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사기도박이다.
“그래. 난 말만 들었지 한 번도 못 해봤어.”
“나라고 해볼 기회가 있었겠냐?”
“그럼 가볼까?”
“좋아. 준비됐나?”
“준비됐다!”
“가자!”
“가자요!”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신나게 걸어간다.
“자, 돈을 거세요. 돈! 액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벌써 오백 냥을 걸렸군요. 감사합니다. 다시 육십 냥을 거셨습니다. 합해서 모두 오백육십 냥입니다. 이번에는 다섯까지만 세겠습니다. 이후엔 돈을 걸 수 없습니다. 하나. 두울, 셋....”
야바위꾼은 신이 나서 소릴 지른다. 탁자 위에는 주사위의 숫자만큼 여섯 개의 그릇이 있고, 그 앞에 수백 냥의 은자가 놓여 있다.
“진아, 너 돈 가진 거 있지?”
“있긴 하지만... 공금이야. 개인 돈은 겨우 요거뿐이야. 넌?”
태진은 소매에서 다섯 냥을 꺼낸다.
“난 이게 전부야.”
“에게? 겨우 셋 냥? 야, 그걸로 누구 코에 붙이냐?”
사람들은 보통 30~40냥을 건다. 근데 두 사람이 합친 게 겨우 여덟 냥이다.
“진아, 우리 한 번만 사고치자. 봐라! 눈에 훤히 다 보이잖아?”
태수는 내공을 끌어올려 주사위가 움직이는 걸 본 모양이다. 그건 태진도 마찬가지다.
“만약 3번에 백 냥을 걸면 저게 다 우리 돈이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 먼저 오십 냥을 건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가 2/3를 먹는 거지.”
두 사람은 주사위의 움직임이 보이지 마치 모두 자기 돈인 양 착각한다.
“아! 그렇구나. 까짓것 돈 놓고 돈 먹기니까 하자!”
이때 야바위꾼이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3번 맞지?”
“그래. 확실하니까 빨리 걸어. 어서!”
“좋다. 3번에 백 냥이오.”
태진이 마지막으로 돈을 건다.
“자! 이번 판은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셋을 외치면 그릇을 들어서 확인을 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야바위꾼의 선창으로 수십 명이 숫자를 외친다.
“그럼 일 번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일 번에는 주사위가 없군요.”
“아!”
일 번 그릇이 빈 것을 확인하자 곳곳에서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은 이 번입니다. 아하! 이 번도 꽝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다음 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자, 그럼 삼 번 그릇을 확인할 차례입니다. 아하! 이번에도 비어 있습니다.”
“허억! 이...이럴 수가?”
“어..어떻게 된 거야? 3번이 아니었어? 진아!”
“분명히 3번이었는데...”
“사..사기다!”
태수는 그때야 자신들이 당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이 주사위는 5번에서 나와 돈을 나눠가지며 판이 정리된다.
“자, 방금 끝난 판에서는 한 분이 무려 삼백 냥을 가져갔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새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가하실 분들은 미리 돈을 준비하세요. 과연 이번에는 주사위가 어느 그릇에 숨어 있을까요?”
야바위꾼은 현란한 손놀림으로 다시 그릇을 옮기기 시작한다. 구경꾼들의 눈이 그의 손을 따라서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에서 놓쳐버린다.
“이번엔 4번이다. 4번!”
“그래. 틀림없어.”
“진아, 이번 판엔 좀 더 걸어보자. 한 삼백 냥 정도 걸어서 한 판에 끝내자.”
“오백 냥으로 하자.”
“오..오백 냥!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럼 둘 다 죽는 거지.”
이때 불쑥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죽는다고?”
“그래. 오늘 여기서 초상 한 번 치러보자.”
그렇다고 낯선 목소린 아니다.
“사...사형!”
“우..운아!”
두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뒤로 물러선다.
‘니 눈에는 내가 사형으로 보이긴 하냐?’
태민이다. 그 뒤엔 태운의 모습도 보인다.
‘그..그게 아니라.... 태수가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아얏!’
‘이 새끼가 지가 불리하다고 동무를 팔아넘겨?’
태운은 주먹을 들어서 때릴 기세다.
‘아..아니야. 정말 내가 그랬어. 진이는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이야.’
‘아이고, 이 화상아! 니가 그런다고 이 자식이 널 고마워할 줄 아니? 아니지. 니가 이 자식을 망친 거나 마찬가지야. 앞으론 니 둘은 절대 같이 다니지 마라. 내 눈에 걸리면 국물도 없다. 알았어?’
‘아..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태수는 심성이 착해서 모든 걸 자기 탓으로 돌린다.
‘미안해요. 실은 제가 태수를 꼬셨습니다.’
그제야 태진도 바른 말을 한다.
‘콱! 그냥 마음 같아서는 머리에 구멍이라도 내고 싶다. 이리 내!’
태민은 태진이 들고 있는 돈 꾸러미를 빼앗는다.
‘살림살이 하라고 맡겼더니 거들을 내? 하여튼 무당으로 돌아가서 보자. 최소한 면벽 1년이다.’
‘예에? 일..일 년이라고요!’
‘사형, 그건 너무합니다.’
‘이 새끼들이 뭘 잘했다고... 죽고 잡냐?’
태운은 아예 검의 손잡이를 잡는다. 정말 죽일 것 같은 분위기다. 그 정도로 이들은 무당도로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자..잘못했다. 사형이 시키는 대로 할 게.’
‘다신 안 그럴 게.’
‘대체 니들 나이가 몇 개냐? 일반인들 같으면 새끼가 주렁주렁 달렸을 나이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런 얘기는 모두 전음으로 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잘 봐라. 지금 주사위가 몇 번 그릇에 있을 것 같니?’
‘4번입니다.’
‘아까 우리가 확실하게 봤습니다.’
태민의 물음에 태진과 태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저런 놈들이 일대제자니 무당의 앞날이 암울하다. 하긴 더 이상 암울할 것도 없지만.’
‘우..운아! 자..잘못됐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태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 미련 곰탱아! 니들이 알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냐? 세상에 무림인이 니들 밖에 없냐고!’
태운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그게 왜?’
‘지랄한다. 왜라니? 저 야바위꾼들은 그걸 모르고 하겠냐? 놈들은 땅 팔아서 장사를 하냐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따가잖아?’
‘아이고야! 그러셔? 니 눈에는 저놈들이 니들처럼 그냥 호기심에서 돈을 건 것처럼 보이니?’
태운은 조금 전 판에서 돈을 딴 사람들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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