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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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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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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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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Re 56. 침공 4

DUMMY




01.

세이마르 민병대의 대장과 부대장이 나란히 말을 타고 성문 밖으로 향했다.


포탄에 직격당한 성문은 반쪽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소금 나무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문이 마치 휴지 조각처럼 찢어졌다. 마드와 로엘은 틈을 두고 계속해서 솟아오르는 포격 소리를 담담하게 들으며 성문을 지났다.


이윽고 적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드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예상 못 한 종말이 불쑥 찾아왔을 때 누군들 적절한 말을 찾을 수 있을까?


마드는 세이마르의 관리들을 몰아내고 도시의 독립을 주장했을 때부터 이미 그렸던 미래가 찾아왔음을 알았다. 세이마르의 카타콤에서 피와 시체와 세상의 모든 터부를 모아놓은 듯한 제단을 보았을 때 이미 예상했던 최후였다.


세이마르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에게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렇게 많은 병력이 이동하는 동안 우리 척후들은 대체 뭘 한 거야?'


마드는 속으로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이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엔 많이 늦은 시간이었으니까. 결국 마스칼이 보이지 않았던 것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계엄군은 대략 1,000이 넘는 규모였다. 사막의 사구 밑으로 자글자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앞에 둔 개미 떼처럼 보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개미 떼들은 먹이를 어떻게 토막 내고 잘근잘근 부수어서 둥지로 가져갈지 고민하는 듯 했다. 마드는 개미들이 세이마르를 잘게 부수어 성도의 황제 앞에 전리품으로 내놓는 광경을 상상하고 오싹해했다.


못 잡아도 서른이 넘어 보이는 이동식 포대가 전후좌우로 병사들을 거느린 채 분주하게 불꽃을 뿜어댔다. 한 대의 포는 최소한 여섯 명의 병사들을 거느렸는데 마치 어미 물고기에 매달린 치어들 같았다. 포대의 뒤에는 100기에 달하는 기병들이 위용을 뽐냈다. 그들은 땅을 박차고 달려나가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속으로 삼키며 포 뒤를 서성거렸다.


소대별로 나뉜 그룹들에는 제각기 높이가 다른 깃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제국의 휘장, 황금의 태양 아래 세 갈래로 갈라진 혀를 음탕하게 날름거리는 뱀이었다. 제국의 장교들이 말을 타고 포와 병사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사기를 북돋았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의 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포격은 세이마르의 성벽을 완전히 무너트렸고 몇 개의 포탄은 성벽을 훌쩍 넘어 도시 안에 착탄했다.


"항복하라고 시위하는 거야. 교섭은 건너뛰고 바로 항복부터 하라고 닦달하는 거지."


마드가 나지막이 말했다. 하늘을 찢고 울리는 포격 속에서 들릴 리 없는데도 로엘이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물러나셔서 후문으로 가시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여긴 저와 기병대가 어떻게든 끌어볼 테니까요."


로엘이 그녀에게 말했다. 마드와 로엘의 뒤에는 20기의 민병대 기병들이 있었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긴장이 역력한 모습이었으나 한편으론 마지막 의기를 자아내는 비장한 눈빛이었다. 이들은 마드의 뜻에 동감하며 세이마르에 남았던 지방군들이었다. 정식 군인이었던 만큼 민병대의 최정예 인원들이었지만 그래도 20대 1,000의 숫자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였다.


"이제 와서 물러날 수는 없어. 게다가 이왕이면 머리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시간을 끌 수 있는 법이잖아."


마드가 로엘과 기병들을 돌아보았고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었다.


"세이마르 기병대의 마지막 전투를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우리는 시민들이 무사히 도시 밖으로 나갈 때까지 이곳을 끝까지 사수할 겁니다."


마드가 날이 한 쪽으로 난 레이피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자, 가자!"


세이마르 기병대가 일제히 뛰쳐나갔다.



02.

경비 대장 비드 하란이 도시의 후문에 도착했다.


로엘의 당부를 받은 경비 대장은 사령소에 남아 있던 모든 대원들을 모아 곧장 후문으로 달려왔다. 세이마르 성의 후문은 정문에서는 정반대 쪽에, 시청 청사로 보자면 북동쪽에 위치했다. 그곳엔 이미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숨 쉴 틈도 없이 달려온 비드의 눈에 훤하게 열린 문이 보였다.


'계엄군이 이미 들어왔구나!'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계엄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칼에 쓰러지는 시민들도 없었다. 그저 우왕좌왕하는 혼돈만이 성문 앞에 가득했다. 시민들은 훤하게 열린 성문 앞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움직이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여러분, 진정하세요! 경비 대장입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비드가 시민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며 외쳤다. 그를 알아 본 일부 시민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비드가 그들에게 물었다.


"초소병들은 어디 갔습니까? 제국군이 이미 들어온 것인가요? 제게 얘기해 주실 분 없으십니까?"


그러나 시민들은 그저 혼란스러워할 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먼저 도착한 민병 대원들이 시민들 사이를 헤치고 앞으로 달려 나왔다.


"경비 대장님! 민병 대장님은 어디 계십니까? 큰일입니다!"


"오, 우자에! 적들은 지금 부대장님이 막고 계신다. 우린 이제부터 시민들을 인솔해서 도시를 빠져나가야 돼. 부대장님의 명령이다!"


달려온 민병 대원 우자에는 도시로 떨어진 포격에 영향을 받은 듯 온몸이 먼지투성이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부릅뜬 그에게 비드가 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왜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어? 초소병들은 다 어디 갔나?"


"초소병들이 모두 당했습니다! 성 밖에는 제국군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제국군만이 있는 게 아니라......"


"제국군 말고 또 누가 있다는 거야? 제대로 말해봐!"


비드가 직접 성벽 위로 뛰어 올라갔다. 성벽 위에는 초소병들이 칼을 맞아 널브러져 있었다. 대부분의 초소병들이 등 뒤에서 칼을 맞았다. 미처 검을 빼들지도 못한 채 죽은 병사도 있었다. 그들은 본인들이 무엇에 당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죽어간 듯했다.


'계엄군들이 그새 성벽을 타고 오른 건가? 하지만 이 모습은 마치......'


경악하며 그들을 살펴보던 비드가 고개를 들자 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는 이 광경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다.


후문 밖에는 계엄군 병사들이 있었다. 얼추 100이 넘는 병력이었으나 그 사이에는 지금이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모래 바닥 위에 누운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사지는 찢기거나 절단이 났고 그들이 흩뿌린 핏자국이 멀리 성벽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잘린 동료들의 몸뚱아리를 밟지 않으려는 듯 계엄군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병사들의 얼굴이 이곳에서 보일 리 없었지만 그들을 사로잡은 혼돈이 그대로 전해졌다. 각자의 병장기를 꼬나쥔 채 병사들은 누군가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엄청난 숫자의 우세에도 감히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건 한 사내였다.


100명이 넘는 병사들을 앞에 두고도 고고하게 숨을 몰아쉬는 사내는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로브를 입었고 한 손에는 병사들이 달라붙어 들어도 간신히 옮길까 말까 한 거대한 대검이 들려 있었다. 비드는 그를 보자마자 얼마 전까지 사령소에서 지리한 문답을 주고받았던 이방인임을 알았다.


'저 자가 지금 왜 저기에 있는 거지? 왜 계엄군과 맞서 싸우고 있는 거냐구!'


그때 남자가 다시 한번 검을 치켜들었다. 비드의 입이 떡 벌어졌다.



03.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말리하라는 이날의 싸움이 왜 이렇게 꼬여버렸는지를 생각했다. 말리하라 므핫셀은 오사르가 둘로 나누어 도시의 후방을 습격하도록 했던 부대의 부대장이었다.


그는 제국 사관학교의 생도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특출난 성과도 별다른 난관도 없이 이 자리까지 올라온, 말하자면 곱게 자란 남자였다. 계엄군에 합류한 것도 오사르 알렉세이라는 최근 제국에서 가장 이름을 떨치고 있는 군인을 선망하였기에 스스로 지원한 것이었다.


계엄군에 지원하면서 그는 별로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지방의 작은 위성 도시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일이 뭐 그리 힘들까? 심지어 군인들도 아니라 도시의 시민들이 주축이 된 오합지졸과 다를 바 없는 민병대인걸.


'게다가 민병대의 대장은 계집이라며? 어미와 아비도 없이 자란 철부지 귀족이 대장이라니, 결과가 뻔히 보이는구만.'


그저 오사르의 눈에 한 번이라도 들면 그가 바라는 원정의 성과는 모두 달성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사르는 불쑥 말리하라와 선임 장교에게 도시의 뒤를 쳐서 적의 수장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 계엄군 진압은 자네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흘 뒤 나는 민병대 대장을 만나러 직접 도시로 들어갈 것이다. 물론 교섭 따위를 하러 가는 것은 아니야. 민병대의 대장에 대한 인물 평가를 입수했는데 아무래도 회유나 협박에 흔들릴 인물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이야기야 빤하지. 그러니 자네들에게 후방을 습격할 부대의 지휘를 맡긴다. 포격을 신호로 올릴 테니 반드시 적의 수장을 잡아야 한다."


민병 대장이 도시 후방에 있다고? 말리하라는 믿을 수 없었지만 오사르는 이미 확실한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었다.


말리하라가 계엄군 사령관 앞에서 경례를 올렸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맡겨 달라고 큰소리도 쳤다. 하지만 겨우 100명 남짓한 인원으로 도시의 후방을 공격하고 심지어 적의 수장까지 잡아오라는 것은 좀 만만찮은 일이었다. 말리하라가 여태껏 맡아왔던 병영 체험 캠프와 같은 임무들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던 것이다.


말리하라가 맡은 후방 습격대의 대장은 우바리 마스캇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장교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무마르(갈색곰)라고 불렸다. 무마르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 병에서 시작하여 장교의 자리에 오른, 뭐 말하자면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인물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두려움을 몰랐고 성격도 급했다.


병법에 밝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마어마한 거구와 덩치에 걸맞은 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오사르를 비롯하여 사령관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항상 병사들의 앞에 서는 솔선수범에 있었다. 쉽게 말해서 사람 죽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 그런 놈이라도 있으니까 내 손에까지 피 뭍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던 건데......"


말리하라는 적의 수장을 놓친 것도 모자라 성의 후문까지 밀려나고 우리 군의 대장은 온데간데없어진 상황을 곱씹었다. 심지어 그와 병사들을 도시의 후문까지 밀어낸 상대는 오직 한 명의 사내였다.


군대란 무서울 정도로 효율적인 집단이지만 통제 못한 변수가 발생했을 때 무너지기도 쉬운 집단이다. 특히 지금처럼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강력한 (그것도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전력이 나타나면 모든 작전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말리하라와 병사들은 이름 모를 사내가 치켜든 커다란 (그리고 낯익은) 대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들의 동료가 머리를 똑 떼고 머나먼 길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완전한 혼란에 빠져버렸다. 말리하라는 만약 성도에 무사히 돌아가더라도 그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황당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라 믿기는 커녕 거짓말쟁이로 매도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리하라가 성도에 돌아가서 펼쳐놓을 목격담은 이것이었다. 계엄군의 세이마르 침공을 막아낸 것은 단 한 명의 사내였다고.


그리고 갈색곰, 무마르는 시커먼 몽둥이에 맞아 죽었노라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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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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