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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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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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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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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Re 75. 생매장

DUMMY

카타콤이 무너져내렸다. 마스칼은 밖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01.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것도 없었다.


아니, 가만.


가쁘게 숨을 헐떡이는 소리, 귓가에 천둥이 치는 소리, 잘게 부서진 무언가가 우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죽어서도 소리는 들리는 건가 봐. 제길. 그럼 우리 아버지는 내가 목이 쉬어라 원망하던 욕지거리를 다 들었단 얘긴데......'


그러다 퍼뜩 마드가 정신을 차렸다. 눈앞이 여전히 캄캄했지만 귓가에선 폭포수가 떨어지듯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마드는 소리라도 질러야 할까 싶어 입을 열었다가 입안으로 밀려드는 흙더미에 식겁했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차라리 바로 죽었으면 두렵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 죽음으로 가는 가장 무서운 부분에서 눈을 뜬 모양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숨을 참지 못하고 물속에서의 첫 호흡을 시작했을 때, 불이 난 집에 갇힌 사람이라면 자신의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를 맡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무너지는 지하 묘지에 갇힌 사람이라면 밀려드는 흙을 좋아라 퍼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오, 제길. 제길. 제길. 제......'


그때 그녀의 뒷덜미를 강력한 힘이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는 쑤욱 흙더미에서 빠져나왔다.


사리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도 흙투성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사막의 하늘처럼 파랗게 빛났다. 마드는 사리안의 목에 팔을 두르고 키스를 하고 싶은 욕망을 불쑥 느꼈고 더 이상 참지 않고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사자가 그를 향해 뻗은 마드의 팔을 잡아 불쑥 일으켜 세웠다.


'......?'


"정신이 들었소? 일어나시오. 아직 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니." 사자가 말했다.


마드가 멍하니 사자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신이 도통 들지 않았다. 흙무더기에 파묻혔던 충격보다 방금 그녀의 행동이 간단히 저지당한 창피함이 더 컸다.


'이거구나. 이게 죽는 것보다 더 쪽팔린 거였어.'


사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봐, 정신이 아직 안 드오? 자자, 정신을 차리시오. 잠시 기다려주리까?'


마드는 소리를 버럭 지르려다가 간신히 마음을 추슬렀다. 아, 이 얄미운 남자의 얼굴을 확 할퀴, 아니 한방 먹이면 좋겠는데.


"...... 응. 아주 괜찮아졌어. 펄펄 날겠네. 고마워, 구해줘서."


"어이, 민병 대장도 구했으면 이리 좀 와 보겠어? 이걸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저 멀리서 유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자는 마드의 정신이 제대로 들어온 것인지 (아무래도 양 볼이 새빨게진 것이 열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쓱 훑어보더니 곧장 몸을 돌려 유마에게 갔다.


마드는 그의 뒷모습에 혀를 빼꼼히 내밀었다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흙을 먹고 캑캑 거렸다.


"퉤퉤, 에이."


그들은 카타콤에서 밖으로 향하는 지하 통로에 있었다.



02.

카타콤 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그나마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지하 통로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유마였다. 그리고 사자에게 그리로 같이 뛰어들자고 신호를 주었던 것도 유마였다. 유마는 마드와 사자 둘 중 하나에게 신호를 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주저 없이 사자를 선택했다.


평생을 (거의 평생을) 무법자로 거칠게 굴러다닌 유마가 보기에도 사자는 여태껏 보았던 그 누구보다 범상치 않은 사내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온몸에 감도는 긴장감이었다. 그는 '탄력적이다'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 팽팽한 긴장감을 온몸에서 뿜어냈다. 유마는 지하 통로를 빠져나와 카타콤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사내가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을 눈치챘다. 아마도 카타콤 내부에, 그리고 바깥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무언가를 재빠르게 감지했던 모양이었다.


마치 극한까지 잡아당긴 활시위와 같았다. 조금의 자극이라도 감지하면 바로 '탕'하고 쏜살같이 튀어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카타콤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유마는 사자를 선택했다. 사자는 이미 마드의 어깨를 꽉 붙든 채 유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카타콤이 아니라 다시 지하 통로에 있었다. 폭발음은 지하 통로에서 먼저 났지만 이는 터널의 입구를 무너트린 소리였다. 카타콤은 완전히 무너졌지만 지하 통로는 아직 간신히 내부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천정에서 끊임없이 흙과 모래가 쏟아지는 것으로 봐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세이마르의 제단에 마지막 제물로 바쳐지기까지는.


"이제 어떻게 할까?" 유마가 물었다.


"계속 가보는 수밖에. 아마 폭발물을 쓴 모양인데 이러면 어딘가 그들 마음대로 무너지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지. 거기에 희망을 거는 수밖에 없겠소."


사자가 말했다. 운에 맡기자는 얘기였지만 말과는 달리 분명 살아날 구석이 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었다.


'이 아저씨, 이런 위기쯤은 아침에 우유 한잔 마시듯 매번 넘기는 것처럼 말하는구만. 대체 뭘 하던 인간이야?'


유마가 생각했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유마 역시 엄청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마드와 사자, 이 두 남녀에게 어마어마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사막에 이토록 신선한 빛을 내는 인간들이 남아있다니. 멀리 지평선에 펼쳐진 소금나무 군락을 발견했을 때처럼 일족의 눈이 반짝였다.


"만약에 통로 끝이 완전히 막혔으면 어떡하지? 그럼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건가?"


어느새 바짝 따라온 마드가 물었다. 사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설령 그렇대도 필시 뚫어낼 구석이 있을 거요. 사막의 지반은 물렁하고 약하니 베기도 그리 어렵지 않고."


"흐응, 그래."


'지금 땅을 베겠다고 한 거지, 이 남자?'


마드와 유마가 동시에 생각했다. 사자의 표정은 태연했다.



03.

하지만 사자의 솜씨를 보는 일은 없었다. 지하 통로를 걸어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처럼 맑은 색깔의 빛이 흘러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유마가 곧장 달려가 (지하통로의 천정이 부쩍 낮아진 상태였으니 허리를 굽히고 뛰어야 했다) 빛이 들어오는 곳을 확인했다.


통로의 천정 일부가 함정을 판 이들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급격하게 무너진 것이다. 덕분에 반가운 밤하늘이 훤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세이마르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의 남동쪽으로 기어 나왔다. 청사에서는 완전히 반대쪽이었고 눈앞에 바로 성벽이 있었다.


마드와 유마는 신선한 바깥공기를 다시 들이마실 수 있음에 기뻤다. 마드와 유마가 동시에 가슴을 쭉 펴고 힘껏 숨을 들이마셨다. 사막이 변질되고 밤이 타락한 뒤로 처음 마셔보는 달콤한 밤공기였다. 사자는 그들보다 조금 위로 언덕을 올라가 신중하게 언덕 위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그들에게 내려왔다.


"다행히 함정을 판 이들이 저 위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소. 그들의 꾀가 제대로 먹혀든 것인지 알아내려면 시체라도 끌어낼 필요가 있을 테니. 하지만 곧 이상한 것을 느끼고 언덕을 내려와 수색할 것이오. 그전에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소."


마드는 다시 현실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녀는 매장의 공포와 다시 맡은 신선한 공기의 기쁨 사이를 급하게 넘느라 반드시 느꼈어야 할 감정을 건너 뛴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그 감정이 그녀의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뱀이 똬리를 틀듯 올라오고 있었다.


배신감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놈이 배신을 때린 거지." 유마가 말했다.


마드가 미간을 찌푸린 채 힘겨운 몸짓으로 고개를 저었다.


"...... 아직 확신할 수는 없어요. 그가 바깥으로 나갔을 때 갑자기 제국군이 습격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도 함께 당했는지 몰라요."


"그러기엔 타이밍이 너무 좋았지. 나는 놈이 나가면서 직접 스위치를 눌렀을 거라 생각될 정돈데."


마드가 사자를 바라봤다.


"내 생각도 그렇소. 카타콤 내부엔 이미 손을 쓴 흔적들이 가득했소. 바깥에도 불침번을 서는 듯 연기한 병사 외에 수많은 인기척이 있었지. 그 남자도 필시 알았을 거요. 그가 카타콤 입구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척후를 맡았던 자가 그 거리에서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지. 게다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소."


"몇 가지씩이나?" 마드가 놀라서 사자를 바라봤다.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 처음에 사령소 맞은편의 건물에 올라가서 회의실 내부를 염탐했다고 했지. 본부를 때린 포격에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서 말이오."


"그게 뭐? 사령소 맞은편에는 정말 이층으로 된 건물이 있어. 아르만 아저씨는 나와도 잘 아는 사이였는걸."


"나도 사령소라면 며칠 신세를 진 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소. 그래서 그 건물의 창들이 어느 쪽을 향해서 났는지도 기억하지."


"에이, 사령소의 창들은 모두 맞은편 건물을 향해 제대로 난 게 맞는걸. 대회의실에 있으면 저녁놀이 보이는...... 아!"


"그렇소. 사령소의 창들은 모두 서쪽을 향해 나 있소. 그 자가 숨어서 회의실을 염탐했다는 건물 역시 서쪽에 있었을 테지. 그렇다면 그는 달이 뜨는 반대 방향에 있었던 거요. 그 자는 깨어난 뒤 날이 저무는 것을 기다렸다가 움직였다고 했소. 즉, 달이 동쪽에서 뜨고 있을 때이고 사령소 건물은 달을 등지고 있을 때요. 창이 깨져서 시야를 가리는 것이 있든 없든 간에 보이는 것이 있을 리 없소."


"게다가 유난히 날이 흐리고 달빛도 희끄무레했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지." 유마가 덧붙였다.


"대회의실 내부 전체를 환히 밝힐 수 있는 등불이라도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테지만, 그런 것이 있소?" 사자가 물었다.


"아니...... 회의실 한편의 서기 책상에 있는 호롱 불이 전부야. 도시에 민병대를 일으킨 후부터 우리는 항상 기름이 부족했어. 대회의실에서의 회의도 꼭 낮에만 했고. ......맙소사. 그럼 마스칼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다는 거야? 대체 어디부터 어디까지?"


"내 생각엔......" 사자의 표정이 조심스러웠다.


"비골라 아이작은 이미 죽었는지도 모르오."


마드의 얼굴이 달처럼 창백해졌다.



04.

마스칼이 세이마르 후문 성벽의 초소에 올랐다. 주름이 패인 얼굴 위에 달빛이 비쳤다. 그는 마치 얼굴에 징그러운 것이라도 닿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그는 마드와 공화국에서 왔다는 사내, 그리고 언제 들러붙었는지 알 수 없는 무법자가 카타콤에서 죽었을 것 같지 않았다.


빠져나올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을 테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경보를 울려댔다. 게다가 그가 한때 모셨던, 물론 진심으로 따른 적은 없었던 민병 대장 마드 세라자드와의 인연이 이렇게 쉽게 끊어지리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날 밤 시장에서도 용케 살아남았던 년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세이마르 후문 성벽에 올랐다. 마스칼은 물끄러미 성벽 위를 훑어보았다. 곳곳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그림자처럼 성벽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가 뒤에서 베었던 초소병들의 시체가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제국 계엄군의 2진이 모래땅을 넘어 그들에게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주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일이 마무리됐어야 했는데.


마스칼은 불안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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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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