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4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쓰레기는 어디에나 있다 – 4
“어..어엇!”
“아..아이구!”
두 사람은 그걸 피하려다 자기 발에 걸려서 바닥을 구른다.
“띨띨한 놈들!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상대가 아이구, 수고하십니다. 하고 길을 비껴줄 것 같니?”
“그래서 어쩌라고요?”
태운이 짜증이 났던지 성질을 부린다.
“어쭈? 그래서 한 번 해보겠다는 거야?”
“그..그게 아니라....”
무진이 다시 쇠몽둥이를 붙잡자 태운이 아차! 하고 후회한다.
“사형! 나 먼저 갑니다.”
“야, 같이 가야지. 운아!”
태운을 선두로 사형제는 무진을 피해 다시 앞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자식들이 꼭 매를 들어야 열심히 한단 말씀이야. 그나저나 그댄 언제쯤 깨어날 텐가?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응?”
무진은 뒤에 누워 있는 호란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그녀는 무진에게 매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직도 의식이 없다. 그때 조금 전에 앞으로 달려가던 두 사람이 돌아오는 게 보인다.
“벌써 도착한 모양이군.”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두 사람은 목적지인 청룡장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청룡장은 지옥방을 조종해서 호란 일행을 공격하게 만든 곳이다. 무진은 배후세력을 알아내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 만약 거부하면 지옥방처럼 멸문을 시킬 생각이다.
“다 왔습니다. 고개만 넘으면 보입니다.”
“그렇다고 중간에서 돌아 오냐? 다시 뛰어!”
“앞쪽에 청룡장이 있습니다.”
“그럼 뒤로 가면 되지.”
“예에? 아,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난 천천히 갈 테니까 세 바퀴만 돌고 와.”
“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아니꼽냐? 그럼 니가 대빵 해라!”
“쳇! 그 말을 왜 안 하나 했어. 정말 더러워서 갑니다. 가!”
태운은 투덜거리며 달리기 시작한다.
“우..운아! 같이 가자.”
태민은 무진을 힐끔 쳐다보더니 사제를 뒤따른다.
“저것들이 갈수록 개기네. 오늘 저녁에 골탕을 한 번 먹일까? 후후후!”
무진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우마차를 움직인다.
잠시 후. 태민 사형제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다. 벌써 세 바퀴를 다 돌았다. 멀리 청룡장과 우마차가 보인다.
“헉! 헉! 헉! 사형, 물어봤소?”
“뭘?”
“까먹었소? 아침에 왜 늦었는지 물어본다면서요?”
“참, 그랬지? 깜빡했다.”
“그 나이에 벌써 건망증이 생기면 어떡하오?”
“야, 니가 늦장 부려서 말할 기회를 놓쳤잖아?”
“흥! 자기가 못해놓고 남 탓은?”
“너 요즘 사춘기냐? 그렇게 성질부리다 무 대협에게 당한다. 난 요즘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을 맛이다. 여기서 뺑뺑이까지 돌면 쓰러진다. 쓰러져. 좀 봐다오.”
“내가 그렇게 심하게 했소?”
“요즘 같아선 나라도 가만 안 두겠다.”
“그 정도요?”
“아까 니가 성질부리고 도망쳤을 때 말이야. 내가 늦게 출발하면서 무 대협의 얼굴을 봤거든. 널 보며 웃는데, 와! 소름이 돋더라.”
“정말이오? 난 장난삼아 한 건데.”
“어이구, 이 새끼를 그냥 콱! 야, 너 정말 죽고 싶냐?”
“왜..왜요?”
“너 생각 안 나?”
“뭘 말이오?”
“명수랑 같이 벌 쓴 거 말이야.”
“허억!”
명수란 말에 태운이 화들짝 놀란다. 무진의 제자인 명수와 자존심 싸움을 하다 무진에게 걸려서 벌 받은 얘기다. 당시 태민을 포함해서 세 사람은 무려 다섯 시진이나 벌을 받았다. 그 정도로 끝났으면 이렇게 치를 떨지 않을 것이다.
무진은 몸살이 나서 드러누운 세 사람과 치료를 한답시고 다시 다섯 시진 동안 비무를 했다. 당연히 세 사람은 일방적으로 구타당했고, 쓰러져 일주일이나 침대 신세를 졌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옆구리가 쑤신다. 제발 부탁인데, 난 빼줘라. 개기고 싶으면 혼자 해라. 알았지?”
“그래서 지금 사형 혼자 발을 빼겠다는 거요?”
“다 왔다. 장난은 그만하고. 대체 무 대협은 아침에 어딜 갔다 왔을까?”
갑자기 태민이 화제를 바꾼다.
“매일 하던 거처럼 명상을 하고 왔겠지.”
“내가 소피를 보러 갔다가 봤는데, 온 몸이 먼지투성이더라.”
“그럼 수련을 했던가.”
“정말 다 왔다. 쉿!”
얘기를 하다가 우마차와 가까워지자 두 사람은 입을 다문다. 아니, 또 다시 화제를 바꾼다.
“지옥방의 배는 되지 않을까요?”
“배가 뭐냐? 적어도 네 배는 되겠다.”
“사대세가를 가보진 않았지만 저보다 크진 않을 거요.”
“저놈들은 장원이 크면 세력이 커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병신 새끼들!”
멀리 청룡장이 보인다. 근데 보통의 장원과는 규모와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우선 규모는 장원이라기보다 성에 가깝고, 담장은 요새처럼 높다. 마치 무림맹을 연상케 한다.
“사형, 지금쯤 연락이 갔겠죠?”
“당연하지.”
두 사람이 말하는 연락이란 지옥방이 완전히 간판을 내린 걸 말한다.
“그럼 기다릴까요? 아님 도망쳤을까요?”
“기다리는 건 뭐고, 도망치는 건 뭐냐?”
“기다린다는 건 누님을 차지해서 고금제일인의 유물을 차지할 자신이 있다는 뜻일 테고, 도망쳤다는 건 지옥방이 무너졌다는 소릴 듣곤 겁먹었다는 거죠. 사형 생각은 어때요? 기다릴까요?”
“글쎄? 청룡장 정도면 쉽게 꼬리를 내리진 않을 거야. 저길 봐. 기다리고 있잖아?”
태민의 말대로 멀리 청룡장의 정문에는 여러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서 있다.
“어! 어디로 가십니까?”
무진이 갑자기 정문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
“내 몸뚱이가 쇳덩이냐?”
“예에?”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나도 이젠 좀 그만 맞고 살자.”
“지금까지 주로 때리지 않았습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무진이 안내한 곳은 동쪽으로 삼십여 장 떨어진 담벼락 근처의 숲속이다.
“아직도 있네.”
거기서 무진은 수풀을 치우더니 바닥에서 문을 찾아낸다. 오래됐는지 쇠로된 문은 녹슬어 있다. 청룡장과 연결된 비밀통로이다.
“우마차는 숲속에 숨겨두고, 란이는 민이가 업어라. 통로가 낮다. 머리 조심하고.”
“여긴 어떻게 아십니까?”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다쳐도 좋으니까 말해보세요. 아얏!”
이번에도 무진의 주먹이 태운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치! 꼭 불리하면 때리더라.”
“운아! 명수를 생각해라.”
“흡! 죄..죄송해요.”
명수 얘기가 나오자 태운의 태도가 금방 달라진다.
“너처럼 건방 떨다가 소리 소문 없이 골로 간 놈이 한, 둘이 아니다. 명대로 살고 싶으면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마라. 가자!”
“예!”
태운은 재빨리 허리 숙여 인사한 다음 무진과 사형을 따라간다.
일 각 뒤.
이곳은 청룡장의 가장 은밀한 곳 중의 하나이다.
끼이익!
화강석으로 된 바닥재가 흔들리더니 한꺼번에 두 개가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흙먼지가 꽤 많이 쌓여있다.
“켁! 켁! 콜록! 콜록!”
가장 먼저 태운이 올라오며 기침을 한다. 그들이 올라온 곳은 제법 긴 복도의 끝부분이다.
“젊은 놈이 고작 흙먼지를 좀 마셨다고, 켁! 켁! 거리고 호들갑이냐?”
“흥!”
“운아!”
태운이 입을 씰룩거리자 태민이 경고한다.
“사형! 저녁엔 고기를 좀 먹읍시다.”
“갑자기 고긴 왜?”
“무 대협께서 먼지를 많이 마셨으니 돼지고길 드셔야죠.”
“아, 그렇지. 그렇게 하자.”
태민은 뒤늦게 눈치를 채고 입을 맞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진의 주먹이다.
“아얏! 왜, 왜요?”
태민은 머리를 만지며 볼멘소릴 한다.
“너 나랑 같이 다닌 게 언젠데 아직도 모르냐?”
“뭘요? 아! 술은 기본이죠. 오늘은 운이가 한 턱 톡톡히 쏠 겁니다.”
“내가 요? 아, 물론입니다. 돈 관리는 제 몫이니까요. 근데 이 소리 들리세요?”
태운은 얘기 도중에 시선을 복도 끝부분으로 옮긴다. 희미하게나마 그곳에서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재미난 계집이군.”
“욕탕인가 봅니다.”
태민의 말을 끝으로 일행은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전복을 먹으면 이틀에 한 번이고, 해삼을 먹으면 하루에 한 번이란다. 산삼을 먹으면 하루에 두 번이고, 천년하수오는 하루에 세 번이래. 그럼 만년화리는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
분명 젊은 여자의 목소린데 노랫말이 상당히 음탕하다. 그렇다고 이곳이 홍등가도 아니고, 청룡장의 여인들이 사는 곳이다. 일행은 창문으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낸 다음 안을 살핀다.
‘허엇! 저..저건?’
‘어엇!’
‘이야! 정말 죽인다. 저 정도면 중급은 되겠다.’
태민 사형제는 보는 즉시 황급히 뒤로 물러난다. 무당 도사가 생전 여자의 나신을 볼 일이 없으니 놀라는 건 당연하다. 근데 무진이 계속 보고 있자 그들도 다시 다가간다.
진미희.
31세. 청룡장주 진태수의 여동생이다. 과년한 나이임에도 결혼을 하지 않은 노처녀다. 여인이면서도 무공광으로 알려져 있다. 소문에 의하면 청룡장에선 진태수 다음의 고수라고 한다. 그녀는 지금 나신으로 목욕을 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냐? 계집이라면 저 정도는 돼야지.’
‘좋긴 한데, 이렇게 훔쳐봐도 되나요?’
‘이놈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소리하면 뭐하냐? 침이나 닦아라.’
‘흐흐흐! 처음 보는 거라서... 허억! 저..저건 뭐지?’
태운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놀란다. 목욕을 마친 미희가 침대로 올라가더니 이상한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몸을 구석구석 만지더니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대체 무슨 짓이야? 민망하게.’
‘에이, 눈만 버렸네.’
태민과 태운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그걸 보고 가만있을 무진이 아니다.
‘웃기고 있네. 속으론 좋아하면서. 싫다는 놈들이 거시기는 왜 커지냐?’
“누..누가 커졌다고 그래요?”
“누구냐!”
결국 들키고 만다. 지금까지 일행은 모두 전음으로만 대화했다. 헌데 태운이 무진의 놀리자 당황해서 그대로 말을 해버린 것이다.
콰앙! 하는 소리에 이어서 욕탕에서 한 사람이 문을 부수고 달려 나온다. 진미희다. 그녀는 발가벗은 상태로 일행의 앞에 서 있다.
“쯧쯧, 말세야. 말세. 계집애가 어떻게 부끄러운 줄을 모르냐? 볼 것도 없으면서 말이야.”
“뭐..뭐라고? 도둑놈 주제에 누구더러... 야압!”
미희는 무진이 놀리자 참지 못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검을 휘두른다. 근데 무진을 노리며 파고 들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꿔 태운을 향해 몸을 날린다.
“허엇!”
태운은 나체의 여인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피하지도 못한 채 인질이 된다.
“우..운아!”
태민은 기겁하며 소리치지만, 검이 태운의 목을 겨누고 있어서 접근을 못한다.
“씹새들아! 한 발만 움직였단 봐라. 흐흐흐! 그럼 이놈 대가리는 어떻게 될까?”
미희의 손에 힘들이 들어가면서 검이 태운의 목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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