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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펜하임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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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Alpenhime
작품등록일 :
2006.03.29 13:22
최근연재일 :
2006.03.29 13:22
연재수 :
215 회
조회수 :
1,056,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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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
글자수 :
994,866

작성
05.05.30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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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9쪽

34. 탈출(3)

DUMMY

“꺄아아악!”

한 여인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 어둡고 밀폐된 공간 안에선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어줄 사람은 눈앞의 고문관뿐이었다.

“자, 어서 밝혀라. 네놈들, 루세리안에서 온 첩자들이지?”

피투성이의 몸에, 잔뜩 헝클어진 엘프 여성의 금발을 한손으로 틀어쥔 크라토르가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하지만 문제의 엘프는 비명을 지를 때와는 달리 입을 앙 다문 채 도무지 입을 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얼굴이 피로 얼룩져 잘 분간이 안 갔지만, 특유의 영롱한 눈빛을 띠고 있는 그녀는 바로 세리아였다.

쇠사슬에 손과 발이 묶여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참혹했다. 지금까지의 고문으로 인해 옷은 너덜너덜하게 찢어져 피로 얼룩진 반나신이 되었고, 티 없는 얼굴에는 크고 작은 생체기가 나 있었다.

“여태까지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첩자활동을 했었지? 그리고 빼내온 기밀은 얼마나 되는 거지? 어서 말해!”

“…….”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는 건지 세리아가 뭐라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이내 크라토르의 입에 미소가 만연했다.

“퉷!”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엘프의 침뿐이었다.

“좋아. 네년이 그렇게 나오겠단 말이지.”

크라토르는 뒤로 슬슬 물러났다. 그리고선 벽에 매여 있던 채찍으로 또다시 세리아를 고문했다.

차아악!

“아악!”

건장한 인간남자가 휘두른 굵고 긴 채찍이 가녀린 엘프의 육체를 짓이겼다. 세리아는 점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진작 말해도 고문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고, 만약 실토했다간 다시는 일족을 볼 낯이 없었다. 동료들이 단체로 잡혀온 것도 자신의 책임이 아니던가.

“하아. 계속 이렇게 버텨보겠다 이거지? 다른 방의 엘프들은 벌써 다 털어냈다던데 말이야.”

크라토르의 말은 일종의 유도심문이었다. 다른 엘프들이 세리아처럼 고문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자백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당연하지만, 세리아는 죄책감 때문에라도 그런 어설픈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쳇, 그나저나 첩자의 두목 놈을 못 잡게 되다니…….”

유도심문도 통하지 않자 지친 크라토르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보통 인간들은 엘프가 약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몸이 빠르고 궁술이 뛰어날지는 몰라도, 힘은 보잘것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리오스라는 엘프는 그 편견을 철저히 깨부쉈다. 그는 시종일관 상급의 소드 마스터인 자신을 압도했다. 만약 동료들이 제압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그 화풀이를 이년에게 퍼부어야겠군.”

순간 세리아를 바라보고 있던 크라토르의 한 가지 감정이 일었다. 그것은 성이라는 이름의 욕망이었다. 그도 한명의 인간이었기에, 생리적인 욕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치이이익.

크라토르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세리아의 상의를 목 부근에서부터 아래로 찢어나가기 시작했다.

“으으으.”

세리아가 수치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육체의 고통은 어떻게든 참을 수 있었지만 민감한 부위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이런 종류의 고문은 도저히 참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네년이 이러고도 계속 버틸지 궁금하군.”

스윽

크라토르는 이미 금단의 영역을 넘겼다. 정의를 상징하는 성조의 배지를 단 기사의 손은 어느새 성스러운 엘프의 가슴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흐윽.”

세리아의 두 눈가에 투명한 물이 핑 돌았다. 반항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조차도 가지지 못한 채,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당하는 성적인 고문. 그것은 공포심과 수치심이 한데 어우러져 그녀의 정신을 옥죄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세리아는 자신을 이 지옥의 수렁에서 구해줄 한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구해줘, 스탐. 도저히 못 참겠어.’

엘프가 뱀파이어에게 도움을 청하다니,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인물은 스탐뿐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염원은 현실로 다가왔다.

“누구냐!?”

문 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크라토르가 소리쳤다. 고문관은 아니었다. 그들이라면 반드시 노크 정도는 할 테니까.

화아악.

과연 크라토르의 예상대로였다. 문이 열리자마자 적대적인 기운이 날아들었다. 그는 검집에서 장검을 꺼내들며 소리를 지르려 했다. 상대가 카리오스라면 이길 순 없지만 충분히 시간을 벌수는 있었다. 그 동안이라면 충분히 근처의 소드 마스터들을 부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상대는 카리오스가 아니었다.

퍽!

“커헉!”

눈 깜빡할 사이에 들어온 섬광 같은 일격에 순식간에 크라토르가 꼬꾸라졌다. 적의 누군지 제대로 파악도 못한 결과였다.

“네, 네놈은…읍!”

상대는 자신의 의도를 미리 알아챈 건지, 입을 틀어막았다.

크라토르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상대는 지금 고문하는 엘프와 함께 자신이 미행하던 인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무위였다. 방심했다곤 하지만, 유에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자신을 소리 지를 새도 없이 제압할만한 인물은 검성밖에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사내의 경고에 크라토르는 서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부로 움직였다간 목이 날아갈 판국이었으니까.

팅팅팅!

크라토르의 목에 수도를 대고 있던 스탐은 카스턴을 이용해 세리아를 구속하고 있던 족쇄를 풀었다. 그러자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던 그녀의 신형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스탐은 크라토르를 신경도 쓰지 않고, 세리아를 안아들었다.

“괜찮아?”

“이게 괜찮아 보이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리아은 울고 있었다. 스탐은 조용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일단은 여기서 나가자.”

망토를 벗어 세리아에게 덮어준 스탐은 고문실의 문밖을 나섰다. 그러면서도 크라토르에게 살기를 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허튼 짓을 안 하리라고 믿는다.”

“끄으으.”

스탐은 안심했다. 크라토르는 자신에게 정신마저도 제압당한 상태였다. 하기야 하이 배틀러가 뿜어내는 살기는 제아무리 상급의 소드 마스터라도 쉽게 받아낼 수 없었다.

“글렀군.”

애초에 미행했던 대상 둘이 나가는 것을 본 크라토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검성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자신이 이름도 모르는 사내에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웠다.

“명망 높은 기사인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크라토르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한참 혈기왕성한 나이의 그였기에, 지금의 사건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는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이 치욕을 또다시 맛보게 되었다.

“아.”

크라토르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목 언저리에 한 자루의 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는 시선을 위로 옮겼다. 그곳에는 한 엘프가 냉소를 띄운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휴, 일단 구해내는 데는 성공했군.”

안도의 한숨을 쉰 스탐이 자신에게 안겨 있는 세리아를 바라보았다. 지독한 고문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미안하지만 네 동료들을 구할 여유는 없겠어.”

스탐은 세리아를 안고 막 고문실 밖을 나서던 때를 떠올렸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엘프들의 비명소리에 세리아가 그들을 구하자고 했다.

“안돼. 지금은 널 구하는 것도 힘에 부쳐.”

“흑흑.”

자신의 반대에 세리아는 말없이 흐느낄 뿐이었다. 참 안된 일이었지만 스탐으로선 어쩔 수 없었다. 히든 브레이커의 능력으로 누구에게 들키지 않고 들어왔긴 하지만, 황궁에는 검성이 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세리아라는 짐을 안겨든 상태에서 그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다다다다

세리아를 안은 상태였지만, 히든 브레이커의 빠른 경신술은 스탐을 어느새 황궁 밖까지 옮긴 상태였다.

깊은 새벽이었기 때문에, 소수의 보초병을 제외하면 모두 잠들어 있었다. 성문은 관리하는 병사들을 제압하고 미리 열어둔 상태였던지라 스탐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케이튼을 볼 수 있었다.

“휴우, 다행이군.”

스탐은 이마를 쓸어내렸다. 이제 저곳만 지나면 무난히 세리아를 구출할 수 있었다.

“과연 그럴까?”

“!”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스탐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자신이 우려하고 있던 최악의 상대. 검성 게르델피안 공작이 애검 스톰블링거를 집어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양녀 엘로나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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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36. 암흑계의 스탐(4) +13 05.06.14 4,367 5 8쪽
121 36. 암흑계의 스탐(3) +13 05.06.12 4,345 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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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36. 암흑계의 스탐(1) +12 05.06.10 4,696 5 8쪽
118 35. 지온의 찬탈전(5) +13 05.06.08 4,609 5 12쪽
117 35. 지온의 찬탈전(4) +11 05.06.07 4,311 6 9쪽
116 35. 지온의 찬탈전(3) +13 05.06.06 4,402 5 8쪽
115 35. 지온의 찬탈전(2) +9 05.06.05 4,396 5 8쪽
114 35. 지온의 찬탈전(1) +11 05.06.03 4,506 5 8쪽
113 34. 탈출(5) +9 05.06.02 4,144 6 8쪽
112 34. 탈출(4) +7 05.05.31 3,981 5 8쪽
» 34. 탈출(3) +6 05.05.30 3,986 5 9쪽
110 34. 탈출(2) +8 05.05.29 3,909 4 8쪽
109 34. 탈출 +9 05.05.28 4,064 5 8쪽
108 33. 미행자를 동반한 데이트(5) +8 05.05.27 4,052 5 8쪽
107 33. 미행자를 동반한 데이트(4) +8 05.05.25 3,958 6 8쪽
106 33. 미행자를 동반한 데이트(3) +7 05.05.24 3,947 5 10쪽
105 33. 미행자를 동반한 데이트(2) +9 05.05.23 3,932 5 8쪽
104 33. 미행자를 동반한 데이트(1) +9 05.05.22 4,198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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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32. 재회(3) +9 05.05.19 4,155 5 10쪽
101 32. 재회(2) +9 05.05.18 4,251 5 8쪽
100 32. 재회(1) +10 05.05.17 4,418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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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31. 밝혀지는 계획의 전모(2) +11 05.05.15 4,130 5 9쪽
97 31. 밝혀지는 계획의 전모 +10 05.05.14 4,299 6 10쪽
96 30. 언데드들과의 사투(4) +11 05.05.13 4,20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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