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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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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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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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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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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Re 69. 유마 3

DUMMY




01.

"어때, 재밌는 이야기 아닌가?"


유마가 물었다. 그의 얼굴 위로 화톳불이 일렁였다. 이날의 달은 크지 않고 열심히 기우는 중이었다. 병약한 달빛이 어렵사리 그들에게 내려와 얼굴을 비췄다.


말고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마드가 끝내 먹을 것 같지 않자 유마가 부하들에게 내려보냈다. 지시를 받은 얼치기 하나가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시시덕거리며 사라졌다) 그들 가운데 화톳불만이 다 끝나가는 캠프파이어의 장작불처럼 드문드문 타고 있었다.


마드는 묵묵히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자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이 남자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 까만 판초 우의를 입은 남자. 아무래도 그 자인 모양인데...... 이 얼마나 놀라운 우연인가. 그들은 정말 사막의 변질에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유마는 이야기가 민병 대장과 이 막강해 보이는 보디가드에게 충분히 인상적이었는지 가늠하려는 듯 그들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유마가 부지깽이를 들어 화톳불을 이리저리 뒤집었다. 그들 주변에서 같이 숨죽인 채 이야기를 듣던 벌레들이 다시 울기 시작했다. 마드가 입을 열었다.


"그 판초 우의를 입은 남자. 당신들을 습격했던 남자가 할당량이라는 말을 했다고요?"


유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할당량을 채웠다고 하더군. 무슨 할당량을 말하는 건지 그때는 몰랐어. 마치 살인 충동을 해소하는 최소한의 기준치가 있어서 그걸 다 채웠으니 너를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지. 정말 미치광이의 헛소리가 아니겠나.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었단 것을 한참이 지나고 알게 되었지."


마드가 사자를 바라보았다. 사자는 마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았다. 유마는 그들의 시선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도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 모양이로군. 할당량이라는 것이 뭘 말하는 건지."


"나 역시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오. 할당량. 나 역시 그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희생될 뻔한 적이 있거든."


사자의 말에 유마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못지않게 우여곡절을 겪었으리라 생각했어. 크크. 결국 우리는 이 사막의 변질에 함께 얽힌 '관계자들'이란 말이군."


"그럼 당신은 그 뒤로 그 판초 일당을 쫓으셨던 건가요?" 마드가 물었다.


유마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을 혼자 떠드느라 지친 목을 달래기라도 하는 듯 술잔을 몇 번이고 들이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놈들에게 목숨을 구걸한 거나 다름없소. 살려달라고 빈 것은 아니었지만 차라리 죽이라고 달려들지도 않았으니까.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마을이 온통 텅 비어 있었다.


노랗게 빛났던 해는 하루의 영화를 모두 누리고 늙은 빛을 뿌리며 언덕 아래로 넘어가고 있었다. 일족의 눈을 더럽힌 자신의 게으른 눈과 같았다. 마을을 가득 채웠던 비명도 피를 흩뿌렸던 판초 일당의 칼날들도 모두 사라진 채 마을에 남은 것은 오직 유마뿐이었다.


유마는 다시 기절했다가 다시 일어났다. 기절하고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몇 번의 달이 뜨고 몇 번의 날이 새롭게 밝았는지 유마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닥에 납작 달라붙어 사막의 모래땅 밑으로 가라앉기를 바랄 뿐이었다.


가능한 비참하고 조용하게 죽을 수 있기를.


온몸의 수분이 바싹 말라서 눈만 껌뻑 때는 산 미라처럼 됐을 때 비가 내렸다. 보름 만에 내리는 비였다. 모래땅 밑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올라와 비가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마도 누운 채로 비를 맞았다. 몸에 난 모든 구멍이 열려 수분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유마는 기어이 다시 한번 살았다.


"놈을 쫓았느냐고? 아아, 나는 항상 놈의 똥구멍만 쳐다보며 산 것이나 다름없소. 아주 먼 곳에서 우연히 날아든 소식을 듣기 전까진 말이지."



02.

간신히 살아난 유마는 다시금 세를 불렸다. 사막에는 여전히 무법자들이 득시글했고 그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지붕이 필요했다.


그들은 먹고 살 걱정이라는 구역질 나는 비로부터 몸을 피할 지붕이 필요했다. 유마라면 그들에게 지붕을 제공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무법자들은 다시 한번 꾸역꾸역 그의 밑으로 모여들었다. 한편으로 유마는 판초의 마지막 말을 언제나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


"아무렴. 덩치를 키우거든 다시 죽을 자리를 찾아서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지. 그 아량이 넘치는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말이야. 놈이 이번에 채워야 하는 할당량이 얼마가 됐든 내가 꼭 찾아서 채워주리라 맹세했소. 이번엔 놈들의 목으로 말이지."


살아남은 유마가 다시 세를 불리면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은 실크로드 재건 사업의 확장판이었다. 이번엔 통행세를 걷는 것을 넘어 직접 유통에 참여한 것이다.


"이 사막에는 태양 아래 드러난 거래 외에 달 밑에서 은밀하게 오고 가는 거래들이 굉장히 많지. 사막 전역에는 히든 마켓이 성행하는데 그들은 항상 거래할 수 있는 상품에 목말라 있소." 유마가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실크로드의 옛 상품들은 사막 곳곳에 퍼져 있고 우리 같은 무법자들은 그것들이 모두 어디에 있고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을지 빠삭하게 알고 있거든."


"아우바의 리드와 같이 말이오?" 사자가 물었다.


그 말에 유마가 놀랍다는 듯 사자를 보며 씩 웃었다.


"리드를 아나? 그렇지. 리드 역시 우리의 거래 대상이오. 그리고 사막엔 그런 시장들이 최소한 열 개는 넘게 있지. 뭐, 굶어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오."


'리드(아스토라) 녀석. 사막에 와서 별스러운 친구들을 다 사귀었군.' 사자가 생각했다.



03.

형제들을 모조리 잃어버렸던 그 지옥의 냄새가 어느 정도 지워졌을 때 (물론 평생이 지나도 그날의 치욕은 잊을 수 없겠지만) 유마에게는 두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첫째는 왜 하필 유마와 형제들을 노렸냐는 것이다.


"어느 나라나 말썽 피우는 범죄자들을 국가 권력이 처단하는 일은 당연히 있어 왔소. 서부 왕국에서도 몇 번인가 '대소탕'이라는 이름으로 도적 떼나 강도단을 일거에 잡아들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그때 우리는 무법자들이기는 했지만 목숨을 내놓아야 할만한 일들을 했던 건 아니었소."


유마는 수완이 몹시 좋은 사내였다. 일족의 피는 멀리 볼 수 있는 눈만 준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일을 찾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재능도 물려주었다. 유마가 판초 일당에게 습격을 당했을 때 유마와 형제들은 옛 실크로드의 영광을 재건하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서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에게 통행세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라의 허락을 받아서 하는 건 아니었지. 허락을 받지 않았으니 세금을 낼 생각도 없었고. 하지만 통행세를 받는 대신 우리는 사막을 건너는 상인들을 확실하게 보호해 주었소. 물론 가끔은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확실하게 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거짓 위험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뭐, 이건 그야말로 사업 수완이잖아?"


요컨대 핵심은 유마와 형제들의 사업이 불법이고 사막 주민들의 주머니를 (등골까지는 아니고,라고 유마가 덧붙였다) 터는 일이었긴 했지만 그렇다고 '죽어도 싼 일'은 아니었단 것이다. 그런데 유마와 형제들은 마치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판초 일당에게 단죄를 받아야 했다.


두 번째 의문은 그날 유마가 습격에서 혼자 살아남았을 때 바로 들었던 의문이었다.


다들 어디로 갔나.


"전쟁 후에 패잔병들의 시체를 치우는 승전국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소? 시체가 썩어 혹시나 병이라도 돌까 봐 정성스레 시체들을 옮겨놓는 군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말이지. 하지만 그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은 무참히 살육을 저지르고서 시체들을 모두 치워버렸소. 처음엔 땅에 묻어버린 줄 알았어. 하지만 마을엔 핏자국만이 가득할 뿐 어디에도 형제들의 시체는 발견할 수 없었소."


사자는 그 말에 문득 우물을 떠올렸다. 사막에 발을 디디고 얼마 안 되어 만난 마을에서 보았던 그 우물 속 광경. 사자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고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지금처럼 아프도록 미간을 찌푸릴 것이다.


"그제야 다시 떠오르더군. 놈들이 한 말. 할당량을 채웠다는 이야기.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른 두 개의 의문이 사실은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리란 것을 직감했소."


유마는 일전보다 더 큰 사업을 운영하면서 이를 통해 번 돈으로 정보를 사들였다. 무엇이든 좋았다. 공공연하게 오가지 않는 말,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서만 오가는 말, 태양 아래 드러나지 않고 달 아래에서만 조용히 지나가는 말들.


세이마르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바로 그때쯤이었다.



04.

유마는 큰돈을 들여 사막 남동부 전역에 정보망을 깔아놓았고 이윽고 세이마르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세이마르 시청 청사 주변에 아주 수상한 공동묘지가 있고 그곳으로 종종 시체들이 줄줄이 들어간다는 정보. 그 많은 시체들이 지켜보는 눈이라고는 달밖에 없는 밤중에 몰래 도시 안으로 들어갔지만 장례식도 뭣도 열리지 않더라는 이야기였다.


달조차 뜨지 않았던 어느 밤, 유마는 세이마르에 들어갔다. 그는 모두의 눈을 피해 세이마르 청사 뒤편 공동묘지에 올랐고 이마가 기괴할 정도로 툭 튀어나온 꼽추 묘지기를 따돌리고 지하 묘지에 들어섰다.


형제들은 그곳에 있었다. 목이 잘린 채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형제들은 아니었지. 하지만 보자마자 알았어. 이들도 어딘가에서 나와 형제들처럼 '사냥'을 당한 이들이란 것을. 그때 나는 우리가 왜 습격을 당했는지, 그들이 우리 형제들을 어떻게 했는지,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한 모든 답을 구했소. 그 개새끼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던 할당량이라는 것이 무얼 말했던 건지도."


유마의 눈이 고통스럽게 일렁였다. 그날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양.


"말하자면 이런 것이오. 세이마르 지하묘지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일종의 제단. 뭘 위해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뭘로 돌아가는지는 꼰대들의 욕정만큼이나 확실했지. ...... 바로 인간 제물이오."


저 남자의 눈은 단순히 먼 곳을 바라보는 것만 잘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라고 마드는 생각했다. 그의 눈은 어쩌면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꿰뚫어보는 능력인지도 몰랐다.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쉽게 진실을 받아들였는지도 모르지만.' 마드가 생각했다.


"세이마르에서 모든 의문을 풀고 나니 내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소." 유마가 계속 말했다.


"까만 판초의 목을 따주는 것? 그거야 여전히 세상 제일의 미녀를 품는 것보다 간절한 것이었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목표가 생긴 것이지. 천연덕스럽게 형제들을 사냥하고 다니는 놈들, 그리고 이를 지시한 놈들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놈들의 목을, 놈들이 만들어냈을 제단에 친히 제물로 올려주는 것이 나의 목표라 이거요."



05.

유마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남은 것은 씁쓸한 에필로그였다.


"그래서 그 판초 남자는 찾으셨나요? 설마 그 자들이 여전히 사막에서 제물 사냥을 하고 돌아다니는 걸까요?" 마드가 물었다.


"판초 말이지. 크크...... 나는 아주 오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다렸소. 언제나 사막에 있을 거라더니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더군. 그러다 바로 최근에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소. 믿을 수 없었지만 확실한 정보였지." 유마가 말했다.


"사막 남부의 자그마한 알레르기아라는 마을에 놈들의 시체들이 굴러다닌다는군. 놈들의 시체를 확인한 것은 제국의 태양 기사단이고. 크하하하, 이거 정말 걸작이지. 내 기분이 어떨 것 같소? 오직 놈들의 똥구멍만 쫓아서 살아왔는데, 놈들은 이미 모래땅의 한줌 거름이 되었다니. 크크크크. 신이 있다면 정말 멋진 유머 감각을 가진 모양이야."


사자는 그제서야 알았다. 그가 벌인 살육이 제국에 드러났다는 것을. 그것도 하필이면 태양 기사단에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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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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