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을 보면 안다 – 3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떡잎을 보면 안다 – 3
“예, 소장주!”
유현의 명령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은 일행을 포위해서 일제히 공격한다. 오십 명이 넘는 복면인들이 달려들자 임화를 비롯한 일행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물론 일행의 실력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태민 사형제와 소방주는 구파일방의 장로급이고, 임화는 최소한 그 이상의 실력을 가졌다.
“흩어지지 말고 수비 위주로 싸워라. 덤비면 안 된다.”
임화는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공격 대신 수비를 택한다. 구파일방의 장로 4명이 버티기를 한다면 웬만한 문파 전체가 달려들어도 제압하기가 쉽지 않다.
“기다리지 마라! 속전속결이다! 놈들이 진을 형성하기 전에 끝장내야 한다. 뭣들 해? 열 명씩 나눠서 각개격파를 해야지.”
천소의 지시에 따라서 복면인들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우선 임화 일행 한 명 당 열 명씩 나눈 다음, 그걸 5명씩 2조로 만들어 교대로 공격한다. 체력전을 펼치려는 것이다.
“사숙! 이런 식으론 얼마 견디지 못합니다. 불과 열 명도 해치우지 못했는데 우린 벌써 지쳤습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티더니 이각 정도 지나자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현재로선 방법이 없다.”
“할아버지! 제가 뚫고 나가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헤어져서 도주하면 됩니다.”
태민이 질문을 하고 소방주가 해결책을 내놓는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원래 개방도들은 신법이 뛰어나고, 태민 사형제도 무진에게 신법을 배워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임화 역시 제 한 몸은 지킬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상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전력은 태양장이 월등하다. 우선 복면인들은 모두 태양장의 일류고수들이다. 게다가 소장주와 그 부하인 천소의 실력은 구파일방의 장문인과 장로급이다. 그러니 네 사람이 당할 재간이 없다.
임화는 이미 옆구리를 검에 찔려서 피가 흐르고, 태운도 월계마을에서 다친 왼쪽 어깨를 또 다쳤다. 그나마 태민과 소방주가 잘 버티고 있지만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시간 끌지 말고 끝내라.”
“예, 소장주!”
소장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복면인들은 일제히 덤벼든다.
“할 수 없다. 비상수단을 쓸 수밖에. 모두 뒤로 물러나서 입을 막아라!”
“사숙! 독을 사용하실 겁니까? 피.. 피하라!”
태민은 소리치자 일행은 모두 뒤로 몸을 뺀다. 동시에 복면인들이 달려든다. 순간 지하수로 쪽에서 수십 개의 돌멩이들이 날아온다.
“저게 뭐지?”
“피..피하라!”
소장주와 천소가 소리치지만 이미 돌멩이들은 복면인들의 얼굴을 강타하고 있다.
퍼퍼퍼퍼퍽.....!
호박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삼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모두 얼굴을 붙잡고 바닥을 뒹군다. 나머지도 그 광경을 보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못 배운 것들은 꼭 표시가 나요. 대체 어떤 인간이 가르친 거야? 니들 꼰대들은 약자를 떼거리로 공격하라고 가르치디?”
무진이다. 분명히 흙더미 속에 갇혔는데 멀쩡하다. 방주는 그의 등에 업혀 있다.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얼마나 못났으면 얼굴을 가리고 다니겠습니까?”
방주도 멀쩡하다. 오히려 이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 보인다. 아마 치료하는 과정에서 무진이 혈도를 자극하면서 내력이 활성화된 모양이다. 근데 그는 무진을 존대하고 있다. 무림 최대방파인 개방의 방주가 만난 지 반나절도 안 된 이십대 젊은이를 존대한다면 누가 믿을까?
“이..이익! 또 네놈이냐?”
“하하하! 민아, 너도 봤지? 이런 곳에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단 걸. 내 인기가 이 정도야. 이 정도.”
“하하하! 맞습니다. 무 대협의 인기는 제가 잘 알죠. 암, 그럼요.”
태민도 맞장구를 친다.
“근데 우리가 어디서 봤더라? 안다고 하는데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날 듯도 하고. 아닌가? 너 지금 본 적도 없으면서 내 인기에 묻어가려는 거지?”
“저 개자식이 지금 소장주님에게 뭐라고 하는 거야? 감히 너 따위가 태야... 아니지.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처단하라!”
소장주의 심복인 천소는 태양장의 소장주란 말을 하려다 말곤 대신 공격 명령을 내린다. 아직은 유현의 신분을 밝힐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예!”
다치지 않은 복면인들이 다시 움직인다. 그때 유현이 손을 들어 제지한다.
“그만!”
그는 더 싸울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소장주님!”
“아직은 아니다. 철수한다.”
“안 됩니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그냥 물러갈 순 없습니다.”
“너까지 날 무시하느냐?”
“아..아닙니다. 용서하십시오.”
“돌아간다!”
유현은 곧바로 등을 돌린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잠깐!”
태운이다. 그는 부상당한 몸으로 한 발 앞으로 나선다.
“씹새들아! 공격할 땐 언제고, 누구 허락받고 가는 거야?”
그의 분노는 욕으로 표현된다.
“낄낄낄! 욕도 다하고, 우리 운이도 이제 무림인이 다 됐네.”
무진도 태운에게 힘을 실어준다.
“후후후, 네놈은 내가 지금 꼬리를 만다고 생각하니?”
“그럼 아냐?”
“건방진 놈! 확인하고 싶으면 공격을 해보시든가?”
“흐흐흐, 주제에 자존심은 있다 이거지? 좋아. 활!”
무진이 부르자 태운은 재빠르게 활을 건넨다. 지금은 무진이 호란을 업고 있기 때문에 활을 꺼내지 못한다.
“피..피하라!”
무진이 화살을 장착하자 소장주는 깜짝 놀란다. 한꺼번에 다섯 개의 화살을 꽂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보통사람이 하나의 화살을 꽂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그 때문일까? 그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치며 몸을 날린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다섯 개의 화살이 무진의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곧이어 다섯 마디의 비명이 들려온다. 그들로선 다행인 것이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진 않았다.
“왜 그냥 살려 보내십니까?”
태양장의 무사들이 사라지자 태민이 따지듯이 말한다.
“크으윽!”
무진은 대답 대신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태민이 조금만 늦게 잡았어도 머리가 바닥에 부딪쳤을 거다.
“울컥!”
뒤이어 방주도 피를 토한다. 무진은 방주의 상처를 치료하고 무너지는 흙더미를 막느라 기력을 너무 소비했고, 방주는 해독만 했을 뿐 내상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빨리 철수한다.”
임화는 상황 판단을 빨리한다. 이 상태에서 소장주가 돌아온다면 일행은 다시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일행은 임화가 안내한 안가에 도착하자마자 방주의 치료에 전념한다. 우선 방주의 옷을 완전히 벗긴 다음 무진을 제외하곤 모두 경계 태세로 돌입한다. 치료 중에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호란은 구석에 가지런하게 누워서 자고 있다. 다행히 무진은 한 시진 정도 명상을 한 후 기력을 제법 회복했다.
“할아버지. 저건 처음 보는 증상인데, 괜찮을까요?”
“야, 이놈아! 넌 질문밖에 할 줄 모르냐? 나도 궁금해 죽겠다.”
“치! 언제는 자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랑하더니.”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아이고, 쥐방울만한 게 좀 컸다고 할애비를 가지고 노네. 놀아.”
“시끄러! 떠들 거면 나가서 해.”
“누가 떠들었다고....”
임화는 무진의 서슬에 대충 얼버무린다.
“잘 들어라. 지금 방주의 몸속에는 3할 정도의 독기가 남아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손으로 다 빼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떤 독에 당한 겁니까?”
“세상에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독이 훨씬 더 많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가지의 독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방주가 당한 건 내가 알고 있는 거니까 괜찮다.”
“혹시 사천당가와 관련된 건가요?”
소개다. 그는 용독술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사천당가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다.
“제법이구나. 그럼 만천화우에 대해서도 잘 알겠구나.”
“마..만천화우라고요? 그건 당문에서도 실전됐다고 하던데.”
아마 마영생이 만천화우에 당한 모양이다.
“완벽했다면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만천화우(滿天花雨)는 한꺼번에 수천 개의 암기가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절대고수라 해도 일단 만천화우가 터지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나마 사천당가가 만천화우를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해 마영생이 살아남은 것이다.
“암기에 어떤 독이 묻어 있었나?”
“오독탈명단!”
“뭐라고? 그게 아직도 남아 있었어?”
오독탈명단(五毒奪命丹)은 천하의 오대절독을 모아 만든 것으로 일단 중독되면 아무리 내공이 강해도 반나절을 견디지 못한다. 오히려 내공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방주가 일주일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공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지금 혈도 마다 부풀어 오른 건 일단 거기에 독을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한 시진 내에 저걸 다 가라앉히지 못하면 생명을 보장하기 어렵다.”
“사...사부!”
“으음!”
무진의 설명에 일행은 전부 긴장한다. 특히 소방주의 얼굴은 울기 직전이다.
“그럼 빨리 시작하세요.”
태운이다. 하지만 그는 금방 후회한다. 무진의 상태도 방주와 별단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흐흐흐, 운이는 날 빨리 상제께 보내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아닙니다. .... 죄송합니다.”
“니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지금부터 침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끼어들면 안 된다. 설사 우리 두 사람이 죽는 것처럼 보여도 마찬가지다. 명심하고, 꼭 지켜야 한다.”
그 말을 끝으로 치료가 시작된다. 근데 이번에는 치료 방법이 조금 다르다. 혈도를 두드리는 건 맞지만 하나를 더 추가한다.
“저러다 무 대협이 중독되면 어쩌려고?”
태운의 말처럼 무진은 먼저 혈도의 부풀어 오른 부위에 손을 올려놓고 독기를 빨아들인다. 그런 다음 입으로 독기를 뱉어낸다. 그 다음 혈도를 두드린다. 두드리는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된다.
“다시 부풀어 오릅니다.”
“흩어져 있던 독기를 다시 모으는 거군.”
“결국 두들겨서 주위에 있는 독기를 모은 다음 무 대협이 그걸 흡수하는 거군요.”
“기발하다. 기발해.”
“그렇긴 한데, 몸 상태도 좋지 않고, 내공도 전무한 무 대협이 견딜 수 있을까요?”
“그게 문제지. 으음!”
태민 사형제와 얘기를 나누는 임화의 표정이 갈수록 어두워진다.
“효과적인 방법이긴 한데 너무 위험하다.”
‘만약 독기를 다 뽑아내기 전에 저 아이가 탈진이라도 하는 날엔.... 둘 다 위험할 수 있다.’
임화는 혹시라도 두 사람이 잘못될까봐 걱정하느라 얼굴이 많이 축났다. 살도 빠지고, 주름도 더 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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