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8
태민은 그 동안 동물들을 대상으로 여러 번 실험을 해봤다. 또 무진이 수술하는 걸 많이 지켜봐서 방법은 훤히 알고 있다.
“와아? 태민 사형도 할 줄 아는 모양이다.”
“정말이네. 하하! 사형 이마에 땀 봐라.”
“야, 너라면 긴장 안 하겠냐? 잘못되면 환자가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근데 저 여자는 누구지? 상당히 예쁜 것 같은데...”
“그러게 무 대협이 직접 치료하는 걸 보면 우리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제자들은 갑자기 여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도 그럴 것이 태진을 비롯해서 일행이 모두 그 여인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이 누님이 아닐까? 어릴 적에 헤어졌다고 했잖아?”
“뭐야? 너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니?”
“야! 진이랑 저 여자랑 어디가 비슷해? 완전히 원숭이와 사슴이구만.”
무당 제자들은 태수가 한 말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태수는 물론이고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자 서로 쳐다보며 긴장한다.
“저..정말이야?”
“어릴 적에 헤어졌다는 그 누나?”
“마..말도 안 돼! 어떻게 여기서 만날 수가 있지?”
“근데 왜 저렇게 된 거야?”
제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지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다.
“후유! 끝났습니다.”
태민이 바늘을 바닥에 놓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리고 있다.
“수고했다. 최대한 조심해서, 그리고 빨리 환자를 옮겨야 된다. 지금부턴 절대적인 안정이 필요하다.”
무진은 태민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한다. 그걸 보고 진운자도 빠르게 움직인다.
“수야, 넌 빨리 객잔을 알아봐라.”
“예, 사숙!”
“나머진 준비하고.”
“예에? 뭘 준비하란 겁니까?”
진운자의 말에 제자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멀리 시장 통에서 사람들이 몰려오자 각자 병기를 챙기며 몸을 푼다.
“멍청한 새끼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그..그게... 애들이 취해서 잠시 잠든 사이에 도망친 모양입니다.”
“이 새끼야! 그걸 변명이라고 해? 그러고도 네놈이 부대장이냐?”
동방파의 행동대장인 도끼 주덕은 옆에 따라오는 부대장을 노려보며 짜증을 낸다. 동방파는 신양 암흑가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인신매매와 시장의 사기도박이 그들의 주 수입원이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사업이 한꺼번에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인신매매는 여자가 탈출했고, 사기도박인 야바위는 돈을 모두 털렸다.
“죄..죄송합니다.”
“야바위판은 어떻게 됐어?”
아마 야바위판도 그들이 관리하는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아직 못 찾았습니다. 크악!”
부대장은 주덕의 주먹에 턱을 맞고 쓰러진다. 하지만 쓰러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일어난다. 그만큼 주덕이 무섭고 잔인하다는 걸 의미한다.
“이 새끼들은 며칠만 안 맞아도 금방 개판이 된단 말이야. 개판! 니들도 야바위판이 얼마나 중요한 사업장인지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 없이 잘 운영돼 왔다. 근데 내가 책임을 맡자마자 완전히 털렸다. 만약 오늘 안으로 처리 못하면 니들이나 나나 모두 죽은 목숨이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주덕은 30대 중반의 건장하게 생긴 인물로 몇 달 전에 행동대장직에 올랐다. 그래서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발악하고 있는데 이런 사건이 떠진 것이다. 그로선 목숨을 걸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무..물론입니다.”
“야! 저건 또 뭐냐? 저거 다 우리 애들 아니냐?”
“맞습니다. 왜, 저기에 쓰러져 있지?”
“이 새끼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당장 알아봐.”
“예, 대장!”
부대장이 뛰어가려는 순간 구경꾼들 속에 숨어 있던 부하가 달려와서 상황 설명을 한다.
“뭐, 저놈들에게 당했다고?”
“저놈들이 아니라 두 놈에게...”
부하는 태진과 태민에게 당한 걸 설명한다.
“아, 씨발! 이 새끼들이 모조리 바보가 됐나? 그게 말이 돼? 놈들이 무림 고수야, 뭐야?”
“그것까진 모르지만 놈들 중에 계집의 동생이 있는 모양입니다.”
“동생?”
“예! 어릴 적에 헤어진 동생이라고 합니다.”
“나 참! 가지가지 한다. 그딴 건 다 필요 없고, 당장 처리해.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전부! 이번에도 흐리멍덩하게 하면 모조리 내 손에 죽는다. 알았지?”
대장은 검을 빼들고 부하를 협박한다.
“예. 대장!”
부대장은 뒤따라오는 삼십여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달려간다. 하지만 대장이 도착하기도 전에 부하들은 모두 제압당한다. 이번에는 여러 명이 나섰다. 태수를 중심으로 한 다섯 명의 무당 일대제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냥 평범한 일반 무공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최근에 실력이 많이 향상됐기 때문에 뒷골목의 주먹패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모두 팔 다리가 부러져 바닥을 뒹굴며 신음하고 있다.
“에이 씨발! 하나같이 비실비실한 놈들만 있으니...”
“대..대장!”
“비켜! 하여튼 끝나고 보자. 모두 똥통에 처박힐 각오해!”
행동대장 주덕은 부하들이 쓰러지는 걸 보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끝내고 부하들 혼낼 생각만 한다.
“네 놈이냐?”
주덕이 도착하자 태운이 나선다.
“네 놈?”
“그래. 우리 누님을 인신매매해서 저렇게 만든 놈들의 대가리 말이다.”
“크크크! 그래. 내가 대장인 것 맞다. 그럼 네 놈도 대장이냐?”
태운은 대답도 하지 않고 곧바로 공격한다.
“허억! 이 새끼가.... 우욱!”
태운은 처음부터 격권을 사용한다. 주덕은 주먹이 살짝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데도 충격으로 뒤로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그도 만만찮다. 뒤로 두 바퀴 더 돌더니 자세를 잡고 반격을 준비한다.
“호오! 몸놀림이 제법일세.”
무진이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주덕을 주시한다.
“무공을 제대로 배운 것 같진 않습니다만, 제법이군요.”
진운자도 유심히 관찰한다.
“전형적인 싸움꾼이야. 내공도 제법이고.”
“싸움꾼이 내공을 가졌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원은 넓은 곳이다. 고정관념으로 모든 걸 판단할 수 없는 곳이지.”
“예에.”
“운이에겐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무진의 말대로 두 사람은 호적수다. 분명 기본기는 태운이 단단하지만 임기응변이나 암수는 주덕이 한 수 위다.
‘시정잡배들이나 사용하는 무공인데도 허점을 찾을 수가 없다. 경험 탓인가?’
‘어린놈이 대단하다. 정파의 일대제자들과도 여럿 싸워봤지만 이렇게 강한 놈은 처음이다. 무공도 마찬가지다. 생전 처음 보는 건데도 소림 무공에도 뒤지지 않는다. 무당인가? 태극권과 비슷하긴 한데...’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서 놀라며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서로의 공격이 잘 먹히지 않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타핫!”
선공은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주덕이 먼저 펼친다. 그는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태운의 머리를 노리는 척하더니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던진다.
‘그냥 맞아라!’
그때 무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우웃!”
태운은 뭔가에 맞고 바닥에 쓰러진다.
“독침이다!”
제자들의 말대로 태운은 주덕이 던진 독침에 맞고 쓰러진 것이다.
“비...비겁한 놈!”
“흐흐흐! 죽음의 싸움에서 비겁하다니, 네놈도 고리타분한 정파 놈이구나.”
주덕은 천천히 걸어오더니 오른 발을 태운의 목에 올린다. 아니 올리기 위해 발은 드는 순간 비명을 지른다.
“크아아악!”
태운이 왼손으로 그의 발을 잡아당기더니 오른손으로 그의 중요부위를 올려쳤기 때문이다. 비명에 묻혔지만 분명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내..내 거시기... 으아아아악!”
주덕은 급소 부위를 잡고 바닥을 구르고 또 구른다. 바지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다.
“싸움판에선 암수도 괜찮다고 했으니 다른 말은 안 하겠지?”
“어..어떻게 멀쩡할 수가 있지?”
독침에 맞고도 중독되지 않은 걸 말한다.
“미안해서 어떡하나? 영업비밀이라서 말이야. 그보다 넌 좀 더 맞아야겠다.”
태운은 발목을 돌리며 주덕을 향해 걸어간다. 발길질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때 누군가가 나선다.
“운아!”
태진이다. 그는 지금껏 기회만 보고 있었다. 만약 누나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절대 태운에게 순서를 양보하지 않았을 거다.
“운아! 고맙다. 근데 미안하지만 마무리는 내가 하고 싶다. 그래 주겠니?”
태진은 최대한 허리를 숙여 부탁한다. 이 정도 예의를 갖추는데 누가 안 된다고 하겠는가?
“그래. 대신 나중에 한 턱 쏴라.”
“당연하지. 잔치를 벌일 생각이니 기대해라.”
“후후, 자식!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태운은 말하면서 물러난다.
“네..네놈은 누구냐?”
주덕은 태진이 다가오자 기세에 눌려서 겁을 먹는다. 그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이다. 다치기도 했지만 태진이 나서는 순간 자신이 상대를 잘못 건드린 걸 느낀 것이다.
“내가 누구냐고? 저기 누워 있는 여인이 내 누이라면 믿겠니? 나이 일곱에 헤어져 겨우 지금 찾았다. 근데 저런 모습으로 누워 있구나. 너라면 어떡하겠니? 어린 나이에 부모와 동생을 잃고, 천신만고 끝에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근데 그마저도 2년을 못 버티고 사고로 죽었다. 흐흑!”
태진은 말을 하면서 자꾸 눈물이 흘러 잠시 얘기를 멈춘다.
“..... 근데 말이다. 친척이란 인간들이 남편 잃은 저 불쌍한 여인을 늙고 욕심 많은 늙은이에게 팔아버렸대. 그래도 저 착한 여인은 일편단심 남편을 그리워하며 도망쳤다. 그런 사람을 네놈들은 납치해서 사창가로 팔아넘기려 했다. 네가 만약 저 여인의 남동생이라면 어떻게 하겠니?”
태진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눈물을 흘리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한다. 그걸 보는 주덕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다.
“으으으으으!”
“많이도 필요 없다. 딱 백 대만 맞아라. 그러고도 살아남는다면 남해도에서 평생 고기잡이 어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마.”
“사형, 저 말이 무슨 뜻이오?”
“병신으로 만든 다음 죽을 때까지 배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거지. 태어나 이렇게 살 떨리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태민은 태수의 말에 정말 떨면서 얘기한다.
“나라면 절대 살려두지 않을 것 같소.”
“그래서 넌 아직도 초보티를 못 벗어난 거야.”
“그건 또 뭔 소리요?”
“니가 때론 죽음보다 살아 있는 게 더 무섭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건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지 세상에 그런 게 어딨소?”
“어딨긴 여기에 있지. 그럼 넌 저렇게 맞고도 살고 싶겠냐?”
“으음!”
태민의 설명에 태수는 더 이상 말을 못한다. 한편 무진도 태진의 행동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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