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현실과 마주하다 – 12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뜨겁게 현실과 마주하다 – 12
장원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다만 무진 일행의 우마차가 대전을 향해 움직이자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우마차가 대전 앞에 도착하자 덜컹! 하고 문이 열리며 대장주인 태허도장이 달려 나온다.
“무 대협!”
그는 맨발로 계단을 뛰어내려와 무진 일행을 맞이한다.
“어서 오시게. 다들 기다리고 있다네.”
“대장주!”
지금까지 무진은 금문을 영감탱이라고 불렀다. 헌데 오늘은 대장주라 부른다. 그게 좋았던지 금문은 연신 싱글벙글 이다.
“말씀하시게.”
“어째 내 말이 말 같이 않은 모양이오.”
무진의 한 마디에 금방 분위기가 얼어붙는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오?”
“분명 각 조직의 대표자는 두 명으로 한다고 말했을 텐데. 내 말이 우스운 모양이외다.”
무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대장주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저께 무진은 태허도장에게 사람들이 많으면 논의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각 조직별로 대표자 숫자를 두 명으로 제한하라고 했다.
지금 대전 안에는 적어도 조직 별 세 명의 이상의 대표자들이 앉아 있다. 동창의 경우는 무려 다섯 명이 들어가 있다.
“그..그게 아니라....”
“아니면 대장주의 말을 말 같지 듣지 않던가. 어느 것이든 난 그런 건 용납 못하오.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대표자를 두 명으로 정리하지 않는 조직은 이번 논의에서 제외된다는 걸 통보하시오.”
“알겠네.”
대답과 함께 대장주는 먼저 대전으로 올라간다.
“올라가자.”
“예.”
뒤이어 무진 일행이 올라간다. 불과 열 개도 되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 사이 대전 안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진이 대전 안으로 첫 발을 들이자 뒷문이 닫힌다.
대전에는 모두 다섯 개의 세력, 즉 동창, 적마교, 세외오천, 무림맹, 태산장의 대표자 열 명이 일어서서 무진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말대로 한 개 세력 당 두 명의 대표자만 남았다.
“난 논의를 길게 하는 걸 싫어하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결과만 확인하겠소.”
“무 대협! 그래도 이건 예의가 아닐세.”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전 이게 좋습니다.”
대장주의 말에 무진은 손을 들어 제지한다. 순간 무림맹의 부맹주가 말을 하려다 포기한다.
“그럼 황실부터 하시죠. 가, 부만 대답하시면 됩니다.”
“저흰 찬성입니다.”
“누구의 뜻입니까?”
“황제폐하의 윤허가 있었습니다.”
“좋소. 그럼 적마교는 어떻습니까?” “저희도 찬성이고, 교주님의 뜻입니다.”
“고맙소. 그럼 무림맹의 순서입니다.”
“저흰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제가 알기론 무림맹은 장로회의에서 중요정책들을 결정한다던데, 절차를 밟으셨나요?”
“원래 중요한 안건은 과반이상의 장로들의 동의를 받아합니다. 헌데 시간이 부족해서 조금 전에야 전서구로 과반의 장로들의 동의를 얻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후후!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그럼 태산장은 이미 동의를 했고, 세외오천만 남았군요. 제가 삼 일이란 시한을 결정하고 나서 가장 마음에 걸린 게 바로 세외오천입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지만, 세외오천의 경우는 삼 일만에 통일된 의견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파견되면서 전권을 위임받았고, 특히 가까운 곳에 오천 중 한 곳의 대표자가 계셔서 그 분의 동의를 받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수고하셨소. 그래, 어떤 결정을 내렸소.”
“저흰 반대입니다.”
세외오천의 대표자가 결정 사항을 통보하자 대전 안은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중원의 중요 자산을 오랑캐들에게 나눠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처음부터 저놈들을 참여시키는 게 아니었소.”
“놈들을 빼고 우리끼리 합시다.”
태산장을 제외한 모든 세력들이 세외오천의 결정을 환영한다.
“조용히 하시오. 아직 얘기가 끝나지 않았소이다.”
대장주가 나서고서야 분위기가 진정된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소?”
“신뢰의 문제입니다. 방금 들은 대로 과연 중원세력들이 우리와의 약속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우릴 제외한 나머지 세력들이 결탁해서 속인다면 막을 길이 없소이다. 그게 우리가 반대한 이유요.”
“그 말은 신뢰할 수만 있다면 찬성할 수도 있다는 뜻이오.”
“그렇소이다. 무 대협께서 공정한 방안만 마련해 주신다면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결정 사항입니다.”
“후후후! 총사께선 절 시험에 들게 하는구려.”
“예에? 제가 세외오천의 총사란 걸 어떻게 아셨소?”
“후후후, 제 나름의 영업비밀이랍니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계시오?”
“가까운 곳에 와 있는 대표자가 동영에서 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소.”
“허엇!”
총사에 관한 얘기를 했을 때도 대표자들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그들도 세외오천의 대표자가 총사란 걸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참석자 중에 추측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추측도 못했을 정도다. 근데 무진은 정확하게 맞췄다.
‘대체 저놈이 누구란 말인가? 지난 삼 일 동안 조사를 했지만 알아낸 게 아무 것도 없다.’
‘알 수 없는 놈이다. 중원제일의 정보통이라는 동창도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조심해야 할 놈이다. 아니,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적마교의 대표자는 공공연하게 적의를 드러낸다.
“하하하하! 대체 주재자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풀립니다. 하하하!”
세외오천의 총사는 연신 웃어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좋소. 내가 이번 논의 과정에서 얻고자 하는 건 평화와 협력입니다. 하나는 중원 내부의 평화이고, 다른 하나는 세외세력과 중원의 협력을 통한 평화정착입니다. 그런데 세외오천이 빠진다는 건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그건 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서 저들이 빠지겠다면 저 역시 이번 논의에서 빠지겠습니다.”
무진은 폭탄선언을 한다.
“무 대협! 그럼 철광산을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
“철광산은 영원히 땅속에 존재할 겁니다.”
“뭐..뭐라고요?”
“철광산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말이오?”
“그건 안 됩니다. 절대로!”
현철과 철광석으로 재도약을 꿈꾸는 무림맹이 가장 크게 반대한다.
“으음!...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무진이 고민 끝에 새로운 안을 내 놓으려 한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의 말에 적마교의 대표자가 귀를 쫑긋 세우며 질문한다.
“태산장에 오늘 참석한 제 세력들의 대표자 친필 서명이 들어간 비석을 세우는 거요. 가칭 ‘중원제일철광산 개발을 위한 중원과 세외오천의 대화합비’란 이름으로 말이오.”
“으음!”
무진이 구체적인 제안을 하자 모두 침묵에 빠져든다. 고민이 된다는 뜻이다. 심지어 대장주 태허도장조차도 생각에 잠긴다.
“일단 총사의 답변부터 들어봅시다. 아무리 다른 쪽이 찬성해도 세외오천이 반대하면 소용없을 테니까요.”
“저흰 찬성입니다. 무 대협의 제안에 만족합니다.”
“고맙소이다. 그럼 이 안에 반대하는 분이 계십니까?”
“.....”
무진의 질문에 아무도 답을 못한다. 찬성한다는 게 아니라 결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때 무진이 빠른 결정을 위해 도움을 준다.
“난 평소 장고 뒤에 악수 둔다는 격언을 믿는 편이오. 분명히 밝히지만 이 자리 이후엔 논의할 자리는 없을 거요. 내가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생기는 것도 없이 바쁘다오. 벌써 내가 생각한 시간이 지났소. 더 이상 대답이 없으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겠소이다. 대장주!”
“예, 무대협.”
무진의 부름에 태허도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나선다.
“지금 즉시 철광산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폐기하시오. 혹시 철광산과 관련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습니까?”
“제 목을 걸고 맹세하건데 장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자료만 폐기되면 어느 누구도 철광산의 존재를 알 수 없습니다.”
“저들이 가족들을 볼모로 대장주를 괴롭히면 어떡하오?”
“제 나이 이미 팔순이 넘었습니다. 삶에 무슨 미련이 있겠소이까?”
“으음!”
태허도장이 말을 마치자 대표자들 표정이 더욱 굳어진다.
“휴우! 다행입니다. 전 철광산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 목을 내놓을 필요는 없겠군요. 그대로 실행하시오.”
“알겠습니다. 장주!”
태허가 태산장주를 부른다. 근데 무진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표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자..잠깐만요!”
“무..무 대협!”
“저흰 찬성합니다.”
“우리 무림맹은 처음부터 모든 권한을 무 대협에게 위임했소이다. 찬성합니다.”
무림맹의 부맹주 남궁수가 동의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다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반대하실 분은 안 계신가요?”
“저흰 황제폐하의 이름으로 찬성합니다.”
동창의 책임자는 황제를 거론하며 자신들의 의지를 표현한다.
“그럼 일단 철광산의 활용과 관련된 사안은 전원 동의로 합의를 봤습니다. 이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할 차례입니다. 이후 모든 논의는 태산장의 대장주께서 주도하실 겁니다. 당연히 철광산과 관련된 모든 권한도 대장주께서 행사할 것입니다.”
“이..이것 보시오. 무 대협. 그게 무슨 말씀이오? 철광산의 모든 권한은 그대에게 넘기지 않았소?”
“야,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영감탱이! 도대체 날 얼마나 더 부려먹으려는 거야?”
“예에?”
“그래도 계속 일을 시키면 조금 전에 한 합의 사항을 모두 뒤집어버릴 테니까 마음대로 해.”
“그래도 이렇게 되면 제가 무 대협과의 약속을 어긴 게 됩니다. 그건 제 명예와 관련된....”
‘영감탱이, 난 해야 할 일 있어. 도와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이젠 골치 아픈 일도 없을 테니까 영감 능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 딸도 찾고, 진짜 가족을 얻었으니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살아야지. 그래야 나중에 나도 빈대라도 붙지. 안 그래?’
‘하하하하! 내가졌네. 졌어. 그래도 이번에는 자넬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또 실패했어. 고맙네. 자네의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네.’
태허도장은 무진과의 전음대화를 통해서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설득을 포기한다. 대신 정중하게 인사한다.
“태산장을 대표해서 그대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네.”
“무 대협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장주 역시 정중하게 예의를 표한다.
“됐고. 그럼 중원무림과 세외오천 모두 사이좋게 지내기 바라오.”
그 말을 남기고 무진은 몸을 돌린다. 무진 일행이 모두 나간 뒤에도 대표자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동안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다.
나이도 어리고, 출신내력도 정확히 모르는 무림의 애송이에게 중원과 세외의 핵심 인물들이 꼼짝도 못하고 당했으니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당연하다. 태허도장과 장주만이 따라 나와서 무진 일행을 배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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