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3
“끄앙!”
호랑이는 충격을 받았는지 뒷발을 휘청거리며, 오른쪽으로 넘어진다.
“이번엔 내 차례다. 타핫!”
호랑이가 일어나서 방어 자세를 취하려는 순간 태운의 왼발이 오른쪽 옆구리로 파고든다. 하지만 호랑이도 만만찮다. 순간 위기를 느끼곤 일어서는 대신 왼쪽으로 한 바퀴 더 구른다.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태운은 왼발로 땅바닥을 차더니 공중돌기로 두 바퀴를 돈 다음 곧바로 두 주먹으로 호랑이의 두 눈을 가격한다.
“크아아아앙!”
호랑이는 고통에 몸부림친다. 근데 이때 호랑이의 앞다리가 태운의 왼쪽 어깨를 강타한다.
“으악!”
“운아! 이...이새끼가?”
다음 공격을 위해 달려들던 태민이 호랑이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주먹으로 턱을 날려버린다.
“끄아아앙!”
호랑이는 충격으로 다시 뒤로 넘어진다. 근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바로 막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태운이 있는 곳이다.
“잘 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굴러오는 호랑이의 옆구리를 발로 찬다.
“어헝!”
하지만 그의 발은 옆구리가 아닌 허공을 가른다. 고양이과인 호랑이의 유연성과 순발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호랑이는 바닥을 구르다 태운이 보이자 발로 바닥을 차 그 힘을 이용해서 공중으로 뛰어오른 것이다.
“크르르르!”
호랑이는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다. 이때 무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잘들 논다. 니들 지금 개싸움, 아니 호랑이 싸움하냐? 병기도 없고, 내공도 사용 안 하고 맹수랑 싸워서 어떻게 이길래?”
“무 대협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멍청한 놈들. 물론 이길 순 있겠지. 몸이 만신창이가 된 후에. 그 짓을 왜 하냐? 검도 있고, 빵빵한 내공도 있는데. 바보냐?”
“격권을 익히는 중입니다.”
“좋은 말이야. 배운 걸 실전을 통해서 익히면 도움이 많이 될 테니까. 문제는 니들이 하는 동작이 내가 가르친 격권의 핵심과 다르다는 거다.”
“그럼 뭐가 핵심입니까?”
“그건 니가 말한 것 중에 있다.”
“제가 요?”
태민은 어리둥절해 한다. 자기가 한 말이 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 니가 말했지? 비록 내공은 없어도 호랑이의 기운, 즉 남의 힘을 역이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진작 그렇게 말씀 하시지 그랬어요?”
“이놈아, 첫날부터 무공의 진수를 모두 얘기하는 사람이 어딨냐? 무식한 놈들!”
“무식하기로 치면 무 대협을 따라갈 사람이 어딨습니까?”
“웃기고 있네. 내 아무리 꼴통이라지만 꼴랑 자세하나 배워서 호랑이랑 실전 연습하는 놈들보다 더 무식하겠냐?”
“진짜 너무하시네. 설사 우리가 꼴통짓을 좀 했기로 그렇데 대놓고 말하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화내는 거냐?”
서서히 무진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기분이 나쁘기보단 사실이 그렇단 거죠.”
반대로 태운의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간다.
“흐흐흐! 이거 어째 모처럼 몸을 풀 상황이 온 것 같은데...”
“자..잠깐만 요.”
“무 대협, 우리 뜻은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제대로 된 격권을 배우고 싶단 거잖아? 그럼 제대로 해봐야지. 안 그래? 자, 둘 다 붙어라. 1:1도 좋지만 2:1은 더 좋다. 니들 사형제의 의리도 확인해보고 말이야. 자, 내가 먼저 간다!”
무진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두 사람을 향해 몸을 날린다. 몸을 날린 건 분명한데, 목적지는 다르다. 그는 그대로 달려 두 사람을 뛰어넘더니 그 뒤에 잔뜩 웅클리고 있는 호랑이를 향해 날아간다.
“크아아앙!”
호랑이를 영물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놈은 태민 사형제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 무진이 달려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을 한다.
“퍼억!”
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무진은 호랑이가 달려들자 오른쪽으로 살짝 피하더니 왼손으로 왼발을 잡아 살짝 당긴 다음 오른손바닥으로 호랑이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한다.
소리도 자그마하고, 그리 큰 충격은 아닌 것 같다. 언 듯 봐선 무진이 무사히 잘 피한 것 같다. 그런데...
“캬하아아앙!”
호랑이는 다시 자세를 잡더니 이번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태민 사형제를 노리고 달려든다. 기막힌 일이다. 호랑이는 무진이 하는 걸 보고 배웠는지 태민 사형제가 아닌 바위 위에 누워 있는 호란을 향해 달려간다.
“저..저놈이. 무..무 대협!”
“누님!”
태민과 태운은 동시에 호란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그들이 몇 걸음 옮기기 전에 돌발사태가 발생한다.
퍼퍼퍼퍽!
이번에도 달려가던 중에 호랑이의 몸이 분해되듯이 터져버린 것이다.
“허억!”
“이..이런!”
태민과 태운은 온 몸에 피를 덮어쓰곤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그런 그들을 무진이 자극한다.
“설마 이번에는 놓치진 않았겠지?”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민이 너도 못 봤니?”
“부딪히는 순간 무 대협이 저놈의 발을 잡아채는 건 봤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봤습니다.”
“그러니까 정작 중요한 건 못 봤다는 말이군.”
“한 번만 더 보여주시면 알 것도 같습니다.”
“미친 놈! 내가 그렇게 할 일이 없냐? 그리고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다 설명하면 니들은 뭘 하냐? 아무리 남의 무공이라지만 스스로 연구하는 자세가 돼 있어야지. 멀었다. 멀어. 그래가지고 천하제일은 무슨, 무당십대고수면 모를까.”
“그래도 방향은 가르쳐 주셔야죠.”
“아까 말씀하신 핵심 내용만이라도 말씀해주십시오.”
두 사람의 태도는 조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특히 태민에겐 격권을 익히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놈아, 핵심을 얘기하면 다 하는 건데.... 좋다. 어차피 운이가 말한 거니까 그건 설명을 해주마.”
무진은 못 이기는 척 한 발 물러선다.
“감사합니다. 앞으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난 달콤한 말보다 땀 냄새 풀풀 풍기는 행동을 원한다.”
“알겠습니다.”
“그건 됐고, 너도 아까 봤다니까 알겠지만, 호랑이의 발을 잡아당긴 건 놈의 기운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잡아채는 순간 놈은 버티기 위해 전력을 다해 기운을 회수했다. 난 그저 그 힘이 좀 더 빠르게 놈의 몸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결국 제 힘에 의해 몸이 산산조각 난 거다. 이 정도면 이해가 돼?”
“이해는 되지만 실전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세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수련에 도움이 되지. 개뿔도 없으면서 잘난 체 하는 놈들은 절대 무공의 끝을 볼 수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엔 단점도 있다.”
“위험한 건가요?”
“위험하다긴 보단 동물과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내공이 뛰어난 사람에겐 잘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론 반발력에 의해 시전하는 사람이 다칠 수도 있다.”
“안 먹힐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운이 넌 어떻게 생각하니?”
무진이 갑자기 멍하니 듣고만 있는 태운에게 화살을 돌린다.
“저 요?”
“그래.”
“이것도 추리를 해도 될까요?”
“마음껏 해봐라.”
“감사합니다. 우선 이런 경우는 약간의 속임수로 상대를 방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속임수와 방심이라 좋군. 예를 들면?”
“만약 누군가가 상대의 내공이 없다는 걸 알면 당연히 방심을 할 테고, 그렇게 되면 경계심 없이 공격을 하겠죠? 그때 그의 힘을 이용해서 반격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만약 상대가 속거나 방심하지 않으면?”
“그땐 문제가 되겠지요.”
“이번에는 제가 추론을 해보겠습니다.”
태민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선다. 그는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 발 나서서 말한다.
“전 굳이 내공이 상대보다 높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어째서?”
“상대의 힘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기운만 있으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아까처럼 호랑이가 기운을 회수하려는 순간 그 힘을 이용만 할 수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반대로 그런 것까지 다 파악하고 공격하는 자에겐 격권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호오! 제법이군. 둘 다 정확하게 분석했다. 두 번의 싸움을 모두 보지 못한 상태에서 그 정도 추리를 했다면 그건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이제부턴 실전 훈련이다.”
“사형! 지금 무 대협이 우릴 칭찬한 거지? 맞지, 응?”
“나도 잠시 어리둥절했는데, 사실인 것 같다. 그죠?”
태민은 무진의 칭찬이 믿기지 않아서 재차 확인한다.
“어째 니들 말속에 가시가 있다. 내가 그렇게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냐?”
“솔직히 말씀드리면 인색하단 말은 좋게 봐준 거고, 우린 무 대협이 칭찬이란 말 자체를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였어? 그럼 할 수 없지. 방금 한 말은 취소다. 취소!”
“하하하! 늦었습니다. 우리는 낙장불입(落張不入)이란 말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머리는 별로지만 기억력은 꽤 괜찮은 편이랍니다.”
“그래. 잘났다. 잘났어. 대신 말한 대로 하루에 두 시진씩 수련하는 건 까먹지 마라.”
“참! 두 시진이었지.”
“휴우! 격권만 두 시진이면 다른 것까지 다 합치면.... 이젠 잠자기는 다 틀렸네.”
두 사람은 좋았다가 만다. 아무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이젠 춤 출 시간도 없다.
“난 좀 쉬어야겠다. 열심히들 해라.”
그렇게 말하곤 무진은 곧바로 명상에 들어간다.
“히히히! 아무리 힘들고 잠 잘 시간이 없어도, 매일같이 칭찬받으면 웃으면서 수련을 할 수 있다.”
“난 아니다. 난 칭찬을 못 받아도 웃으면서 할 수 있다.”
“흥이다! 흥! 그렇게 사제를 깔아뭉개면 기분이 좋소?”
“나쁠 것도 없지.”
“이 사람이 정말? 좋아. 지금부터 제대로 한 번 놀아봅시다.”
두 사람은 다시 격권을 익히기 시작한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스럽던 모습은 사라지고 진지하게 수련에 임한다. 무진은 명상을 한다더니 호란을 치료하면서 두 사람의 수련을 면밀히 살핀다. 이후 태민 사형제는 시간만 나면 격권과 신법을 익힌다.
일인전사 지옥도 사마강.
나이는 사십 세. 중원제이의 살수. 중원제일의 살수인 일초살수가 사라진 이후 일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이게 뭐야?”
그는 지금 허탈한 표정으로 손바닥 만 한 상자를 쳐다보고 있다. 그는 지난 한 달 동안 천신만고 끝에 상자를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부상은 수십 군데 당했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것이 허사가 되었다.
“허허허허...!”
그는 상자를 보면서 허탈하게 웃는다. 그 안에는 잘 포장된 나무토막 다섯 개가 들어 있다. 모두 같은 크기로 계란만 하다. 그렇다고 사기를 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일단 값을 치르지도 않았고, 누가 정확하게 상자 안에 어떤 물건이 들어 있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자 안에는 엄청나게 귀중한 물건이 들어 있을 거란 소문만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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