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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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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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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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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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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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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57. 침공 5

DUMMY

01.

우바리 마스캇(무마르)이 이끄는 계엄군 2진이 세이마르 후방으로 진입했다.


세이마르 민병대의 대장이 도시의 후문 쪽에 무방비하게 있다는 첩보에 의해서였다. 무마르는 100명이 조금 넘는 병력을 이끌고 들키지 않도록 빠르게 이동했다. 척후들이 미리 닦아놓은 모래 언덕길을 따라 신중히 이동한 결과,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세이마르 북동쪽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이윽고 기다렸던 포성이 울렸을 때, 무마르와 말리하라, 후방 습격대가 도시를 향해 돌격했다. 도시의 뒷문은 훤하게 열려 있었다. 계엄군 사령관, 오사르가 습격의 성공을 자신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민들로 이루어진 오합지졸 반역 세력 따위, 딴 생각 품는 놈들이 나오는 게 당연하지.'


계엄군 2진이 훤히 열린 성문으로 진입하는 동안 그들을 저지해야 할 세이마르 민병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무마르가 발이 빠른 병사 스물을 추렸다. 그리고 말리하라를 앞세워 세이마르의 공동묘지를 향해 달리도록 했다. 그들이 노렸던 것은 세이마르 민병대의 대장이었다.


"어리석은 민병대의 대장이 혼자 있다더구나. 그러니 너희가 가서 잡아오거라!" 무마르가 말했다.


말리하라조차 무마르의 말에 신이 나서 언덕을 올랐다. 그저 오사르의 눈에 드는 것만 생각하다가 전과까지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잡다니. 대장의 목은 큰 전과다. 말리하라는 병사들보다도 앞서 달렸다.


무마르는 뒤에서 쫓아왔다. 사막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구까지 뒤집어 쓴 채, 듣기만 해도 더운 숨을 씩씩 뿜었다. 그가 손에 들린 것은 장교에게도, 사람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커다란 대검이었다.


그들이 오르는 언덕은 세이마르 시청 청사의 뒤편에 있었다. 관리되지 않은 덤불이 허리까지 웃자랐고 길도 전혀 닦여있지 않았다. 길 위로 군데군데 패인 자국이 문둥이의 얼굴에 난 곰보 자국처럼 보기 흉했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 '세이마르 수복전'을 단숨에 끝내버릴 수 있는 마드 세라자드의 목이 있었기에 병사들은 개의치 않고 달렸다.


얼마를 올랐을까.


언덕 위에 위태롭게 선 민병 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선두에 서서 달리던 말리하라가 그릇이 작은 남자의 미소를 만면에 지었다. 갈색의 풍성한 머리와 크고 늘씬한 키 그리고 왠지 모를 기품마저 느껴지는 그녀를 보며 말리하라는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욕정 (나도 주책이지, 참)과 호승심을 동시에 느꼈다.


언덕의 정상이 이제 코앞이었다. 마드 세라자드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별안간 사내 하나가 불쑥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뭐냐, 저건!"


말리하라가 소리쳤다. 반역 도시의 민병 대원도, 전향한 군인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달려드는 사내는 사막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날개를 펼치듯 로브를 펄럭이며 사내가 날아들었다. 그자의 얼굴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머뭇거림도 없었다. 스물 가까운 병력을 향해 돌격하면서도 태연하기 그지없는 사내의 표정을 바라보던 말리하라의 눈에 또 다른 무언가가 비쳤다.


그건 시커멓고 커다랬으며 아주 흉흉하게 생긴 몽둥이였다.


'저거 마치 소의 조......'


딱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선두에 섰던 병사들이 순식간에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사내가 손에 든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계엄군 병사들이 머리부터 땅으로 푹 꺼지듯 언덕 위를 나뒹굴었다.


"젠장! 적이다! 매복이야! 죽여라!"


말리하라가 고래고래 외쳤다. 그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지시를 내리는 건지도 모른 채 그저 머릿속을 가득 채운 시커먼 불안감을 몰아내기 위해 소리 질렀다.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유일한 감정은, 아무래도 좆 된 것 같다는 기시감이었다.



02.

'좆됐다. 좆됐어. 좆.....'


말리하라는 마치 종교적 불안감에 휩싸인 듯 했다. 자신의 병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사내를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사내는 가장 선두에 섰던 병사들을 시작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차례차례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몸놀림이 어찌나 날쌘지 병사들은 미처 검을 뽑기도 전에 우르르 쓰러졌다.


말리하라는 태어나서 저토록 몽둥이를 능숙하게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마치 몽둥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모범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위대한 태양 기사단조차 검이 아닌 몽둥이를 들고는 저렇게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만일 저 남자가 몽둥이 대신 검을 든다면, 그건 정말 볼만한 광경일 것이다.


사내가 밀고 내려올 때 뒤에는 그녀가 있었다. 사령관이 굳이 계엄군을 둘로 나누어야 했던 이유, 세이마르의 민병 대장, 마드 세라자드였다. 하지만 말리하라는 감히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민병 대장이 뛰어내려오는 데도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나도 저 꼴이 날 거다.'


사내가 휘두른 몽둥이에 턱과 머리가 돌아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리하라가 생각했다.


민병 대장은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는 사내의 뒤에 딱 달라붙은 채 달렸다.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병사들이 손을 뻗기만 해도 그 즉시 시커먼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언덕 위에 불쾌한 소리가 연신 울려 퍼졌다. 귀를 의심할 만큼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였다. 캔버스의 흩뿌리는 빨간 물감처럼 병사들의 피가 언덕 곳곳에 뿌려졌다.


"모두 비켜라, 이 둔한 놈들아!"


밑에서부터 거구의 장수가 쿵쿵거리며 달려오며 소리쳤다. 무마르였다.


'그래, 무마르라면 잡아낼 수 있을 거다.'


말리하라가 생각했다. 참으로 탐탁지 않은 선임이었지만 이때만큼은 전설의 용사처럼 듬직해 보였다.


"모두 길을 열어라! 대장님이 앞으로 나가실 수 있게 길을 열어!"


말리하라가 가녀린 성대를 모두 짜내어 소리 질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중한 중장갑으로 무장한 무마르가 달려나갔다. 산도 베어 넘길 것 같은 대검을 한 손으로 뽑아들었다. 계엄군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길을 열었다. 갈라진 길 사이로 민병 대장이 달려 나왔다.


사내 대신 민병 대장의 모습이 보이자 말리하라는 당황했다. 무마르가 손에 든 대검을 휘두르려고 준비했다.


'설마, 그걸 그대로 휘두를 셈이야? 민병 대장 목만 들고 갈 셈이냐고!'


말리하라가 속으로 외쳤다. 무마르는 그러거나 말거나 대검을 휘둘렀다. 온몸의 근육을 모두 사용한 무자비한 스윙. 말리하라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탐스러운 갈색 머리와 기품이 흐르는 얼굴이 성숙한 매력을 뽐내는 몸으로부터 안녕을 고하고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은 그대로 헛헛하게 허공을 갈랐다.


'뭐지? 피한 건가!'


아주 잠깐 든 생각은 안도감. 그리고 곧장 들었던 생각은 불길함. 말리하라의 머릿속을 지배한 끔찍한 기시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내가 민병 대장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곰을 때려잡기에 딱 좋아 보이는 시커먼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03.

무마르의 검이 허공을 갈랐을 때 민병 대장이 재빠르게 달려나갔다. 말리하라가 병사들에게 외쳤다.


"민병 대장을 잡아라! 남자는 신경 쓰지 말고 저 여자를 잡아!"


후미에 뒤처져 있던 병사들이 마드를 향해 몸을 틀었고 무마르 역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하여 육중한 몸을 쿵쿵거리며 움직였다. 그러자 지금 이곳에서 가장 큰 생살여탈권을 가진 사내가 곧장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달리시오! 계속해서! 북극의 성에 맹세코 쉬지 말고 달리시오!"


사내가 외쳤다. 사내의 명령과도 같은 외침에 민병 대장이 땅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녀는 말리하라의 병사들처럼 홀린 듯이 뛰었다. 이미 대열이 흐트러졌고 언덕을 한달음에 뛰어 올라오느라 많이 지친 병사들이었기에 그녀를 붙잡기 쉽지 않았다. 병사들이 안타까운 손짓으로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대신 날라온 것은 시커먼 몽둥이 뿐.


'제기랄, 놓치겠어.'


그때였다. 무마르가 곰처럼 크게 숨을 내쉬며 대검을 휘둘렀다. 이것이 사내에게 직격했다.


"됐다!"


환호성이 일었다. 무마르의 검을 받은 사내가 공중을 붕 떠서 덤불 속에 숨겨져 있던 바위까지 날아가 부딪혔다. 말리하라는 그제서야 불안한 기시감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가 새된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됐다! 놈을 잡았어! 이제 민병 대장을 잡아야 한다! 모두 언덕 아래로 일제히 달려 내려가......"


그 순간 그의 눈에 보인 광경. 머릿속에서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소리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04.

『대륙 전쟁사 - 풀의 노래』 중에서 발췌.


...... 사막 병사들의 일반적인 무장은 경장갑이다.


다리가 푹푹 빠지기 일쑤인 사막의 모래 대지 위를 행군하기 위해서는 가볍고 움직이기 편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전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통풍이 잘 되는 복장이 강제된다. 투구의 착용은 대륙 어디의 군대든지 필수이고 제국에서도 법령으로 규정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쓰는 병사들은 거의 없다. 당신도 태양 아래서 단 10분만 행군을 해보면 병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반면 제국군의 장교들의 경우는 다르다.


제국군의 경우 다른 국가의 군대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다르게 높은 직급, 책임이 있는 위치일수록 규정된 무장을 모두 챙겨 입는다. 특히 일부 장교들의 경우는 정규 무장을 넘어 무거운 중장갑을 입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이는 '태양'을 황실의 상징으로 하는 국가의 군인으로서 햇볕과 무더위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불필요하고 비실용적인 선택이다.



05.

사내가 일어났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봤다.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어떻게 안 죽을 수가 있어? 저 대검에 그대로 맞아 처박혔는데 어떻게 멀쩡하냐고!'


말리하라가 속으로 외쳤다. 다들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마르다. 그가 작정하고 휘두른 일격에 당했는데 저렇게 멀쩡하게 일어서다니.


우바리 마스캇의 별명인 무마르는 사막의 말로 갈색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갈색곰이라니, 무슨 소리야. ...... 곰보다 훨씬 셀걸."


무마르는 장신의 거한이었고 큰 키에 꼭 비례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병영에 자랑스레 자신의 검을 걸어놓곤 했다. 병사들 둘이 달라부어야 겨우 옮길 수 있는 대검이었다. 병영을 지나는 누구나 검을 만져볼 수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무마르는 참으로 자상한 장교였으니) 한 번이라도 손을 대본 사람이라면 혀를 내둘렀다.


이게 사람이 쓰는 무기라고?


'그런데 태연히 일어났지. 심지어 바위에 날아가 부딪히고도 말이야.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 말리하라가 생각했다.


사실 지금 이 순간 가장 놀란 사람은 무마르였다. 어리석은 병사 녀석들이야 사내가 화려하게 날아가는 모습에 환호했지만 무마르는 그저 놀랐고 의아할 뿐이었다. 무마르가 방금 휘두른 일격. 그가 기대했던 것은 상대를 날려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방금 그 공격에 맞았다면 몸의 절반이 '뜯겨져 나갔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몸이 잘리기는커녕 가볍게 날아가서 안착 (무마르의 눈엔 마치 포근한 쿠션으로 날아가 안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다니.


하지만 뭐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푹 뒤집어쓴 투구 안으로 어느새 달큼해진 숨을 씩씩 내뿜으며 무마르가 사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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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4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7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9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6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 Re 57. 침공 5 +9 20.07.17 1,028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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