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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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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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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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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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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그리워서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120분 동안 진행된 류지호의 특강이 끝났다.

이후로 마련된 영화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한국영화 영향력 설문조사 결과가 가장 먼저 거론되었다.


“한국에서 영화사를 운영하면서 신경 썼던 것은 제작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WaW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영화 편수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기획피디를 모아서 제휴영화사로 묶은 것이 중요했죠.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하는 방식을 변형해서 도입한 겁니다. 안정적인 투자를 장기적으로 가져가면서 프리프로덕션 시스템 정착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 당시에는 반발도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설득하셨습니까?

“투자가 안정되어도 프리프로덕션이 가능하려면 일단 시나리오가 완벽해야 합니다. 시나리오가 완벽하면 그만큼 촬영 시간도 줄일 수 있고, 결국 제작비 절감효과를 거둘 수 있거든요. 할리우드 대작들이 다섯 달 사이에 촬영을 마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죠. WaW에서는 감독과 스태프의 마인드를 바꾸는 일부터 했는데, 본의 아니게 동료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준 셈이죠. 하지만 제작비 공급이 안정적으로 되니까 선순환이 이뤄졌어요. 프리 기간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들어가고, 시나리오 작업료도 올리고 하다 보니... 다른 투자배급사들이 그러지 말라고 만류했지요. 충무로 제작비 여건상 우리가 책정하는 프리 비용이 말도 안 되는 금액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우리는 제휴영화사들과 함께 프로덕션 비용을 조금씩 줄여나갈 수 있었습니다. 흔히 길바닥에 버리는 돈이라는 인식이 있던 진행비를 상당부분 절약한 거죠.”

- 선순환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인데요. 투자-제작-배급의 수직계열화를 선도한 것이 WaW입니다.

“WaW는 처음 투자사로 영화계에 진입해서, 배급으로 또 자체제작으로 영역을 넓혔죠. 사실 배급을 시작할 때 포트폴리오를 짤 수 없을 정도로 영화가 모자랐어요. 최소 1년에 12편에 투자·제작·배급 라인업을 짤 수 있어야 불확실성이 큰 영화사업에서 리스크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봤어요. 참고로 미국에서 트라이-스텔라를 인수했을 때 최소 포트폴리오 영화 편수가 20편이었어요.”

- 지금도 트라이-스텔라는 20편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매년 변동은 있지만, 최근에는 30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 굉장하네요.

“ParaMax는 최대 50편까지 배급하고 있어요. 물론 독립영화와 수입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 WaW의 일 년 라인업이 서른 편인 것으로 아는데, 변동이 있었습니까?


외화 수입·배급까지 포함하면 25편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부분은 WaW에 물어보는 게 정확할 겁니다.”

- 가온그룹 계열의 GOM이 북미의 대형 극장체인을 인수·합병했습니다.

“그 사안 역시 관련 비즈니스를 지휘한 오동석 대표에게 듣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든 성과를 류지호가 빨아들여서는 곤란했다.

오동석이 한국 영화 업계에서 거물이 되려면, 중심에서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


- 가온그룹은 미디어 사업 부문에서도 확장 속도가 눈부십니다. 얼마 전 대형 SO를 인수합병한데 이어 송출대행사업까지 진출했습니다. 그 결과로 매각대상이 된 SO와 PP업체 종사자들이 업무중첩 해소를 위한 인력감축의 희생양이 될 처지에 놓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

- 특히 매각대상 PP들은 지난 95년 케이블TV 출범과 함께 개국한 1차 PP가 대다수라서 케이블TV의 기반을 닦은 공로자들이 대거 업계를 떠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이때다 싶어 케이블TV 사업에서 가온그룹의 폭정을 들춰내려했다.


- KMTV의 한 관계자는 매각과정에서 상당수의 인력들이 퇴직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말도 하더군요.

- 경영사정 자체가 좋지 못한 매각 기업들은 노조조차 결성돼있지 않아 종사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류지호는 한국의 기자들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10대 그룹 회장에게는 감히 저 따위 질문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류지호에게는 거리낌 없이 한다.

류지호가 열린 마음과 태도로 기자를 상대해서?

만만해서?

아니다.

제일신문을 비롯해 주요 한국의 일간지 최대주주가 대기업이다.

케이블TV 사업에 진출해 있다.

류지호를 난처하게 만들어서 업계에서 입지를 줄이려는 수작질이 숨어 있는 것이다.

암튼 최근 케이블업계의 지각변동으로 인해 프로그램 공급업체인 PP뿐 아니라 SO도 사정이 썩 좋지 못했다.

일부 대형 SO들의 경우 고용승계를 놓고 큰 갈등을 겪고 있다.

대형 MSO가 공격적인 인수합병 가속이 붙으면서 심화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서울지역 2위 MSO인 다솜의 경우 지금까지 합병과정에서 고용승계를 정확히 실행한 것으로 아는데, 기자분들은 다르게 알고 있나 봅니다?”

- ......

“나는 지금까지 기업을 인수하면서 기존 인원을 해고하기보다는 재교육을 통해 순환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임금수준에 있어서도 합병된 기업의 인력에 불이익이 없도록 동등수준을 유지해오고 있지요.”

- 그럼에도 구조조정이 없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케이블업계는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합니다.”

- .....

“그런데 여러분이 알지 모르지만, 이 업계에는 사람이 귀해요. 뉴미디어 전문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키워낸 사람마저도 업계를 떠난다면 얼마나 손실이 크겠습니까?”


더 하다간 류지호에게 말릴 수가 있어 기자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 독과점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백원일보 석 기자님이시죠. 매번 기사는 잘 보고 있습니다.”


석진규가 움찔했다.

대놓고 자신의 이름을 거론할 줄 몰랐다.

그는 최근 ‘한국의 대중문화를 좌지우지하는 가온그룹은 누가 통제하냐’는 기사를 가장한 비난 칼럼을 싸지른 적이 있었다.

백원일보는 누가 통제하냐고 되묻는 댓글이 무수히 많이 달린 바 있다.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케이블TV 분야에서 다솜은 2위와 3위를 오가고 있습니다. 채널 숫자는 올미디어가 독보적인 1위고, BS미디어와 다솜이 2위권을 형성하고 있지요. 가입자 수 또한 다솜은 올 해 처음 2위로 도약했습니다. BS미디어를 위시해 경쟁기업들의 인수합병 움직임도 활발하고요. 영화 부문에서도 WaW가 종합촬영소나 인프라 투자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크기에 자꾸 현혹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WaW의 시장 점유율은 40% 중반 대를 한 번 찍은 이후로 37%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공정거래법에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지요. 앞으로도 다른 메이저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점유율은 더 떨어질 겁니다.”


류지호가 쉬지 않고 길게 이야기를 하자, 김민아가 무대에 올라와 생수를 건넸다.


“고마워요.“


김민아가 건네준 생수를 한 모금 마신 류지호가 말을 이었다.


“WaW는 첫 영화 <하얀전쟁>에 투자를 진행하면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10년 동안 인프라 구축에 매달렸죠. 어느 정도 기본적인 인프라가 갖춰졌다는 판단 아래 다음 단계로 충무로의 우수한 인적 자원들이 어떻게 산업 안에서 창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입니다. 케이블TV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업계에 들어와 있는 대기업들이 지상파에 대항할만한 콘텐츠 개발에는 미온적입니다. 왜냐, 자본이 많이 소요되는데 반해 수익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다솜은 어떻게 하고 있지요?”


당당하게 지상파에 도전장을 내민 것도 다솜이고, 실제 자체제작 콘텐츠를 시청률과 상관없이 꾸준히 내보내는 것도 다솜이다.


“올 하반기부터 자체 제작한 드라마가 방영되기 시작합니다. 다솜은 스포츠 중계와 E-스포츠 중계만으로도 안정적으로 운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버라이어티, 드라마, 음악 채널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도전과 독점을 부디 혼동하지 말아주십시오.”

- 개혁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 개혁이요? 제가 잘 못 들었나요?

- 영화계와 유선방송업계가 미처 쫒아가지 못할 정도로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시는데....

“나는 충무로를 개혁하지 않습니다. 내가 뭐라고 감히 영화계를 개혁을 합니까?”

-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

“뭔가 오해하시고 있으시네요. 영화사업과 미디어사업 분야에서 우리는 고유의 기업문화를 찾고 있습니다. 충무로의 정과 의리 그런 문화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아우를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있는 과정일 뿐입니다. 한국 영화의 개혁이니 그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WaW가 메이저 체급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영화계 일부가 혼란을 겪을 수는 있지만, 가온은 한국 대중문화에 있어서 조금 앞서 나가고 있을 뿐, 메이저라는 지위를 이용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 성폭력피해신고 센터를 운영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백원일보의 석진규다.


“어디서요? 가온에요?”

- 가온그룹 비서실 직속으로 설치했다고 들었습니다.

“글쎄요.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아마 WaW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 현장의 스태프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와전된 것 같네요. 공식적으로 성폭력피해신고 센터라는 건 없습니다.”


전하영 부사장의 비서실에서 성폭력피해사례를 수집하고 있긴 했다.

남성에 의한 여성의 피해뿐만 아니라 동성 간 성비위에 대해 피해사례를 모으고 있다.

피해자는 다온로펌과 연결시켜줘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도다.

제 발로 찾아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스태프는 없다.

그 사실이 충무로에 알려지게 되면, 업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계가 혹은 사회가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피해자가 도리어 욕먹는 이상한 구조가 만연했다.


- 감독님은 좌파십니까? 우파는 아니죠?


또 석진규다.


“영화파입니다.”

- 현 집권당을 지지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 고유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습니까?

“하면 안 됩니까?”

- 그럼 좌파네요. 뭘.


기자가 정치적 성향을 묻고 앉아있다.

백원일보 정도면 꽤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이 입사할 텐데, 어쩌다 천박한 정치 골통이 되었는지.


“내가 빨갱이면 왜 한국전쟁 참전용사회에 매년 지원금을 보내고 재항군인회 같은 단체에 기부를 하겠습니까?”

- ......

“석 기자님. 언론이 제 입맛대로 여론을 조절하면 그런 언론은 누가 통제합니까?”


류지호가 석진규가 칼럼을 통해 던졌던 질문을 똑같이 돌려줬다.


“자, 오늘 간담회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도록 하죠.”


김민아가 얼른 썰렁해진 분위기를 수습했다.


“장시간 인터뷰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류지호가 기자들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감독님도 고생하셨어요.”


류지호는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마주한 석진규.


“기자님, 세상에는 검은색과 흰색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이 얼마나 총천연색입니까? 또 오른쪽과 왼쪽만 있지도 않잖아요. 뒤도 있고 앞도 있고 아래도 있고.... 위도 있습니다.”

- 아, 예... 고생하셨습니다.


류지호는 떨떠름한 표정의 석진규에게 미소를 보여주고 지나쳐갔다.

이 사회는 편을 나눠야 먹고 사는 직업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과 언론인이다.

세상에 갈등이 없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 같지만, 그렇진 않다.

어쩌면 가장 늦게 사라질 직업일지 몰랐다.

류지호가 투덜거렸다.


“재미없네.”


김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언제는 영화기자들하고 이야기하는 게 재밌다면서?”

“홍보 때문에 주로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눴잖아. 오늘은 온통 비즈니스 질문뿐이니까.”

“귀찮다 귀찮다 하면서도 잘도 대기업을 키웠다?”

“내가 키운 거 아냐. 알아서 지가 큰 거지.”

“그렇다고 쳐.”


류지호가 김민아의 배를 힐긋 보고 물었다.


“일은 잠시 내려놓지.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김민아가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직 괜찮아.”

“그래도 조심해.”

“응.”


김민아는 현재 임신 중이다.

혼전임신이라 김민아와 고우찬 양가에서 난리가 날 줄 알았다.

완전 정반대다.

축제분위기다.

급하게 혼례를 치르기로 했다.

어릴 때 약속대로 웨딩포토는 김준우가, 사회는 황재정이, 웨딩비디오는 류지호가 맡기로 했다.


“우찬이도 가고~ 준우도 가고~ 재정이는... 안 가고~”


김준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귄 신소연과 가을에 결혼하기로 했고, 류지호는 레오나와 비밀 연애 중이다.

황재정만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조차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너는?”

“언젠가 가겠지.”

“어머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시더라. 너도 얼른 짝 찾아봐. 언제까지 독수리공방 할래?”

“됐네. 이 사람아~ 이제 서울로 올라가.”

“넌?”

“난 시사실에서 편집본 확인하고 올라가려고.”

“고생이 많다.”


김민아를 배웅한 류지호가 시사실로 향했다.

시사실에는 박건호 대표, 전하영 총괄 피디, 배창훈 감독, 편집기사, 사운드 디자이너, 포스트프로덕션 슈퍼바이저가 모여 있다.

모두 <퇴마기록> 최종편의 내부시사를 보기 위해 모인 관계자들이다.


“고생하셨어요.”

“시원섭섭해.”


배창훈 감독은 3편의 연출을 맡지 않겠다고 했었다.

결국 마음을 고쳐먹고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팟!


극장불이 모두 꺼졌다.

길고 길었던 <퇴마기록> 실사화의 최종장이다.

가믹싱조차 되지 않은 대사만 들어가 있는 편집본이다.

일반인이 보면 지루해서 못 견딜 수도 있다.

일반인이 봐도 재밌는 최종편집본이라면 완성된 영화는 무조건 대박이다.

암튼 1998년 ‘하늘이 불타던 날’을 베이스로 해서 제작된 <퇴마기록> 실사화가 최초로 공개되어 서울 기준 124만 명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뒀다.

2001년에 개봉되어 전국 410만 명을 동원해 대성공을 거둔바 있는 후속편은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존재와 주술이 교차하는 ‘생명의 나무’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박진감 넘치는 대결을 선보여 도시 판타지의 새로운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서양 판타지에 한국 고유의 것들을 과하지 않게 잘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2편 모두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전 세계적으로 쏠쏠한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각종 부가시장에서 훌륭한 판매고를 올린 바가 있다.

권선징악이란 단순한 주제에 네 명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잘 녹여냄으로써 인간애, 선과 악, 정의에 대한 메시지를 전편에 걸쳐 깔았다.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풍부한 볼거리와 어두운 톤에서도 간간이 터지는 코믹코드들이 자칫 진지할 것만 같은 영화의 강약을 잘 조절했다.

그리고 올 가을에 공개될 시리즈의 마지막.

‘초치검의 비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한일 간 갈등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탄생-각성 단계를 거쳐 온 네 명의 주인공들이 비로소 성장한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소설원작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일일이 기록하면서 읽지 않는 이상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다.

배창훈 감독과 작가들이 가장 고생한 부분은 어떻게 원작에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골라내고, 수많은 캐릭터들을 융합할 지였다.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다는 점도 문제였다.

WaW는 아시아 시장을 대상으로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입장이다.

우리 민족 최고, 일본 놈은 무조건 나쁜 놈.

노골적인 주장은 곤란했다.

원작은 지나치게 유사역사관이 진하게 풍겼다.

그것부터 걷어냈다.

일본인이 악당으로 묘사되는 것은 문제없다.

과제는 악당의 논리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일본 우익세력의 역사왜곡을 바로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기본적인 것만 원작에서 가져왔다.

주된 갈등은 종교를 빙자한 개인의 욕망과 삐뚤어진 가치관에 초점을 맞췄다.

거기에 현대 일본 우익세력의 반사회적인 신념을 양념처럼 버무렸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한반도의 화해무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국에서 암약하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의 뿌리 역시 오래 되었다.

가장 가깝게는 일제강점기 총독부에 파견된 일본의 주술사 집단이란 설정이다.

70여 년 전, 조선인들을 제물로 인신공양하며 못 된 짓을 일삼던 일본 주술사 집단이 조선의 주술사에게 혼쭐이 난다.

이 일로 일본의 주술사 집단은 조선의 주술사들에게 겁을 먹는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조선 주술사들의 명맥을 끊어버리고자 한다.

조선의 지맥에 말뚝을 박는데 혈안이 된다.

시간이 흘러 그 후손들은 일본 극우세력을 암중에서 조종하며 한반도에 불고 있는 화해무드와 훈풍을 방해하고자 한다.

임진왜란 때 자결한 왜병들이 묻힌 곳에 설치된 봉인을 비밀리에 파괴하고, 왜병들이 죽음에서 돌아와 한국 땅에서 난리를 쳐댄다.

거기에 한국의 친일세력이 부화뇌동하며 설쳐댄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무슨 파니 세력이니 하는 주술사 무리들은 저마다의 욕망과 문제 해결 방식이 다르게 표출된다.

반면에 주인공들은 전편부터 이어 온 휴머니즘에 입각해 중심을 잃지 않는다.

더욱 성숙하게 올바른 행동을 취한다.

퇴마사 주인공들은 현실에 없는 비현실적인 존재에 대항해 맞서 싸우는 영웅이지만, 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둠에 가려진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의 보호자다.

악의 찬 영혼.

귀신.

마귀.

부정한 모든 것을 불러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퇴마사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없는 능력을 사용하고 때로는 수호하는 신의 힘을 빌리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의지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의지, 사람의 도리, 사람의 선한 마음이다.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인간임을 잃지 말자는 것.

영화를 기획한 류지호가 영화에서 전하고자 하는 숨겨진 메시지다.

단군을 내세우며 평범한 사람 혹은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주술사를 향해 현암이 일갈한다.


[단군도 사람이었습니다!]


<퇴마기록> 실사영화는 명백히 영웅담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은 완벽하지 않은 한 명의 연약한 사람이다.

그들은 소중한 걸 상실했고, 심리적으로 흔들렸으며, 자신의 능력을 능숙하게 뽐내지도 못한다.

머리는 똑똑한데 신체적으로 허약하다거나, 신체적으로 뛰어난데 이해력은 다소 부족하다거나, 잘난 면이 있으면 못난 면도 있고,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보통 사람들처럼 외롭다.

그렇기에 가족애, 우정, 사랑, 희생 등의 가치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퇴마기록>은 기본적으로 팀업 무비다.

비록 초월적인 주술과 무공을 구사한다고 해도 변함없는 사실은 그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길 포기한 악당 혹은 악의로 가득 찬 존재를 불러내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다.

바로 협동과 연대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난무하는 현실 세상에서 관객들이 여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결국 사람이고 연대다.

어쨌든, <퇴마기록> 시리즈는 한국영화 CGI 기술 발전의 척도다.

<퇴마기록>시리즈에서 해내지 못하는 기술은 충무로 어떤 영화에서도 못한다.


‘화려한 CG보다 중요한 건 이야기와 캐릭터지....!’


<퇴마기록> 최종편에는 세계편에 대한 어떠한 복선이나 암시가 없다.

시리즈의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편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아역배우가 청소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인 연기자들의 몸값이 비약적으로 오른 것도 한몫하고 있다.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그에 상응하는 퀄리티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감독도 교체해야 한다.

해외 로케이션에 대한 충무로 스태프의 경험치도 부족했다.

제작비 상승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작비 회수를 위해서는 한국영화 시장도 더 커져야 한다.

프로덕션 및 후반작업 인프라 역시 좀 더 강화되어야 하고.

여러 이유들로 인해 <퇴마기록> 세계편 제작은 유보되었다.

배창훈 감독이 영화시사가 끝나자마자 득달같이 물었다.


“류 감독, 어떻게 봤어?”

“나쁘지 않네요.”

“건호 형님은 어때요?”

“잘 봤어요. 고생했어요.”

“전 피디는?”

“감독님, 클라이맥스 직전에 조금 늘어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즉석에서 토론의 장이 열렸다.

류지호는 딱히 대화에 끼어들진 않았다.

편집본 시사는 아무나 볼 수 없다.

배창훈 감독 정도 되면 완성되기 전 영화를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WaW 수뇌부에겐 편집본도 스스럼없이 공개했다.

투자·제작사라고 해서 무턱대고 수정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 미심쩍어 하는 부분만 골라서 함께 해결 방안을 고민해 준다.

의견이 조정이 안 될 경우에 찾는 사람이 류지호다.

류지호는 주로 감독 편을 들어주는 편인데, 트라이-스텔라 픽처스 시절부터 그 기조는 변하지 않고 있다.

모리스 메타보이를 비롯해 임원들이 극렬히 저항하며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다.

때로는 영화를 놓고 편을 들어주는 것이 바뀔 때도 있다.

그런 면에서 류지호와 메타보이 회장은 쿵짝이 잘 맞았다.

일종의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역할 분담이라고 할까.


“<퇴마기록> 마치고, 하고 싶다는 영화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배창훈 감독은 약속대로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찍기로 했다.


 “이십년 넘게 무거운 모루를 지고 각지의 장터를 떠도는 대장장이 이야기야. 대장장이가 우연히 여자아이를 만나는데, 원수 같은 놈의 딸임을 알게 되고,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게 되지.”


류지호도 잘 아는 영화다.

등 뒤에 무거운 모루를 지고 쉼 없이 산천을 떠도는 장돌뱅이이자 자존심강한 대장장이.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우리 모두인 동시에 끊임없이 다음 작품으로 나아가야 하는, 그리고 창작의지를 고집 세게 주장하는 장인으로서의 배창훈 감독 자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시나리오 빠지면, 제게 보내세요. 창작집단 작가들에게 피드백도 받고 윤색도 맡기게요.”

“미국 들어가자마자 영화 촬영 들어가는 거 아니었나?”

“감독님이 다이렉트로 김윤희 작가에게 보내시던가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는 미국에서 찍는 영화에 집중하도록 해.”

“밥이나 먹으러 가요. 감독님은 차 가지고 오셨어요?”

“전 피디 차 타고 왔어.”

“저와 함께 가요. 가면서 영화 얘기 좀 하죠.”


서울로 향하며 나눈 이야기는 <퇴마기록>이 아니었다.

배창훈 감독의 차기작 <길>이었다.

이전 삶에서는 저예산 영화로 제작될 수밖에 없어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감독 본인이 직접 주인공 역할을 맡았다.

류지호가 개입한 이상 모든 면에서 여건이 달라질 터.

배창훈 감독 본인보다 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대학로에서 수십 년을 구르고 있는 창작자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중견 연극배우도 많았다.

당장 김영찬 배우를 캐스팅해도 꽤나 훌륭한 연기를 선보일 터.


“<안녕하세요 하나님>이후로 대충 16년 만에 로드 무비네요?”

“내 영화들이 이를테면 다 일련의 여정 아니겠나?”

“영화감독의 길에서 일찍 마침표는 찍지 말아주세요. 비록 장르영화를 연출하게 되더라도요.”

“자네 말만 잘 들으면, 내가 찍고 싶은 영화 계속 찍게 해 줄 거야?”

“에너지가 고갈 되지 않는 한이요.”

“자네는 왜 그렇게 치열하게 영화를 못 찍어서 안달이야?”

“그리워서요.”


배창훈 감독이 동감한다는 듯 껄껄 웃었다.


“그렇지. 그립지 그리워!”


영화쟁이들은 자신의 의지로는 이 바닥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설사 떠났다고 해도 매일매일 그리워한다.

이까짓 더럽고 치사하고 서러운 영화판이 대체 뭐라고.....


[잊기 위해서 걷고, 그리워서 또 걷습니다.]


영화쟁이의 삶이 그렇다.

영화 <길>의 홍보 카피처럼.....


작가의말

새로운 한 주 활기차게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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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7

  • 작성자
    Lv.99 Under85
    작성일
    23.07.03 09:14
    No. 1

    중간에 김만아로 되어있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트뤼포
    작성일
    23.07.04 12:58
    No. 2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레이군
    작성일
    23.07.03 09:51
    No. 3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07.03 09:58
    No. 4

    오늘 덥네요 너무 덥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7.03 10:59
    No. 5

    일제시대때 말뚝이 풍수지리적으로 한국의 정기훼손시킨다고 어릴적 선생님이 가르치던 생각하면 ... 가짜에 많이들 세뇌당했었죠.
    실제는 광산개발하는 사람들이 말뚝박은거라고 몇년전에 알았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7.03 17:04
    No. 6

    잘 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7.03 19:04
    No. 7

    전에 알던 일들을 가짜뉴스 로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맕뚝이야기 MSG 마가린의 유해성 홍길동의 탐관오리설등 많은 이야기가 변형되서 돌아 다닙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에서는 사실을 사실이다 말해도
    명예 회손이 됩니다. 언제 만든건지 어느세 만들어서
    국민들의 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일본도 방사선의 유해성을 말하면 최고 30년 형까지
    가능한 법을 만들 었습니다.
    태국과 터키는 국왐과 지도자의 명예를
    회손하면 30년 형을 줄수 있습니다.
    점점 세상이 미쳐가는 모양 입니다.

    찬성: 3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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