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1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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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1
“야! 빨리 뛰어!”
무진은 배웅 나온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호들갑을 떨며 달리기 시작한다.
“무..무 대협! 천천히 가시죠.”
“그렇게 달리면 우리가 어떻게 따라갑니까?”
태민 사형제는 우마차를 타고 있어서 빨리 움직이질 못한다.
“니들은 천천히 와라. 난 죽기 싫다.”
“예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야, 난 오금이 저려서 죽는 줄 알았다.”
“분위기는 정반대였는데요? 참석자들이 무 대협의 기세에 눌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히히히! 역시 난 경극 체질이란 말씀이야. 그나저나 빨리 가자. 놈들이 눈치를 채고 잡으러 오면 어쩌니?”
“저흰 걱정 안 합니다.”
“맞습니다. 무 대협이 계신데 뭔 걱정이랍니까?”
“야, 놈들은 무림최고수들이고, 난 내력도 없는 허풍쟁이란 말이다. 이러다간 다 죽어!”
“걱정 마세요. 놈들은 지금 자기 몫을 더 따내려고 혈안이 돼서 우릴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러네. 정말 괜찮겠지?”
무진은 태민의 말에 안심이 되는지 표정이 밝아진다.
“떼거리로 와도 무 대협이 아까처럼 말로 조지면 모두 꼼짝 못하고 물러갈 겁니다.”
“하하하! 역시 날 알아주는 사람은 운이 밖에 없구나.”
“무 대협, 섭섭합니다. 저는 왜 뺍니까?”
“그렇지. 우리 민이를 빼면 안 되지. 그런 의미에서 자리를 바꾸자.”
“왜요? 고것 달리고 벌써 힘드세요?”
“그래. 힘들어서 죽겠다. 내가 몰 테니까 니들이 좀 뛰어라.”
“신법 수련을 하란 말씀인가요?”
“후후, 민이 넌 눈치가 너무 빠른 게 탈이다. 그럼 재미가 없잖아.”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알아도 모른 체 하겠습니다.”
“흐흐흐, 그래주면 좋고. 근데 계속 앉아 있을 거야?”
신법 수련을 하란 말이다.
“이동하면서 하는 건 처음인데...”
“말했잖아? 새로 수련을 시작할 거라고.”
“그래도 이건 좀....”
“됐고. 지금부턴 이동할 때마다 신법 수련을 한다. 니들은 실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걸 극복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
“그럼 앞으로 어디를 가든 이렇게 해야 하나요?”
“당연하지. 그 정도도 안 하고, 한참 앞서 있는 놈들을 어떻게 뛰어넘을래? 싫으면 말고. 나도 귀찮다.”
“아..아닙니다. 전 좋습니다.”
“사형이 하면 저도 합니다.”
“후후후! 의리로 뭉치시겠다고? 그럼 다른 수련도 잘 되겠네.”
“다른 수련이라면... 무..무 대협!”
“안 됩니다!”
태민 사형제는 뭔가 불길한 낌새를 차리고 강력하게 반대한다.
“시끄러! 비무도 매일 한 시진씩 더 늘린다.”
“아이고, 죽었다. 안 그래도 잠이 부족한데....”
“반 시진으로 하면 안 될까요?”
“나도 란이 치료 시간을 한 시진 더 늘리려 했더니 안 되겠다. 취소다. 취소!”
무진은 호란을 볼모로 반 협박을 한다.
“아..아닙니다. 하겠습니다.”
“대신 수련이 끝나면 질문 시간을 반 시진만 주십시오.”
태민도 새로운 제안을 한다.
“고추에 털도 안 난 놈이 뻑하면 협상질이야.”
“제 고추에 털이 났는지 안 났는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세요?”
“이놈아, 그걸 꼭 봐야만 아냐?”
“그야 그렇지만. 제 나이가 얼만데...”
“됐고. 좋다. 질문 시간은 준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다.”
“설마 수련시간을 더 늘리는 건 아니죠?”
“멍청한 놈! 수련 시간만 늘린다고 실력이 늘면 모두 천하제일고수가 되게?”
“쳇! 가끔씩 말문이 막히기도 해야 재밌지. .... 조건은 뭡니까?”
“질문은 나도 한다. 이상!”
그걸 끝으로 무진은 입을 닫아버린다. 태민 사형제는 그때부터 우마차 양 옆에서 속도를 맞춰 달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무진이 만든 신법에 맞춰서 달린다. 속도는 느리지만 두 사람은 수도 없이 넘어지고, 또 구르기를 반복한다.
일단의 무리가 산을 오르고 있다. 정확하게 남자 여섯, 여자 다섯 명이다. 모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게 무가의 후손임에 분명하다.
이들의 옷차림은 특이하다. 화려하기는 똑 같지만 저마다 색상이 다르다. 각기 다른 문파 출신이라는 걸 의미한다. 특히 여인들의 옷과 장신구들은 귀족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화려하고 귀한 것들이다.
이들은 중원무림의 중심세력인 사대세가의 자식들이다.
남궁세가의 대공자 남궁억과 여동생 남궁린
사천당가의 대공자 당문과 여동생 당서희
하북팽가의 대공자 팽준과 여동생 팽지미
제갈세가의 대공자 제갈훈과 여동생인 제갈미
중앙의 사내는 태양장의 소장주인 유현이다. 그의 옷차림은 단연 돋보인다. 여인들도 초라해 보일 정도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뿐만 아니라 일행은 모두 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나이도 비슷하거나 그보다 많은 사람도 있는데도 그는 모두에게 하대한다.
“대체 얼마를 더 가야 돼?”
“거의 다 왔습니다.”
유현의 짜증 섞인 물음에 남궁억이 대답한다.
“그래서 얼마나 남았다는 거야?”
“반각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이번에는 팽준이 대답한다. 유현이 불평을 늘어놓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아마도 일행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산행을 하는 모양이다.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지만, 실망시키진 마라.”
“그건 염려 마십시오.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소장주, 경치 좋은 곳에서 소장주와 함께 술과 여자를 음미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사내놈들은 하나같이 유현에게 아부성 발언을 한다. 그들이 쥐고 있는 보자기 속에는 술과 각종 음식이 들어 있다. 순간 여인들의 눈빛이 반짝이며 경쟁하듯이 나선다.
“소장주님! 설사 경치가 마음에 안 들면 어때요? 저희들이 있는 걸요. 무림을 위해 불철주야 수고하시는 소장주님의 피로는 저희가 책임지고 풀어드릴게요.”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가 책임지고 해결해 드릴게요.”
“얘는. 소장주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부탁을 하시겠니? 오늘은 마음 놓고 즐기세요. 모든 걸 저희가 알아서 할 게요.”
“모든 걸?”
“예.”
“흐흐흐, 기대가 되는군.”
여인들이 알랑방귀를 뀌자 소장주의 눈에서 욕정의 불길이 타오른다.
“소장주, 저길 보세요!”
제갈훈이 제일 앞에 가면서 소리친다. 일행이 얘기하면서 걷는 동안 숲길은 끝나고, 멀리 탁 트인 곳이 보인다.
“제법이군. 아름드리나무로 이뤄진 숲과 탁 트인 경관이라.... 으잉? 저건 뭐지?”
소장주는 멀리 산의 정상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숲이 끝나자 그 앞에는 수천 평의 평지가 나타나고, 그 너머에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한 마디로 절경 중의 절경이다.
근데 평지의 끝부분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소장주가 그걸 본 것이다.
“사람입니다.”
“좌선을 하는 건가?”
“치워라! 난 저런 놈과 섞이고 싶지 않다.”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덩치가 크고 성격이 급한 팽준이 나선다. 그는 바위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걸어가더니 제법 큰 목소리로 말한다.
“뭐하는 놈이냐?”
그는 다짜고짜 공격적인 말투로 시비를 건다. 하지만 상대방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 자식이.... 좋게 말할 때 떠나라.”
그는 보통 사람의 배나 되는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한다. 그러자 사내가 눈을 뜬다.
“어디서 멧돼지 소리가 들리지? 지난밤에 못 먹을 걸 먹었나?”
분명 무진의 목소리다. 그는 밤새 이곳에서 명상을 했다.
“이 새끼가 감히 누구더러 멧돼지래? 죽을래?”
“에잉? 멧돼지가 아니었나? 분명 목소리는 같았는데, 생긴 것도 비슷하고.”
무진은 겁먹기는커녕 오히려 팽준을 자극한다.
“오냐? 원한다면 죽여주마. 우와! 아찔하군. 떨어지면 뼈도 못 추리겠네.”
무진이 앉아 있는 바위는 산의 정상이지만, 그 앞은 바로 절벽이다. 워낙 높은 곳이라 떨어지면 목숨을 잃는 건 물론이고, 시신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팽준은 그걸 무기로 협박한다.
그 때 멀리 동쪽에서 붉은 태양이 고개를 살짝 내민다. 황금빛 투명한 기운이 산을 뚫고 나와 온 천지를 밝히는 모습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순간만큼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걸 깨드린 게 무진의 목소리다.
“이야! 죽인다. 돼지 새끼와 같이 보기엔 너무 아깝다.”
팽준 일행은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린다.
“저 거지새끼가 뭐라는 거야?”
“제가 잘못 듣지 않았다면 준이 오라버니를 욕한 것 같은데요?”
당문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팽준의 여동생인 팽지미가 답한다.
“흐흐흐흐! 이건 내 탓이 아니다. 널 죽인 건 바로 네 주둥이다. 잘 가라!”
팽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무진을 향해서 달려든다. 근데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
“허억!”
그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무진이 앉은 채로 살짝 옆으로 피하며 오른발로 그의 다리를 건다. 그러자 팽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절벽을 향해 날아간다.
“오..오라버니!”
“준아!”
팽준 일행은 일제히 소리치며 달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다. 순간 돌풍이 불어 절벽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호들갑 떨지 마라. 안 떨어졌으니까.”
무진의 말대로 팽준은 바위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다.
“준아!”
당문이 달려가서 그를 끌어올린다.
“후후후, 거지새끼가 한 수가 있었군. 하지만 네놈은 잠자는 사자 코털을 건드렸다.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누구긴? 딱 보면 알겠구먼.”
“우릴 안다고?”
“당연하지. 화려한 옷차림에 개기름이 흐르는 반질반질한 상판 떼기. 그리고 할 짓이 없어서 유람을 다닌다. 이 정도면 눈 달린 사람이라면 다 알겠다. 모른다고? 설마 백수건달을 모른단 말이야?”
“개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오라버니들을 백수건달이래요.”
제갈미가 지 오라버니인 제갈훈을 놀린다.
“쯧쯧쯧, 지금껏 자기가 백수란 것도 몰랐다네. 젊은 놈들이 불쌍타. 불쌍해. 어쩌다 저렇게 망가졌을까?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데 말이야.”
“.....”
유현 일행은 뻥 찐 표정으로 무진을 노려본다.
“하긴 그러니까 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놓고, 나 때문에 죽는다고 우기는 거겠지. 니들 부모님들이 정말 걱정이다. 그래도 니들을 낳고 잔치를 벌였겠지? 쯧쯧쯧!”
무진은 입으로 상대방을 농락한다.
“소장주, 죄송하게 됐습니다. 모처럼 소장주께 충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는데, 주향 대신 피 냄새를 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괜찮다. 난 술보단 이런 걸 더 좋아한다. 대신 깨끗하게 처리해라. 원래 바퀴벌레는 제때 박멸하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법이거든.”
“예, 소장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제갈세가의 후계자인 제갈훈의 말에는 뼈가 있다. 자신은 팽준처럼 어리숙하지 않고, 실패하지도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소릴 듣고 가만있을 무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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