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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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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작성
20.08.1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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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Re 78. 양동 작전 3

DUMMY

뱀이 문득 하늘에 뜬 달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내 고향은 저긴 것 같아." 쓸쓸한 먼지가 고독하게 나부끼는 사막 땅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렇게 황량한 곳이 내 고향일 리 없잖아? 태어나긴 여기서 태어났어도."


뱀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모래 언덕을 찾아다녔다. 달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사막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에 올라야 했으니까.


뱀이 입맛을 다시며 벌레들에게 물었다.


"사막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어딘지 아니?"


벌레들은 모른다고 했다. 뱀은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뱀이 으르렁거리며 새들에게 물었다.


"사막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어딘지 봐줄 수 있니?"


새들은 바빠서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뱀은 새들을 잡아먹었다.


뱀이 조심스럽게 여우들에게 물었다.


"사막에서 제일 높은 언덕으로 데려가 줄 수 있겠니?"


여우들은 콧방귀를 뀌며 싫다고 했다. 뱀은 여우들을 잡아먹었다.


뱀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사막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 어딘지 영영 알 수 없었다.


- 『해는 서쪽에서 뜨고 달은 사막에 진다』 중에서 발췌.



01.

그곳에 있는 건 은발의 머리를 한 노인이었다. 스스로 있어야 할 곳으로 어둠이 공손하게 물러간 자리에 노인이 홀로 서 있었다.


모든 등불이 꺼져 있었는데도 노인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달빛이 스며든 듯 은은한 빛이 가득 채웠다. 마드와 유마의 눈을 사로잡았던 파란빛도 여전히 공기 중을 부유했다.


마드와 유마는 알지 못했지만 사령소 1층은 여전히 어두컴컴했다. 오늘따라 힘이 없는 달은 사령소 안까지 빛을 던져 놓지 못했다. 마치 노인이 닥치고 물러서라고 명령한 듯 달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멀거니 물러나 있었다.


"거기 멀찍이 서 있을 텐가? 이리 오시게. 내 나이쯤 되면 눈이 영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네."


노인의 목소리는 물이었다. 찐득찐득할 정도로 점도 높은 물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비 내린 모래 구덩이에 발을 내디뎠을 때처럼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저 듣기만 했는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마드와 유마는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그의 권유는 달콤하고 정중했으나 그들은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마드와 유마는 노인에게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노인이 씩 웃었다.


"허허. 갑작스럽게 등장했더니 잔뜩 긴장한 모양이군. 이 친구들처럼 말이야."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슥 훑어본 곳에는 계엄군 병사들이 완전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끔뻑 끔뻑거리며 오도카니 서 있을 뿐이었다. 병사 하나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입이 천천히 벌어졌고 이윽고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노인이 그 모습을 유쾌하게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어 줄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자네들은 이렇게 되지 않을 걸세. 자자, 이리 오래도. 밤은 길지만 우리의 만남에 무한정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노인이 오른손을 들어 (그가 손을 드는 순간 마드와 유마는 숨이 멎을 뻔했다) 손가락을 튕겼다.


경쾌한 소리가 공기를 갈랐고 그 순간 마드와 유마는 누군가 등을 떠민 것처럼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마드는 겨우 입을 뗄 수 있게 되었다.


"...... 노, 노인장은 누구십니까?"


노인이 흐뭇하게 웃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사막의 그 어떤 것보다 가치롭고 불길한 황금색 빛이 가늘게 뜬 눈으로 슬렁슬렁 흘러나왔다.


"당연한 질문이지. 그거야 첫 질문으로 완벽하리만큼 정형화되어 있고 옳은 질문이야. 그런데 재미는 좀 없군. 아무래도 그 사내처럼 할 수는 없는 모양이야."


노인이 빙그레 웃었다. 길게 찢어진 그의 입을 보며 마드는 곧 입 밖으로 뱀처럼 갈라진 혀가 밀려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대답은 해주어야겠지. 나는 자네들을 도우러 온 사람일세."


노인의 눈이 다시금 빛났다.



02.

사자의 사선으로 들어선 가장 첫 병사는 행운아였다. 아니 사실 그들 모두가 행운을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곧 턱이 사정없이 돌아가고 뇌진탕과 운 나쁜 친구는 몸 어딘가 부서질 운명이었지만 그래도 행운이었다. 사자에게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칼의 뒤를 따라 세이마르로 말을 달릴 때까지만 해도 사자에게는 무기가 있었다. 유마가 건넨 나이프였다.


"당신이 무지막지, 어마어마하게 쎄다는 건 척 봐도 알겠는데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적진에 잠입하는 일인데 그렇게 빈손으로 덜렁덜렁 갈 셈이야?" 유마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마드는 유마의 질문을 듣고 사자의 얼굴을 한번 본 다음 뭐라고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가 관두었다. 사리안이 어떤 남자인지 마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조차도 일부에 불과하단 건 몰랐지만) 괜한 시간 낭비 같아 입을 다물었다.


사자는 나이프를 받아 천천히 위아래로 올렸다 내리고는 유마에게 말했다.


"고맙소. 꽤 잘 만든 나이프 군. 날도 잘 서 있고."


"아무렴. 이래 봬도 꽤 값이 나가는 물건이거든. 유통하던 물건 중에 마음에 들어서 직접 사들인 물건이라고. 동부 해안에서 건너온 물건이오. 해적왕이 쓰던 물건이라나 뭐라나."


해적왕이니 하는 것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지만 사자는 나이프가 마음에 들었다. 그가 나이프를 가볍게 몇 번 휘둘러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비드 하란은 대검을 나이프처럼 휘두르던 사자의 모습이 떠올라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날은 경비 대장이었던 그에게 위기의 순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태어나서 가장 큰 희열을 경험한 날이기도 했다.


지금 그 나이프는 무너져내린 카타콤 안에 있었다. 사자는 카타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나이프를 빼들었다. 그리고 무덤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미련 없이 나이프를 버리고 대신 마드를 안고 지하 통로로 몸을 던졌다.


해적왕과 함께 대륙 동쪽 바다를 넘나들었는지 어땠는지 모를 나이프는 이제 사막의 지하 묘지에서 영원한 잠에 들고 말았다.


아무튼 그래서 사자는 빈손이었고 그에게 달려든 첫 번째 병사는 목이 달아나는 대신 턱이 부서지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었다. 남은 경비조들은 칼을 빼들고 달려든 병사의 얼굴이 사정없이 돌아갔다가 그대로 고꾸라지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이 쫓아온 사내는 스텝을 밟지도 않고 그저 선 자세에서 허리만 돌려 주먹을 뻗었다 회수했다. 그것만으로도 병사 하나의 퓨즈를 완전히 뽑아버릴 수 있었다. 병사들은 함께 조를 이룬 후 처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했다.


혹시 우리 엿 된 거 아니냐고.



03.

노인이 돕겠다고 했다. 누구를? 그들을.


왜?


마드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녀의 생애 한 번이라도 이 노인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해내려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머릿속 서랍장을 온통 헤집어 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기억이 '없었다.'


"...... 저는 노인장을 모릅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저희를 도우신다는 말씀이십니까?"


말을 하고 나니 지나치게 당돌하게 느껴졌다. 노인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든 당돌하고 시건방지게 받아들여질 것 같았다. 이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노인의 몫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선 모든 도덕과 법리적인 판단을 오직 노인만이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질문은 그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노인이 다시 씩 미소를 지었다. 마드는 아까부터 그의 미소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감히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무의식중에 노력했다.


"물론 자네들은 나를 모를걸세. 사실 나도 자네들을 알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글쎄, 언제부터였지? 사내가 도시에 발을 들이면서부터니까, 음...... 한 일주일 됐으려나."


'사내?' 마드가 생각했다.


"아무튼 우리가 서로를 알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닐세. 중요한 건 내가 자네들을 돕기로 결정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했으니 자네들의 이 무모하고도 귀여운 작전이 성공하리란 걸세."


"우리가 여길 왜 왔는지 알고 계신 듯하군요."


유마가 물었다. 마드는 유마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젊은 무법자 대장에게서 들어본 적 없는 정중하고 예의 바른 말투였다. 하지만 노인은 뭔가 거슬렸는지 이번엔 웃지 않았다. 유마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자네들이 이곳에 왜 왔는지, 당연히 알고 있네. 당연한 것 아닌가? 자네들을 도우러 왔다고 이미 얘기했잖은가. 방금 질문은 좀 어리석게 느껴지는군. 나는 자네들을 귀엽고 순진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어느 것 하나 나쁠 것은 없지. 그런데 어리석게 느껴지면 그건 좀 몰라. 나는 즐거운 문답을 하고 싶지, 바보들을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야."


몹시도 위엄 있는 말투였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유마는 판초 일당에게 온몸을 난자당한 채 홀로 누워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무기력함, 비참함,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패배감. 그 모든 기억이 지금 오롯이 되살아났다. 훨씬 더 크게.


"......"


유마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지 못하자 노인이 비식 웃었다.


"아니 아니. 그렇다고 자네들을 혼내는 것은 아니네. 내 앞에서 재치와 재기를 발휘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한 명 만나게 된 것이거든. 사내에게 감사하게나."


마드는 아까부터 노인이 언급하는 사내를 알 것 같았다. 그의 넓은 어깨와 파란 눈이 떠올랐다. 그렇겠지. 당연히 그랬겠지.


"아무튼 이제 할 일을 해야겠지."


노인이 말하고 다시 한 번 손을 들어 (마드와 유마는 한번 더 숨을 헉 들이켰고) 손가락을 튕겼다. 백사장 너머 다가왔던 파도가 한꺼번에 물러가듯 유치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이 일제히 물러갔다.


"......!"


마드의 눈이 커졌다. 그녀가 소리 없이 탄식하며 유치장 앞으로 달려갔다. 비골라 아이작이 그곳에 있었다.



04.

이날 세이마르 서쪽에 위치한 도시, 마사리아의 시민들은 갑작스레 발생한 소란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소란의 원인은 개들이었다. 달이 기울기 시작한 깊은 밤, 집 앞마당에 매여 있거나 집안 카펫 위에서 얌전히 귀를 늘어트리고 잠이 들었던 개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짖기 시작했다.


마당 말뚝에 목이 매여 있던 개는 목에 묶인 사슬을 벗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앞발로 사슬을 긁어댔다. 발톱이 빠진 자리에서 피가 끊임없이 흘렀다. 그럼에도 개는 아랑곳 않고 사슬을 풀기 위해 발버둥 쳤다. 개는 지금 당장 가야할 곳이 생각났다는 듯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집안에 누워 자던 개들은 늙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가래 낀 목으로 탁하게 짖었다. 문을 긁어대던 늙은 개는 머리를 문에 찧어가며 문을 열려고 하다가 그 자리에 축 늘어졌다. 주인이 급하게 거실로 나오니 개는 혀를 축 늘어트린 채 쓰러져 죽어 있었다.


'운이 좋게도' 길 위를 방황하던 들개들은 한데 모여 고개를 쳐들고 울었다. 잊었던 야성의 울음을 기억해낸 듯 하늘을 향해 목청껏 울었다. 개들은 하나같이 동쪽을 향해 울었다. 동쪽의 하늘에는 창백한 달이 떠 연약한 빛을 간신히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당연하지만, 세이마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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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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