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9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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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19
“저들은 누군가요? 알고 계신 듯한데....”
“하긴 너도 이젠 알아둬야 할 인물이다.”
“알려진 자인가요?”
“너도 봤겠지만 그렇게 알려진 만큼 뛰어난 자는 아니다. 다만 그 가문이 제법 유명하지.”
“그게 어딥니까?”
“글쎄? 그건 고매하신 분들께 여쭤봐야지.”
무진은 장로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허억!”
순간 장로들은 모두 고개를 돌린다.
“쯧쯧, 분수를 모르는 자들의 말로다. 잘 기억하기 바란다.”
“세상을 살만큼 산 사람들이 그걸 왜 모를까요?”
“아마 지금쯤은 알고 있을 거다. 몰라도 할 수 없고. 자, 배후가 누군지 말하는 놈에게 하루를 준다. 물론 해독도 시켜준다.”
“하루라면 뭘 말씀하시는지?”
삼 장로의 질문이다.
“도망칠 시간!”
태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모두 손을 든다. 잠시 후, 네 사람은 각자 종이에 글을 쓴다.
“말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물러나라. 틀린 사람은 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무진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넷 모두 글을 쓴다.
“후후후! 그래도 모두 살고 싶은 모양이군.”
종이에는 모두 똑 같은 이름이 적혀 있다.
“해독부터 해주시오.”
삼 장로는 중독된 지가 오래돼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확인해봐라. 이미 해독됐으니까.”
“해독약을 먹지 않고 어떻게?”
멸정사태는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독이 되면 해독약을 먹어도 한 동안 고생하게 된다. 근데 해독약을 먹지 않고도 해독이 됐다니 믿지 못하는 것이다.
“괘..괜찮소. 멀쩡하오.”
곤륜 제일장로 궁일호의 목소리다. 그는 벌써 확인을 했다. 근데 그는 다시 인상을 찌푸린다.
“다..단전이 비어 있소.”
다른 말로 하면 단전이 파괴된 것이다.
“무 대협! 이건 약속이 틀리지 않소?”
점창의 제이장로인 고송자가 항의한다.
“어떤 약속?”
“하루의 시간을 준다고 하지 않았소?
“그랬지. 그리고 그건 반드시 지켜질 것이다. 근데 내가 무슨 약속을 어겼지?”
“그..그게....”
고송자는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 무진이 약속한 것은 한 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하루라는 시간.
“살려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나 같으면 가능하면 빨리 이곳을 벗어나겠다. 놈들이 니들의 배신을 눈치 채면 그냥 둘까?”
“허억!”
순간 네 사람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한다.
우당당탕탕!
그들은 먼저 빠져나가려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난리도 아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뭘?”
“독 말입니다. 단전을 파괴한 것도 그렇고.”
“이 놈아, 나도 비밀 한, 두 가지는 좀 가져보자. 하나에서 열까지 네 놈에게 다 알려주면 난 뭘 먹고 사냐?”
“나 참, 언제는 궁금한 건 다 물러보라더니. 알았습니다. 지금부턴 궁금해도 참죠 뭐.”
“그렇다고 삐지냐?”
“제가 언제 삐졌다고 그러십니까?”
“알았다. 알았어. 더러워서 말하고 만다.”
“그건 나중에 말씀하시고, 복면인 추적은 안 할 겁니까?”
“미쳤냐? 그깐 놈을 잡는데 힘을 빼게.”
“그냥 두면 안 된다면서요?”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 넌 고기를 좋아한다고 야채는 안 먹냐?”
“혹 누님이 걱정돼서, 아니 보고파서 그런 거 아니고요?”
“미친 놈, 그걸 어떻게 정확하게 맞추니? 너 전생에 점쟁이였지?”
그러고 보니 호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태평루에 있을 때만 해도 분명히 무진의 등에 업혀 있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른 객잔을 빌려서 눕혀 놓고 왔다.
그녀는 치료가 되면서 점차 깨어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자꾸 점혈해서 강제로 재울 수도 없다. 점혈은 강제로 기운의 흐름을 막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두고 온 거고, 무진은 그걸 걱정하고 있다.
“정말 누님을 좋아하는 거요?”
“이놈아, 너도 한 계집의 젖꼭지를 한 달 넘게 만져봐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나?”
“난 도사요. 도사가 그걸 어떻게 알겠소?”
“후후, 그 말을 들으니까 널 꼭 환속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계집이 좋을까? 조금만 기다려라. 니 짝은 내가 찾아줄 테니까.”
“예에?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 도사입니다. 도사!”
태민은 환속과 계집이란 말이 나오자 강하게 부정한다.
“그 자식 그거 정말 재미없네. 그만 가자. 호란이가 기다린다.”
“나 참! 괜히 사람 마음 이상하게 만들어 놓고선. 그래요. 갑시다. 가!”
태민은 멋쩍었던지 자기가 앞장선다.
“흐흐흐, 그토록 아니길 바랐건만 또 놈들이란 말이지? 어찌된 놈들이 이백 년이 넘도록 하나도 변하질 않냐? 지난번엔 참았지만 이번엔 결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정파의 장로들을 통해서 배후 세력을 확인했다. 사실 그는 이미 그들에 대해서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장로들에게 확인을 한 것이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호란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진은 천천히 다가가 그녀의 상태를 살핀다.
‘흠! 이미 깨어났다. 그런데도 눈을 감고 있다. 이건 정신이 돌아왔다는 걸 의미한다. 이걸 기뻐해야 하나, 아님 걱정해야 하나. 으음...’
무진은 기분이 묘해진다. 한편으론 호란의 건강이 호전되어 좋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하게 때문에 그게 마음에 걸린다. 그는 헤어질 바엔 차라리 기억이 없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같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셨어요?”
호란은 눈을 뜨지도 않고 말을 한다.
“어! 으응! 방금 왔어.”
“다행이에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야! 눈도 안 뜨고 내가 무사한지, 다쳤는지 어떻게 아니?”
번쩍!
“다쳤어요?”
그녀는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난다. 그러다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다. 아직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이런!”
무진이 손을 내밀어 그녀를 잡는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음! 음!”
무진은 무안했던지 호란을 침대에 그대로 눕힌다. 근데 호란은 그대로 두 팔로 그의 목을 잡고 매달린다.
“아찌, 나랑 같이 자자. 혼자 자니까 잠이 안 와.”
그 사이 정신이 되돌아갔다. 아직은 완쾌되지 않아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이전보단 정상으로 돌아오는 횟수는 잦아지고,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나도 우리 란이랑 같이 자고 싶어요. 자, 그럼 우리 같이 잘까요?”
“으응! 근데 아찌.”
“왜?”
“나 아찌 찌찌 만지고 시퍼.”
“그러면 나도 우리 난이 찌찌 만지고 싶어지는데?”
“그럼 아찌도 내 찌찌 만져. 자, 자. 여깄다.”
호란은 아예 손을 가슴으로 집어넣어 젖을 꺼내려고 한다. 이때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뛰어든다.
“무..무 대협! 큰일 났습니다.”
태민이다. 그는 급한 마음에 방안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들어왔고, 무진은 그가 달려오는 걸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새끼 그거 참, 눈치도 없이.... 뭔데 호들갑이냐?”
무진은 반쯤 빠져나온 호란의 젖을 손으로 옷 속으로 밀어 넣는다.
“으흠! 그게...”
“많이 다쳤니?”
“예에? 예.”
“지금 어딨어?”
무진은 질문을 하면서도 자신이 앞장선다. 물론 그 전에 호란을 등에 업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통로의 끝에 있는 방이다. 그곳은 객잔의 가장 큰 방으로 여러 명이 침대에 누워 있다. 그 중에는 진운자와 태운의 모습도 보인다.
“넌 뭐하는 놈이냐?”
무진은 가장 먼저 태운에게 호통 친다.
“죄..죄송합니다. 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놈들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숫자도 우리보다 월등히 많았고, 대부분 우리보다 고수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모두 복면을 했고, 분명히 우릴 알고 공격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책임자란 자가 첫 번째 공격에서부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당 놈들은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고 말입니다.”
‘놈들 짓이 분명하다. 이 아이들이 우린 줄 알고 공격을 한 것이다.’
무진은 전체 상황을 파악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무당 제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흑룡방에서 무진과 헤어진 태운 일행은 최대한 천천히 뒤따라왔다. 그 과정에서 일단의 정체불명 세력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장로님과 태운 사형이 아니었으면 우린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다른 아이들은?”
“옆방에 누워 있습니다. 다행이 사부를 제외하곤 중상자는 없습니다.”
진운자가 자신의 몸으로 제자들을 살려냈단 말이다.
“네 놈이 의원이냐? 그런 걸 판단하게.”
“끄응!”
태운은 야단을 맞자 고개를 숙인다.
“너 지금 만나자마자 잔소리한다고 욕했지?”
“아..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태운은 무진이 자신의 마음을 읽었다는 걸 알기에 순순히 인정한다.
“민이는 어딜 갔니?”
“옆방엘 간 모양입니다.”
이들을 데리고 온 것은 태민이다.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아 찾아 나섰는데 조금만 늦었어도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다.
“가자!”
무진은 옆방에 있는 부상자들을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선다.
“잠깐!”
그는 방을 나서려다 말고는 소릴 친다. 갑자기 진운자가 발작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사부!”
“민이를 데려오너라. 어서!”
“예!”
태운이 뛰쳐나가자 무진은 호란을 구석에 앉히더니 진운자가 누워 있는 침대로 올라간다.
“문을 활짝 열고 호흡을 멈춰라.”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무당 제자들에게 주의를 준 다음 치료에 들어간다.
‘웅담의 기운으로도 제압하기 어려운 독이다. 해독약도 없고.... 할 수 없이 그 방법을 써야겠다.’
무진은 진운자의 상태를 확인하곤 표정이 굳어진다. 진운자는 최근 무진이 준 웅담을 먹고 독에 대한 내성이 굉장히 강해졌다. 웬만한 독은 스스로 제압해버린다. 그런데도 독이 심장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강한 독이란 뜻이다. 그래서 호란과 똑 같은 치료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펑! 펑! 펑!
무진은 가장 먼저 심장 주위의 혈도부터 때리기 시작한다. 순간 무당 제자들의 입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뭐..뭐하는 거야?”
“저..저게 뭐야!”
“사숙을 죽이려는 거야?”
곧바로 태민이 달려와서 진정시킨다.
“걱정마라. 저건 무 대협 만이 할 수 있는 치료법이다.”
“니들도 뒤로 물러나 있어라.”
태운이 호란을 업고 나오자 태민이 사제들을 안전한 입구 쪽으로 이동시킨다.
“사형! 저게 대체 무슨 치료법입니까?”
“일단 독이 심장을 침투하는 걸 막기 위해 심장부터 시작해서 팔이나 다른 곳으로 모은 다음 빼낼 거야. 이번에는 발가락인 모양이다.”
태민의 설명처럼 무진은 천천히 심장에서 오른쪽 발끝으로 혈도를 옮기면서 때린다. 그렇게 몇 번을 하더니 이번에는 혈도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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