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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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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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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Re 72. 구출 작전 1

DUMMY




01.

비골라 아이작이 돌처럼 무표정한 사내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마저 본 뒤에 마스칼은 사령소를 빠져나왔다.


혹시 그를 이 자리에서 구할 수 있진 않을까 고민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령소 안에 몇 명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부들거리던 그의 왼손은 이제 발작하듯 경련하기 시작했다. 부러진 손가락은 차라리 잘렸으면 나았겠다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달이 사막 너머로 넘어가기 위해 게으른 걸음을 떼자 테라스가 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비를 서는 5개조가 하나씩 사람을 떼어 다른 쪽으로 보냈다. 들키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마스칼은 달이 변하는 위치를 확인하면서 도주로를 잡았다.


다행히 대부분의 병사들은 세이마르 정문 쪽에 있었고 도시 안을 수색 중이던 병사들도 병자의 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건물 곳곳에 흩어져 얌전히 쉬고 있었다. 마스칼은 쉽게 세이마르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달이 완전히 지지 않았지만 일단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침식이 되어 죽나, 잡혀서 죽나 그게 그거였지만요. 본능적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일란드라였습니다. 왠지 대장님이 무사히 빠져나가셨다면 일란드라로 향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내 생각이 딱 맞았지, 하는 표정으로 마스칼이 마드를 바라보았다. 마드와 비드도 따뜻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얼마나 휘청거리며 걸었는지 모릅니다. 일란드라에 도착한 것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침식이 이미 몸을 갉아먹기 시작해 저는 거의 비몽사몽이었죠. 일란드라의 초소병들이 말하길 광인 하나가 침을 흘리며 마을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왔다고 하더군요."


마스칼이 새삼 감격스러운 듯 조금 벅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맺었다.


"저는 그곳 촌장에게서 대장님과 시민들이 이곳으로 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정말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대장님."


마스칼의 이야기가 끝났다.


사자는 그의 장렬한 탈출기를 듣고 묵묵히 생각에 빠져 있었다. 마드는 사리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 궁금했지만 그보단 비골라가 지금 어떤 상황일지 걱정돼서 미칠 지경이었다.


"무사히 탈출해서 정말 다행이야, 마스칼. 정말 고생했어. 하지만 아저씨가 지금 어떻게 되셨을지는 당신도 알 수 없다는 거군."


"아이작님께서 무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만, 사실 예감이 좋지는 않습니다."


"고문을 당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거야?"


마드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스칼의 이야기에서 나왔던 무표정한 남자들, 그들이 들고 있었던 사슬, 물통...... 떠오른 생각을 물리치려는 듯 마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아니, 이미 꽤 모진 시간을 보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아이작님을 끌고 간 녀석들은 상당히 거칠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야 할 정보가 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그들로서도 아이작님을 계속 살려두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죠."


마스칼이 계속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침식이고 뭐고 달려왔습니다. 이미 이틀 정도 지나긴 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드는 가만히 생각했다.


사리안이 말한 지휘관의 덕목에 비추었을 때 무엇이 합당한 일일까? 지금 당장이라도 세이마르로 쳐들어가 비골라를 구해야 할까? 아니면 그를 잊고 뒤를 도모해야 할까?


이미 수차례 확인했고 그녀 스스로도 느끼고 있듯이 마드는 많은 면에서 변해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겨우 추스르며 지휘관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많이 변하셨군요, 대장님."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마스칼이 말했다.


"응? 뭐라고?"


"대장님이 무슨 고민을 하고 계신지 알 것 같습니다. 예전의 대장님이셨다면, 외람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아이작님을 구출하겠다고 나섰겠죠. 무턱대고요. 하지만 지금 대장님의 모습을 보니...... 정말 많은 일을 경험하신 모양입니다."


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변하기만 한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을 바꾸는 거니까. 말해줘, 마스칼. 당신 생각은 어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 세이마르 민병대에 아이작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이셨는지를 생각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앞으로 게릴라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아이작님이 맡으실 역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니야. 따져야 할 것은 비골라 아이작이 가진 정보요."


불쑥 끼어든 것은 사자였다.



02.

마드가 고개를 돌렸다. 이 남자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은 표정이었다. 사자는 지금까지 제3자로서의 입장 차만큼 거리를 두고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다가왔다.


마스칼은 그가 누군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드 하란이 바라본 그 표정에는 어딘지 불만스러운 기색이 있었기에 슬쩍 마스칼에게 다가가 말했다.


"척후 대장님은 처음 보실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어쩌면 세이마르 전체를요. 언젠가 민병대 사령소에 구금되었던 이방인 있잖습니까?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저희가 무사히 세이마르를 탈출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주셨죠."


"아, 그 자로군. 그래서 탈출할 수 있었던 거로군. 그 상황에서." 마스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고 계셨군요. 하마터면 퇴로가 완전히 차단될 수 있었습니다. 계엄군 놈들이 세이마르 후문으로 병력을 나누어 보냈거든요. 로엘님의 말씀에 따라 제가 도시 후문에 도착했을 때는 심지어 성문까지 훤히 열려 있었습니다. 초소병들도 모두 당한 뒤였구요."


다시 떠오른 그 처참한 광경에 비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걸 저분 혼자서 막아내신 겁니다. 듣기로는 공화국에서 오신 분이라고 하더군요."


"공화국?"


"네, 공화국의 검사랍니다. 꽤 높은 사람인 모양이에요. 여태까지 저토록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읽었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저만치는 못할 겁니다."


"...... 그렇다면 큰 힘이 되겠군요."


비드의 말에 마스칼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불쑥 비드에게 말했다.


"참, 비드. 아까는 말 못 했지만 당신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대장님과 세이마르 시민들이 여기까지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엔 당신의 역할이 컸어요."


퇴각의 여정에서 감성적이 되어버린 비드는 그만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푹 수그렸다. 마스칼은 그의 어깨를 다정하게 다독여 주었다. 한편, 마드는 사자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사리안? 따져야 할 것은 아이작 아저씨가 가진 정보라니. 아저씨를 구할지 말지가 아저씨가 가진 정보에 달렸다고?"


"그렇소. 당신은 지금 그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앞으로 민병대 활동에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소. 당신이 생각해야 할 것은 그가 적에게 건네줄지도 모를 정보의 가치요."


사자가 어느새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마드의 얼굴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사자에게 동경과 애증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마드의 눈빛이 이제는 용광로에 막 들이부은 쇳물처럼 빨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정보? 가치? 비골라 아저씨의 목숨을 정보랑 저울질하라는 거야?"


그건 건조하게 말하자면 분노였고 사자와 그녀 사이에 형성된 '유사 사제 관계'에서 보자면 반항심의 발로였다. 지금까지 반항 한번 없이 고분고분하게 선생님의 말을 들어왔던 착한 학생이 드디어 반기를 든 것이다.


"사리안, 당신......"


마드는 볼까지 새빨개진 채로 사자를 쳐다보았다.


'화가 많이 나는가 보지. 하지만 한 번은 거칠 과정이다. 좀 더 불을 키워봐도 좋겠어.'


마드의 불만 가득한 얼굴을 보며 사자가 생각했다. 마드가 사자에 대해서 눈치챘던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타고난 멘토이면서 동시에 밉살맞은 선생이었다. 그건 이미 공화국 최강의 여검사 트리스도, 아우바의 리드에서 만났던 말몰이꾼(리드) 아스토라도 다 알았던 사실이었다.


"정신 차리시오, 마드 세라자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딛고 살아난 지금도 깨달은 것이 하나도 없는 거요? 항상 유념하시오. 당신의 목표 말이오."


마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오늘은 순순히 꼬리 내리지 않겠노라 결심하는 강아지처럼.


"당신의 목표가 무엇이오? 살아남은 시민들을 데리고 마을이라도 하나 차리는 것이오? 그리고 그들의 새로운 시장이라도 될 셈이오? 아니오. 당신의 목표는 이전도 지금도 변질된 사막을 되돌리는 것이잖소!"


마드는 이제 확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머리로는 사자의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했고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이 그렇게 순순히 잘못을 뉘우치던가? 입이라도 삐죽 내밀기 마련이지 않은가.


"목표라면 항상 생각하고 있어." 마드가 낮게 깐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이오? 북극의 성에 대고 맹세할 수 있소? 그렇다면 아까와 같은 고민은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마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비골라 아이작 그자의 목숨도 마찬가지요. 그자를 살릴지 말지는 당신이 가진 목표에 부응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결정해야 할 것이오. 그저 그자를 살리기 위해 당신을 살리느라 죽은 이들의 사지로 돌아가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지. 당신은 앞으로 잃어버릴 하나의 목숨이 아니라 이 사막에 얹어질 수많은 죽음을 생각해야 하오."


사자가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드는 계속해서 입을 꾹 다문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니 지휘관이라면 한 가지만 생각하고 행동을 결정하시오. 비골라 아이작 그자가 계엄군 사령관에게 넘겨줄 정보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그 정보가 넘어간다면 당신의 목표, 사막의 밤을 되찾는 일이 얼마나 멀어질지를. 그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소."


마드가 생각에 잠겼다. 입을 삐죽 내밀고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은 채 자신의 목표를 조용히 되새겼다. 사자는 그녀의 표정 변화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의무라는 듯 (그리고 취향 나쁜 취미인 듯) 마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마스칼은 갑자기 끼어든 세이마르의 구원자라는 남자가 흥미로워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알았어. 결정했어." 마드가 고개를 들었다.


"비골라 아저씨를 구해야겠어. 당신 말이 맞아, 사리안. 중요한 것은 이 사막에 제대로 된 밤을 가져오는 거니까. 그러니 나는 그 아저씨가 필요해. 그가 가진 정보를 이미 계엄군에게 전해주었다 하더라도 상관없어. 아저씨는 그보다 더 많은 정보를 나를 위해 모아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내 목표를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마드가 사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나는 아저씨를 구해와야겠어."


이제 마드의 눈에는 사자를 향한 반항심 대신 뛰어난 지휘관의 가능성을 담은 태양 같은 광채가 스며들어 있었다.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만족스러웠다.



03.

"나는 아저씨를 구해야겠어."


마드가 선언했다. 그러니 니들은 그저 따라와,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으니.


확고한 결심을 내린 지휘관의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사자도 마스칼도 비드도 그 밖의 대원들도 모두 그녀를 보았다. 반론을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불쑥 말소리가 끼어들었다.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하는군, 그래."


유마였다. 성의 주인이자 무법자들의 젊은 대장, 유마 올리오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부하 중 누구도 거느리지 않고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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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4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7 31 13쪽
»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4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9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6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8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3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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