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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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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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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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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62. 세라자드 4

DUMMY

01.

사자가 풀쩍 뛰어올랐다.


계엄군의 기병들은 그가 날아올랐다고 느꼈다. 심지어 어마어마하게 큰 대검을 든 채였다. 딱히 무거운 기색도 없었다. 경악스러운 광경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병들이 마구잡이로 소리 질렀다.


"퍼져라! 좌우에서 찔러라!"


계엄군 기병들이 급히 좌우로 벌어졌다. 선두의 기병들이 갈라지면서 사자를 교란하고 그 사이 후미에서 달려들어 꿰뚫는 작전이었다. 끄트머리에 낫이 달린 창을 들고 기병 둘이 뛰쳐나왔다. 무방비하게 공중에 뜬 검사로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다. 허공을 밟고 뛰기라도 하면 모를까. 물론 그럴 수는 없으리라. 새도 아니고 용도 아닌 이상.


계엄군 기병들이 즐거운 예감에 기세를 올렸다. 불쑥 튀어나온 불청객을 베고 나면 정상 궤도에서 잠시 벗어난 전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사자에게 창이 닿기 전 기병들이 창을 길게 뻗었다. 어깨가 비명을 지르도록 힘차게 내질렀다.


자, 죽었다!


다음 순간 벌어진 일을 살아남은 계엄군 기병들은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사자가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대검을 휘둘렀다. 어깨에 얌전히 놓여있던 검이 무서운 탄력으로 휘돌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향해 날아든 창을 모조리 막아냈다. 앞선 창은 대가리가 잘려나갔고 뒤에 따른 창은 드넓은 검신에 막혔다.


기대감이 경악으로 바뀌었을 때 공격을 시도했던 두 기병의 머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사자는 공중에서 두 번 돌았다.



02.

창을 막아내고 겸사겸사 기병 둘의 머리도 날려버린 사자가 착지하기 전 발을 뻗어 말의 엉덩이를 찼다. 사자의 대검에 창이 막혔던 병사의 말이었다. 그보다 조금 앞서 뛰는 바람에 사자의 검을 먼저 받았던 기병의 말은 각별히 조심했음에도 주인과 함께 머리가 잘렸다.


놀란 말이 머리가 날아간 주인이 말 등에서 떨어지든 말든 달려나갔다. 말은 정확히 마드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마드는 사리안이 말을 구해오겠다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간신히 충격에서 회복한 참이었지만 더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저걸 보라지. 전투 중에 말을 구해오는 사람이 세상에 있구나. ...... 일어나야 돼, 마드. 그가 보내준 말을 반드시 잡아타야 해.'


마드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머리가 날아간 주인을 주렁주렁 매달고 달려오는 말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극도의 공포감에 침과 콧물을 쉴 새 없이 흘리며 치받을 듯 달려왔던 말이 그녀에게 고삐를 잡혔다.


마드는 순간 그녀의 어깨가 뽑혀나갈 것이라고 (어쩌면 이미 뽑혀 나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말의 옆구리에 간신히 달라붙을 수 있었다. 말에 달라붙자마자 왼쪽 다리를 잽싸게 뻗어 말 등에 걸쳤고 그 기세로 순식간에 말에 올랐다. 목 없는 기병이 여전히 말 위에 배를 보이고 매달려 있었다. 마드가 잠시 명복을 빌어주고는 그를 밀어내 떨어트렸다.


마드는 사자가 구해준 말을 무사히 확보했다. 말에 다시 오르고나자 좀 전까지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황홀경이 다시금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드가 말의 귓가에 대고 따뜻하게 몇 마디를 건네주었다. 정말 알아들은 것인지 말이 바뀐 주인을 고분고분 따르기 시작했다.


마드가 남은 기병들을 정렬했다. 이건 그들의 전쟁이었다. 이미 수많은 희생과 도움이 교차했지만 그들이 감당해야 할 싸움이었다. 마드는 남은 네 명의 기병들과 함께 사자를 향해 곧장 내달렸다.



03.

사자는 홀로 남아 기병들의 공격을 계속해서 받아냈다. 이방인 검사의 경이로운 무용을 보고도 계엄군의 기병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 검사가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에 대한 두려움과 두 동강이 난 동료를 향한 울분 중에 무엇이 더 크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대답하리라. 저 빌어먹을 놈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노라고.


그들이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손에 들린 날붙이가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무기로 힘껏 부딪혀왔다.


사막의 기병들은 초원과 황야의 기병들보다 한층 억셌다. 초원의 기병들보다 기마술이 뛰어나거나 황야의 기병들보다 전술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사막의 모래땅과 먼지바람 속에서 그들은 억세게 단련됐다. 말들도 그랬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의 땅을 걸어야 하는 말들은 성을 자주 냈고 분을 못 이겨 투레질이 잦았다.


사막의 기병은 말과 주인이 함께 억셌다. 이방인 검사가 보여주는 위압적인 무용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 중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아비아도 병사들의 의기에 보답해야 했다. 그에게 믿음을 보여준 지휘관에게도 뭔가를 보여줘야 할 차례였다. 아비아는 오른손에 든 검을 크게 내 뻗은 채 사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말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난장의 가운데 그의 길이 있었다. 그 길의 끝에서 아비아는 자신이 죽든 놈이 죽든 끝장을 보자고 생각했다.


어차피 부하를 잃고 말도 잃고 나면 그에게 설자리는 없었다.


계엄군의 기병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04.

사자가 대검을 들어 크게 엑스 자로 휘둘렀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모래 폭풍과 같은 바람이 일었다. 그것만으로도 위압적이었지만 사자는 딱히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간격을 재는 것이었다.


사자는 말이 다가오는 방향에 대해 검을 휘둘러 그들이 차례로 덮쳐올 간격을 쟀다. 밑으로 낮춰들고 있던 검을 크게 치켜세우며 휘둘렀다가 그 역방향으로 끌어당겼다.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이었다. 아무런 틈이 없었다.


"계속 몰아붙여라! 놈에게 쉴 틈을 주어서는 안돼!"


아비아가 기병들을 2기씩 조를 짜서 달려들게 했다. 아비아도 한 명의 병사와 짝을 지어 기회를 엿봤다. 사자는 말들이 달려드는 사선과 사선 사이를 적게는 한 걸음, 많게는 두세 걸음만으로 옮겨갔다. 창이 날아들면 성큼 한 걸음만 움직여 공격을 피했다. 말의 기동력과 리치가 모두 무산되는 절묘한 움직임이었다.


사자는 난장 속에서 혼자서만 말을 타지 않고 가장 낮은 위치를 점하고 있음에도 그 모든 불리함을 도리어 반격의 기회로 되살렸다. 또 한 마리의 말과 한 명의 기병이 사이좋게 몸이 두 동강이 난 채로 흩날렸다. 이들의 몸속 가득 흐르고 있던 피가 일순간에 밖으로 뿜어지면서 화려하고 잔혹한 피의 분수가 솟아올랐다.


피가 마치 비처럼 내렸다. 물이 귀한 사막에 비처럼 피가 내렸다.


'...... 분명 기회는 생긴다. 분명 놈의 빈틈을 찌를 기회가......'


아비아는 계속해서 사자 주위를 맴돌며 기회를 봤다. 아비아가 본래 들었던 검은 사자에게 닿기에 턱없이 짧아서 그는 목이 잘린 부하의 낫 달린 창으로 바꿔 들었다. 창을 역수로 들고 말을 달렸다. 이방인에게 닿을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이었다. 그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기병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사자를 교란하도록 했다.


기병들이 제각기 생각한 타이밍에 따라 사자를 앞에서 공격했다. 사자는 대검을 왼편에 낮춰들고 충분히 가까워질 때까지, 그들과 사자의 사선이 교차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비아는 천천히 잔걸음을 치며 사자의 뒤를 돌면서 기병들이 사자와 맞붙는 순간을 노렸다.


"가라!"


마침내 창과 검을 각각 든 2기의 기병이 사자에게 뛰어들었다. 사자의 대검이 밑에서부터 위로 크게 치솟아 달려든 기병의 창과 말의 앞다리와 기병의 다리까지 모두 베기 시작했을 때, 아비아가 뒤에서 달려들었다.


그때 마드가 끼어들었다.



05.

사자는 뒤에서 달려들 폼을 재는 기병 대장의 움직임을 이미 알아채고 있었다.


일찍이 발휘한 바 있는 그의 초현실적인 공간 지각력이 40기 (몇몇이 목이 달아나 이제는 35기)의 기병들과 아비아와 마드와 남은 민병대 기병의 위치까지 알려주었다.


사자는 마치 체스판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느꼈다. 체스판 위에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적들의 진영과 전략이 한눈에 드러났다. 이는 <공화국의 검>이라고 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공화국의 검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검사만이 가진 능력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자가 가장 탁월했다.


사자는 눈앞을 어지럽히는 기병들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건 교란이었다. 최후의 칼은 뒤에서 서성이고 있는 적의 대장이 찌를 것이다. 알았지만 그는 몸을 돌려 대비하지 않았다. 뒤에서 달려드는 기병 대장을 단칼에 베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기다렸다.


'마드 세라자드. 벌써 몸을 추스르고 전장으로 돌아오는가. ...... 빨리 회복해야 한다고 말은 했지만 놀라운걸.'


민병대의 대장이 그가 보낸 말을 금세 길들이고 그를 구하러 달려오고 있었다. 사자는 그녀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어차피 사막 사람들의 싸움이다. 끝은 당사자들이 보는 것이 제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사막의 모래땅 위에서 힘겹게 사투를 이어간 민병 대장이 한걸음 훌쩍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자가 보기에 세이마르의 민병 대장은 여러 가지 훌륭한 소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그 대다수가 아직 발현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민병대의 대장 자리를 덜컥 맡아버렸으니 그녀를 보좌하는 부하들은 있어도 그를 이끌어 줄 리더는 없었던 것이다.


'아주 조금의 가이드면 된다. 걸어가야 할 길을, 그리고 지휘관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잠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크게 성장할 거야.'


사자가 흔쾌히 그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사막을 건너는 공화국의 검에게 주어진 임무도 아니요, <잃어버린 검>의 탐색처럼 부가적인 임무도 아니었지만 사자는 그가 건너고 있는 사막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싶어졌다.


창백한 달이 비추는 사막은 아름다웠고 그곳에 사는 시민들은 진솔하고 명예로우며 긍지가 있었다. 사자는 그들에게 진짜 사막을 돌려주고 싶어졌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히 제작된 필터가 필요하듯 타락한 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각별히 길러진 사람들이 필요한 법이니까.


사자는 아우바에서 소인족들을 만났을 때 처음 그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밝고 매력적인 이마를 가진 영특한 파트너 레아를 만났을 때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곳 세이마르에서 마드 세라자드를 만났을 때 마침내 결심을 굳혔다.


'사막이 어째서 변질한 것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리고 사막을 되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아직은 분명치 않아.'


달려오는 마드를 보며 사자가 생각했다. 계엄군의 기병 대장이 사자의 뒤에 거의 다다르자 그녀의 표정이 급박해졌다.


'...... 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어쩌면 내가 이 사막에서 해야 할 일은 그것일지도 모르지.'


사자는 자신을 사리안으로 부르는 여인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계엄군 기병 대장의 공격으로부터 훤히 등을 내놓은 채 바람처럼 달려오는 민병 대장에게 뒤를 맡기기로 했다.


믿음의 결과는?


마드는 사막의 땅에 강림한 전장의 여신처럼 달려와 사리안을 향해 날아드는 기병 대장의 창을 쳐냈다. 그리고 이전의 그녀였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애드리브로 창을 쳐낸 반동을 이용해 검을 빠르게 당겼고 기병 대장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세이마르의 민병 대장이 계엄군의 기병 대장의 목을 베었다. 길고 지루했던 민병대의 투쟁 속에서 처음으로 올린 승전보였다. 마드가 검을 높게 쳐들었다.


사막의 모래땅 위에 갈색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는 사리안(대사막)과 같은 여인이 우뚝 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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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4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7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9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6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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