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9
“날 공격한 이유가 영물 때문이냐?”
“그..그렇습니다.”
“그런 정보를 흑룡방에서 어떻게 얻었지?”
“그..그건 모릅니다. 오직 방주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후후후! 모든 걸 방주에게 돌리면 우리가 찾아갈 테고, 그때 일망타진을 하시겠다는 거군. 그거냐?”
무진은 총관의 의도를 금방 파악한다.
“아..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됐다. 최근에 흑룡방을 찾아온 자들은 있느냐?”
“저희 흑룡방이 일대에서는 제법 큰 방파라 하루에도 수십 명이 찾아.... 으윽! 아..아닙니다. 어제 저녁에 은밀하게 방주님을 만나고 간 자가 있습니다.”
총관은 태민이 노려보자 자신도 모르게 줄줄 말을 한다.
“누구냐? 그놈이.”
“그건 정말로 모릅니다.”
“하긴 흑룡방주 여옥은 그런 일을 부하에게 말할 위인이 아니지.”
진운자는 흑룡방주에 대해서 잘 아는지 총관의 말을 쉽게 받아들인다.
“사부! 이런 일은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잘못하면 오랫동안 시달리게 되고,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태운이 다시 끼어든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운자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니들이 흑룡방을 치기라도 하겠다는 거냐?”
“당연하죠. 배후세력도 알아서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사부를 계속 괴롭힐 겁니다.”
“하하! 내가 너희에게 강호의 무서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으니 그리 말해도 할 말은 없다만.... 흑룡방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그런 곳이 아니란다.”
“그런 말은 이전에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옥방과 청룡장은 결국 우리 손에 멸문했으며, 태산장은 우리가 아니었으면 멸문을 당했을 겁니다.”
“뭐..뭐라고? 운이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지옥방이 어떻고... 태산장 얘기는 또 뭐냐? 그들은 무당도 어찌할 수 없는 곳이다. 중소문파들 중에서는 수위를 다투는 곳이란 말이다. 그런 곳을 너희가 어떻게 했다고?”
“정확히 말씀드리면 저희 힘만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실은 무 대협이 하신 겁니다.”
“이번에는 사부도 왔으니까 너희끼리 갔다 와라.”
“무슨 말씀이세요? 우리를 도와주기로 했잖습니까?”
“그건 이번 일과 관련된 것에 국한된다. 난 무림사에 끼어들 생각은 없다.”
“대협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공격하는 자들을 그냥 두면 계속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태민 사형제는 번갈아가면서 무진을 물고 늘어진다.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 아이들이 이렇게 컸단 말인가? 후후! 하긴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지. 근데 이 아이는 누군가? 얼굴은 아이들과 비슷한 것 같은데, 행동하는 걸 보면 나보다도 더 많아 보이니. 혹시 반노환동의 경지에 오른 분인가? 으음! 두고 보면 알겠지.’
진운자는 낙관적인 성격답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때 무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이, 씨발! 이런 일은 엮이는 게 아닌데.”
그는 호란을 업고 발걸음을 옮긴다.
“무...무 대협!”
“그렇게 가시면 어떡합니까?”
“흑룡방엘 간다며? 안 갈 거냐?”
“예에? 예! 하하하! 그럴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가야죠.”
“사부, 가시죠. 자세한 건 가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태민은 사부의 손을 끌며 무진을 뒤따른다.
잠시 후, 일행은 숲을 벗어나 완만한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호란은 무진의 등 뒤에 업혀 잠들어 있다. 그 상태에서도 오른손은 그의 젖꼭지를 쥐고 있다. 그걸 보고 진운자가 한 마디 한다.
“쯧쯧쯧, 저 아이는 누구냐? 다 큰 처녀가 보기가 흉하구나.”
“아, 예. 사부는 잘 모르시겠지만 과거 무당에 호명이란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무당 제자로서 적마교에 잠입했다가 중요한 정보를 얻고는 그만 잘못되셨나 봅니다. 그분의 따님입니다.”
태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운자가 끼어든다.
“방금 누구라고 했느냐?”
“누구라시면.... 호명이라는 분 말씀입니까?”
“그래. 무당 제자이고, 이름은 호명이라고 했지?”
“예. 장문인과 누님에게 그렇게 들었습니다. 혹시 아십니까? 무당에는 그럴 만한 분이 없다고 했는데.... 사..사부!”
태민은 순간 당황한다. 진운자가 호란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무진도 감지했는지 호란을 공터의 바위 위에 눕힌다.
“이 아이가 명이의 딸이란 말이지? 내 친우 호명이의 딸. 흐흐흐흑!”
“사부께서 그분을 아십니까?”
이번에는 태운이 묻는다. 그는 진운자가 눈물을 거두자 끼어든다.
“그래. 무당에서 만난 유일한 동무라고 할 수 있지. 정식 제자가 되기 전에 3년 정도 같이 지냈으니까.”
“그래서 아시는군요.”
“얼마나 친했기에 눈물을 흘리시고....”
“그 친구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난 내 인생의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해왔다.”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 아인 우리 또래 중에선 가장 무공도 뛰어나고, 명석했지. 근데 3년이 지나고 정식 제자가 되자 바람처럼 사라졌단다.”
“아무 말도 없이요?”
“떠나기 전날 이상한 말을 하긴 했지.”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무림맹으로 간다고 하더군.”
“아! 그랬군요.”
이제야 모든 그림이 그려진다. 호명이란 사람은 무림맹과 무당에 의해서 적마교에 투입된 간자였던 것이다.
“저 아이는 어쩌다 저리된 거냐?”
진운자의 시선이 다시 호란에게로 향한다.
“얘기가 좀 복잡합니다. 우리가 누님을 만나서 무당으로 출발할 즈음 누님에 대한 얘기가 무림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님이 고금제일인의 유물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말입니다. 그래서 오는 도중에..... 무 대협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마지막 설명은 태민이 한다. 그걸 듣더니 진운자가 일어난다.
“무당을 대신해서 인사드립니다. 부족한 제자들과 조카를 구해주시고, 도와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는 허리를 직각으로 숙여서 무진에게 인사한다. 그로선 무릎을 꿇는 것을 제외하곤 최대한의 예를 표한 것이다.
“후후후, 무당이 썩은 줄 알았더니 아직은 사람이 있군.”
진운자는 무진을 유심히 살핀다.
‘특이한 친구로군. 내공은 강한 것 같지 않은데, 상당히 강한 기질의 소유자다. 내가 아이들의 사부란 걸 알면서도 말을 놓는다. 그런데도 그다지 거북하지 않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내가 말이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나도 복수하려고 시작한 일이니까. 놈들이 마을을 침탈해서 수십 명의 친우들을 해쳤거든.”
‘다행이다. 무 대협이 사람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건 사부도 마찬가지다. 진운자라고 하면 자존심인데, 아무리 우릴 구해줬다지만 한참 어린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왠지 기분이 좋다. 사부도 그렇고 무 대협도 다 깐깐한 분들인데, 서로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어쩌면 우리 모두 기질이 비슷해서 생긴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태민과 태운은 걱정을 했는데 두 사람이 첫 만남부터 분위기가 좋아 안도한다.
“사부님은 무도의 길을 찾기 위해 무당을 떠나 오랫동안 여행을 하시고 계십니다.”
“야, 이놈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해라. 무당이 싫어서 떠났다고.”
“사부, 그건 무당제일의 극비사항인데 얘기하면 어떡합니까?”
“그랬더냐? 앞으론 입조심을 하마.”
“하하하! 오랜만에 사부의 농하시는 모습을 보니 한결 기분이 좋습니다.”
“사부! 정말 뵙게 되어 반갑고, 기쁩니다.”
태민이 말을 하자 세 사람은 모두 눈시울을 붉힌다. 그들은 서로 손을 잡고 오랜만에 사제 간의 정을 나눈다.
“그보다 사부!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전 사부가 잘못된 줄 알았습니다.”
가장 먼저 감정을 다스린 것은 태민이다. 그는 진운자의 옷차림을 보며 범선에서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일을 떠올린다.
“그랬더냐? 나도 니들을 못 보고 죽는 줄 알았다.”
“사부님도 참. 그런 말씀을 제자들 앞에서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하하! 그래, 이제 사부도 늙었나 보구나. 참, 이것 때문이다.”
진운자가 품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낸다. 그 안에는 작은 옥병이 들어 있다. 사마강과 화국령이 다섯 개의 나무토막에서 꺼낸 그 옥병이다.
‘후후후, 재밌군. 재밌어. 이런 것들이 시중에 돌아다니니 말이야.’
무진도 약간 놀란 눈치다. 병은 옥으로 만들어졌고, 그 속에는 붉은 액체가 가득 들어있다. 화국령의 가게에서와는 달리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액체의 색깔도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붉은 빛을 띠고 있다. “뭘까요? 붉은 것이 피 같기도 하고, 포도주인가?”
“그런 건 아닐 거야. 옥병만 해도 적어도 수백 년은 돼 보이는데. 무 대협은 뭔지 아시겠어요?”
태민이 사제와 얘기하다 무진에게 시선을 옮긴다.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정확히 알 순 없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나고도 원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자체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걸 의미한다.”
“한 마디로 귀한 거란 말씀이군요.”
“영물이란 거지.”
“영물이라면...”
“정확히 말하면 영물의 내단.”
“내단?”
“내단이요!”
내단이란 말에 모두 깜짝 놀란다. 보통 물건이 아닐 거란 짐작은 했지만 영물의 내단이라곤 생각을 못했다.
“됐고. 영감,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무진은 진운자를 영감이라 부른다. 그런데도 진운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지난 시기 태허도장과 임화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히려 무진이 그렇게 부르는 걸 좋아했다.
“무슨 말이든 해보시오.”
“영감이 무당을 바로 잡을 거야?”
무진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의 말 속에는 무당의 현실과 진운자의 고민이 함께 담겨있다.
“아니외다. 난 지은 죄가 너무 많고,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다오. 그런 거라면 훗날 이 아이들이 해야지요.”
“쯧쯧, 누가 도사 아니랄까 봐 꼭 쉰내 나는 말만 해요. 좋아. 그럼 니들이 마셔라.”
“예에? 이게 뭔 줄 알고 마십니까?”
“맞습니다. 먹었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영물의 내단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추측일 뿐이잖습니까?”
“수백 년이 지나면서 변질됐을 수도 있고요.”
“그래? 그럼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보아하니 수련만 열심히 하면 백 년 내공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난 먹어봐야 소용도 없고. 그냥 버려야겠다.”
무진은 뚜껑을 열고 정말 버리는 시늉을 한다.
“자..잠깐만요! 방금 백 년 내공이라고 하셨습니까?”
“대체 어떤 영물이기에 백 년 내공을 얻을 수 있단 말씀입니까?”
“내가 그 동안 니들에게 한번이라도 거짓말을 하더냐?”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백년 내공이라고 하니 욕심이 나니?”
“솔직히 욕심이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지난번에도 우리가 천년영지를 나눠 먹지 않았습니까? 우웃!”
태민이 말을 하는 도중에 무진이 두 사람의 혈도를 제압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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