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은빛의눈물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배고픈펭귄
작품등록일 :
2020.12.12 16:55
최근연재일 :
2021.03.13 20:00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4,843
추천수 :
239
글자수 :
462,818

작성
21.01.30 20:00
조회
44
추천
3
글자
10쪽

53화

DUMMY

"그런데 정말로, 진심으로 버프 따위로 고블린과 이몸이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아무래도 이번 질문은 평소의 비꼼이 아닌 순수한 의문에서 나온 질문인 듯 했지만 안젤라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침묵인가? 보아하니 확실히 자신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이대로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엘레나에게 하등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리스크를 대신 짊어져주겠다는 건가? 이거 눈물겨운 우정이라고 박수라도 쳐 줘야하나?"


다시 평소의 남을 깔보는 표정으로 돌아온 빌리언은 벤치에 양 팔을 걸치며 말했다.


"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확실히 재밌어 보이는 내기긴 하지만 네놈 조건으로는 딱히 흥미가 동하지 않는군. 이미 시종이라면 차고 넘치는 몸인지라."

"그, 그런..."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자신이 제공해줄 수 있는 추가적인 조건을 즉석에서 생각해보려는 안젤라였지만 애초에 가진 것이 많지 않은 그녀였기에 딱히 좋은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조건만 더 붙인다면 고려를 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크크큭."

"...뭐죠?"

"나와 루시퍼라는 놈의 마법 결투를 성사시켜라."

"루, 루시퍼와...마법 결투를요?"


안젤라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건이었기에 안젤라는 깜짝 놀라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어려운 조건은 아닐 텐데? 대체 무슨 관계인지는 짐작이 안 가지만 찰싹 달라붙어 다니는 걸 보면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 아니었나?"

"치, 친분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대체 이유가 뭔가요?"


최근에는 성질을 좀 죽이고 살기는 하지만, 요즘 루시퍼의 스트레스가 좀 쌓이기도 했고, 또 한 달 전에 인간 모습일 때도 데스 나이트 다섯 기를 가지고 노는 무력을 목도한 그녀였기에 아무리 상대가 빌리언이라지만 말리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


"네년도 자리에 있었으니 느꼈겠지. 조금 전에 식당에서 그 녀석의 주위로 퍼져나간 의문의 한기를."

'못 느꼈는데요.'


안젤라는 루시퍼가 내뿜은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당시 루시퍼가 뭔가를 했다는 느낌 정도는 받았었고, 또 묘하게 비장한 분위기를 풍기는 빌리언의 기세에 찬물을 붇고 싶지는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이몸이 형님 외의 인간에게 공포를 느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공포를 느끼신 건가요?"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잖나! 그건...뭔가 착오가 있었을 거다!"


횡설수설에 가까운 변명이었지만 안젤라는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놈을 직접 밟아버린다면 이 정체 모를 찝찝함도 가시겠지. 어떠냐 시종? 이몸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면 네년의 그 어이없는 내기에도 응해주도록 하마."


이겨도 져도 빌리언으로서는 크게 손해 볼 것도 없는 내기였지만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하는 빌리언, 실제로도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른 그들이었기에 빌리언의 기준에서는 크게 선심을 쓴 것이 맞았다.


"그렇게 말하셔도 제가 그런 걸 이 자리에서 정하기에는..."

"재밌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나. 나도 껴주지 그래?"


그 때, 타이밍 좋게도 루시퍼가 빌리언이 후려쳤던 벽 뒤에서 사악한 미소를 띠며 걸어나왔다.


"네, 네놈...! 언제부터 엿듣고 있었던 거지!?"


뜬금없는 장소에서 튀어나온 루시퍼를 경계하며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는 빌리언이었다.


"루, 루시퍼?"

"갑자기 사라지면 곤란하지 안젤라."


빌리언의 말을 씹고 안젤라의 안부만을 확인하는 루시퍼였다.


"찾고 있었던 건가요?"

"그래. 이제 홀몸도 아닌데 혼자서 싸돌아다니는 건 좀 자제하면 좋겠는데."

"홀몸? 아. 이거 말인가요?"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루시퍼의 말을 안젤라는 찰떡같이 알아듣고는 바구니를 두드렸고, 요즘 들어 놀려먹기가 잘 통하지 않는 안젤라의 모습에 흥이 떨어진 루시퍼는 표정을 찌푸렸다.


"쳇. 재미 없군."


안젤라가 개떡같이 말하는 루시퍼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만 유감스럽게도 빌리언에게는 상황을 추정할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못했고, 눈앞의 상황으로만 결론을 도출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 그런 관계였나...후, 후하하하하!"

"쟤 왜 저러냐. 뭐 잘못 먹었대냐?"

"모, 모르겠는데요."

"후하하하하! 네놈! 방금 이 시종이 내게 어떤 제안을 했는지 알고 있나?"

"얘기는 뒷부분밖에 못 들었어. 나랑 싸우고 싶다면서?"

"그래! 그 재수 없는 낯짝을 짓밟아둬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말이야! 네놈의 여자를 지키고 싶다면 순순히 결투에 응해라!"


자신만만하게 루시퍼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외치는 빌리언을 안젤라와 루시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서로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영 좋지 못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루시퍼가 이상하게 말하니까 그렇죠."

"그렇긴 하지만 말이야. 상황이 재미있어지는데?"


루시퍼는 그렇게 속닥이고는 빙글거리며 말했다.


"헤에. 결투라. 대체 어떤 경위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한번 들어나 볼까?"


가능하면 루시퍼에게는 비밀로 해두고 싶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안젤라는 별 수 없이 루시퍼에게도 자신이 제안한 내기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고, 얘기를 끝까지 들은 루시퍼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안젤라에게 물었다.


"...가능할 것 같냐?"

"아마도요."

"아마도, 아마도라. 넌 확실하지도 않은 결과에 너의 인생을 통째로 걸어버려도 괜찮은 건가?"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루시퍼였다.


"그 엘레나라는 여자가 그렇게도 소중한가? 툭 까놓고 말해서 그 여자가 너에게 해준 게 뭐가 있지? 자초지종을 들어 보면 전학 첫 날부터 너에게는 신세만 진 녀석이지 않나. 그런 녀석을 위해서 니가 그렇게까지 해줄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정말로?"

"음...듣고 보니 그러네요. 생각해보니 제가 볼 수 있는 이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의외로 순순히 안젤라는 루시퍼가 지적한 사실에 대해 빠르게 인정했다.


"그래도 말이죠. 전 애초에 그런 이익에 관해서는 고려한 적이 없는걸요."

"무슨 뜻이지?"

"아직은 서툴고, 또 제가 생각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친구라는 건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복잡한 이해 관계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냥 돕고 싶으니까 돕는거죠."

"설령 그 때문에 본인의 인생이 파멸한다고 해도 말이냐?"

"그때는 그때죠.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엘레나가 저를 도와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믿음이라. 결국은 그걸로 귀결되는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군."

"죄송해요.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해서."

"됐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납득이 갈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흠..."


루시퍼는 잠깐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괜찮겠지."


여차하면 튀어버리면 그만이기도 하고 말이야. 라는 말은 본인의 가슴 속에 묻어 두기로 한 루시퍼였다. 또 안젤라가 대체 무슨 버프를 개발했기에 마력량이 고블린 수준인 엘레나와 왕가의 넘치는 재능을 가진 빌리언 사이의 결투에서 승리의 가능성을 보았는지가 궁금하기도 했고, 또 만약 정말로 엘레나가 빌리언을 이길 수 있게 할 만한 놀라운 버프라면 안젤라의 신성력 또한 많이 소모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로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건 간에 이득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그래. 까짓거 결투 해주면 그만이지."


루시퍼는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건들거리며 말했다.


"좀 귀찮긴 하지만 말이야."


여유가 흘러넘치는 그 모습에 빌리언은 속에서 천불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지만 여기서 당장 날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안젤라에게는 언제 학교에서 퇴학당해도 상관 없다는 허세를 떨긴 했지만 이 이상 정학을 먹었다가는 최소 수업 일수조차 챙기기 힘들 것이었고, 왕가의 혈통을 타고나 학교조차 제때 졸업하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면 왕가의 이름에, 흑염의 동생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었기에 눈앞에서 열받게 구는 루시퍼를 보면서도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 시종의 제안은 오히려 내겐 이득이지.'


결투라는 정당한 방식으로 루시퍼를 짓밟을 생각을 하며 씨익 미소를 짓는 빌리언이었고, 루시퍼도 그런 빌리언을 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대충 얘기가 마무리지어진 것 같군. 좋다 시종. 결투 날짜는 어떻게 할 거지?"

"딱히 생각해 둔 날은 없는데 말이죠. 빌리언군은 언제가 좋나요?"

"후훗. 이 몸을 상대로 날짜 지정까지 맡길 정도로 여유가 넘친다 이거냐? 이몸은 언제라도 좋다. 원한다면 당장 지금이라도 그 기생오라비같은 면상을 뭉개주지!"

"아. 물론 루시퍼보다 엘레나와의 결투를 먼저 치르셔야 하는 건 알고 계시죠?"

"뭣이? 이몸이 어째서 그래야 하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한 태도로 묻는 빌리언의 모습에 안젤라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설마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루시퍼와의 결투를 끝내고 빌리언군이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있으니까요."

"흥. 왕족인 이몸이 그런 시정잡배들이나 할 만한 좀스러운 짓거리를 할까보냐. 내뱉은 말은 지킨다. 왕가의 긍지를 걸고서라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안젤라는 순순히 사과했고, 빌리언은 코웃음을 치며 안젤라의 사과를 무시했다.


"그렇다면...일주일 뒤가 좋겠네요. 마법 결투를 성사시키려면 선생님들의 허가도 얻어야 하고, 또 엘레나도 연습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무래도 상관없다.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는군."


그렇게 말한 빌리언은 호쾌하게 웃으며 추종자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고, 넓은 정원에는 안젤라와 루시퍼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작가의말

오늘도 배고픈 작가입니다.

오늘은 치킨이 땡기는 날이군요. 치킨은 항상 옳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악마의 마력으로 성녀가 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8 68화 21.02.13 33 1 9쪽
67 67화 21.02.12 37 2 10쪽
66 66화 21.02.11 31 2 10쪽
65 65화 21.02.10 36 2 10쪽
64 64화 +2 21.02.09 38 2 10쪽
63 63화 21.02.09 30 2 10쪽
62 62화 +1 21.02.08 34 2 10쪽
61 61화 21.02.07 29 1 10쪽
60 60화 21.02.06 36 2 11쪽
59 59화 +2 21.02.05 35 2 10쪽
58 58화 +1 21.02.04 38 2 11쪽
57 57화 21.02.03 37 3 10쪽
56 56화 21.02.02 39 2 10쪽
55 55화 +2 21.02.01 45 2 10쪽
54 54화 +1 21.01.31 43 3 10쪽
» 53화 +1 21.01.30 45 3 10쪽
52 52화 21.01.29 38 3 10쪽
51 51화 21.01.28 40 3 11쪽
50 50화 21.01.28 37 3 10쪽
49 49화 +1 21.01.27 38 3 10쪽
48 48화 21.01.26 43 2 10쪽
47 47화 21.01.25 42 4 10쪽
46 46화 21.01.24 48 4 10쪽
45 45화 21.01.23 48 4 10쪽
44 44화 21.01.22 41 3 10쪽
43 43화 +1 21.01.21 44 4 10쪽
42 42화 +1 21.01.20 42 4 10쪽
41 41화 21.01.19 48 3 10쪽
40 40화 21.01.18 46 3 9쪽
39 39화 21.01.17 47 2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