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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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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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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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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60. 세라자드 2

DUMMY

01.

그다음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대장과 부대장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아직은 고립된 것에 불과했지만) 세이마르의 마지막 기병들은 순식간에 대열이 흐트러진 채 우왕좌왕했다.


그들이 여태껏 용맹하게 그리고 기적적으로 계엄군의 포격 사이를 휘저으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화한 그들의 대장에게 홀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을 깨고 나온 마드 세라자드가 노련한 제국군 사령관의 전략에 휘말려 날개를 잃고 추락하기 시작하자 그들에게 깃들었던 사기와 용기 역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고 말았다.


겨우 방향을 튼 세이마르 기병들이 그들의 대장과 부대장을 따라잡기 위해 용을 썼다. 하지만 계엄군의 기병이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지방군의 잔당과 성도의 중앙군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숫자에서도 큰 차이가 났다. 50기의 계엄군 기병들이 기세를 타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맨 뒤에 처져서 달리던 세이마르 기병부터 하나씩 당하기 시작했다. 맨 처음 당한 기병은 등을 칼에 베인 후 곧장 쫓아 들어온 계엄군의 낫 달린 창에 머리를 꿰뚫렸다.


"크아아악!"


마드의 뒤에서 비명 소리가 하나 둘 일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가득했던 힘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등을 떠밀어주던 바람도 이제는 그녀의 머리를 흩날리며 정신없게 만들 뿐이었다. 말도 지쳐서 콧물과 침이 섞인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때 계엄군 기병의 칼이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검을 피한 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간신히 말머리를 틀어 검을 피했고 검을 휘두른 기병과 부딪힐 뻔했다가 겨우 자세를 잡았다. 적의 얼굴엔 임무에 대한 목적의식으로 가득했다.


'제기랄. 인형을 보는 기분인걸.'


연이어 검들이 날아들었다. 그녀는 겨우 말을 몰아 검을 피했다. 계엄군 기병 10기가 그녀를 완전히 몰아넣고는 잇달아 공격을 시도했다. 아무래도 생포라는 단어는 그들의 머릿속에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와서 그녀를 생포한다고 한들 무슨 필요가 있을까?


'말을 하는 머리나, 잘려서 가벼워진 머리나, 거기서 거기니까.'


마드도 날이 한 쪽으로 난 레이피어를 빼들었다. 계엄군의 전략이 완전히 드러났다. 세이마르의 후방을 노리려던 것은 그저 교란이었을 뿐, 목적은 온전히 그녀의 목 뿐이었다. 그녀로서는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 망둥이 사령관이 시민들까지 해칠 생각은 없나 보네. 아쉽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자. 우리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마드가 응전하기 위해 고삐를 당기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둘러싼 계엄군 기병들이 말의 속도를 천천히 늦추면서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어깨가 좁은 민병대의 부대장이 불쑥 달려든 것은 그때였다.



02.

"크악!"


마드를 고립시킨 계엄군 기병들의 뒷 줄에서 비명 소리가 올랐다. 선연한 색깔의 핏줄기가 치솟았다.


로엘은 마드를 따라잡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엄군 기병들에게 부딪혀왔다. 몸을 바짝 수그린 채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와 허리 뒤춤에 매달린 검집으로부터 검을 빼어 휘둘렀다. 끄트머리가 살짝 휘어진 사막 군인들의 전형적인 장검이었고 그의 좁은 어깨처럼 손잡이 장식이 작고 볼품없었지만 관리 상태가 매우 훌륭했다.


로엘이 휘두른 검을 재차 끌어당기며 기병들을 베었다. 그리고 생겨난 틈으로 말머리를 들이밀었다. 로엘이 마드에게 다가가 붙었다.


"괜찮으십니까?"


"여긴 뭐 하러 왔어! 함정에 걸린 것은 나 하나로 족해! 당신은 어서......"


둘의 사사로운 한담을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계엄군의 기병이 곧장 달려들었다. 세이마르 민병대의 대장과 부대장은 마치 미리 합을 맞춰놓은 듯 재깍 서로 떨어지면서 달려든 기병을 양쪽에서 함께 베었다. 로엘은 허리를 마드는 목을 베었다. 일격과 같은 협공에 계엄군 기병은 해후를 방해한 죄로 절명했다.


"긴장 풀지 마세요, 대장님! 그리고 함정에 걸린 게 뭐 자랑이라고 그렇게 목을 빳빳하게 드십니까?"


"뭐? 이제 와서 나를 꾸짖으려고 온 거야?"


"그래서 나아지실 분이라면 얼마든지 꾸짖어드리죠. 하지만 지금은 일단......"


기병들이 재차 달려들었다. 마드와 로엘은 말위에 탄 채로 서로 등을 맞댄 채 그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뒤처졌던 민병대의 기병들과 뒤쫓는 계엄군 기병들도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것부터 생각하자구요. 아무래도 저들의 목적은 대장님 머리 하나인 모양이니까."


"그건 알아. 내 머리 하나만 가져가고 당신들을 그냥 풀어주면 좋을 텐데."


"물론 그럴 리 없다는 건 잘 아시죠? 저들은 생포할 생각도 별로 없어 보이니까."


"제기랄."


"그러니까, 대장님. 아니 마드."


마드가 비식 웃음을 흘리며 부대장을 쳐다보았다. 그때 다시 한번 적 기병들의 공격이 날아들었고 그들은 각자 요령껏 검을 흘리고 받아내며 위기를 모면했다.


"날 이름으로 부르는 게 얼마 만이야, 로엘. 왜? 이제 보니 대장이고 뭐고 아니다 싶은 모양이지?" 마드가 말했다.


"그래요. 마드 세라자드. 당신은 이제 대장 이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남겨야 하는 희망이에요. 희망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길을 밝혀줘야죠."


"또 혼자 도망가라는 얘기라면 절대 듣지 않을 거야."


"...... 여기 병사들은 그렇다 쳐도 오늘 아침에 본 사령관은 결코 대장님 머리 하나로 끝내지 않을 겁니다. 민병대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내서 모조리 없애려 들 거예요. 세이마르는 아직 당신이 필요해요."


"......"


뒤로 처졌던 모든 기병들이 마침내 한데 모이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공간에는 한계가 있었고 곧장 뒤엉켜 난전이 벌어졌다.


"지금 기병들이 모였을 때가 기회에요. 마드 제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에게 가세요. 내가 어떻게든 공간을 열 테니."


공간을 열겠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마드는 사리안을 떠올렸다. 스무 명의 계엄군들이 탐욕스럽게 올라오는 언덕에 혼자 외로이 남았던 그 이방인을.


'왜 다들 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거야. 대체 내가 뭐라고. 당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 나인데!'


그러나 한가하게 자책하고 반성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로엘이 그녀의 답을 기다리는 대신 그와 그녀를 둘러싼 기병들에게 몸을 날렸다. 뜨거운 숨을 내뿜으며 로엘의 말이 달려들었다. 다시 한번 마드의 앞에 그녀가 달려가야 할 길이 열렸다.


"어서! 마드, 어서!"


이제 와서 고집을 피울 순 없었다. 그녀가 무엇보다 지켜야 할 것은 아무 죄 없는 세이마르의 시민들이었으므로.


"젠장! 뒤를 부탁해, 로엘!"


마드는 두 다리를 꽉 조이며 말 등에 납작 엎드렸다. 마드의 말이 다시 한번 질주하기 위해 고개를 까닥였다가 좁게 열린 길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비아 무시엘라, 계엄군의 기병 단장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03.

이방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에는 그의 키만큼이나 기다랗고 그의 어깨만큼이나 넓은 대검이 들려 있었다. 새까맣고 적나라하게 생기기가 막 이성에 눈을 뜬 사춘기 사내아이의 얼굴만큼이나 적나라했던 몽둥이는 그가 만들어낸 병사들의 산 어딘가에 버려졌다.


마드가 보았더라면 그에게 사리안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던 만큼 대검에도 분명 넓고 큰 별명을 지어주고 싶어 안달이었으리라.


모래 먼지가 덕지덕지 묻은 대검은 방금까지도 이방인의 손에 들려 위협적이고 강렬한 춤을 한바탕 추고 난 뒤였다. 춤의 결과는 이방인의 주위에 널브러진 채 가느다란 숨을 겨우 내쉬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몽둥이를 든 이방인은 정말 무서웠지만 거대한 검을 쥔 이방인은 그야말로 악몽의 재림이었다.


말리하라는 그의 병사들보다 한참을 앞서서 사막의 언덕 어딘가에 기절해 있었고 그가 깨어난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감찰관의 물음에 그가 같은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던 이유에는 이러한 사정도 있었던 것이다.


이방인이 무마르의 대검을 든 채 언덕을 뛰어내려왔을 때 밑에서 대기 중이던 계엄군의 2진은 마냥 의아했다. 황급히 달려간 그들의 동료들은 어쩌고 낯선 사내 혼자 내려오는지, 그리고 사막에서 똑같은 물건을 찾기조차 힘들 거대한 검이 왜 그의 손에 들려 있는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세이마르 후문 성벽에 서 있던 민병대 경비 대장 비드 하란은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대검이란 물건이 '사실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들고 옮기기도 힘들 것 같은 대검을 이방인이 번쩍번쩍 들었다가 내리치자 사막의 모래가 불그죽죽하게 물들어갔다.


그렇게 대부분의 적들이 정리되었을 때 (사실은 지휘관마저 잃어버린 대다수의 병사들이 똥줄이 빠져라 도망가고 난 뒤에) 고고하게 홀로 선 채로 숨을 몰아쉬던 이방인이 문득 고개를 들더니 다시 어딘가로 바람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비드 하란은 그가 목격한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떠벌리며 덧붙였다.


"사람이 날기도 하더라고."



04.

로엘의 목이 떨어졌다.


뜨거운 피가 그녀의 얼굴 위로 튀었다. 마드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진 로엘의 목이 검에 꿰뚫리는 것을 그대로 보았다. 로엘은 안타깝고 처연한 표정으로 마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본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리라.


"......!"


그녀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로엘의 목을 찌른 적의 목에 직접 검을 밀어 넣었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적이 말에서 떨어져 나갔다. 말을 몰아 적들에게 달려들려는 그녀를 마손이 제지했다.


"더 깊이 들어가시면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란 말이야! 지금 로엘이!"


"이미 기병들 대다수가 당했습니다! 대장님마저 당하시면 세이마르는 이대로 끝입니다."


"그렇다고 저들을 놔두고 갈 수는 없어. 이것 놔!"


그녀를 만류하는 마손에게 버럭 소리치고 다시 달려 나가려던 찰나, 그녀 앞으로 엄청난 폭풍이 들이닥쳤다. 고막이 터질듯한 굉음과 함께 뜨거운 폭풍이 일었고 그녀는 그대로 말에서 떨어져 나가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들이 물에 잠긴 듯 먹먹하게 멀리서부터 들리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다. 제국의 포격이 다시 시작됐고 말에서 떨어진 민병대의 수장을 발견한 제국 병사들이 짐승처럼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마드의 앞을 막아섰던 마손은 포격에 안타까운 표정 그대로 몸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폭풍에 휘말렸던 부하들도 말에서 떨어진 채 속절없이 베어졌다. 두 기의 제국 기마병이 끝에 낫이 달린 기다란 창을 한 자루씩 꼬나쥐고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 인가보다. ...... 빌어먹을 사막의 달도 끌어내리지 못하고. 그래도 그냥 가지는 않을게, 로엘. 한 놈이라도 잡고 널 따라갈게.'


마드가 그녀의 검을 틀어쥐었다. 기병이 탄 말이 그녀의 코앞까지 달려들었다. 말에 탄 병사가 그녀의 그을린 목을 겨냥해 낫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마드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어깨가 대사막처럼 넓은 남자였다. 먼지 쌓인 로브와 주름진 부츠를 신은 남자는 그녀의 허리보다도 넓은 대검을 한 손에 거뜬히 들고서, 휘둘렀다.


벼를 추수하듯 기마병 둘이 말과 함께 베어졌다. 말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죽었고 그건 말들의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사리안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이름은 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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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6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2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6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8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7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29 38 12쪽
»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7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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