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3
“자식! 잔머리 굴리지 마라. 눈깔 돌리는 소리 다 들리니까.”
“그것도 알고 있었소?”
무진은 이미 조건을 정해 놓은 상태다. 그걸 소장주가 눈치 챈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정말 대단하오. 지금껏 내 잔머리를 간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정말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소.”
“야, 장난은 그만치고, 빨리 말해!”
“좋소. 내 조건은 내가 선택한 계집과 이 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거요. 그대들이 보는 앞에서.”
“미...미쳤어!”
“변태 같은 새끼.”
“또라이 새끼! 완전히 미친놈이네.”
무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이구동성으로 욕설이 들려온다. 하지만 상대가 무진이다. 그는 이 정도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
“왜 이러시나? 속으론 환호하면서. 아마 속으론 날 응원할 걸?”
“미쳤는지는 몰라도 연구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좋다. 네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대신 네놈이 지면 아까 뱉은 침을 핥아 먹어야 한다.”
“이 사람이, 날 뭐로 보는 거야? 원래 난 그럴 걸 즐겨요.”
“변태 새끼! 그래 놓고 약속을 안 지키면 내 손으로 직접 목을 친다. 알았어?”
“걱정도 팔자야. 너나 약속을 잘 지키세요. 자꾸 바꾸지 말고.”
“으음!”
무진이 첫 번째 약속을 어긴 걸 지적하자 소장주의 얼굴이 붉어진다.
“자, 자! 그만하고, 시작하자.”
소장주는 분위기 반전을 위해 앞으로 나선다. 그는 무진이 내공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바라는 바다. 그럼 하수인 내가 먼저 시작해야겠지?”
무진도 앞으로 나선다. 원래 두 사람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근데 서로가 앞으로 움직이자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네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상태에서 무진이 움직인 것이다.
“빠악!”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가 난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무진이 몸을 날려서 머리로 소장주의 얼굴을 받아버린 것이다. 이런 걸 흔히 선방이라고 한다. 여기에 무공이 어떻고, 내공이 어떻고 하는 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냥 달려가서 부딪혔다.
“끄아악!”
소장주는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무진의 돌 머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곧바로 기절한다. 물론 무림 고수인 그에게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라면 충격으로 순간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무진은 즉시 달려가서 그의 목에 화살촉을 댄다. 동시에 뺨을 때려 깨운다. 쫘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소장주가 정신을 차린다.
“으음! 이게 뭐지? 허억!”
그는 목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으로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다.
“글쎄? 이게 뭘까? 궁금하면 확인해줄 수도 있는데.”
무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소장주는 기겁한다.
“커억! 자..잠깐! 말로 하자.”
“말로? 좋지.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그래도 패배는 인정해야지. 안 그래?”
“그..그건?”
“후후, 자존심이 상해서 인정을 못하시겠다고? 하긴 나처럼 내공도 없는 하수에게 당하면 기분이 나쁠 거야. 그래도 난 꼼수를 쓰거나 약속을 어기진 않았다. 결정해라. 당장!”
무진의 목소리가 산 전체를 뒤흔든다. 근데 곧이어 무진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우욱!”
중원제일의 독과 암기의 가문인 사천당가의 후계자 당문의 작품이다. 그는 유현과 무진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몰래 독이 묻은 암기를 날린 것이다.
암기는 화살촉을 쥐고 있는 무진의 오른손을 정확히 찔렀고, 중독된 무진은 몸이 경직되며 그대로 주저앉는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다. 유현은 주저앉는 무진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날려버린다.
“커어억! .... 콜록! 콜록! 우우욱!”
내력이 실린 발차기라 충격으로 피를 토하며 낭떠러지 바로 앞까지 날아간다.
“비..비겁한 새끼들!”
“흐흐흐! 비겁하다고? 멍청한 놈, 무림이 그런 곳이란 걸 몰랐더냐? 무림에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야.”
“쯧쯧쯧! 이래서 어른들이 천한 놈들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하는 거군. 네놈은 아직도 실력으로 날 이겼다고 생각해?”
조금 전에 무진에게 패한 제갈훈까지 가세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 호..혹시 봐준 거냐?”
무진은 고통을 참으며 그를 노려본다.
“하긴 소장주의 신분을 모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저..정말 날 가지고 논 거야? 대답해. 어서!”
무진은 치를 떨며 소리친다.
“멍청한 놈. 소장주님은 곧 천하제일인이 되실 분이시다. 만약 새로운 고금제일인이 나온다면 그것 또한 소장주님의 몫이다. 그런 분에 네놈에게 당할 것 같냐?”
당문이 유현을 대신해서 설명한다.
“서...설마 태양장의 소장주?”
“흐흐흐흐! 이미 늦었다.”
“마..말도 안 돼!”
“이제야 정신이 드냐? 우린 내기를 했다. 네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두고 말이다. 처음엔 승부가 너무 싱겁게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네놈 덕분에 상당히 재밌었다. 그래서 소장주께서 네게 선물을 하시기로 결정했다.”
“콜록! 콜록! 울컥!”
무진은 기침을 하며 검은 피를 토한다. 독이 심장까지 침투했다는 증거다.
“사..살려주세요. 제가 하늘을 모르고.... 커어억!”
무진은 이제 가만히 있어도 입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조금만 기다려라. 마지막을 멋지게 만들어주마. 후후후!”
소장주는 앞으로 나선다. 자신이 직접 마무리를 할 생각인 모양이다. 이때 제갈미가 나선다.
“소장주님!”
순간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된다.
“저놈은 꼭 제 손으로 죽이고 싶어요.”
“네가?”
“예! 전 저 거지 놈에게 여인으로서 지울 수 없는 모욕을 당했어요. 기회를 주세요.”
“크크크큭! 자기가 선택한 계집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거 괜찮네. 좋다. 원하는 대로 해라. 대신 한 방에 보내야 한다.”
“물론이에요. 저놈은 계곡에 떨어지기 전에 몸이 산산조각 날 거예요.”
“좋아. 좋아. 시작해라!”
“예, 소장주.”
제갈미는 인사를 한 다음 몸을 돌려 무진을 향해 걸어간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오는 것보다 무진의 기어오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는 온몸을 던져서 그녀의 다리를 붙잡는다. 아니, 잡으려는 순간 몸을 빼자 손은 허공을 헤맨다.
“크윽! 아...아가씨! 사...살려주세요. 제바알... 크악!”
“이이익! 이 새끼야, 피가 묻었잖아!”
제갈미는 무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피가 옷에 묻자 발로 그의 가슴을 강타한다. 그는 바닥을 구르며 다시 바위 끝에 이른다.
“크으윽! 콜록! 콜록!”
갈수록 상태가 더 안 좋아지고 있다. 굳이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아도 얼마 못 살 것 같다.
“개자식이, 감히 날 넘봐? 죽어!”
퍼억!
제갈미는 달려가서 발로 무진의 가슴을 찬다. 내력이 실린 발이라 단 한 방에 무진의 몸이 낭떠러지 밑으로 날아간다. 헌데 동시에 제갈미의 몸도 같이 움직인다. 무진이 맞는 순간 그녀의 치마를 잡았기 때문이다.
“제..제갈낭자!”
만약 팽준이 몸을 날려 손을 잡지 않았다면 그녀도 무진과 같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아악!”
그런데 또 다시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미..미야!”
무진이 끝까지 치마를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그녀도 같이 공중에 매달린 상태가 된다.
“우웃!”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팽준마저도 휘청거린다.
“미야, 놈을 떼 내라. 어서!”
“어..언니! 발을 사용해. 발!”
제갈훈과 남궁린이 소리치기 전에 제갈미는 발로 무진의 얼굴과 손을 가격하고 있다.
“놔라! 놔란 말이야. 개자식아!”
“크아아악!”
결국 무진은 제갈미의 무자비한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계곡 아래로 떨어진다. 근데 그걸 지켜보는 일행은 모두 입이 떡 벌어진다.
“미..미야!”
“허억!”
“어..언니!”
제갈미의 아랫도리가 훤하게 다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진이 떨어지면서 그녀의 치마를 끌고 갔다. 근데 분명 치마만 사라졌는데 중요부위의 가리개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처음부터 가리개를 착용하지 않은 것이다.
“린아! 네 옷을 던져!”
“아..알았어. 여기!”
남궁린이 상의를 벗어 던지자 팽지미가 받아서 그녀의 하체를 가린 다음 재빨리 뒤로 끌고 간다. 하지만 사내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제갈미의 그곳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들의 뇌리에는 무진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원시상태의 아랫도리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편 떨어진 무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절벽 아래가 워낙 광활한데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서 찾을 길이 없다. 유현 일행도 무진이 사라진 곳을 확인하곤 발걸음을 옮긴다. 더 이상 소풍놀이 할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이다.
무진 일행은 오늘도 우마차를 타고 길을 가고 있다. 아니다. 우마차에 탄 사람은 무진과 호란뿐이고, 태민 사형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무진은 불과 몇 시진 전에 수백 장의 절벽에서 떨어졌다. 근데 아무렇지 않게 마차를 몰고 있다.
“아이고 팔이야. 계집애가 발에 말발굽을 달았나? 아직도 화끈거리네.”
그는 제갈미의 발에 맞은 팔을 만지며 호들갑을 떤다. 팔은 멀쩡하다. 문제는 중독인데, 그런 기색이 전혀 없다. 제법 많은 피를 토했는데도 괜찮아 보인다. 유현 일행에게 당했다는 건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을 뿐이다.
“조만간 당문 놈들을 손 좀 봐줘야겠다. 아무리 위기상황이라도 그렇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칠보단혼산(七步斷魂散)을 사용해? 쳐 죽일 놈들!”
당문이 암기에 묻힌 독은 칠보단혼산으로 한 번 중독되면 일곱 걸음을 걷기 전에 죽는다는 극독(劇毒)이다. 그런데도 무진은 중독된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때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면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제법이네. 하루 만에 저 정도면 몇 년 내로 명수를 따라잡을 수 있겠다.”
태민 사형제다. 그들은 마차를 기준으로 오 리 정도를 달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낮엔 속력 위주로 달리고 밤엔 자세한 기술을 무진에게 배우고 있다.
“야, 굼벵이도 니들보단 빠르겠다. 그래가지고 어느 천 년에 명수를 따라잡을래?”
무진은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을 채근한다. 명수는 무진이 떠나기 전에 사제의 연을 맺은 아이다.
“명수는 몇 년을 배웠고, 우린 이제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무 대협께 어제 처음 배웠고요.”
“내일 모레 스물이 되는 놈이 겨우 한다는 말이 짬밥 타령이냐?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명수한테 배우시겠다고? 에라이 모지리들아! 그 따위 정신으로 수련하니까 맨날 그 모양이지. 뒤꿈치 들어!”
무진은 옆구리에서 쇠몽둥이를 꺼내서 둘의 발목을 살짝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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