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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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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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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5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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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63. 퇴각 1

DUMMY

마드 세라자드가 검을 번쩍 들었다. 민병대 최후의 날에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01.

대장을 잃은 계엄군 기병들이 당황해 허둥댔다.


흩어져야 할지 한 번 더 조여야 할지조차 갈피를 못 잡았다. 명령을 내려줄 대장이 죽었기 때문이다. 민병대의 대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방인 검사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공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드도 알았다. 그래서 굳이 수세에 몰린 적을 자극하지 않았다. 괜히 섣부르게 공격하면 적들에게 혼란 대신 우선해야 할 일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빠져야 할 때다. 바로 지금이야.'


마드가 생각했다. 방금 전까지의 그녀라면 로엘과 잃어버린 기병들의 죽음을 갚으려 무턱대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사자가 기대한 대로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복수보다 중요한 건 시민들에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거야.'


그 사이 사자는 발치에 고인 새빨간 피 웅덩이를 밟고 서서 남은 기병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더 멀리 계엄군의 본진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할 테냐. 어차피 남은 방법은 하나일 텐데."


그때 계엄군이 포 두 발을 쏘아 올렸다. 포탄이 기병들이 머뭇대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착탄됐다. 굉음이 터지고 땅의 모래들이 분수처럼 치솟자 얼어붙었던 계엄군 기병들이 마침내 후퇴하기 시작했다. 사자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어쩔 줄 모르는 말 한 마리를 잡아 냉큼 올라탔다.


곧이어 본격적인 포격이 다시 시작됐다. 화살도 쏟아졌다. 사자와 민병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떠나기 전 사자는 대검을 전장에 버렸다.



02.

오사르 알렉사이가 손을 들어 포격을 시작했다. 꾸물거리는 답답한 기병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다. 그들과 민병대가 모인 곳에 직접 포를 쏘아서 다 불살라 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기병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 그리고 그들의 목을 모두 걸어서 남은 이들을 잡는다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랴.


개화한 민병 대장의 목과 삼류 소설에서 뛰쳐나온 듯한 영웅의 목은 남은 기병 삼십을 갖다 바치더라도 얻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남은 이들의 눈이 문제였다.


저 위의 황실과 앉아서 거드름만 피우는 늙은 돼지들은 승전의 소식만 들고 가도 크게 반길 것이다. 하지만 아군을 죽여 얻은 승리를 목격한 병사들은 결코 오사르를 승리한 장군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오사르는 훨씬 멀리 보는 사내였다. 먼 미래를 준비하는 사내였다. 그가 준비하는 미래에는 황실과 돼지들의 평가보다 전장의 땅을 같이 밟은 병사들의 평가가 훨씬 중요했다. 말(言)을 다루는 이들이야 성벽 안에 있겠지만 정말 중요한 말들은 민가와 병영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그래서 오사르는 삼십의 기병을 온전히 살리기로 했다. 다행히 기병들은 무사히 후퇴하여 그에게 돌아왔다. 오사르는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민병대의 젊은 여장부와 그녀가 기어이 살린 다섯의 기병을 바라보았다.


'마누라한테 이번 봄 휴가는 물 건너 갔다고 전해야겠군. 아니면 아이들만 데리고 다녀오라고 할까.'


민병 대장의 목을 자르지 못했으니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오사르가 포격과 사격을 모두 중지하라 지시했다. 그리고 세이마르로 진입을 준비했다. 급하게 도망쳤을 테니 많은 정보들이 도시에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세이마르 수복은 성공했다. 적의 수장은 도망쳤다. 도망쳐 갈 곳이 많지 않으니 결국 시간문제였다.



03.

사자와 마드와 다섯 명의 기병들이 무사히 전장에서 빠져나왔다.


"후아, 맙소사. 이만큼 도망쳐왔으면 됐어. 다들 괜찮아?"


세이마르를 넘어 지금은 흔적만이 남은 옛 도시의 무너진 성벽 아래서 마드가 말을 멈춰 세웠다. 조금이라도 빨리 탈출한 시민들에게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죽이고 아군들을 먼저 살폈다. 이 역시 그녀의 자질이 개화한 결과였다. 사자는 흡족했다.


남은 기병들이 말에서 내렸다. 쉬어야 하는 것은 말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속에서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막의 땅을 달려야 했던 말들은 사람 이상으로 피로했다. 스트레스로 말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충혈됐고 침과 콧물은 멈출 길 없이 계속 주룩주룩 흘렀다.


말을 세우자 말들이 똥과 오줌을 푸지게 누었다. 전투 중에는 생리 현상조차 멈추니 영특한 동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자는 타고 온 말의 갈기와 목을 부드럽게 어르며 진정시켰다.


"공화국의 검사들은 말을 타는 연습도 따로 하는 모양이지? 이제는 당신이 못하는 것이 과연 있을까 싶을 지경이네. 가장 뒤에서 쫓아왔는데도 금세 따라잡다니. 정말 놀랐어. 그리고,"


마드가 사자에게 다가와 그가 쓰다듬고 있는 말의 목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어젯밤도 그랬지만 오늘도 정말 많은 빚을 졌어. 이 빚을 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사리안."


사자가 고개를 돌려 마드를 향해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파란 눈이 마드의 눈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 눈을 보면서 마드는 마치 선생님에게 칭찬을 갈구하는 학생이 된 것 같았다.


"빚이라고 할 것 없소.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소. 나도 당신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이지. 게다가 나 역시 당신이 목적하는 바에 동감했기에 참전했던 것이오. 그러니 괜찮소."


"그렇게 말해주면 오히려 더 송구스러운걸.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 물어봐야 할 것 같아. 내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사리안?"


"당신 편할 대로 불러도 좋소. 사리안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곳 사람들에게 물으니 대사막(사리안)이라고 하더군. 당신이 부르는 이름이 마음에 드오."


"좋아. 그럼 앞으로도 당신을 계속 사리안으로. 내게 당신은 이 드넓은 사막보다도 은혜로운 사람이니까."


사자와 마드, 그리고 민병대의 기병들이 다시 말위에 올랐다. 그들이 시민들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한 시간을 더 달린 후였다.



04.

시민들은 세이마르 동쪽의 마을 <일란드라>에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아시스에 모여 있었다. 세이마르에서 탈출한 시민 모두는 아니었다. 그중 일부였다.


다른 일부는 남쪽으로 향했고 일란드라를 넘어서 더욱 멀리 달아난 이들도 있었다. 도리어 포격이 들리는 곳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 그러니 제국에 반역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지금이라도 황제께서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우리는 그저...... 두려움에 잘못된 선택을 했을 뿐이니까."


그들이 떠나면서 말했다. 그들이 포격을 뚫고 무사히 계엄군의 품으로 안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마드는 얼굴이 하얀 사령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끊임없이 살피던 망둥이의 눈을 기억했다. 그 눈이 황제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 시민들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마드는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이곳까지 달려온 사람들의 얼굴은 숫 검댕이가 되어 있었다. 포격으로 날아오른 먼지들이 머리 위에 붙어 새하얬다. 그들은 급하게 달리느라 세간살이 어느 것도 챙기지 못했고 가족들조차 챙기지 못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들을 이곳까지 이끌었던 것은 비드 하란이었다. 마드와 사자, 기병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비드가 발 벗고 달려와 반겼다.


"대장님!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이지. 아아, 이대로 대장님을 못 뵐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드는 마드의 얼굴에 엉겨 붙은 핏자국과 갈색의 머리를 잿빛으로 물들인 모래 먼지들을 보며 가슴이 복받쳤다. 비드의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그런 경비 대장을 바라보는 마드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살아남은 기병들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던 그의 눈이 갑자기 크게 커졌다. 사자를 본 것이다.


"아아, 당신! 알고 있어요. 당신 덕분에 우리가 모두 살았습니다. 대체 어디서 오신 분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비드가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 사자의 손을 붙잡으러 다가왔다. 그의 어깨가 가련하게 부들거렸다. 사자는 다정하게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아니오. 이 많은 시민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 훨씬 더 훌륭하오. 세이마르에는 정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있었군."


비드 하란이 사자의 얼굴을 눈에 새겨 넣을 듯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바로 이 분이었군. 멀리서 볼 때는 그저 사막에 현신한 늑대로만 보였는데, 이렇게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니.'


불현듯 생각난 듯 비드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요? 로엘 부대장님은......"


마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과 눈빛이 모든 답을 대신해 주었다. 비드가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제기랄."


"...... 그런데 비드. 왜 여기서 머무르고 있었던 거예요? 일란드라가 멀지 않았는데." 마드가 물었다.


"아, 네. 사실은......" 비드가 대답을 망설였다.


일란드라는 세이마르 시민들에게 성문을 열지 않았다.



05.

마드는 일란드라 주민들의 선택을 이해했다.


'계엄군이 코앞까지 다가온 마당에 반란 세력의 주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 그들에게는 아무 잘못도 물을 수 없다. 죄가 있다면 방심한 내게 있는 거지.'


일란드라 주민들은 도시가 일거에 소거되는 모습을 보았다. 천둥처럼 하늘을 울렸던 포격 소리가 사막을 가로질러 마을까지 닿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 줄 알았다가 이내 일어날 것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마을의 초소병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보고했다. 마을의 촌장은 그들에게 보고를 받기도 전에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았다. 멀리서 정규군이 다가와 포격을 쏘아댔고 세이마르의 민병대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무너졌다.


"결국은 황실이 직접 개입했구먼. 서둘러 '장'들을 모두 불러 모으게."


촌장이 급하게 마을의 '장'들을 소집했다. 구획별 장과 상인들의 장과 농민들의 장이 모두 몰려왔다. 논쟁이 벌어졌고 의견이 갈렸다. 여기에 어떤 논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세이마르에 대한 의리냐, 일란드라 주민의 안전이냐만 생각하면 됐다.


그들 사이에 논쟁이 무르익기도 전에 촌장이 나서서 선언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당연히 마을 주민들의 안전이었다. 촌장은 세이마르에 대한 의리와 정의를 얘기하는 말을 일축했다. 성도에서 제국군을 파견했으니 세이마르에 승산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문을 걸어 잠갔다. 비드가 마을의 성문 바로 밑까지 달라붙어 읍소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마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생했어요, 비드. 하지만 일란드라의 선택을 나는 존중해 주고 싶어요. 그들에게 더 부담을 지어줄 수는 없어요. 아무래도 우리는 일란드라를 넘어 더 동쪽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어쩌면 국경을 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테죠." 마드가 말했다.


"참, 비드. 혹시 비골라 아저씨는 못 봤나요? 설마 도시에 남아계셨던 것은 아닐 텐데."


"수색 대장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도시에 남은 전 민병 대원들을 소집했을 때도 수색 대원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다른 방향으로 몸을 피하셨을지 모릅니다."


"아저씨라면 무사히 도시에서 빠져나오셨을 것 같긴 하지만......"


해가 모래땅 너머로 한줄기 빛을 던져 넣으며 사라졌다. 이제 곧 사막의 밤이 시작되려 했다. 밤의 침식을 피할 길 없는 모래땅 위에서 그들은 사구 아래 구덩이를 팠다.


일란드라의 촌장이 찾아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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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8 41 12쪽
»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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