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 2
“그건 신법뿐만 아니라 모든 무공에 적용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니들이 직접 체득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근데 격권과 신법 모두 직접 만드신 게 맞습니까?”
태운이 재차 확인한다.
“안 믿어지냐?”
“그게 아니라....”
“누구나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지. 무공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시 할 테니까 잘 봐라.”
무진은 격권과 신법을 연속으로 펼친다. 물론 두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최대한 천천히 한다.
크르르릉!
그가 막 시범을 보이고 태민 사형제가 수련을 시작하려는 순간 뒤쪽에서 호랑이 소리가 들려온다.
“후후후! 안 그래도 훈련 상대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 니들은 물러나서 내 동작을 잘 봐라. 물론 호랑이의 움직임도 살펴야 한다.”
“예.”
두 사람은 대답과 함께 황급히 물러난다. 호랑이는 암컷으로 보통의 것보다 조금 더 크다. 덩치도 덩치지만 네 발이 상당히 발달한 것이 싸움을 잘하게 생겼다.
“고놈 참 잘 생겼네. 잘 생긴 것만큼 싸움도 잘하는지 보자. 오너라!”
무진은 한 발 다가서며 오라고 손짓한다.
“크아아아앙!”
호랑이도 무진이 도망갈 생각은 않고 약을 올리자 화를 낸다.
“하하하! 그래. 신나게 한 번 놀아보자.”
무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호랑이는 몸을 날린다. 곧바로 공중에서 무진과 호랑이가 부딪힌다. 근데 움직임에 비해서 소리가 크지 않다.
푸쉬쉬쉬쉬....!
“끄아아아앙!”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이어진다. 무진이 옆으로 피한 다음 주먹으로 호랑이의 옆구리를 강타한 것이다.
“끄르르르릉!”
호랑이는 바닥을 한 번 구르더니 다시 일어나서 공격을 시도한다. 첫 번째 공격은 앞 발톱만 사용했다면 이번 것은 입과 앞, 뒤의 발을 모두 사용한다.
“지금부턴 신법이다. 허리 움직임을 잘 봐라.”
무진은 공격은 한 번만 하고, 이후 계속 피해 다닌다. 호랑이가 덩치가 커서 방향 전환과 같은 동작은 다소 느리다. 하지만 고양이과 동물이기 때문에 움직임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민첩하다. 특히 1:1 대결에서는 무림인도 쉽게 피하기가 어렵다.
“사형은 호랑이의 공격을 저렇게 쉽게 피할 수 있소?”
“한, 두 번은 피할 수 있겠지. 하지만 저렇게 수십 번씩 연속되는 공격을 피하긴 어려울 거야. 그리고 저 호랑의 덩치를 봐라.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어서 보통 사람은 발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거야.”
“그래도 이번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태운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돼 있다. 그곳에선 호랑이가 무진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무진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
“무 대협! 위험합니다.”
“사형도 참! 무 대협이 겨우 호랑이에게 당할 양반이야? 걱정도 팔자야.”
“야, 넌 하나만 알고 두 갠 모른다.”
“뭐가요?”
“누가 죽을까봐 그러냐? 저 고집불통의 양반이 그냥 격권으로만 싸우려다 다칠까봐 그렇지.”
“그런가? 하긴 지지는 않겠지만 다치면 곤란한데...”
태민 사형제는 무진이 부상당할까봐 걱정이다. 무진이 다치면 일행의 행보에도 상당한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크르르릉...!”
무진을 노려보던 호랑이는 앞발로 땅바닥을 긁으며 공격 준비를 한다.
“웃기는 놈이네. 야! 넌 동물의 제왕 호랑이야! 그건 멧돼지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무진은 겁을 먹기는커녕 호랑이를 멧돼지에 비유하며 놀려댄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랑이는 잔뜩 웅크렸던 몸을 펴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무진의 열 보 앞에서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이제 무진은 선택을 해야 한다. 맞받아칠 것인지, 아니면 피할 것인지를. 문제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정면 대결을 해야 한다.
호랑이란 놈이 얼마나 빠른지 몸을 날렸는가 싶더니 어느새 무진의 몸까지 와 있다. 뒤이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
퍼억!
찌이익! 퍼퍼펑!
“저..저게 뭐지?”
“사...사형! 어떻게 된 거요?”
“나도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태민 사형제는 놀랐다기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공중으로 몸을 날린 호랑이가 땅에 닿기도 전에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진이 호랑이를 무자비하게 때린 것도 아니다. 그는 그냥 지켜보다 한 대를 때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호랑이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설명이 필요하냐?”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무 대협은 단 한 대 때렸을 뿐입니다. 무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제가 그냥 추리를 해봐도 될까요?”
태운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후후, 그래. 한 번 들어보자.”
“간단합니다. 무 대협이 처음 호랑이를 쳤을 때 내공이 주입되었고, 그게 잠복됐다가 나중에 터진 것입니다.”
“야, 그게 가능하려면 무 대협이 내공이 있어야 되잖아!”
“그것도 추리를 해보면.... 조금 말이 안 되는 얘기긴 하지만 무 대협의 몸속엔 내공이 없지만 무 대협이 다른 사람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다든지, 아니면 외부, 이건 정말 추리에 불과한 얘긴데요. ... 만약 무 대협이 자연의 기운을 이용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건 추리가 아니라 지어낸 얘기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라도 있니?”
태민이 윽박지른 반면 무진은 진지하게 되묻는다.
“근거라기보단 가끔 무 대협이 싸울 때 보면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태운은 자신이 없는지 대충 얼버무린다. 근데 이번에는 무진이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다.
‘운이가 그냥 하는 소린 아닐 것이다. 분명 내 단전엔 기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근데 가끔은 나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다. 그래서 오해를 받곤 했다. 내공을 숨기고 있다고.
만약 운이 말대로 내가 호랑이의 기운을 이용하거나, 주위 사물의 기운을 끌어들여 사용했다면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럴 경우엔 내 의지가 개입돼야 한다. 내가 하지 않았는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순 없다.
사실 호랑이의 기운을 역이용한 건 맞다. 하지만 다른 물체의 기운을 흡수하거나 이용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 ...’
무진의 생각은 꼬리의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다 결국 그는 선 채로 명상에 든다. 태민 사형제는 그런 일이 워낙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기만 한다. 그때 또 다른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크아아아앙!”
이번에는 목소리가 처음 호랑이와는 조금 다르다.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다. 아마 죽은 호랑이의 짝인 모양이다.
“사형! 저놈은 수놈인 모양이오.”
“쯧쯧, 죽이긴 아까운 놈들인데. 야, 그냥 가면 안 되겠니?”
태민은 호랑이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두 사람의 실력이면 호랑이 정도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다.
“사형, 이러면 어떨까?”
“어떻게?”
“우리도 격권으로 저놈을 상대하는 거야.”
태운의 목소리엔 약간의 장난기가 담겨 있다.
“격권으로만?”
“당연하지. 무 대협이 누구야?”
“우리 무공 선생이지.”
“그 무공 선생이 어떤 사람이지?”
“그야 고집불통에 한다면 하는 사람이지.”
“그럼 그에게 배우는 우린 어떻게 해야지?”
“당연히 꼴통이 돼야지.”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진정 무 대협을 선생으로 모신다면 당연히 격권으로만 싸워 이겨야 해.”
“으음! 좋다. 근데 말이야.”
“왜? 아야! 왜 때려!”
“어쭈! 이게 하늘같은 사형한테 반말을 하더니, 이젠 아예 막가시네. 그래 한 번 해보자. 호랑이를 잡기 전에 너부터 조져야겠다.”
“에이, 씨!”
“호오! 이러다 치겠네? 너 사부가 세외로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을 다 잊었냐?”
“무슨 말씀?”
“사형을 사부처럼 대해야 한다! 기억 안 나?”
“흥! 조금만 불리하면 사부 이름을 들먹이고 말이야. 그게 사형이 할 짓이야?”
“그래서 사부 말씀을 거역하겠다고? 분명히 해라. 니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사부를 대신해서 널 자유롭게 해주마.”
“자유롭게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몰라서 묻는 거냐?”
자유롭게란 무당에서 파문을 시킨다는 뜻이다. 무당은 전통적으로 사부가 제자를 파문시킬 권한을 가진다. 사부의 부재 시엔 사형에게 권한이 넘겨진다. 태민으로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협박을 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 난 죽어서도 사부의 제자이고, 사형의 사제란 말이오.”
“지랄하네. 그런 놈이 사형에게 대들고, 말을 까냐?”
“히히히!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뭘 그러오? 내가 사형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소?”
“에라이 변태같은 놈아!”
“변태? 분명히 이번에는 사형이 먼저 시비를 건 거야. 나중에 엉뚱한 소리 하면 안 돼.”
“그래. 내가 먼저 했다 어쩔래? 한 번 붙어볼까?”
“그거 좋지. 선빵은 내가 날린다. 받아라!”
태운은 두 주먹을 쥐고서 몸을 날린다. 근데 말은 사형을 보고 하면서 몸은 호랑이를 향해 날린다.
“끄아아아앙!”
그때까지 호랑이는 공격 기회를 노리다 두 사람이 다투자 잠시 멍하니 지켜보는 중이었다. 근데 갑자기 태운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당황하며 움직이지만, 그의 주먹을 피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제야. 선빵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란다. 늦더라고 정확하게 맞혀야지. 이렇게 말이야.”
“꺄아아앙!”
태민은 오른발로 비틀거리는 호랑이의 턱을 날려버린다. 이번에는 뒤로 날아가 떨어지더니 다섯 바퀴나 구른다.
“크르르르....!”
호랑이도 보통이 아니다. 금방 일어나서 두 사람을 노려본다.
“사형, 우리가 펼친 건 격권이 아닌 것 같소. 무 대협처럼 내공도 사용하지 않고 제대로 한 번 해봅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싸움도 1:1의 원칙에 따라서 내가 먼저 한 다음 니가 이어서 해라. 먼저 간다!”
“사..사형! 흥! 모든 게 자기 마음대로야.”
태운은 태민이 먼저 나가자 입이 툭 튀어나온다. 한편 태민은 처음보단 신중하게 행동한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자세를 좀 더 정확하게 잡은 다음 천천히 호랑이를 향해 움직인다.
“크아아앙!”
이번에는 호랑이가 선방을 날린다. 그대로 달려와서 앞발로 태민을 후려친다.
“타핫! 기다리고 있었다.”
태민은 몸을 웅크리다 펴면서 호랑이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다.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내려오면서 주먹과 발을 연속으로 사용해서 호랑이의 왼쪽 옆구리를 강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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