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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836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1.02.03 20:00
조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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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57화

DUMMY

비싸 보이는 소파, 비싸 보이는 책상, 하물며 책상 위에 놓여있는 잉크병 조차도 비싸 보이는 평상시의 경제 관념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광경에 완전히 그로기 상태가 된 안젤라는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제가 따라갈 수 있어 보이는 대화가 아닌 것 같지만요.'


대체 어디서 주워 들은 것인지 지금 대륙의 정세부터 현재 카이너스 왕국의 돈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까지 안젤라로서는 한 마디도 대꾸하기 힘든 주제들이 줄줄이 튀어나왔기에 안젤라로서는 그저 마네킹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게 고작이었다.


"흠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딸을 보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바로 그렇습니다. 오늘 학교에 출석하지 않은지라 걱정이 되어서 말이죠."

"저도 걱정입니다. 아무리 몸상태가 좋지 않아도 학교만큼은 출석하려던 아이였는데, 오늘은 어째선지 학교에 가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몸이라도 안 좋은 걸까요?"


사르미드 남작의 반응에 루시퍼가 눈을 빛냈다.


"아마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여기 안젤라양이 신성력을 좀 다룰 줄 아니 간단한 치유 기적이라도 좀 발휘해 준다면 상태가 조금은 호전되겠지요."

"오호라. 하긴, 엘 레지덴티에 학교는 옛부터 고위 사제를 많이 배출하기로 정평이 난 학교였지요. 이거 멀지 않은 미래에 저희 가문이 신세를 질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르미드 남작은 그렇게 말하며 평가하는 듯한 시선으로 가만히 앉아있는 안젤라를 훑어보았다. 안젤라라는 이름과, 엘레나의 친구라는 사실은 전해들었지만 지금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에 대해 파악할 수가 없었는데 저 나이에 치유 기적을 사용할 줄 안다면 친분을 쌓아둬서 나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음, 좋습니다. 그럼 엘레나를 응접실에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사르미드 남작은 그렇게 말하며 응접실 입구 쪽에 서 있던 데이비드에게 손짓을 했다.


"아닙니다. 저희가 엘레나 양에게 찾아가도록 하죠."


데이비드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루시퍼가 말을 꺼냈고, 사르미드 남작은 의아하다는 듯한 태도로 질문했다.


"왜 그러시나요. 혹시 이 자리가 불편하기라도?"

"물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아프다는 엘레나를 굳이 불러내기엔 미안하기도 하고, 또 윗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선 나누기 힘든 대화도 있으니까 말이죠."

"어허. 과연 그렇군요. 이거 괜히 주책을 떤 게 아닌가 싶습니다. 허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하. 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인 것이죠."

"허허허허."

"하하하하."


서로 웃음을 주고받는데도 훈훈하다기보다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 광경에 안젤라가 침을 꼴깍 삼켰고, 그 소리에 반응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르미드 남작이 다시 데이비드에게 지시를 내렸다.


"데이비드. 이 분들을 엘레나의 방으로 안내해 주세요. 정중하게."

"네. 남작님."


데이비드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먼저 문을 열고 나가 문을 잡고 서 있었고, 루시퍼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르미드 남작에게 고개를 숙였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사르미드 남작님. 기회가 되어 다시 만나뵙게 된다면 기쁘겠군요."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 루시퍼군. 그럼 다음 기회에 또. 아. 안젤라양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살펴가시길."

"네, 넵. 아, 안녕히 계세요."


안젤라도 허둥지둥하며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고, 사르미드 남작은 인자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은채로 그들을 배웅했고, 둘은 데이비드가 열어놓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럼 아가씨의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아, 아가씨!"


엘레나가 귀족가의 자제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하는 행동이나 안젤라에게 친근하게 대해주는 모습 때문에 자주 까먹곤 했기에 누가 봐도 훌륭한 집사인 데이비드의 입에서 아가씨라는 소리가 나오니 새삼 엘레나가 남작가의 자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안젤라였다.


"가만히 좀 있어. 촌티내지 말고."

"윽. 너무해요..."


안젤라는 툴툴거리면서도 얌전히 루시퍼의 뒤를 따라 걸었고, 이게 집 한 채의 크기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거리를 걷고 나서야 안젤라와 루시퍼는 엘레나의 방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집...엄청 넓네요."

"확실히 그렇군."


루시퍼조차 인정하는 사르미드 저택의 으리으리함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데이비드가 엷게 미소를 띠고는 엘레나의 방문을 노크했다.


"아가씨.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소, 손님...? 나한테?"


안젤라와 루시퍼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전해듣지 못했는지 엘레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였다.


"엘레나 아가씨의 친우 분들이십니다. 루시퍼군과 안젤라양이라고 합니다."


잠시 후, 우당탕 소리와 함께 엘레나의 허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 그, 그 둘이 왜 우리 집에 있어...? 어, 어떻게 찾아온 거야."

"에, 엘레나양! 잠깐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요!"


당황한 것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목소리에 안젤라가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엘레나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돌아가줘!"


안에서 들려오는 엘레나의 목소리에 데이비드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젤라와 루시퍼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곤란하군요. 아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손님분들께서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돌아가 주십사..."

"어이쿠. 그건 좀 곤란하지. 여기 좀 봐주실까?"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며 작은 빛의 구체를 손가락 위에 띄웠고, 데이비드의 시선은 자연히 그 빛의 구체를 따라갔다.


"얍."


그리고 다음 순간, 루시퍼가 손가락을 튕김과 동시에 빛의 구체가 순간 점멸하며 플래시를 터뜨렸고, 그 광경을 본 데이비드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루, 루시퍼? 뭘 한 거에요?"

"걱정 마라. 잠깐 최면을 건 것 뿐이야. 너도 이대로 돌아가고 싶진 않겠지?"

"그, 그렇긴 하지만요..."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며 데이비드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며 최면이 제대로 먹혔는지 확인했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데이비드의 모습에 만족하고는 망설임없이 닫혀 있는 엘레나의 방문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뭐, 뭐야. 어, 어떻게?"


엘레나의 방문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고, 그 안에서 파자마 차림으로 어째선지 바닥에 주저앉아있던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 엘레나..."

"아, 안젤라..."


서로 이름을 부르기만 할 뿐, 막상 얼굴을 마주보니 머릿속이 하얘지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퍼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감동의 재회를 방해해서 미안한데, 옷 갈아입을 시간 정도는 줄까?"


그 말에 엘레나는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보고는 이제서야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무, 문 닫아요!"

"예이예이. 다 갈아입으면 말 하라고. 숨을 생각은 하지 말고."

"으..."


시선을 돌린 루시퍼가 문을 닫으며 한 말에 양팔로 몸을 감싼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확인한 안젤라가 루시퍼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엘레나가 말했다.


"드, 들어와..."


루시퍼는 주저없이 방문을 열었고, 그러자 평소에 늘 입은 학생용 로브 차림의 엘레나가 침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야?"

"물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에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하겠다는거야."


엘레나는 괴로운 듯이 시선을 떨구며 중얼거렸다.


"안젤라는, 너무해. 믿고 있었는데, 내게는 묻지도 않고 이런 심한 일을..."

"심한, 일...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게 최선이었어요."

"안젤라는 내 맘 몰라. 내가, 지금까지 빌리언에 얼마나 많이 당했는지도 모르고."

"그건, 조금 전에 미리엘에게서 들었어요."

"그, 그걸 알면서도 대체 왜...!"

"미리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건드릴 수밖에 없어요."

"뭐, 뭐?"


의아한 표정으로 안젤라를 올려다보는 미리엘에게 안젤라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처가 아프다고, 고통스럽다고 시선을 돌리고 숨기기만 해서는 곪아서 결국 자신을 더더욱 고통스럽게 할 뿐이에요. 약을 바르던, 붕대를 감던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답니다."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엘레나를 그렇게 괴롭히는 빌리언군이라는 상처를, 방치해 둘 수는 없었어요. 엘레나는 당장이라도 빌리언이라는 상처를 치유해야만 해요."

"말로는 뭘 못해! 난, 난 고블린이라고!"

"엘레나!"


스스로를 고블린이라 비하하는 엘레나에게 안젤라가 안타깝게 소리쳤다.


"그에 반해 빌리언은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야!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게 당연하잖아! 안젤라의 말대로라면 이건 상처를 후벼 파서 악화시키는 꼴밖에 안돼!"

"제가,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답답한 심정으로 가슴을 치며 열변을 토하는 안젤라지만, 엘레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엘레나를 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건만, 그 붉게 타오르는 마음을 직접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는 답답함과, 알아주지 않는 서글픔에 안젤라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엘레나..."


결국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의견에, 안젤라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당장으로서는 별 도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없을 정도의 기세로 열렬하게 머리를 굴리는 안젤라였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고 그렇게 한창 고민하던 차에 루시퍼가 입을 열었다.


"빌리언이라는 놈이 그렇게 무섭냐?"

"다, 당연하죠...루시퍼군은 빌리언의 마법을 못 봐서 그래요."

"난 이놈이 훨씬 더 무서운데."

"루, 루시퍼?"


루시퍼는 안젤라의 머리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야. 너네 가문에 대련 같은게 가능한 연무장이 있냐?"

"이, 있기는 한데요...그건 갑자기 왜요?"

"따라와. 놀라운 걸 보여주지."


루시퍼가 악마 같이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작가의말

오늘도 배고픈 하루!

다들 영양분을 잘 섭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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