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636
추천수 :
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7.11 12:15
조회
1,101
추천
39
글자
12쪽

Re 53. 침공 1

DUMMY



01.

민병대 해체를 선언한 마드 세라자드는 곧장 이방인을 찾았다.


세이마르의 목에 떨어진 칼날을 그 남자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마드는 지금 당장 그가 필요했다. 남자가 어젯밤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면 그가 있을 곳은 오직 하나였다.


'세이마르의 제단이 숨겨진 곳. 분명히 그곳에 있을 거야.'


마드가 세이마르 청사를 향해 달렸다. 세이마르의 제단은 아우바와 달리 청사 안에 있지 않았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그러나 사리안은 청사 앞에 있었다. 쉬지 않고 꼬박 달려온 마드가 사리안의 앞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저절로 허리가 굽어졌다.


"뭐, 뭐야...... 여기 있었네, 당신. 헉. 아, 죽겠네."


"내게 무슨 급한 용무라도 있소? 아침 운동이라도 하는 거요?"


사리안이 의아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운동은 무슨. 하아...... 흡! 아, 됐다. 안 그래도 찾고 있었어. 당신 말이야, 사리안."


"사리안? 어제도 나를 그렇게 부르더니. 내 이름은 사리안이 아니오. 나는......"


"아, 됐어. 그냥 사리안으로 부를래. 그나저나 당신, 우리 수색대 대장님을 만나보았다며?"


마드가 말했다. 간신히 진정이 됐는지 허리를 곧게 펴고 일어섰다. 땀으로 젖은 머리가 얼굴에 착 달라붙었다. 사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어제 이곳의 수색대 본부에 들렸지. 그 남자는 매우 많은 것을 알고 있더군. 큰 도움이 되었소."


"당신이 어제 이 도시에서 찾는다고 했던 것. 그거 제단이었어?"


"그렇소."


사리안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더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이었다.


"...... 아직 세이마르의 제단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나와 함께 가보지 않겠어? 당신에게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


"좋소. 나도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으니."


"내게?"


사리안이 대답 대신 가만히 마드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아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 안에 파란 불꽃이 이글거렸다.


'이 남자는 어깨보다도 눈이 더 볼만한걸.'


마드가 사리안의 눈을 보면서 생각했다.



02.

"그럼 일단 제단으로 함께 가자고. 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


마드는 사리안과 함께 세이마르 청사의 뒤쪽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은 청사보다 조금 더 높이 불쑥 솟아오른 동산으로 군데군데 이가 빠진 돌길이 정상까지 놓여 있었다. 길 양쪽에 심은 덤불은 영양분을 제대로 받지 못했는지 푸석푸석해 보였다. 언덕을 올라갈수록 덤불은 계속해서 말라갔다. 누군가 빨리 죽으라고 끊임없이 저주의 말이라도 던지는 듯 했다. 반대로 길은 더욱 선명해졌다.


"지금 세이마르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어?"


마드가 사리안에게 물었다.


"어제 수색대 대장으로부터 간단히 얘기 들었소. 도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도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끼긴 했지만."


"하긴 곳곳에 포격 자국이며 무너진 성벽이었으니 이상하게도 보였겠지."


"그도 그렇지만...... 제국군의 공격이 임박해 보이던데."


"그것까지 알고 있어?" 마드가 놀란 눈으로 사리안을 돌아보았다. 사리안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맞아, 오늘 아침에 제국군 장교가 왔다 갔어. 최후통첩을 던지려고. 이제 며칠 안 남았을 거야."


언덕이 점점 가팔라졌다. 사리안은 매우 오래돼 보이는 낡은 부츠를 신고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부츠도 그 위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에 비해 훨씬 튼튼해 보였다.


"당신, 아우바에서도 제단을 봤었다지? 시의 관리들이 직접 제단을 운영하기까지 했다던데...... 시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 알고 있는 정도를 넘어서 아우바의 시장이 주도했소. 심지어 제물의 마련에까지 관여했지."


"맙소사. 시장이 제물에까지 관여했단 말이야? 직접 마련까지 했다니. 뭐야, 살인이라도 하고 다닌 건가?"


마드가 경악해서 외쳤다. 그녀의 커진 눈을 보며 사리안이 말을 이었다.


"아우바에서는 제물을 '고기'라고 불렀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오. 제단에 올리는 제물에 대해 그토록 모욕적인 이름을 붙였던 이유도. 아무튼 아우바의 제단은 청사의 지하 수로에 창고처럼 존재했고 그곳엔......"


"죽은 시신들이 있었겠지."


마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떠올린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소. 역시 이곳의 제단도 사람을 제물로 삼는 모양이군. 그곳엔 사람과 가축들이 시장에 판매되는 상품마냥 같이 걸려 있었소. 전쟁 중에 더 끔찍한 광경도 보았고 사막에 들어와 지옥과 같은 장면을 더러 목격하기도 했지만, 그토록 불쾌한 경험은 처음이었소."


사리안도 떠올린 기억을 떨쳐내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 앞으로 조금씩 세이마르의 공동묘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허리 높이의 나무 기둥들이 드문드문 박혀서 경계를 이루었고 입구로 보이는 문짝 두 개는 부서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 제단을 발견하고 시신들을 끌어내면서 부순 거야. 어쩌면 그냥 화풀이일 수도 있지만. 그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거든." 마드가 말했다.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한 묘지 안으로 묘지기의 숙소가 보였다.


"저기가 제단으로 향하는 입구야. 원래 묘지기는 세이마르의 토박이 집안 일원들이 대를 이어 맡았었어. 무르하르라는 특이한 성을 쓰는 이들이었지.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시에서 묘지의 관리직을 새로 선출했고 그들을 쫓아냈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


숙소의 입구 문을 열자 확실한 악의로 뭉친 향이 풍겨왔다. 사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또 한 번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저절로 떠오른 모양이었다. 마드와 사리안이 밑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묘지 지하에 존재하는 카타콤. 본디 세이마르의 귀족들을 안치하였던 지하 묘지였다.



03.

"우리 집안의 선조들을 이곳에 모셨었어."


카타콤으로 들어서면서 마드가 말했다. 카타콤의 내부는 어두웠고 비에 젖은 축축한 모래 냄새가 났다. 마드가 천정에 달린 등을 찾아 불을 밝혔다.


"우리 집안은 세이마르의 토착 귀족이야. 토착이라는 말엔 좀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군. 아버지는 세이마르를 세운 것이 아마 우리 선조님들일 거라고 얘기하곤 하셨으니까."


사리안이 마드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카타콤의 내벽과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군데군데 모래에 스민 핏자국이 불길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분들은 이제 이곳에 없어. 왜 이곳을 제단으로 삼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모셨던 세이마르의 선인들은 모두 치워졌어. 만약 아버지가 계셨다면 피를 토하셨을 일이야."


마드가 말끝을 흐렸다.


"내가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건 사람들의 시신들. 그리고 가축들의 사체였어. 아까 아우바의 제단에 가축들도 있었다고 했지? 이곳도 마찬가지였어. 소와 돼지, 양, 낙타에 심지어 세이마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염소의 사체까지 있더군."


마드가 천천히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날의 끔찍한 광경이 떠오르자 신물이 올라올 정도였지만 마드는 꾹 참았다.


"더 끔찍한 것은 모든 시신들과 가축의 사체들이 목이 잘린 채 놓여 있었던 거였어. 잘린 목은 주인의 몸을 떠날 수 없다는 듯 그 곁에 얌전히 놓여 있더군. 어찌나 구역질이 나는 광경이었는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거의 미쳐버릴 뻔했어.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했어. 구역질을 하면서 나는 구토를 다하고 나면 꿈에서 깰 거라고 믿기까지 했어. 하지만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 신물을 토할 때에도 꿈에서 깨지 않았지."


갑자기 한기가 든 듯 그녀가 몸서리쳤다. 사리안은 그녀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카타콤의 이곳저곳을 관찰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시신들은 곧장 끌어냈지만 핏자국은 아마 그대로 남아있을 거야. 다시 와서 청소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거든. 시신들을 모두 꺼내고 보니 그들은 세이마르의 주민들이 아니었어. 아무리 놈들이라도 도시의 주민들을 제물로 삼을 수는 없었겠지."


그 말에 대해 사리안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입을 열진 않았다. 마드가 그 모습을 흘낏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 중 제대로 알 수 있는 있는 사람은 없었어. 도시 밖의 사람들이었거든. 어떤 이는 새겨진 지 오래된 칼자국을 몸 구석구석에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불에 지진 듯 군데군데 화상 자국이 나 있었어. 알겠어? 그들은 무법자들이거나 혹은 죄를 짓고 잡혔던 범죄자들이었던 거야."



04.

그때, 세이마르 유력 귀족의 영애이자 평범한 시민이었던 마드 세라자드가 눈으로 보았던 것은 목이 베인 무법자와 범죄자들이었고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모양으로 꿈틀대는 '악'이었다.


그날 마드는 도시의 독립과 제국에 대한 반역을 결심했다.


"아우바와 달리 세이마르의 관리들이 이곳을 직접 관리한 것은 아니야. 대신 묵인했지. 이곳의 제단과 제물을 관리했던 것은 새롭게 선출된 묘지기였어. 이마에 혹이 불룩 튀어나오고 등도 굽은 기분 나쁜 남자였어."


마드가 잠시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마에 불룩 튀어나온 혹과 땅으로 고꾸라질 듯 굽은 등. 비굴한 듯 그리고 잔인했던 남자의 미소. 그리고 제단에 나타난 마드를 보고 불같이 화를 냈던 그 남자.


여자가! 여자가 감히 제단에 발을 들여!


남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제단의 마지막 제물로서 죽었다.


"사리안.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얘기해 줘. 당신이 아우바에서 본 제단과 이곳에 뭔가 공통점이나 혹은 다른 점이 있어?"


그녀의 말에 사리안이 다시 찬찬히 카타콤 내부를 훑어보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내가 이곳에 와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 역시 그것이었소. 사막의 제단들이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가. 아무래도 제물에 관해선 동일한 것 같소. 종이 다른 가축들, 그리고 사람의 시체. 내가 목격했던 아우바의 제단은 사람과 가축의 시체가 갈고리에 꿰어져 걸려 있었소."


사리안이 무릎을 굽혀 바닥에 아직 뚜렷한 흔적을 남긴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그들이 흘린 피가 각자의 발밑에 고여 웅덩이를 이루고 피비린내가 내부를 가득 채웠지. 목이 잘려 있는 시체가 있었는가 하면 그대로 온전했던 시체도 있었소. 이곳의 시신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핏자국들과 남은 흔적들로 미루어봤을 때, 제단에 필요한 것은 시신뿐만이 아니라, 피. 일정량 이상의 피도 필요한 것 같소."


"쳇. 흔한 얘기로군. 마치 사막에 저주라도 걸려고 했던 것처럼."


빈정거리듯 마드가 꺼낸 이야기에 사리안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마드 역시 불현듯 뭔가 떠올랐다. 혹시......


그때 난데없이 천둥소리가 제단 밖에서 들렸다. 하늘에 균열이라도 난 듯 부서지고 우그러지는 소리였다. 도시 위로 벼락이 직접 내리치기라도 한 것인지 어마어마한 폭음이 이어졌고 지축이 흔들렸다. 카타콤의 천정에서 모래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뭐야! 무슨 일이지?"


몸속까지 전해지는 폭발음과 진동에 마드는 뱃속이 꽉 조이는 듯 불안해졌다. 사리안은 소리를 듣자마자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는 듯 심각한 표정이었다.


마드와 사리안이 동시에 제단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멀리 도시의 성벽에서 포연과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맙소사. 그 개자식이 안면만 트러 왔다더니!"


계엄군의 세이마르 수복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막의 소드마스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