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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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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7.26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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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8
추천
41
글자
12쪽

Re 64. 퇴각 2

DUMMY

01.

촌장은 조용히 혼자 왔다.


해가 모래의 땅 너머로 지기 전에 촌장은 오아시스 가까이 사구에 숨어 있다가 달이 미처 다 뜨기 전에 오아시스로 왔다. 침식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자는 그들 가까이 다가오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았지만 얘기하지 않았다. 굼뜨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에서 노인임을 알았고 마드가 말하는 마을의 사람임을 알았다.


조심스러운 걸음에서 몰래 온 노인의 속뜻을 짐작했다. 사자는 촌장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해가 지고 달이 떠서 오아시스 나무들의 그림자가 연해졌을 때 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촌장이 곧장 그녀에게 걸어와 바닥에 엎드렸다. 마드가 황급히 다가가 촌장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 했다.


"촌장님! 복되신 일란드라의 제일 큰 어르신이시여. 이러시면 안 됩니다. 어서 일어나시지요."


촌장이 흐느끼며 말했다.


"복되기는요. 저는 적이 두려워 동지를 저버리는 겁 많은 촌부에 불과합니다. 이제 죽을 날을 받아 놓은 것으로 부족해 한없이 비겁하기까지 한 졸장부이지요."


마드가 도리질을 쳤다.


"아니요. 천만에요. 일란드라의 은혜는 저희가 두고두고 갚아야 할 큰 빚입니다. 어서 일어나세요.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그렇게 다정하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저희를 탓하십시오.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사막에 두고두고 새겨질 치욕입니다. 하지만 촌부는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인의 어깨가 안쓰럽게 흔들렸다.


"정의로운 일란드라의 주민들을 몰아 불의의 선택을 하게 한 이 늙은이를 부디 탓해주십시오. 마드 세라자드. 사막 땅의 큰 어르신이었던 유마 세라자드의 영애이시며 저주받은 달을 몰아내려는 고귀한 민병 대장이시어. 정말 죄송합니다."


촌장은 한참을 울었다. 사자는 그 모습이 가여웠다. 전쟁은 친구를 가르고 가족을 찢고 몸을 부비며 사는 부부까지도 갈라놓았다. 의(義)는 목숨 앞에 대부분 아무것도 아니었다.



02.

촌장은 울다가 돌아갔다. 마드가 침식을 우려하여 만류했으나 노인은 길을 재촉했다.


"사막의 달 아래를 헤매다 미쳐 죽는다면 그것이 비겁한 촌부에게 합당한 운명이겠지요. 괜찮습니다." 촌장이 말했다.


"일란드라에서 북동쪽으로 더 들어가면 과거 실크로드의 역(驛)이었던 성이 있습니다. 이름은 <마힌드라>.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성이지만 땅 밑에 수원이 있고 주변에 오아시스도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길이 지워져 찾기 힘들 수도 있지만 별을 길잡이 삼아 걷는다면 이틀이면 넉넉히 닿을 것입니다."


촌장이 말을 하다 말고 사자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촌장을 바라보는 사자의 파란 눈을 보며 뭔가 알고 있는 듯 우물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세라자드님의 곁에 탁월한 길잡이가 이미 계신 것 같군요. 이보시오, 검사님. 이 촌부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공화국에서 오신 분이겠구려."


사자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촌장은 사자가 놀라워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촌부가 젊었을 적 실크로드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았지요. 그 와중에 공화국 분들을 여럿 만났소. 공화국 사람들은 대부분 탁월한 길잡이였고 그중에는 검사님이 입고 계신 것과 똑같은 로브를 입고 계신 분들도 있었소.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 로브는 특별한 분들에게만 허락된 옷이었지요."


"놀라운 일이군요. 이곳에서 공화국의 '로브'를 알고 계신 분을 만나게 될 줄은. 이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사자가 몹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촌장은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을 깜빡이며 마드에게 말했다.


"세라자드 님에게 여러모로 사막의 별의 가호가 내리는 것 같습니다. 떠나실 때 꼭 한번 이 촌부가 숨어있던 사구에 들려주십시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세라자드님과 이곳의 모든 분들께 사막의 별의 가호가 있길 바랍니다."


촌장이 떠났고 그날 밤도 지났다. 마드와 시민들은 촌장이 이야기해 준 곳을 향해 방향을 잡고 오아시스를 떠났다.


"이게 다 뭐야...... 이 빚을 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마드가 감동에 겨워 말했다. 촌장이 말한 사구 밑에는 식량과 식수가 가득 담긴 수레 두 대가 놓여 있었다. 그들 나름의 사죄이고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행동이었다.



03.

촌장이 말한 길을 따라 마드 세라자드와 사자 그리고 비드 하란과 다섯 명의 기병과 열 명의 민병 대원이 나란히 나아갔다. 그들을 따라온 시민들은 총 스물 두 명. 도합 마흔 명의 행렬이 나란히 나아갔다.


마드는 이 많은 사람들을 인솔해야 하는 상황에 큰 부담을 느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큰일 났다, 마드야. 촌장님이 다행히 있을 곳을 말씀해 주시긴 했지만 과연 이 많은 인원이 생활할 수 있을까? 식량과 식수를 마련할 수는 있을까. 수원이 다 말라버렸다면......'


마드는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 끙끙댔다. 사자는 마드의 고민을 알 것 같았지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했다. 하긴 그로서도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성에 닿아봐야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길에서 그들은 두 수레에 실린 식량을 아껴먹었다. 100인분이 조금 넘는 식량이었다. 빵과 말린 육포를 반으로 잘라 조금씩 먹고 물은 목이 마를 때에만 입술을 축일 정도로 마셨다.


민병 대원은 시민들에게 식량을 양보했고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이와 아이들에게 양보했다. 어린아이들조차 칭얼거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밤이면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가 일찍 잠들었다.


촌장이 기대했듯이 사자가 길잡이가 되어 그들을 인도했다. 밤 하늘이 맑아 별 보기가 수월했다. 사흘째 되던 날, 일렁이는 아지랑이 사이로 성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해가 성벽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서 처음에는 성이 아니라 모래 언덕인 줄 알았다.


성벽은 밑이 무너져내려 균형이 맞지 않았고 비뚜름하게 달린 문은 훤하게 열려 있었다. 옛 실크로드의 역이자 몰락한 성. '마힌드라'였다.



04.

성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집들은 바람에 산이 깎이듯 서서히 무너져 내렸고 닦이지 않은 길은 모래가 뒤덮여 가물가물했다. 사자는 무너진 집들을 유심히 살폈다.


성은 세이마르보다 훨씬 작고 일란드라보다도 작았다. 양쪽으로 깎은 돌을 놓은 큰 길이 성을 가로질렀다. 사자는 길을 보며 알레르기아를 떠올렸다. 마소와 수레가 오가는 길이었다.


마드는 대원들에게 각자 임무를 맡겼다. 먼저는 식수의 확보가 중요했다. 우물이나 갇힌 수원을 찾아야 했다. 기병들이 말을 몰아 근방에 오아시스가 있는지 탐색했다.


"대추야자도 좋고 옥수수도 좋고 뭐든 좋으니 씹을 수 있는 것이면 뭐라도 찾아주세요. 말로 너무 멀리 갈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마드는 사자와 함께 성벽 위에 올랐다. 사자는 마드가 대원들을 부리는 동안 잠시 마을 깊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뭘 찾은 것은 없는지 빈손이었다. 성벽은 중간중간 끊겨 있었다. 사자는 성벽 위에서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이는 모래 먼지를 보았다. 하지만 마드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마드가 보았을 때 이곳의 성벽은 적을 막기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그녀는 계엄군의 추격이 염려스러웠다. 망둥이 사령관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사리안, 어떻게 생각해?" 마드가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여기 말이야. 이 성이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정착지가 될 수 있을까?"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드는 세이마르가 있는 방향을 멍하니 바라봤다. 보일 턱이 없었지만 마드는 그녀가 나고 자란 도시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희망이 사그라드는 것을 느껴. 어쩌면 여기가 끝인 건 아닐까 생각해."


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드는 그가 뭐라도 이야기해 줄 것 같아 기다렸지만 사자는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에휴. 알아, 알아. 내가 먼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거. 나도 안다고. 그러니까 계속 그렇게 걸음마를 떼는 애 보듯이 보지 마."


"...... 당신은 당신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을 스스로 끌어냈소. 하지만 이는 싹을 틔운 것일 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험이라는 토양이 필요하오." 사자가 말했다.


"당신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모두 성장을 위한 영양분이오. 그러니 한순간도 넋 놓지 말고 집중하시오."


"우와, 당신 정말 대단한 선생님이네. 어쩜 이렇게 힘이 되는 말만 골라서 하시나." 마드가 말했다.


사자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드는 그 모습이 얄미워 눈썹을 씰룩였다가 폭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마드에게 사자는 한 가지 더 일러줄 것이 있었다.


"자, 경험을 더 쌓아가려면 일단 이 위기를 극복해야겠지. 그러니 알아두시오. 여기는 빈 성이 아니오."


"뭐?"


마드가 화들짝 놀란 눈으로 사자를 바라봤다. 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 안의 곳곳을 다니며 이미 확인했소. 이 성은 빈 성이 아니오. 그리고 성의 주인이 곧 나타날 거요. 아마도 날이 저물기 전에."


마드가 성 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도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이는 모래 먼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 시민들을 한데 모으고 병사들을 준비 시키시오. 성의 주인이 우리에게 호의적일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준비가 필요할 거요."


그의 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성의 주인들은 해가 저물기 전에 성 밖에 모습을 드러냈다. 까만 로브를 입은 자들이었다.



05.

마힌드라에 도착하자마자 탐색에 나섰던 사자는 성 안 깊숙한 자리에서 '중앙 역사(驛舍)'를 찾았다. 촌장은 이곳 '마힌드라'가 실크로드의 역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역사가 있는 것도 당연했다.


사자가 중앙 역사를 찾은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시민들이 기거할 곳이 필요했다.


민병 대원들이야 원래 소속이 어떻든 이제는 병사이기 때문에 밤이슬 맞으며 노숙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또 해야만 했지만 시민들은 달랐다. 사자는 전쟁에서 민간인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들이 지치기 시작하면 병사들도 힘을 낼 수가 없었다. 식량과 식수보다도 지붕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이 성의 벽은 너무 헐거워서 사막의 밤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제대로 된 지붕조차 없다면 아이들과 노인들은 분명 견뎌내기 힘들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성이 빈 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너진 민가들을 살펴보다가 알게 됐다. 문짝과 창틀, 난간 등 곳곳에 일부러 떼어간 흔적들이 있었다. 게다가 길 위에 덮인 먼지들 사이에는 재들이 흩어져 있었다. 사자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불을 피운 흔적이었다.


이 성엔 주인이 있는 것이다. 무슨 일에서인지는 몰라도 잠시 성을 비워두었을 뿐 지금은 보이지 않는 주인이 곧 돌아올 것이다.


두 가지 이유에서 사자는 중앙 역사를 확인했다. 역사는 건재했다. 먹을 것과 마실 것도 있었다. 심지어 잘 닦인 병장기들까지 놓여 있었다. 날이 번쩍번쩍하게 서 있는 날붙이들을 보며 이 성의 주인이 과연 그들의 편일지 생각했다.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 적이었지.'


그리고 마침내 성의 주인이 나타났다. 까만 로브를 입은 사내들이 남쪽에서 나타나 성으로 다가왔다. 눈썰미가 좋지 않은 이라도 척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그들은 무법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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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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