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0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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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0
“지나친 사양은 예가 아닌 법. 부담스러우면 받은 만큼 세상에 돌려주면 될 일.”
무진은 액체를 둘에게 공평하게 나눠 먹인다.
“죽기 싫으면 내가 가르쳐 준 혈도대로 기운을 움직여라. 빨리!”
무진의 고함에 두 사람은 좌정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처음엔 최대한 기운을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기운이 갑자기 발작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다 기운이 제압되면 그때부터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무진의 가르침에 따라 두 사람은 기운을 천천히 일주천 한다. 천만다행으로 기운이 성질을 부리진 않는다. 원래 온순한 게 아니라 무진이 말한 운기 방법이 영물의 기운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된 것이다. 일주천을 할 때마다 단전에 모였던 영물의 붉은 기운이 피부를 통해서 몸 밖으로 나온다.
“저게 뭐지? 내단의 기운인 건 분명한데..... 허엇! 세..세상에 다시 아이들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저런 건 처음 본다.”
진운자의 말대로 붉은 기운이 한동안 전신을 휘감더니 잠시 후, 몸속으로 모두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수십 번을 반복하더니 점차 색깔이 맑고 투명하게 변한다. 기운이 제어되고 있다는 증거다.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친구다. 아니, 저 정도면 희귀 동물이라고 할 수 있지. 백 년 내공을 얻을 수 있는 영물의 내단은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 그런 물건인 걸 알면서 남에게 주다니... 무소유를 꿈꾸는 스님이나 도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일행은 거의 반나절을 길에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이 운기조식을 하는 사이 무진은 간단하게 진운자를 치료한 다음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이라야 별거 없다. 주루에서 미리 준비한 육포를 나눠 먹는 것이다.
“으..음냐! 잘 잤다. 오라비 어디 갔어?”
그 사이 호란이 깨어나 무진을 찾는다. 그녀는 이제 무진을 오라비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은 기억을 못할 뿐만 아니라 찾지도 않는다. 오직 무진만 알아보고 찾는다. 그것도 애타게.
“여깄다. 이 오라비가 널 두고 어디 가겠니?”
“히히히! 당연하지. 오라빈 내거니까 항상 란이 곁에 있어야 해. 아, 좋다.”
호란은 기어와서는 무진의 품에 안긴다. 순간 그녀는 진운자와 눈을 마주친다.
“오라비, 저 할배는 누구야?”
“할배? 후후. 기억 안 나? 무당파의 진운자라고 니 사숙이야.”
무진은 할배란 말에 살짝 웃는다.
“진운자라고? 당연히 알지. 우리 아비가 절대 잊지 말라고 했는데. 할배가 그 진운자야?”
이게 무슨 소린가? 호란이 진운자란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순간 무진의 눈이 반짝인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뇌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 상태면 회복이 불가능한 것만 아니다.’
그보다 더 놀란 사람은 진운자다. 그는 번개처럼 다가가서 호란의 손을 잡고 되묻는다.
“니가 정말 호명이의 딸이냐?”
“호명은 우리 아빠야. 아빤 친구가 진운자 밖에 없다고 했어.”
“그래. 명이가 날 기억하고 있었단 말이지. 명이가. 으하하하하....!”
진운자는 너무 기쁜 나머지 실수를 한다. 내상이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치게 흥분한 것이다.
파팟!
“이게 미쳤나? 죽고 싶어!”
무진은 황급히 진운자의 혈도를 제압한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주화입마에 들었을 것이다.
“우리 아빠가 그랬어... 아빠? 아빠가 누구지? 오..오라비! 아..아빠가 뭐야?”
호란은 다시 정신을 잃는다. 무진은 조심스럽게 안아서 다시 바위 위에 눕힌다. 그때 진운자도 정신을 차린다.
“쯧쯧쯧, 평생을 수련했다는 자가 그게 무슨 꼴인가?”
“부끄러울 뿐이오.”
진운자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그도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였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걸 털어 넣어봐.”
무진은 품속에서 작은 물체를 하나 꺼내 던진다.
“이게 뭡니까?”
“꽤 오래 산 놈이니까 회복에 도움을 줄 거야. 오랫동안 거친 곳에서 지내다 보니 몸이 많이 허해졌어.”
“웅담입니까?”
“원래 곰이란 놈이 힘이 세잖아? 한 이백 년 정도 산 놈이니까 효과가 있을 거야.”
무진은 월계 마을을 떠나올 때 몇 가지를 준비해왔다. 웅담은 그 중의 하나다.
“이..이백 년이라고 했소?”
“너도 내 말을 안 믿냐?”
“그..그게 아니라.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제가....”
“싫으면 돌려주든가?”
“아..아닙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꿀꺽!”
무진이 손을 내밀자 진운자는 들고 있던 웅담을 그대로 입에 넣어 삼켜버린다.“
“이..이런! 죄송합니다.”
진운자는 자신의 행동이 멋쩍었던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아니야. 지금은 그대가 튼튼해야 우리가 편하게 갈 수 있어. 아이들이 깨어나는군.”
무진은 오히려 만족하는 눈치다.
“사부님!”
“무 대협!”
태민 사형제도 운기조식을 마치고 두 사람에게 다가온다.
“태민과 태운이 무 대협과 사부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그들은 무진과 진운자를 향해 큰 절을 올린다. 둘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이전에도 맑고 똘망한 눈빛이었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고수라고 할 정도로 강렬하다.
“수고했다. 먼저 기운부터 확인해봐라.”
“으음! 괜찮습니다.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단전에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태민이 먼저 확인한다. 그는 지금 하늘이라도 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건 내단의 기운을 채 1할도 소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1할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 하지만 모두 소화시키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운이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예에? 제가요?”
“그래. 절대 욕심을 부리지 말고 천천히 해야 한다. 잘못하면 누구처럼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 너도 알다시피 기운이 강하면 강할수록 주화입마에 빠지면 치명적이다. 알았지?”
무진은 주화입마란 말을 하면서 짓궂은 표정으로 진운자를 쳐다본다. 순간 진운자의 눈꼬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당부할 게 있다.”
“말씀하십시오.”
“세이경청하겠습니다.”
“강호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무림에서 자신의 실력을 전부 드러내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내력을 갈무리하란 말씀인가요?”
“그렇다. 지금 너희가 가지고 있는 눈빛은 날 죽여주시오 라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걸 보는 순간 너희를 경쟁상대로 생각하고 경계하거나 해칠 궁리를 할 것이다.”
“으음!”
“알겠습니다. 근데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영물의 내단일까요?”
태민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태운은 궁금증을 해소하려 한다.
“나도 잘 모른다. 그게 무당에서 배운 내력과 충돌하느냐?”
“아닙니다. 신기할 정도로 잘 맞습니다.”
“다행이다.”
“사부께서 복용하셔야 할 것을...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다. 나도 무 대협께 몸에 좋은 놈으로 선물 받았다.”
진운자는 무진을 힐끔 보면서 얼굴을 붉힌다.
“이젠 우리 같은 늙은이보다 너희들이 힘을 기를 때다. 앞으로의 무당은 너희들의 것이다.”
진운자는 진지하게 말한다. 근데 돌아오는 말이 곱지 않다.
“웃기는 소리! 그런 무책임한 생각이 오늘의 무당을 만들었다는 걸 모른단 말이냐?”
무진이 진운자의 방관자적 자세를 비판한 것이다. 갑자기 주위에 찬바람이 쌩하고 분다. 진운자는 무당뿐만 아니라 무림에서도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설사 무림맹주라 할지라도 이런 말을 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의외의 반응이 나온다.
“내가 생각이 짧았소. 무 대협의 말씀대로 오늘의 무당이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건 어쩌면 나와 같은 무책임한 사람들 때문인지도 모르오.”
진운자는 말을 하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사부!”
“사부님!”
제자들은 그가 화를 낼 때보다 더 놀란다.
“아니다. 빈말이 아니다. 난 비겁한 인간이다. 무당이 잘못되고 있단 걸 알면서도 눈을 감았고, 적당히 비판하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 것처럼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공범자이자 범죄자이다. 난 그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다. 이게 바로 내가 세상을 떠돌면서 깨달은 것이다. 너희들 보기에 부끄럽구나. 크흐흐흑!”
“사부!”
“사부님! 흐흐흑!”
이들은 서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이 순간만큼은 무진의 표정도 무거워진다. 진운진가 겪었을 수많은 고뇌의 시간이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자, 시장할 테니 밥부터 먹자.”
사내들끼리 한 동안 울고 나자 분위기가 어색하다. 그걸 바꾸려고 무진이 나선 것이다.
“예. 제가 준비하겠... 무 대협께서 차려놓으셨군요.”
태민이 일어서다 바위 위에 준비된 육포를 보았다. 일행은 한 동안 말없이 열심히 육포를 씹어 먹는다.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사람은 태민이다. 그는 사부의 눈치를 보더니 무진에게 질문을 한다.
“무 대협은 우리가 무슨 일로 호란 누님을 무당으로 데려 가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진운자를 비롯한 세 사람은 아침에 무진과 자신들의 비밀을 공유하자는데 합의했다. 그만큼 그를 믿는다는 뜻이다.
“일 없다. 지나친 관심은 화를 부를 뿐이다.”
무진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무 대협! 이제 무당산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대협은 그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걱정 마라. 약속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할 테니. 하지만 무당에서 사람들이 나오면 곧바로 떠날 것이다.”
“그래도 누님에 대한 것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운까지 나서서 밀어붙인다. 혹시라도 무진이 무당의 일급비밀을 공유하는 걸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잘못 짚었다.
“그게 무엇이든 무당에겐 위기다.”
“예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누님은 무당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것입니다.”
“복이면 복이지. 그게 왜, 위기란 말이오?”
진운자까지 나서서 반론의 제기한다.
“후후후! 장로란 인간이 세상 물정을 그렇게 모르냐?”
“무슨 말씀이오?”
“잘 들어라. 어떤 시골 동네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굶고 있다. 근데 유독 한 집에만 보물과 곡식이 쌓이면 어떻게 될까? 게다가 동네 사람들과 사이까지 나쁘면?”
“으음!”
무당의 제자들은 모두 긴장한다. 그때 갑자기 호란이 발작을 한다.
“커어억! 커컥!”
부르르르르.....!
“누..누님!”
“팔을 잡아라!”
태민이 소리치며 사제와 함께 그녀의 사지를 붙잡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파팟!
무진이 혈도를 짚고서야 차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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