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5 09:05
연재수 :
901 회
조회수 :
3,838,447
추천수 :
118,862
글자수 :
9,980,317

작성
22.07.08 09:05
조회
5,773
추천
164
글자
23쪽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살고 있는 웨스트우드의 단독주택.


어기적어기적.


부스스한 얼굴의 류지호가 2층에서 내려왔다.

거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도널드 제이콥과 눈이 딱 마주쳤다.


“하하.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8시입니다.”

“내 꼴이 엉망이죠?”

“어제 얼마나 마신 겁니까?”

“몰라요. 20년 만에 처음으로 폭음을 한 것 같네요.”

“보스는 16세부터 음주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만큼 오랜만이란 뜻이에요.”

“블랙커피 한 잔 준비할까요?”

“한인타운으로 가서 속 좀 풀어야겠어요.”

“그 매운 스프를 말하는 겁니까?”

“네. 육개장이죠.”


욕실로 향하는 류지호를 보며 도널드 제이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스가 가끔 먹는 매운 음식들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게 못되었다.

특히 한국 전통 소스로 만들었다는 청국장은....

특유의 꼬릿한 냄새를 떠올린 도널드 제이콥의 미간이 잔뜩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지호는 한인타운에서 육개장으로 속을 풀었다.

3년여 공백이 있었다.

그럼에도 두 명의 경호원은 한식을 제법 잘 먹었다.


“오늘은 몇 군데나 돌아야 할까요?”

“트라이-스텔라 임원들과 베벌리힐스에서 점심을 먹고, 한인타운의 자선행사에 참석해야 합니다. 오후에 엘 세군도로 이동해 Hues & Rhythm 경영진과 미팅을 갖고 그들과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인맥 복원과 사업체 점검을 위해 한 달간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다.


“태권도 센터에 들러서 사범님께 인사드릴 시간은 있겠죠?”

“오래 머물 순 없습니다.‘

“그래도 인사는 드려야죠. 잠깐 들렀다 가는 걸로 해요.”

“알겠습니다.”


류지호의 진정한 태권도 스승은 한국의 용연태권도 홍 관장이다.

LA에서 인연을 맺은 전용운 사범은 작은 스승으로 여겼다.

작년 말이었다.

전용운 사범이 용산 게리슨으로 류지호 면회를 온 적이 있었다.


“우리 도장에서 수련하는 흑인 애들이 있는데, 그 애들이 그러더라, 사우스센트럴 지역 빈민가 청소년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TV에 나온 그대로에요. 특별히 애쓰진 않아요.”

“진영이한테 들었는데 4.29가 일어나기 전부터 한흑 간에 갈등을 완화시키려고 남몰래 노력했다며?”

“진형이형 같이 활동가들 지원하는 정도에요. 자랑스럽게 떠버릴 일은 아니었어요.”


전용운 사범은 이민자도 아닌 동포 청년이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애를 써왔다는 것에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면목이 없지만... 부탁을 좀 하려고 찾아왔다.”


전용운 사범이 조심스럽게 한국까지 찾아온 목적을 풀어놨다.

미국에서 태권도 페스티벌을 주최할 계획이란다.

스폰서가 붙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JHO Company의 후원을 간절하게 부탁했다.

작은 스승이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던져버리고 사정을 하는데, 류지호로서는 도와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류지호가 후원하자 한인사회도 손을 조금 보태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올해 5월 달에 ‘월드 태권도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행사가 개최되었다.

전용운 사범이 90년 올림픽 태권도 미국대표팀을 맡으며 인연을 맺게 된 미국 태권도 대표팀과 세계 올스타팀이 참가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페스티벌의 규모가 작아서 실망했습니다.”


도널드 제이콥의 말처럼 전용운 사범이 사비까지 털어 개최한 첫 페스티벌은 ‘성황리‘라는 말과 거리가 멀었다.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겠죠.”

“행사를 키울 생각입니까?”


이미 류지호는 ‘월드 태권도 페스티벌’의 메인 스폰서다.

내년부터는 류지호가 소유한 기업들도 후원자로 나설 예정이다.

도널드 제이콥은 대회 명칭에 'JHO'를 넣길 원했다.

‘월드 태권도 페스티벌‘ 측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류지호는 대회명칭을 양보하는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JHO 산하 기업들의 광고가 노출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했다.

대회 규모가 워낙 작아서 과연 광고효과가 있을 것인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파라맥스에서 태권도 영화를 기획하는 모양이던데.....”

“미국 대중들에게는 가라데나 쿵푸가 더 친숙합니다.”

“그렇죠. 부루인 대부분이 옆차기를 가라데 사이트킥이라고 부르니까요. 미국의 태권도 인구가 늘어나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하면 태권도 사이드킥이라고 부를 날도 오지 않겠어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마샬아츠 영화는 B급 취급받으니까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70년대에는 마샬아츠 영화를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도 투자·배급했어요.”

“준판 리의 영화가 그랬습니다.”


이진번은 여전히 할리우드 마샬아츠 영화의 아이콘이다.

방사룡과 리앙중의 영화가 파라맥스를 통해 북미에 소개되고 있긴 하지만, 이진번의 아성을 넘기에는 여전히 모자랐다.


“일단 근사한 태권도 영화가 만들어지면 태권도 수련생들부터 관심을 갖겠죠. 스튜디오 영화가 아니라 비디오 콘텐츠면 손해는 안 볼 겁니다. 그리고 트라이-스텔라 TV가 기획하는 시리즈에도 태권도와 한국인 캐릭터 노출을 차차 늘여갈 계획이고.”

“소닉처럼 말입니까?”

“그런 거죠.”

“한국인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키고 싶은 겁니까?”

“설마요. 망할 걸 뻔히 아는데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한국이란 나라를 조금 더 신비로운 나라로 포장도 해놓고, 서구권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최소한 한국인과 일본인, 중국인을 구분할 수 있게 하려고요. 돈 버는 것에만 안달난 한국인이 아니라 성실하고 겸손한 민족으로 포장 좀 해 놓으려고요.”

“한인계 미국인들에게 크게 실망한 줄 알았습니다.”


지난 LA폭동 성금을 두고, 일부 동포들이 벌인 추태에 류지호가 크게 실망한 것은 맞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남 같지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훨씬 큰 것을.


“일방적으로 퍼주는 짓은 더 이상 안 하려고요.”


현재 미국 교민 수는 70만 명에 육박했다.

그 수는 계속 늘어 2010년대에는 250만에 이르게 된다.

미국시민 전체를 놓고 보면 얼마 안 된다.

그럼에도 그들이 단합하면 꽤나 큰 목소리를 낼 수가 있다.


“한국인이 긍정적으로 묘사되면 다른 아시아계 이민자들도 극장으로 불러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

“보면 볼수록 영화감독보다는 프로듀서가 적성에 맞는 것 같습니다.”

“칸영화제에서 수상을 해야 감독감이란 걸 인정하겠어요?”

“보스가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를 찍기를 기대합니다.”

“남자영화라서요?”

“로봇은 로망입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스타워즈>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보스로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발언인데요?”

“<스타워즈>는 전설입니다.”

“내가 나름 괜찮은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Don은 생각이 다른 가 봐요?”

“10년 후에 이 주제로 다시 대화를 나눠보죠.”

“좋아요. 그때 가서 Don이 어떤 말을 들려줄지 예상되지만. 오늘은 참도록 할게요.”


식당을 나온 일행은 류지호가 수련하던 태권도센터로 향했다.

전용운 사범이 다짜고짜 류지호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뭐가요?”

“지난 페스티벌은 많은 주목을 끌지 못했어. 네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의 태권도 단체들, LA총영사관, 교포사회가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힘을 모아도 될까 말까한 행사다.

그런 이벤트를 일개인이 해서 얼마나 대단한 행사가 만들어질까.

언젠가는.

꾸준히 진행하다보면 또 다른 후원사도 붙겠거니.

그런 생각으로 후원을 결심한 류지호다.


“사범님 혼자 매년 하려면 벅찰 텐데... 괜찮겠어요?”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하다보면 후원자들이 생기지 않겠냐?”

“긍정적이시네요.”

“미국으로 이민 와서 페인트공부터 목수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거라 힘든 건 모르겠다.”

“태권도의 미국 전파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민 오신 것도 아닌데, 그런 의무감 때문에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걱정해줘서 고맙다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괜히 집 팔고 태권도장 팔아가면서 페스티벌에 모든 걸 걸진 마세요.”

“한국의 대기업이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는데......”

“미국의 태권도인구가 폭발적으로 늘면 저절로 관심을 가져주겠죠 뭐.”

“도장엔 언제부터 다시 나올 생각이냐?”

“당분간은 여기 저기 얼굴 비춰야 할 데가 많아요. 뉴욕에도 다녀와야 하고.”

“그렇게 바빠서 학업은 따라갈 수 있겠냐?”

“어떻게든 되겠죠. 저 가 볼게요.”


태권도 센터를 나선 류지호는 사우스센트럴LA 지역의 청소년 센터들을 방문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두 곳에 불과했던 청소년 센터가 다섯 개로 늘어나 있다.

LA폭동과 노스리지 대지진을 겪으며 한흑 간의 갈등도 조금은 누그러진 것도 같았다.

아니면 그들이 미워하며 서로에게 쏟아내던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고.


'경제침체, 노스리지 지진 등으로 인해 원망이 정치권으로 모아지고 있을지도....'


점심 약속 때문에 다섯 곳 모두를 돌아볼 순 없었다.

류지호는 처음 만들어진 플로렌스 센터만 들러서 봉사자들을 격려했다.


✻ ✻ ✻


베벌리힐스의 레스토랑에서 류지호와 트라이-스텔라의 주요 임원진이 모처럼 식사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 죠셉 콜롬버스 감독이 합석했다.


“3년 만인가?”

“벌써 그렇게 되었네요.”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건강합니다.”


죠셉 콜롬버스 감독은 <나 홀로 집에>부터 <미세스 다웃파이어>까지 몇 작품을 연이어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와 작업했다.

얼마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서 착안해서 1492 Pictures라는 영화사를 설립했는데, 예전부터 류지호가 지분 참여를 하라고 당부를 해놓았다.

따라서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가 1492 Pictures의 지분 39%를 보유함과 동시에 10년짜리 장기배급 계약도 함께 체결했다.


“지금 촬영하고 있는 영화는 뭐예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 프랑스 영화 <Neuf mois>의 리메이크 작품이야.”

“<나인 먼쓰>군요? 남자 주인공이 존 그랜트던가요?”

“맞아.”


영화 <나인 먼쓰>는 존 그랜트의 첫 할리우드 주연 작품이다.


“윌리엄스씨도 출연해요?”

“맥도 이번에 함께 하지.”

“촬영은 주로 어디서 진행하죠?”

“샌프란시스코 베이.”

“이번 영화도 기대해 봐도 되겠죠?”

“파트너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걸세.”

“죠셉은 트라이-스텔라의 좋은 친구에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짐짓 퉁명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좋은 친구는 아니야.”

“죠셉, 메타보이씨가 왜 심통이 났죠?”

“내년에 내가 슈발츠네거와 영화를 찍을 계획이야. 그 영화를 PARKs와 하거든.”

“뭔데요?”

“‘Jingle All The Way’를 영화로 만들기로 작년에 PARKs와 계약 했어.”

“영화 한 편 찍고 은퇴할 거 아니잖아요. 죠셉도 다른 스튜디오들과도 네트워크 관리를 해야 할 테니. 대신 다음 작품을 트라이-스텔라와 함께 하면 되겠네요.”


모리스 메타보이가 오랜만에 류지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군대를 다녀온 게 아니라, 불교 사원에라도 있다 왔나?”

“친구라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정상이죠.”

“일방적으로?”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식사 내내 류지호와 메타보이 사장이 투덕거렸다.

그렇게 모리스 메타보이 등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제야 할리우드로 복귀한 것이 실감났다.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위치 역시 새삼 확인했다.

메이저 스튜디오가 투자·배급하는 영화와 경쟁해서 흥행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성공이 쌓이다보면.

그것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될 것이다.

승리자의 기록.

신화는 스스로 쓰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쓰인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의 지금까지의 성공은 그저 전초전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네.’


무능한 오너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성과들이 한순간에 의심 받거나 부정당할 수도 있다.

그 대단한 스티븐 아들러도 아카데미에서 수상한 경력이 없다고 폄하되는 것이 할리우드다.

류지호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해도 업계에서는 학생신분이 아니다.

어엿한 프로듀서다.

어린 나이 뒤로 숨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

‘어린 녀석이 대단하네‘ 같은 찬사 따위는 더 이상 없다.

앞으로는 다른 이들과 똑같은 잣대로 평가 받을 일만 있다.


✻ ✻ ✻


엘 세군도(El Segundo).

Hues & Rhythm Studios.

할리우드 VFX 전문 스튜디오다.

영화 및 애니메이션 VFX, 광고, 전시영상 등 VFX기술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그래픽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다.

류지호가 군복무 중에 인수했는데,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조너선 휴즈(Jonathan Hughes)를 비롯해 창립 멤버들이 대기업이나 자본에 종속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이다.

매튜 그레이엄과 모리스 메타보이는 JHO Company(당시에는 Garam Invest)가 소유한 기업들이 어떻게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끈질기게 설득했다.

각고의 설득과정을 거쳐서 결국 890만 달러에 인수할 수 있었다.

류지호와 조너선 휴즈가 32인치 배불뚝이에 무게만 무려 50Kg이 나가는 소닉의 TV브라운관 앞에 앉아 있다.


“볼까요?”


조너선 휴즈가 브라운관에 연결된 비디오데크의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완성된 것이 아니란 걸 감안하고 보게. 매우 짧으니까, 집중해서 봐야 해.”


분홍색의 거대한 5층짜리 쇼핑몰.


흔들.


건물이 살짝 움직인 것 같다.

마치 사람이 살짝 몸을 멈칫거린 것처럼....

그 외에 쇼핑몰 건물은 어떠한 이상도 없어 보인다.


툭.


갑자기 쇼핑몰 오른쪽이 무너져 내기기 시작하고.


와르르르르.


순식간에 건물이 무너져 내린다.

10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실제 건물 붕괴는 5초가 걸릴까.

영화적으로 시간을 조금 늘린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쇼핑몰 주변으로 구름처럼 퍼져나간다.

그런 후, 커트가 넘어갔다.

뿌연 흙먼지가 서서히 흩어지면서 가려져 있던 쇼핑몰이 드러난다.

무너진 건물과 잔해들.

이 부분은 CG가 들어가지 않은 미니어처 실사장면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있던 부분만 묘비처럼 우뚝 서있다.


“....흠.”


류지호가 기억하고 있는 삼봉백화점 붕괴 현장과 조금 달랐다.

몇 번을 반복 재생해서 미니어처 실사영상을 확인했다.


“휴즈씨, 일반적인 고층건물의 폭파붕괴를 참조한 겁니까?”

“그렇다네. 건물 폭파해체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았어. 미니어처 제작업체와 긴밀하게 협조해서 실사를 찍었지. 우리 직원이 86년에 싱가폴 뉴월드 호텔이 무너진 것도 찾아내서 그 붕괴 사고도 참고했지. 고증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1986년 3월 15일에 싱가폴 호텔 뉴월드가 부실 공사로 붕괴된 사고가 있었다.

삼봉백화점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건물 붕괴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


조너선 휴즈는 마음만 먹으면 풀 CG를 못할 것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다만 미니어처 실사에 CG기술을 접목하는 것보다 제작비가 수십 배가 들고, 작업용 컴퓨터를 새롭게 세팅해야 하기에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점.

심각한 표정의 류지호를 보고 조너선 휴즈가 입을 열었다.


“지금 본 영상은 CGI 기술이 아주 조금 들어간 것이란 걸 염두에 두게.”

“그런 것 같네요. 크로마키에 배경 합성도 들어가지 않았고, 따로 찍었다는 흙먼지 소스도 추가되지 않았고.”

“지금 영상은 밑그림만 그린 상태라고 보면 돼.”

“내가 실망했을 것이라 짐작했다면 걱정 말아요. 나도 역시 CGI를 경험해봐서 대강의 프로세스는 알고 있으니까.”

“아, 그랬군.”


조너선 휴즈가 과하게 안도했다.

비전문가인 클라이언트들과 상대하다보면, 겨우 이거냐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완성되지 않은 영상은 클라이언트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업계의 암묵적인 룰이다.

이번 경우는 예외다.

클라이언트가 아닌 모회사의 주인이니까.


“새로 세팅한 장비들은 마음에 들어요?”

“다들 마음에 들어 해. 작업 속도가 배는 빨라졌지.”

“언제나 전문가들에게 컴퓨터 속도는 느리게 느껴지는 법이죠. 워크스테이션의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는 대로 계속해서 지원하도록 할게요. 대신 내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사실적이고 경이로운 장면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합니다.”


조너선 휴즈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몇 년 안에 LMI를 뛰어넘는 영상을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걸세.”

“인력 수급은 원활히 진행되고 있어요?”

“미국 각지의 CGI 아티스트들이 할리우드로 몰려들고 있지. 사람이 없어서 뽑지 못할 일은 없네.”

“LMI이나 블루 스카이만 경쟁상대가 아닙니다. 광고와 TV부문의 절대 강자 보스필름 스튜디오부터 소닉 이미지웍스.... 진짜 문제는 난립하게 될 군소 업체들과 수주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단가 후려치기.

업계를 멍들게 하는 제 살 깎아먹기 수주 경쟁.

십 년 안에 벌어질 일이다.


“혹시 트라이-스텔라도 공개입찰로 업체를 선정하게 되는 건가?”

“트라이-스텔라 영화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Hues & Rhythm이 도맡아서 할 겁니다.”

“.....음.”

“다만 그 만큼의 역량이 되어야 하겠지요.”

“증명하겠네.”


Hues & Rhythm Studios는 <꼬마 돼지 베이브>, <배트맨 포에버>, <에이스 벤츄라>, <워터 월드> 등 CG 기술을 뽐낼 수 있는 작품들에 연이어 참여하고 있다.

모두 내년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영화들이다.


“기대하죠.”


현재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VFX가 많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기획 중이거나 촬영에 들어가 있다.

VFX 전문 업체들은 새로 진행되는 영화에 참여하기 위해 가장 저렴한 가격을 산정해 제작사들이 주관하는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입찰 금액은 매우 과학적으로 산정된다.

이전 영화나 광고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어떤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어느 정도 직급의, 몇 명의 작업자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만들었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 기획중인 영화의 유사한 장면을 대입시켜 가장 경쟁력 있는 금액을 계산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상당히 공정한 경쟁이 벌어질 것처럼 생각된다.

월등한 실력으로, 같은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좀 더 저렴한 비용으로 해낼 수 있는 업체가 프로젝트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런데 현실의 경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배우들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는데 반해 특수효과에는 최대한 비용을 절약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공정하지 못한 거래가 시작된다.

이미 정해진 프로젝트를 경쟁업체가 물밑 작업으로 빼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일명 가격 후려치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업체들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하면 직원을 해고하거나 월급이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손해를 보더라도 필사적으로 수주를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때론 실적을 쌓기 위해 자본이 넉넉한 대형업체가 적자를 감수하면서 프로젝트를 가로채기도 한다.

소닉 이미지웍스나 워너-타임 계열의 특수효과 회사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일을 가져가겠다고 나서는 데 중소업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눈 뜨고 프로젝트를 빼앗길 수밖에.

10년이다.

그렇게 할리우드 VFX 업계가 망가지는 기간이.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이 할리우드 특수효과 제작 환경을 피폐하게 만들기 시작하게 되고, 결국 대기업의 투자 없이 가족적인 분위기로 회사를 운영하며 많은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Hues & Rhythm 같은 업체들이 파산의 길을 걷게 된다.

만약 JHO Company가 인수합병 하지 않았다면 이전 삶의 역사처럼 Hues & Rhythm이 파산의 길을 걷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자체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수익 모델.....?”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자체적으로 기획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성공해야 수익이 나는 것인데... 흥행한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작품을 만드는 거야 어려울 것은 없지만, 그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로 메리트가 있을까?”

“자체 애니메이션 부서를 만들어도 되고, 내 소유 영화사들과 협업으로 진행해도 됩니다.”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영화 하나 잘못되면 문을 닫을 수도 있다네.”

“그럴 리 없어요. 내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원할 테니까요.”


어지간한 이들은 류지호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들 때문에.

그런데 조너선 휴즈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음에 들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 Hues & Rhythm가 애니메이션 부서나 자회사를 설립한다면 본사와 거의 유사한 업무를 하기 때문에 쌍방 간 자유로운 이직도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직원들이 자기 적성에 좀 더 적합한 업무로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인력 재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전통적인 방식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다는 말인데....”

“이미 픽사트(Pixart)가 <토이스토리>를 제작하고 있잖아요. Hues & Rhythm도 스스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애니메이션은 영화 컴퓨터 그래픽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제작비가 필요해.”

“알고 있어요. 펀드는 휴즈씨가 고민할 부분이 아닙니다. 대신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된다면 가능한 전 연령대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너선 휴즈가 근심에 잠겨 신음하는 소리를 냈다.


“.....음.”


할리우드와 광고업계에서 밀려드는 일감도 다 소화를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내라고 하니.....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Mr. 할리우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4 Collapse. (6) +6 22.08.08 5,232 161 24쪽
243 Collapse. (5) +4 22.08.06 5,293 158 25쪽
242 Collapse. (4) +6 22.08.05 5,251 167 22쪽
241 Collapse. (3) +10 22.08.04 5,276 163 27쪽
240 Collapse. (2) +9 22.08.04 5,065 144 23쪽
239 Collapse. (1) +7 22.08.03 5,413 165 23쪽
238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5) +8 22.08.02 5,255 169 22쪽
237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4) +6 22.08.01 5,316 163 22쪽
236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3) +7 22.07.30 5,424 156 24쪽
235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2) +2 22.07.29 5,331 160 24쪽
234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개놈이라니까! (1) +5 22.07.28 5,532 148 26쪽
233 대박 축하한다! (2) +5 22.07.27 5,693 152 24쪽
232 대박 축하한다! (1) +10 22.07.26 5,613 156 21쪽
231 OK할 때까지..... +7 22.07.25 5,417 151 25쪽
230 배고픈 놈이 이긴다. (4) +14 22.07.23 5,486 168 26쪽
229 배고픈 놈이 이긴다. (3) +9 22.07.23 5,166 135 21쪽
228 배고픈 놈이 이긴다. (2) +7 22.07.22 5,389 158 22쪽
227 배고픈 놈이 이긴다. (1) +10 22.07.21 5,548 166 26쪽
226 후회가 남지 않게! (3) +4 22.07.20 5,552 162 28쪽
225 후회가 남지 않게! (2) +10 22.07.19 5,647 151 27쪽
224 후회가 남지 않게! (1) +7 22.07.18 5,722 162 26쪽
223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3) +4 22.07.16 5,774 155 22쪽
222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2) +6 22.07.15 5,607 159 22쪽
221 나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게 아닙니다. (1) +5 22.07.14 5,567 171 21쪽
220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3) +5 22.07.13 5,772 170 28쪽
219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2) +4 22.07.12 5,705 167 27쪽
218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1) +2 22.07.11 5,842 160 23쪽
217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4) +4 22.07.09 5,832 144 24쪽
»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3) +4 22.07.08 5,774 164 23쪽
215 우리 실력을 제대로 보여드리죠! (2) +6 22.07.07 5,837 169 2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