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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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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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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Re 67. 유마 1

DUMMY




01.

'마힌드라'는 세이마르에서 몇 날 며칠을 달려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마힌드라가 어째서 실크로드의 한 역(驛)으로 기능할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으리라. 마힌드라는 사막 바깥과 성도를 잇는 길 위에 있지 않았고 사막의 바깥과 바깥을 잇는 길 위에 있었다. 일란드라의 촌장이 마힌드라의 존재를 알았던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외진 성에서 만난 무법자가 사막의 제단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드는 그저 놀랄 수밖에.


유마 올리오는 성의 주인으로서 그에 맞는 위엄과 거드름을 피우며 앉아 있었다. 마드는 그가 제단을 입에 올린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 제단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유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면도한 턱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기대한 대답이 아니었는지 젊은 무법자의 표정이 차가웠다.


"아니야. 당신은 알고 있어. 사막의 제단과 제물에 대해서. 세이마르에 민병대가 일어나고 그곳의 관리들을 모두 몰아냈다는 이야기는 이곳까지도 널리 퍼졌소. 그런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 단순히 제국에 대한 반역이라기엔 세력이 너무 소소하고 명분도 미약해. 세이마르에 압제자나 허용 못할 부정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거든."


마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 이봐요, 민병 대장님. 우리에게도 나름대로 이 땅의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소. 게다가 내게는 세이마르에 갚아주어야 할 빚이 있었지."


"세이마르에 갚아주어야 할 것이 있었다고요?"


마드가 물었다.


"그렇소. 어떻게 보면 당신이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로챈 것이오. 물론 나라면 그곳의 인간들을 단순히 쫓아내는 것으로 끝내진 않았을 거야. 목을 잘라 도시 성벽을 아름답게 장식했을 테지. ...... 세이마르에는 제단이 있었소. 당신이 제국에 반역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오."


그때 사자는 세이마르의 제단에서 마드가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했다. 정확하게는 마드가 끌어냈던 제물들에 대해서.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 중 제대로 알 수 있는 있는 사람은 없었어. 도시 밖의 사람들이었거든. 어떤 이는 새겨진 지 오래된 칼자국을 몸 구석구석에 가지고 있었고 누군가는 불에 지진 듯 군데군데 화상 자국이 나 있더군. 알겠어? 그들은 무법자들이거나 혹은 죄를 짓고 잡혔던 범죄자들이었던 거야.'


마드도 마침내 깨달았는지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 얼굴을 노려보며 유마가 말했다.


"우리가 바로 제물이었거든."



02.

"우리 형제들이 신세를 많이 졌어. 형제들의 시체를 끌어내어 다시 묻어주었다지. 고맙다는 말을 이렇게 전하게 되는군."


"맙소사. 그곳에 있던 시신들이 모두 당신과 아는 사이였다는 건가요?"


"말하자면. 이 사막에 횡행하는 제물 사냥에 당한 우리의 형제들이었지."


"제물 사냥?"


마드가 사자를 돌아보았다. 사자는 '사냥'이라는 말에 아우바를 떠올렸다. 그곳에 있었던 미친 황소와 같던 사내, 마크 에반스를 떠올렸다. 오늘의 사냥. 이 달의 할당량. 고기, 고기, 고기.


"나 또한 사막의 제단을 알고 있소. 내가 지났던 도시에도 제단이 있었고 그곳에 올릴 제물을 마련하는 일들을 목격한 바 있지.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것은 마치 조직적으로 인간을 사냥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내가 이해한 것이 맞소?"


사자가 말했다. 유마가 사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좋아, 그럼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보다 더 쉽게 알아먹을 수 있을 거요. 재미도 있을 거고."


유마가 입을 뗐다. 제물 사냥과 무법자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03.

"내가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것은 아니오. 제국의 개들과 우리는 항상 반목하며 살았지."


유마는 사막에서 태어났지만 제국민은 아니었다. 유마의 아버지는 그 일족과 함께 사막 바깥에서 들어왔는데 그곳이 동서남북 어디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물론 좋은 분들이었고 아직도 그분들을 떠올리면 칼자국이 가득한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긴 하지만.


특별한 것은 그들 일족의 힘이었다. 일족이 가진 힘은 <눈>이었다.


"우리 일족은 대대로 눈이 좋았어. 사막의 그 어떤 이들보다 멀리 보고 또 자세히 볼 수 있지. 우리 일족의 눈을 사람과 비견할 수는 없소. 차라리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나 서부의 숲에 산다는 '큰귀족'들과 비교를 해야겠지."


일족은 사막 외곽을 떠돌며 나무를 찾고 그 나무로 만든 제품으로 살아갔다. 그들은 정해진 터가 없이 살았다. 일족은 사막에 적응해갔지만 제국민이라는 자각은 전혀 없었다. 유마는 사막의 아이였지만 제국의 아이로는 크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우리 일족이 사막에 들어오기 전에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일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어. 뭐 그런 거 있잖소. 왕국의 적들을 살피는 첨병이라던가, 먼 대양을 건너는 항해 민족이라던가. 하지만 어른들 중 누구도 사막을 넘어오기 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없었어. 아버지에게도 물어봤었지만 된통 혼나기만 했지. 우리는 이제 사막의 사람들이니 그전의 일들 따위는 아무 의미 없는 것과 같다,라고 하시더군."


유마는 일족의 아이로 컸다. 일족의 아이들 가운데서도 자연스레 중심에 섰다. 덩치가 크거나 특별히 힘이 세거나 몸이 날래거나 하지도 않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레 그를 따랐다.


그럴 수 있었던 것 역시 다름 아닌 눈 때문이었다. 일족의 역사에서도 특별하리만큼 좋은 눈. 유마는 지평선 가까이에서 달리고 있는 말을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 멀리 볼 수 있었다. 유마는 아이였을 때부터 일족의 어른들 틈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했고 13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어른 대접을 받았다. 아직 그의 얼굴에서 여드름이 가시기도 전이었지만 말이다.


그가 성인이 됐을 무렵 전쟁이 터졌다.


유마의 일족은 선택을 종용 받았다. 열강의 침공을 받은 제국은 영토 내에 불확정 요소를 놔두는 것을 우려했다. 게다가 일족의 눈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유마의 일족은 선택을 거부했다. 사막의 사람이었으나 제국의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제국을 위해 싸워줄 수 없었고 황실을 위해 죽어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제국에 협력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막을 침공한 나라에게 공격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당연하지. 전쟁이 시작되고 5년쯤이 지났을 때였을까. 그날 밤 우리 일족은 습격을 받았소."


유마가 술을 한잔 들이켰다. 마드도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유마가 그날 느꼈을 고통이 밤공기를 타고 그녀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는 사막 남서쪽의 성에 틀어박혀 있었소. 눈이 좋은 사내들이 성벽 위에 올라 사막 멀리까지 보고 있었지.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들이 코앞까지 다가오는 동안 우리 중 누구도 그들을 눈치채지 못했소.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우리의 눈은 탁하고 흐려져 있었던 거요.


적들은 밤에 밀고 들어왔소. 까만 로브로 무장을 한 세력이었지. 우리는 죽자 사자 응전했지만 적은 군대야.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소. 놈들은 사내고 여자고 모두 죽였소. 아이고 노인이고 모두...... 일족의 눈을 가진 자라면 누구든. 살아남은 것은 100여 명이 넘는 일족 중에 겨우 열둘이었소. 나를 포함해서 말이오."


성 밖 어딘가에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있던 무법자들은 이미 물러가서 역사 곳곳으로 퍼졌다. 그들 사이의 화톳불이 투덜투덜 대며 작은 불을 피웠다.


"전쟁이 끝나고 나는 살 궁리를 해야 했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소. 방법은 보다시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은 사람의 선택이라니 뻔하지 않소? 일족의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보단 사는 것이 더 급급했지. 나는 죽은 일족들을 생각하며 살기보다 남은 이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소."


유마는 무법자로 사막을 떠돌았다. 남은 열한 명의 일족은 사막을 떠나기로 했다. 유마는 사막에 남아서 그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멀리서 지원하기로 했다. 처음은 소소하게 사막을 지나는 상인들을 터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직접 거래세와 통행세를 걷었다. 유마를 따르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종업'을 하는 무법자들과 충돌했고 그들을 흡수했다. 나중에는 자진해서 유마의 밑으로 들어오는 조직들도 있었다. 유마는 사막의 길 위에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만났다.


"놈은 까만 판초 우의를 입고 있었어." 유마가 말했다.



04.

그날 아침에 유마가 밖으로 나오자 하늘 위에 사막 까마귀들이 맴돌았다. 불길한 징조였다. 전날 술을 너무 퍼먹어서인지 관자놀이에 칼을 갖다 댄 듯 머리가 욱신거렸다. 유마는 그때 새로 개설한 '통행로'로 출장을 나와 있었다. 이곳의 '생산성'이 꽤 쏠쏠하다는 보고에 구역을 담당하는 형제들을 치하하고 한참을 마셨더랬다.


유마가 부하들을 불렀다.


"야, 다들 어디에 있냐. 제기랄, 너무 퍼마셨지. 야야, 다들 어디 있냐고?"


유마는 자신의 몸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 위에 겹쳐지는 불길한 냄새를 눈치챘다. 유마 앞으로 처음 보는 무법자들이 다가왔다. 제각기 다른 날붙이를 들고 있었다. 목이 나무 밑동처럼 두꺼운 사내가 있었는가 하면 눈매가 날카롭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여인도 있었다. 유마의 눈이 여인의 손목 안쪽을 보았다. 새까만 까마귀 문신이었다.


"시발, 뭐냐 니들은. 우리 애들은 다 어디 갔어?"


유마가 안에 두고 나온 월도를 떠올렸다. 아차 싶었지만 물론 늦었다. 눈앞에 선 무법자들이 히죽거렸다.


그때 사내 하나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비집었다는 표현은 틀리겠다. 그가 앞으로 나올 때 마치 파도가 갈라지듯 무법자들이 좌우로 갈라졌으므로. 사내는 깊게 팬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까만 판초 우의를 입은 사내였다. 비가 온 지 한참은 된 날이었는데 판초 우의라니, 우스꽝스러웠지만 사내의 모습은 전혀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유마가 물었다.


"뭐냐, 너. 우리 애들을 손 봐준 게 너냐? 내가 누군 줄 알고?"


살기등등한 무리들을 앞에 두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유마를 보고 사내가 비식 웃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네가 누군지는 관심 없다. 그저 법 없이 사는 놈이 맞는지만 궁금해. 네놈의 애라는 것들은 다 보고 왔다. 아무래도 짐작이 맞는 모양이야. 고맙게도."


몹시나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 깊게 팬 눈이 기분 나쁘게 유마의 눈 속 깊은 곳을 훑어보았다. 유마는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물론 감을 수 없었다.


"우리 애들을 어떻게 한 거냐?"


유마의 귀에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척 낯설었다. 사내가 눈치를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떨고 있었다.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여기 있는 것이 너희 애들의 전부냐? 아니면 또 다른 애들이 있는 거냐. 이왕이면 후자이면 좋겠는데. 아직 '할당량'에 조금 부족해서 말이야. 너희 같은 부류는 대장이 죽으면 뿔뿔이 흩어지더군. 의리라고는 좆도 없는 녀석들이니. 그럼 좀 곤란해."


"너 이 썅, 무슨 소릴 하는......"


"너. 보내줄 테니 남은 놈들을 끌고 와라. 우린 여기에 있겠다. 복수를 해야 할 것 아니냐. 법 없이 사는 놈들이어도 그 정도는 하고 살 터. 남은 녀석들을 깡그리 몰고 오길 바란다. 우린 여기에 그대로 있을 테니."


"그게 무슨 개 소리......"


유마의 기억은 거기까지였고 깨어났을 땐 사막 한가운데 사구 밑이었다. 달이 훤하게 떴고 침식이 몸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유마는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뒤통수 뒤가 뜨끈했다.


"...... 이 개새끼가......"


유마는 그때 그냥 돌아갔어야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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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6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8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7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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