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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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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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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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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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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나 같은 쌈마이도 하는데?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한국의 메이저 신문사 한곳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한국영화계의 감독, 기획, 제작, 투자자, 마케팅과 배급 담당자, 평론가 등 99명을 대상으로 한국영화 각 분야의 최고를 선정해달라는 조사였다.

모두 20개 설문을 조사했는데, 각 질문마다 순위와 관계없이 3명씩을 추천받았다.

설문에 참여한 인원은 80여 명으로 현직에 있는 영화인이었다.

최고의 제작자는 WaW 엔터테인먼트의 박건호 대표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한국영화 수준 향상에 공헌한 제작자 부문과 인재발굴에 가장 힘쓰는 제작자 부문에서도 각각 1위를 차지했다.

아스트로의 차성재, 무비서비스의 강은석, 브라이트필름의 심희명이 뒤를 이었다.

브라이트필름의 심희명 대표는 기획력이 가장 뛰어난 제작자와 마케팅 감각이 가장 뛰어난 제작자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WaW 픽처스의 프로덕션 헤드 전하영은 제작일정 관리, 비용 계산이 가장 철저한 제작자를 묻는 설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최고의 감독은 이창석 감독이 꼽혔다.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감독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임선택 감독은 2위를 차지했다.

영상 감각이 가장 뛰어난 감독부문에서는 고영수 감독이 뽑혔고, 최고작으로 <비트>가 꼽혔다.

최고의 촬영감독은 <봄날이 간다>의 김명구 촬영기사와 <복수의 꽃> 김영복 촬영기사가 똑같은 수의 추천수를 얻었다.

최고의 배우 부문에서는 설형기, 한소연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활동을 중단한 심은예가 최고의 여배우 3위에 오른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응답자 가운데 여러 명이 최고의 여배우, 연기력이 뛰어난 여배우는 없다며 2개 항목에 응답하지 않아 한국 영화계의 여배우 기근을 보여줬다.

주목할 만한 신인배우에 송라원이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문항의 질문.


[최고의 한국영화 영화인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은 인물.

매년 씨네마21이 선정하는 충무로 파워맨에서 단 한번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영화인.

몰표에 가까운 추천으로 류지호가 선정되었다.


- 주먹구구식 엔터 업체가 난립했던 시절 ‘종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엔터테인먼트회사를 처음으로 설립했고, 수많은 독불장군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계 현실에서 한국영화계의 최대 취약점이랄 수 있는 사전제작(pre-production)의 정착화, 제작비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펀딩 시스템, 투명한 회계, 체계적인 일정관리 등 선진적 시스템을 도입해 정착시킨 투자자이자, 제작자이며, 감독인 류지호 감독이 현재로서는 최고의 영화인이다.


- 90년대 한국영화에서 WaW가 빠질 수 없는 것처럼, 투자·제작·감독으로서의 류지호를 빼놓을 수 없다. 이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많은 영화인이 존재하지만, 단연 영화인 중에 최고를 뽑으라면 류지호 감독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설문조사 결과에 대한 리뷰에 낯간지러운 찬사들로 수놓아졌다.

최고의 한국영화인 류지호는 정작 업무에 파묻혔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에 매달렸다.

향후 2년 간 해외에 나가 있을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세세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사업 별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향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프로젝트는 무엇이 있는지.

굵직굵직한 사안만 확인했다.

사실 류지호가 승인할 사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정말 이래도 되겠습니까?”

“원래 그룹 회장의 몫이었습니다만?”


가온그룹은 이사회 중심 경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류지호라는 빅보스를 앞세워 적극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보니 M&A나 투자 안건에 대해 그룹의 경영자들이 이사회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주회사 체제와 오너의 영향력이 공고한 상황이라 사장단이 다른 뜻을 내기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이사회 상정 안건은 사전에 조율되는 경우가 많으니 웬만하면 이견이 나오지 않았다.

류지호는 그 같은 기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래리 킴 그룹 회장을 포함한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의 의사결정을 우선으로 하기로 한 것.


“M&A에 좀 더 적극 나서도 됩니까?”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그걸 풀어버렸다.


“각 계열사들이 너무 경쟁하듯 확장에 나서는 것만 제동을 걸어주세요.”

“제동이랄 게 있겠습니까? 불확실성이 크거나 회사의 검토가 부족한 경우, 그룹과 조율이 되지 않은 경우는 이사회로 올라갈 수 없지 않겠습니까?”

“래리도 잘 알지만, 미국에서는 합병 위로금이란 게 있잖아요.”


미국에서는 M&A가 이뤄질 때 인수업체 쪽에서 피합병기업의 최고 경영자에게 위로수당 등의 명목으로 거액을 지급하는 게 관례로 돼 있다.

일부 전문 경영인들은 합병 위로금을 노리고 M&A에 나서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다.


“한국에서도 뒷돈을 줍니다만.”

“어쨌든 무분별한 M&A가 가온을 경영하는데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세요. 규모의 경영에 치중하다가 관료주의 같은 거대기업 특유의 병폐가 커지는 것은 보고 싶지 않네요.”

“해외기업이라면 몰라도 국내에서는 딱히 합병할 만한 기업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앞으로도 가온을 잘 부탁해요.”


류지호가 가온그룹 경영에서 은근슬쩍 한 발을 뺐다.

매년 한 편씩 영화를 내놓아야 하기에 회사까지 챙길 여력이 없기도 했고.


✻ ✻ ✻


가온그룹 전반을 챙긴 후로는 개별적인 사안을 점검했다.


“도깨비 프로젝트에 그린라이트를 켜도록 합시다.”


류지호는 아동용 3D 애니메이션 ‘또롱또로로’를 제작하고 있는 ICONS Studios가 ‘도깨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도록 허가했다.

최초의 시나리오에서 많은 부분을 갈아엎었다.

도깨비 부락과 폭군은 그대로 두고, 대장장이 아이들 대신 숲속의 동물들을 의인화했다.

숲속의 동물들과 도깨비 부락이 힘을 합쳐 인간 폭군에 대항하는 이야기로 정리됐다.


“숲을 보호하자는 자연보호 메시지에 있어서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킨다는 말을 듣겠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서 한국적 토속성을 더 강화시킬 예정입니다.”


류지호는 한국의 극장판 3D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직접 만들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도깨비 소재는 1995년~1999년에 KBC에서 방영된 <꼬비꼬비> TV시리즈가 있긴 했다.

훨씬 전인 1986년에 극장 개봉한 <도깨비 방망이>도 있다.


“많이도 안 바랍니다. 스토리나 장면연출은 몰라도 그림만큼은 <토이스토리> 정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판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내 기준은 95년 <토이스토리>입니다.”

“......”


한국에서 1995년에 개봉한 <토이스토리> 수준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애니메이터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첫째는 자본이고, 둘째는 시나리오와 연출력이 부족했다.

자신감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암튼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다음으로 오랜 시간 표류하고 있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우리별 1호>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내부적으로 좋은 소재라는 공감대는 있었어요. 다만 실제로 영화로 제작하는 문제에서는 의견이 갈렸어요.”


WaW 픽처스의 모든 영화를 관리하는 전하영의 말이었다.


“영화로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본 겁니까?”

“그게 아니라, 누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다섯 명의 젊은 과학 영재들의 시련과 성공에 집중하자고 하고, 누군가는 좀 더 정치적인 배경을 담아보자고 하고. 스토리를 풀어내는 방식에서 의견이 모이질 않더라고요.”

“정치적인 배경?”

“인공위성과 관련해서 아무런 기술도 없던 한국이잖아요. 제 아무리 과학영재들이라고 해도 영국에서 1년 배워 온 것만으로 무조건 위성을 쏘아 올리라고 명령하고 그걸 또 실행에 옮겨야 했던 엄혹한 시대를 잘 표현해 보자는 의견이었어요.”


과학계 인재들의 영혼까지 갈아 넣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민주정부에서도 똑같다.

우리별 1호 프로젝트는 과학계의 성과를 위해 독재자의 지시에 편승해 무리한 사업을 추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성공 결과 때문에 비인간적인 과정이 묻혀 버린 수많은 사례 중에 하나다.

심지어 당시 과학영재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마저 폄하되는 일까지 있다.


“프로듀서들 말고 기획실에서는 뭐래요?”

“한국의 과학기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초대 카이스트 총장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파헤쳐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초대 카이스트 총장은 한국과학 기술 역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 시대 누구든 허물이 없을 수 없듯, 독재자의 고등학교 동문으로써 수많은 혜택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고.


“뭐예요?”

“보세요.”


류지호가 WaW 픽처스 프로듀서들에게 두 권의 책을 제시했다.

한 권은 다섯 명의 젊은 과학 영재들이 펴낸 ‘우리가 별을 우주로 쏘았다’고, 다른 한 권은 우주과학자 호머 히킴의 자전적 소설 ‘로켓 보이’다.

‘로켓 보이’는 지난 1999년 <October Sky>이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기도 했다.


“‘우리가 별을 우주로 쏘았다’에는 생생한 실화들이 담겨 있어요. 아주 좋은 참고가 될 겁니다.”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들이 ‘우리별‘ 만들기에 뛰어들어 쾌거를 이루기까지 3년간의 과정과 자료가 실려 있는 책이다.

패기만만한 20대 과학자들이 밤잠을 잊은 채 공부하는 모습, 그런 힘든 과정에서도 짬짬이 여행을 즐기는 이야기들이 가벼운 필치로 담겨 있다.

일지 형식으로 쓰인 책인데, 한때 인기를 끌었던 미국드라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을 연상케 한다.


“한국 과학자들의 힘으로 우주로 나간다는 거대한 야망, 성취, 젊은 과학자들의 빛나는 재능과 열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그것이 기획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어요.”


2020년대 식 표현으로는 ‘국뽕’ 충만한 영화되시겠다.


“애국심 마케팅, 과학 영재들에 대한 미화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으니까. 가능해 보이지 않는 도전을 강조하고 실제로 해낸 사실을 부각했으면 좋겠네요.”


인간승리 드라마는 매우 잘 먹힌다.

실화라면 더할 나위 없다.


“실제 위성에는 우리 기술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있어요. 자칫 고증 오류 논란을.....”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당시의 젊은 영재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고난 그리고 청춘을 바친 시간들이 없어지거나 퇴색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한국영화의 장점이자 단점이 사람을 잘 다룬다는 점이다.

서구권 영화들이 흥미로운 사건과 캐릭터의 개성에 집착하는 것과 달리 한국영화는 인물과 그들의 서사로부터 나오는 감동을 잘 포착하는 편이다.

거기에 사회참여적인 메시지까지 아우르다보니 장르영화 문법을 잘 따르면서도 작가의 개성이 담기는 이른바 ‘대중적 작가주의‘ 영화가 탄생했다.

특히 유럽인들이 좋아한다.

오리엔탈리즘을 강조하는 여타 아시아 영화들과 달리 서구적 장르영화 외피에 작가주의를 잘 녹여내니까.


“기초과학을 소홀히 다루는 한국의 풍토도 신랄하게 까세요. 엔지니어를 홀대하는 것도 업계 사람들과 충실히 인터뷰해서 리얼하게 다루고. 연기 잘하는 현지 영국 배우 캐스팅하세요.”

“영국 물가가 장난 아니라던데....”

“미국 들어갈 때 부사장과 심 피디는 나와 함께 가요. JHO/Working Title 미국법인장 소개시켜 줄게요. 그들과 공동제작 논의해 보세요.”

“공동제작이요?”

“우리 과학영재들이 영국 서리 대학에서 유학했잖아요. 서리 대학 교수나 Surrey Satellite Technology 캐릭터에 연기 잘하는 영국 배우를 캐스팅하자고요. 그 안에 인종차별, 경쟁심, 열정, 과학자들 사이의 공감대 기타 등등. 악당이 없는 착하고 열정 가득한 영화로 만들어 봐요.”


착한 영화라고 해서 악당이 없진 않다.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주는 악당이라도 못된 짓이 충분히 납득이 갈만 하다면 영화 마지막에서 이해와 화해를 통해 감동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착한 영화를 표방하는 영화들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인데,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방식으로만 마무리하지 않으면 된다.


“블록버스터급 제작비가 들어가겠네요.”

“영화를 거대하게 보이는 것이 반드시 제작비에 달려 있진 않아요. 부사장은 <필라델피아> 옵저버로 참여했었죠?”

“네.”

“에이즈로 인해 부당한 차별을 받고 항거하는 내용을 다룬 법정 영화에요.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소소한 소송인 것 같죠. 그런데 영화를 보면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스케일이 큰 사건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되죠. 그것이 시나리오의 힘이고 연출력이에요.”


이야기가 크게 느껴지는 것과 스펙터클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둘을 혼동하거나 섞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혹시 생각해 둔 감독은 있으세요?”

“스티브와 이야기 해보세요.”

“<이중간첩>을 연출하는 조세민 감독이요?”

“미국교포라서 영국 로케이션에 전혀 문제없고, UCLA 다닐 때 영국 친구들도 좀 사귄 걸로 알아요. 녀석이라면 무리가 없지 싶네요.”

“알겠습니다.”


조세민 감독은 망했어야 할 <이중간첩>을 4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영화로 만든 공신이다.

이전 삶과 달리 여주인공을 떠오르는 신예 송라원으로 교체하고, 류지호와 송진한이 팔을 걷어붙이고 시나리오를 고쳤다.

국가정보원의 전신 중앙정보부의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인 동백림(東伯林) 사건을 좀 더 노골적으로 영화로 가져왔다.

또한 안기부에서 벌이는 방첩활동을 꽤나 세밀하게 재현해서 몰입도를 상당히 높였다.

그로 인해 한국형 스파이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남게 됐다.

<쉬리>에 이어 첩보물이 다시 한 번 흥행에 성공하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개발이 파기된 <쉬리Ⅱ>를 다시 끄집어내는가 하면, 강은석 감독이 <한반도>를 영화화하겠다고 발표한 것.


“그 정도면 내가 결정할 건 더 없죠?”

“대작 영화는 2005년 라인업까지 완성된 것 같아요.”

“독립영화전문 배급사를 자회사로 만드는 안건은 어떻게 됐어요?”

“독립영화계에서 너무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어요. 한국영화를 다 먹으려고 하냐면서...”

“관둬요, 그럼. 대신에 <집으로> 같은 프로젝트를 좀 더 늘려보죠.”

“소소하지만 대중적인 영화 말이죠?”

“예.”


독립영화만이 다양성 영화가 아니다.

관객입장에서는 독립영화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영화나 그 보다 조금 낮은 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들에서 진정한 다양성이 발굴된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 혹은 그 이하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대중의 기호를 잘 파악해서 마케팅만 받쳐주면 손익분기점을 얼추 맞출 수가 있다.

손해를 보지 않게 된 제작사는 꾸준히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발굴해 영화를 내놓게 된다.

트라이-스텔라 엔터테인먼트는 스무 개 가까운 제휴영화를 통해 1억 달러짜리 텐트폴 영화도 수급 받고 할리우드 영화 평균제작비로 만들어지는 영화도 수급 받고 있다.

때로는 1,000만 달러 미만의 저예산영화도 투자배급한다.

비즈니스 면에서는 리스크 관리지만, 대중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전 삶에서 한국영화는 중간 예산의 영화가 점차 씨가 말라갔다.

고예산 영화 아니면 저예산 영화중에서 관객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그 같은 풍토가 한국영화산업을 망친 걸 뻔히 알고 있는 류지호로서는 같은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집으로>, <가족의 탄생>, <짝패> 같이 한국영화평균제작비에 못 미치지만 정확히 타깃층을 공략하는 영화들에 투자해서 한국영화 선택폭을 꾸준히 유지시킬 작정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결과적으로 투자를 철회한 것이 다행이었어요.”


류지호가 알기로 아직 개봉을 안 했다.

그런데 부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벌써 소문이 돌아요?”

“손익분기점이 대략 100만인데... 내부 시사를 본 사람들 말 들어보니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하네요.”


<지구를 지켜라>는 <살인의 추억> 포함해서 세 편의 패키지로 WaW 엔터테인트에 들어왔었다.

전하영 부사장은 <지구를 지켜라> 예산을 20억 미만으로 낮춰서 다시 책정할 것을 요구했다.

B급 감성 충만한 저예산 영화로 제작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아스트로 픽처스는 이를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BS E&M으로 프로젝트를 가져가 33억 원이란 큰돈을 제작비로 썼다.


“나중에 차 대표 만나면 마케팅에 멋 부리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멋이요?“

“선댄스에 어울릴 법한 영화를 칸영화제용이라고 자랑하면 쫄딱 망합니다. 초창기 고언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 같은 골 때리는 영화 같은 톤으로 밀어붙여야지 어설프게 멋 부리다가는 관객들한테 욕먹을 겁니다.”


이전 삶에서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 마케팅 실패 사례로 늘 언급되던 영화였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7만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는데, 류지호도 그 숫자에 포함된다.

류지호는 정말 재밌게 본 영화다.

영화에는 ‘저주 받은 걸작‘이란 딱지가 감독에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이 촉망받는 신인감독은 무려 9년 동안 상업영화를 못 찍었다.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데뷔작품의 흥행실패로 커리어가 꼬여버린 케이스다.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도록 GOM이 도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왜요?”

“제2, 제3의 장 감독 같은 신인들이 나오면 좋잖아요. 충무로를 위해서.”


전하영 부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알기로 류지호는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감독과 인연이 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잘되길 바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 갑자기 꽂히는 영화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편 정도는 라인업에 여유를 둬 주세요.”

“물론이죠. 누가 감히 감독님이 콕 짚은 영화에 태클을 걸겠어요.”


이제 와서는 트라이-스텔라에서도 영화선택권리를 잘 사용 안하고 있다.

알아서 잘 돌아가고 있기도 했고, 류지호가 점찍은 영화에 온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총력으로 싸움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라인업에도 가급적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남들이 쉽게 못하는 소재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프로젝트에만 관여하고 있다.


“난 갑니다. 고생하세요.”

“출국 전에 꼭 문 감독 만나보시구요.”


이번에 출국하면 올해는 더는 한국에 들어올 일이 없다.

과거에는 떠들썩하게 모두가 몰려와서 배웅하기 바빴다.

이젠 안 그런다.

류지호는 조용히 WaW 픽처스를 나와 최근에 인수합병한 KMTV로 이동했다.


❉ ❉ ❉


신포고 방송부 출신 중에는 지상파에서 PD가 된 이들이 있다.

류지호는 MBS에서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하재근과 KBC에서 드라마 PD를 하던 한수호를 다솜방송으로 데리고 왔다.

이 당시만 해도 한국의 지상파 방송국에서 제아무리 흥행 PD라고 해도 SKY 출신이 아니면 국장까지 출세 절대 못한다.

서울대가 다 해먹는 곳 중에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 지상파 방송국이다.

어차피 지상파에서 몇 년 구르다가 외주제작사로 빠질 것이라면 다솜방송에서 역량을 발휘하다가 독립하는 편이 류지호가 챙기기도 좋았다.

암튼 다솜방송에 인수된 음악채널 KMTV 임직원들이 불안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류지호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말단직원까지 만나서 다독였다.


“리얼리티 쇼 말씀이십니까?”


KMTV의 프로듀서들이 깜짝 놀라서 반문했다.


“다솜에서 영국의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Pop Idol' 포맷을 구입했어요. 한국에서 유일한 포맷 저작권자로 ‘Pop Idol' 제작진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한국판을 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텐데....”


스튜디오에서 음악 프로그램 찍듯이 할 수 없는 것이 리얼리티 오디션이다.

예선부터 결선 공연까지.

시청률을 따지기 전에 협찬과 스폰서 계약을 따내지 못한다면 시작도 못하는 포맷이다.


“당연히 PPL을 많이 받아야 할 겁니다.”


KMTV 임원들이 우려를 표했다.


“인기스타가 나오지 않는 아마추어 노래자랑에 스폰서가 붙을지.....”

“솔직히 말씀드려 광고가 붙을지 모르겠습니다.”

“SBC의 <영재육성 프로젝트 99%의 도전> 시청률이 꽤 잘나온 것으로 압니다만?”


영재선발 프로그램의 원조 격인 프로그램으로 선발 영재는 삼대 기획사에 한 곳인 THe 엔터에 연습생으로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제작비는 걱정 마세요. 내 사비를 털어서라도 투자할 테니까.”

“.....!”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지금까지 류지호는 무모하다고 했던 많은 투자를 밀어붙였다.

민간 종합촬영소를 건설하는가 하면, 미국의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까지 인수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깟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비에 쩨쩨하게 굴 것 같지 않았다.


“무주 리조트가 가온그룹 계열인 건 압니까?”

“예....”

“작년부터 그곳에서 락 페스티벌을 열고 있는 것도 당연히 알죠?”

“.....예”

“작년에는 다솜방송이 소유한 채널들이 나눠서 공연실황을 내보냈지요. 이제 음악채널이 생겼네요. 작년처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독점으로 내보낼 수 있는 겁니까?”

“공중파나 다른 케이블 채널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선권은 KM에 있겠죠.”

“저희도 방송을 하려고 했습니다만 회사 사정이 어려워 따내지 못했습니다.”

“잘 됐네요. 올해 공연팀들의 윤곽이 나왔을 겁니다.”

“무주리조트 측과 논의하면 되는 겁니까?”

“공연기획과 개최 쪽으로는 매니지먼트 CHAN이 메인이에요. 거기와 논의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2년만 기존 스튜디오를 사용하면 될 겁니다.”

“혹시 저희도 성수동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현재 성수동에 다솜방송 신사옥이 한창 지어지고 있다.


“성수동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음악 방송이 주로 제작되지 않을까 싶은데... 자세한 것은 다솜방송 사장에게 물어보세요.”

“예!”


그 외에도 버스킹, 가수를 중심으로 한 선행 프로젝트, 비보이 페스티벌,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댄스강좌 등.

류지호는 생각나는 대로 리얼리티 쇼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채택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KMTV측에 달려있다.


“타이틀을 변경했다고요?”

“미드와 혼동이 있을 것 같아서 바꿨습니다.”


DCN에서 방영될 인천 유니버스의 첫 드라마 <25>가 제목을 <응급실>로 변경했다.

트라이-스텔라TV가 방영하고 있는 <24>가 연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여담으로 2001년부터 방영된 드라마 <24>는 한 시즌이 2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한 편의 에피소드는 정확히 60분이다.

이전 삶에서 PARKsTV가 방영할 때 실질적인 러닝타임은 45분이었다.

트라이-스텔라TV가 러닝타임을 꽉 채울 수 있는 것은 중간광고가 없는 프리미엄 채널이기 때문이다.

중간 광고 시간에 실제 드라마 속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연출할 필요 없이, 60분을 논스톱으로 전개할 수가 있었다.

TV시리즈 <24>는 첫 시즌 초대박까지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와 준 덕분에 두 번째 시즌을 제작할 수가 있었다.

시즌2부터 시청률이 폭발했다.

한국에서는 다솜방송 계열의 DCN에서 작년 첫 시즌을 방영했다.

미국 방영과 1년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그로인해 일명 ‘복돌이’가 판을 치지 않아서 시청률은 꽤 나오는 편이다.


“압도적입니다.”


이호준 다솜방송 사장 말대로다.

영화채널과 E-스포츠 채널의 시청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러니 독과점 어쩌고 소리가 나올 수밖에.”


한국 케이블TV에서 유료채널까지 포함해 다섯 개 영화채널 가운데 단연 DCN의 시청률이 압도적이다.

트라이-스텔라의 영화뿐만 아니라, <CSI>, <24> 등 인기 미드를 독점 방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이-스텔라TV 드라마를 방영하는 시간대는 공중파와 경쟁을 벌일 정도입니다.”

“공중파와 방영권을 두고 과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요?”

“다소 과한 가격이란 걸 다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시청자를 불러 모으는 것이 중요한 방송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를 사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트라이-스텔라TV 드라마는 제작비를 대는 한이 있더라도 미리 확보하세요. 그래야 DCN 자체 제작 드라마로 시청자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자체 드라마 방영 편성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습니다.”


사실 드라마 완성도보다 언론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은 케이블 채널이 지상파와 경쟁해서 유의미한 시청률을 기록하기 쉽지 않은 시기다.

KBC 일일 드라마의 시청률이 무려 40%대를 찍고 있다.

이 시기에는 케이블TV 시청률이 1%를 넘어가면 지상파 10% 넘긴 것과 맞먹는다며 떠들었다.

전체 시청량 3시간 중 지상파는 2시간 23분, 케이블TV는 16분으로 매체 간 시청량에 있어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가온경제연구소에서 내는 영상미디어 산업 분석 리포트 건성으로 보지 마세요.”

“....예.”


다솜방송 임원들의 대답이 뜨뜻미지근했다.

영상미디어 산업을 분석하는 시각이 1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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