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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조회수 :
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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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6
글자수 :
964,671

작성
20.07.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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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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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글자
12쪽

Re 61. 세라자드 3

DUMMY

그 남자, 대검을 높게 쳐들었다.


모래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로브에는 덧없이 스치고 지나간 적들의 흔적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들의 검은 아주 얇은 생채기만 냈을 뿐 어느 하나 로브의 주인에게 닿은 것은 없었다. 사막의 모래 위에 우뚝 선 부츠는 튼튼한 소가죽을 날렵하게 기워 만든 것이었고 주인이 바랄 때마다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움직여주었다.


그의 허리춤은 휑하니 비어 원래 있어야 할 물건이 부재(不在)의 존재감을 발산했다. 하지만 이제 그의 손에는 드넓은 검신의 대검이 들려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들을 베어 넘겼으니, 그는 여전히 사막을 건너는 중이었고 정의로운 자들에게 잠시 그의 손을 빌려주는 중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사자였다.



01.

"괜찮소?"


사자가 물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에 마치 마드는 골목길을 신나서 달려가다가 넘어진 여자아이가 된 느낌이었다. 언덕에서 들었던 그의 목소리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다급함과 절박함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때도 그녀의 감정이 투영되어 그렇게 느꼈을 뿐인 지도 몰랐다.


"......"


마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놀라 커진 눈으로 마냥 바라만 보고 있자 사자가 말했다.


"고생이 많았소. 무사히 여기까지 도달했구려. 좀 더 일찍 달려왔어야 했는데 붙잡는 이들이 너무 많았지. 아무튼 계속 그렇게 주저앉아 있어서는 곤란해. 기병들이 계속 달려들고 있으니, 눈먼 발굽이 당신을......"


딱 거기까지 말하고 사자가 빙글 몸을 돌렸다. 몸이 돌아가면서 대검도 함께 돌았는데 마치 신의 대리자인 신화 속 독수리가 날개를 펼친 것 같았다. 사자가 몸을 돌린 방향에서 계엄군의 기병이 달려들었다. 앞다리를 치켜든 채 달려드는 말에게 곧장 사자의 대검이 날아들었다.


사자가 검을 휘두르면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로서도 말을 베는 것은 영 탐탁지 않았다. 주인을 섬길 뿐인 말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함께 허리가 날아가 버린 병사는? 그건 사자를 적으로 삼은 자에게 합당한 업보였다.


사자가 대검을 휘두르자 거센 폭풍이 일어났다. 원래의 주인인 무마르가 휘둘렀을 때보다 몇 배는 크고 거친 바람이었다. 모래가 풀풀 날아올랐다. 먼지 폭풍이 일어나 사자가 휘두른 검의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기병들이 말을 멈춰세웠다. 맙소사, 우리가 지금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돼.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리안? 저것 봐, 말이 두 동강이 났어!'


마드가 놀라 생각했다. 기습을 하자마자 반 토막이 되어 마드와 사자의 양옆으로 끔찍하게 널브러진 말과 병사의 최후에 말문이 막혔다. 사자의 로브가 피로 흠뻑 젖었다. 그녀가 보기에 왠지 사리안은 피로 범벅이 된 모습조차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어릴 적에 읽었던 영웅 소설에 나오는 '피칠갑을 한 영웅'이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쁘거나 신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나저나 사리안 말대로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어. 어서 일어나야...... 젠장, 움직여라 다리야.'


마드가 기를 쓰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포격에 이리저리 충격을 받은 뇌와 달팽이관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그녀가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를 후들거렸다. 사자가 다가와 그녀를 다정하게 부축해 주었다.


"자, 정신을 집중하시오. 지휘관이라면 이런 일은 부지기수. 상처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는 것 역시 지휘관의 기본 덕목이오. 몸도 마음도 말이지. 그러니 정신을 바짝 다잡고 당신 몸에 대한 지휘권을 어서 되찾으시오." 사자가 말했다.


계엄군의 기병들이 대열을 정렬하고 빈틈을 노렸다. 각자 꼬나쥔 날붙이들을 이리저리 다시 잡아가며 사자에게 달려들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무턱대고 달려들기엔 사자가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가 너무 강렬했다. 그들의 동료가 이미 셋이나 반으로 찢겼다. 거대한 검을 들고 선 피곤한 표정의 사내는 아무런 빈틈이 없었다.


그들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 살아남은 민병대의 기병들이 사자와 마드 뒤로 와서 섰다. 민병 대원들은 사자가 초면이었지만 그가 얼마 전 도시에 들어왔다는 이방인임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가 민병 대장 암살 미수를 혼자서 막아냈다는 것도 기억해 냈다.


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민병대의 기병들이 말을 다독였다. 남은 기병의 숫자는 다섯. 말은 네 마리였다.



02.

계엄군의 포격이 잠시 멈췄다. 멈춘 것은 계엄군 사령관 오사르였다.


계엄군의 기병들이 한데 모였기에 함부로 포격을 했다간 아군이 당할 수 있었다. 오사르는 의아했다. 한데 모인 기병들이 민병대 수장의 목을 따오기는 커녕 그저 주춤거리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뭐냐? 왜 갑자기 멈춘 것이야? 세라자드의 목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오사르가 포격을 멈추라 지시했다. 부족할 것 없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그를 험한 전장으로 계속해서 모는 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는 의문에 대해 답을 궁리하고 찾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의문의 답은 쉽게 구해졌다. 거대한 검이 사방팔방으로 궤적을 남기며 그의 기병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새로운 누군가였다. 그리고 끝내주게 강한 자였다.


'저기 크고 흉측하게 생긴 물건.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게다가 그자가 들고 있는 무기가 낯이 익었다. 그의 부하이자 계엄군 2진의 지휘를 맡겼던 우바리 마스캇(무마르)의 검이었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갑자기 전장에 난입한 이방인 검사. 그리고 그가 휘두르는 제국군 장교의 검을 보자마자 모든 궁금증이 해소됐다. 계엄군 2진이 마드 세라자드를 놓친 이유. 성문까지 훤히 열렸을 텐데도 작전에 실패한 이유. 그리고 지금 제국군 기병들이 겁에 질린 듯 옴짝달싹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


모든 문제는 저 이방인 검사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단 한 명에게 제국군 100명이 저지 당했단 말이지. 100명이나 주었는데도 아무런 성과를 못 냈다는 말이지."


입안이 무척이나 썼다. 신물이 올라오고 진저리가 쳐졌다. 어째서 제국에는 이토록 무능한 이들만 남았는가?


오사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그의 입만 멀뚱히 바라보는 계엄군 장교들에게 지시했다. 백치와 다를 것 없는 그들의 면상을 보자 욕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간신히 주워 삼켰다.


"...... 뭘 보고 섰습니까? 신호기를 올려 기병들에게 당장 눈앞의 남자를 치우라고 명하세요. 그리고 궁수들의 사격 거리가 닿을 때까지 전군 진격. 보병대는 앞을 엄호하세요."


계엄군의 본대가 다시 진격을 시작했다.


'자, 아비아. 당신에 대한 내 믿음에 보답할 시간입니다. 당장 검사의 목을 내게 가져오세요. 이건 마지막 기회입니다.'


오사르가 생각했다. 그들의 기병과 기병들의 대장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했다. 기병 대장 역시 한 번의 기회를 더 간절히 바랄 것이었다.



03.

아비아 무시엘라, 계엄군이 보유한 100기 기병들의 대장이자 오사르가 그나마 믿고 있었던 유이(唯二)한 부하 중 하나였던 (다른 한 명은 검을 사자에게 뺏긴 채 세이마르 공동묘지 아래 언덕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그는 사자의 등장에 가장 크게 놀란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다른 기병이 다가오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숙련된 기병들은 달리는 속도가 빠르고 전장을 넓게 사용해야 하는 만큼 시야가 넓고 길게 뻗기 마련이었다. 계엄군의 기병 대장을 맡은 아비아는 세이마르 성문 정면의 모든 전장을 그의 눈에 담고서 싸우고 있었다. 마드 세라자드가 이 땅에 현신한 '전장의 여신'처럼 종횡무진 전장을 휘저을 때도 아비아만은 그 동선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를 휘감고 있던 아드레날린이라는 이름의 황홀경이 빠져나가고 시커멓게 입을 벌린 함정으로 그녀와 그녀의 기병들이 성큼 발을 내딛는 것도 모두 읽어냈다. 로엘이 영웅적인 희생을 감행하며 무리하게 연 길로 그녀가 빠져나오는 순간 그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 그의 넓은 시야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비아는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이방인 검사가 다가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기척을 감지하지도 못했다. 검사가 태연히 나타나 그의 부하를 절단하는 순간까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혹시 포격을 쏟아부었던 그때였을까?


그렇다면 저 사내는 일제 포격의 폭풍 속을 태연히 걸어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그것도 말도 안 탄 상태로?


'제기랄, 그게 말이 되냐? ...... 하지만 언제 굴러 들어온 건지 알 수가 없으니. 게다가 저놈이 든 검. 아무리 봐도 무마르의 것 같은데......'


그때 아비아의 넓디넓은 시야에 계엄군 본대가 올린 신호기가 보였다. 계엄군 사령관이 보내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했다.


눈앞의 적을 죽여라. 괜한 시간만 죽이지 말고.



04.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신호를 보자마자 아비아가 검을 치켜들었다. 칼끝이 구부러진, 사망한 민병대의 부대장 로엘의 검과 똑같이 생긴 검이었다.


아비아가 명령을 내리자 기병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비아가 검을 치켜들어 내린 명령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죽여라. 두 번째는 반드시 죽여라, 라는 의미였다. 생포? 그런 말랑말랑한 단어는 개나 줘버리고.


한편 사자는 전투가 끝난 후를 생각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들이닥치는 기병들 앞에서 느긋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는 계엄군의 사령관을 만나보지 못했지만 포격을 멈춘 것과 계엄군의 본대가 천천히 진격하는 모습을 보며 두 가지를 알아챘다.


첫째, 적의 지휘관은 냉정할지 언정 냉혈한은 아니었다.


전투를 끝낼 절호의 기회였지만 참은 것이다. 솔직히 아군의 희생만 감수한다면 지금이 마드의 목을 가져갈 절호의 기회였다. 세상에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포격을 쏟아부어 모두를 죽여버리는 사이코패스 지휘관들이 차고 넘쳤다.


'게다가 기회를 준 부하들에게 한 번 더 믿음을 보여주는 너그러움까지 갖췄다. 유능한 자야.' 사자가 생각했다.


둘째, 적의 지휘관은 전략과 전술에 능하면서도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지금 사자가 계엄군 2진을 물리치고 이곳에서도 기병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무용을 펼쳐 보이고는 있었으나 적의 수는 여전히 천에 가까웠다. 저 많은 숫자를 대상으로는 <공화국의 검>이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무리다. 수많은 전략과 전술이 존재하지만 결국 전쟁을 끝내는 것은 수적 우위였다.


적의 지휘관은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가지고서 쓸데 없는 꾀를 부리지 않았다. 오사르가 세이마르의 후방을 치도록 계엄군을 나눈 것을 두고 마드는 분노를 터트렸지만 사실 사자가 봤을 때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석적인 전략이었다.


그래서 사자는 기병들과의 전투를 이용해 무사히 탈출할 기회를 찾았다. 우선은 기병대의 대장을 잡아야 했다. 그들의 머리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니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사자가 대검을 어깨에 턱 걸친 채 마드에게 다가갔다.


"자,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간이오. 우리에게 주어질 기회는 딱 한 번뿐이니, 어떻게든 회복하시오. 나는......"


사자가 말했다. 마드는 여전히 포격의 후유증에서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사자가 달려드는 기병들에게 주저 없이 뛰어들며 말을 맺었다.


"말을 구해올 테니."


남은 계엄군 기병의 숫자는 40기. 말도 마흔 마리, 몇 마리쯤 빌려서 쓰기에 차고 넘치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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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6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2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6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8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7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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