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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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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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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64,671

작성
20.07.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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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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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2쪽

Re 54. 침공 2

DUMMY

01.

천둥소리가 꽝꽝 쳤다. 물론 천둥은 꽝꽝 치지 않는다. 세이마르를 온통 굉음으로 채우는 다른 무언가가 시작됐다는 이야기다. 계엄군의 폭격이 시작됐다.


"이 개자식이, 안면만 익히러 온 거라더니!"


마드가 격분했다. 계엄군 장교의 얼굴을 떠올렸다. 망둥이처럼 툭 튀어나온 눈으로 사람 얼굴을 뒤룩거리며 쳐다보던 그 얼굴을! 당연하지만 그자의 이름은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결국 쳐들어왔군. 제국군이오."


사리안이 그녀의 뒤에서 말했다. 이미 예상했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포격의 소음이 연속해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밀려들었기 때문에 마드는 이방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들이 발 딛고 선 언덕에서도 포격으로 인한 진동이 느껴졌다.


"사리안, 아무래도 일이 터진 모양이야. 미안한데 당신의 탐색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 그러니까,"


마드가 고개를 돌렸다. 사리안의 파란 눈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의 안도감을 다시 느끼며 이 자의 눈과 넓은 어깨에 다시 기대어볼 생각을 했다가 이내 도리질을 쳤다.


"그러니까, 어서 도시 밖으로 도망가는 게 좋겠어. 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나갈 길이 막혀버릴지도 몰라!"


사태의 긴박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리안은 쉽사리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사막의 하늘처럼 파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그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하지만 강한 힘으로 감싸 쥐었다.


"정말 괜찮겠소? 포격을 보아하니 이번엔 저들이 작정하고 들어온 모양인데. 나는 아직 이곳에 찾아야 할 것이 남았소. 그리고 당신의 도움이 적잖이 필요하오. ...... 원한다면 힘을 빌려주겠소."


공화국에서 온 생면부지의 이방인이 힘을 빌려주겠다는 말이 어찌나 믿음직스러운지 마드는 하마터면 고개를 끄덕일 뻔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니, 이건 우리 일이야. 말은 정말 고맙지만, 외부인에게 위험을 감당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우리 일은 우리가 끝내도록 하겠어. 그러니까 사리안, 부디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쳐."


사리안이 대답 대신 그녀의 눈을 좀 더 지그시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뜻이 그렇다면 하는 수 없군. 그럼 부디 건투를......"


사리안이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마드의 등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정정했다.


"...... 빌어주지는 못하겠군. 이미 발을 빼기에는 늦은 모양이오."


마드는 순간 단전에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는 듯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제국군이 그들을 향해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02.

'벌써? 이제 막 포격이 시작됐는데 벌써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고?"


마드가 언덕을 올라오는 제국군을 보며 경악했다. 수는 적게 잡아도 스무 명에 가까웠고 대부분이 가볍게 무장한 차림이었다. 병사들은 언덕 위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 머뭇거림 없이 뛰어 올라왔다. 그들 사이로 머리 두 개 정도는 불쑥 올라온 중장갑의 거한도 보였다.


문득 율라의 말이 떠올랐다.


'...... 그러니까 적들이 미리 내부에 숨어있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마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렇다기엔 병력이 너무 많아.'


"이렇게 빠르게 도시 안으로 진입할 수 있나? 말이 안 되는걸."


사리안이 말했다. 마드가 속으로 품은 것과 똑같은 의문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언덕의 중턱까지 치고 올라오는 제국군을 바라보며 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안 되지. 도시를 양쪽에서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나누었을 거야. 도시의 후문 쪽으로 말이야. 이 자식들은 애초에 교섭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거지."


그러나 마드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의문이 더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곳으로 곧장 올 수 있었을까? 마치 내가 이곳으로 올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했던 이야기를 마저 해야겠군."


사리안의 말에 마드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얘길?"


"힘을 빌려주겠다는 것 말이오. 내가 당신과 이 도시를 도와주겠소. 당신도 사태를 수습하고서 나를 좀 도와주시오."


마드가 사리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리안이 말한 '사태를 수습하고 난 뒤'가 언뜻 떠오르지 않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럼 부탁할게, 사리안. 부디 우리에게 힘을 빌려줘."


"좋소. 그럼 놈들이 여기까지 올라오기 전에 미리 작전을 말해주리다."


"벌써 작전을 짰어?"


무슨 작전이길래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라는 표정으로 마드가 바라보자 사리안이 (그 넓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당신의 역할이 중요하오.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요. 그리고 그 이상으로 믿음이 필요하오."


"믿음이?"


"그렇소. 내가 저들 사이에 길을 열 거요. 저들이 이곳까지 올라오고 나면 기회가 없소. 위치적으로 우위가 있는 지금이 기회요. 지금 바로 뛰어들 거요. 그럼 당신 앞에 아주 잠시나마 길이 열릴 거요."


"열리면?"


"그럼 곧장 그 사이를 달려서 여길 빠져나가시오."


마드의 눈이 커졌다.


"무슨 소리야, 사리안? 나보고 도망가라고?"


"어리석은 소리! 도망가라는 것이 아니오. 당신의 지휘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 빨리 가라는 것이오. 전투가 시작됐으니 가장 중요한 것은 대장의 존재요.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몰라도 적들이 여기까지 곧장 당신을 잡으러 온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요."


'역시 사리안도 알고 있었구나. 내 위치를 이렇게 빨리 찾아낸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나 혼자 빠져나가고 나면 당신은 어쩌려고? 이곳 지리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도망칠 생각이야? 아니, 저 많은 인원을 따돌리고 도망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아?" 마드가 말했다.


사리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당신이 걱정할 일이 아니오. 내가 알아서 신경 쓸 일이지. 이곳을 빠져나가 당신의 사람들에게 갈 생각이나 하시오. 지휘할 이가 없으면 당신의 사람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소. 어쩌면 이미 큰 타격을 입고 있을지도 모르오. 그러니,"


사리안이 이제 거의 언덕을 다 오른 계엄군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서 당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달리시오."



03.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마드의 머리가 아닌 가슴속에 아주 오래 남았다.


사리안이 천천히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것은 매우 사려 깊으면서도 신중한 손길이었다. 어떠한 마법이나 마술도 아닌 그저 등 두드림일 뿐이지만 사리안이 그녀의 등을 두드렸을 때 그녀는 몸속에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사리안의 손길이 닿자 그녀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졌다. 열광적으로 리더를 따르는 병사가 되어 그를 추종하고 싶어졌다. 이는 <공화국의 검> 앞에 선 병사들이 으레 느끼는 감정이었다. 타고난 리더이자 위대한 야전 지휘관인 '공화국의 검' 앞에서 병사들은 누구나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녀는 당연히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 이방인을 전심(全心)으로 믿으며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달려나갔다.



04.

사리안이 허리춤에서 새까만 몽둥이를 하나 꺼내들었다.


'으엑, 뭐 저렇게 생긴 몽둥이가 다 있어?'


마드가 '쇠좆매'의 웅장한 모습에 혀를 찼을 때 사리안이 언덕을 거의 다 오른 병사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민병 대장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탐욕스럽게 언덕을 오르던 계엄군 병사들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사내에게 깜짝 놀랐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살기등등하게 달려드는 스무 명도 넘는 병사들에게 몸을 던졌다.


"맙소사, 이게 무슨 일이야!"


마드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사리안의 뒤를 쫓아 달렸다.


사리안은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내려가며 한 뭉텅이로 뭉쳐 올라오는 병사들의 대열을 순식간에 흐트러트렸다. 사리안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몇 번인가 사라졌다가 나타날 때마다 선두에 선 병사들이 언덕 위에서 주저앉았고 그중 몇몇은 그대로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민병 대장은 어디 있느냐!"


대열의 후미에서 온몸을 갑옷으로 감싼 중장갑의 거한이 앞쪽의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무더위에 무거운 장갑을 입고 언덕을 오르느라 죽을 똥을 쌌던 그로서는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심지어 그는 사막의 병사들이 좀처럼 쓰지 않는 얼굴을 모두 가리는 투구까지 쓰고 있었다. 그 안이 한증막처럼 이글거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무얼 하시오? 보지 말고 달리시오!" 사리안이 마드에게 소리쳤다.


마드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주춤거렸다가 다시 달리는 다리에 박차를 가했다. 사리안이 약속했던 길이 그녀의 앞에 열렸다.


당황한 얼굴, 주춤거리는 표정, 언덕을 쉴 새 없이 뛰어올라온 병사들의 거친 숨소리 사이로 그녀의 길이 열렸다. 그녀는 지체 없이 그 길 위로 몸을 던졌다.


"민병 대장이다! 그년이야! 잡아!"


병사들이 소리 질렀다. 하지만 그녀를 잡을 수 있는 병사는 없었다. 마드는 뒤를 사리안에게 맡긴 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다. 소리를 질렀던 병사는 곧장 날아든 시커멓고 적나라한 모양의 몽둥이에 턱을 얻어맞고 무너져 버렸다. 턱이 부서지는 둔탁한 타격음에 마드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맙소사, 이제 딱딱한 거 씹기는 다 글렀겠네.'


"둔한 놈들아, 모두 비켜라!"


중장갑의 거한이 그들 사이를 헤치고 나왔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하여 공간을 열었다. 마드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사리안이 지시한 대로 개의치 않고 계속 달렸다.


그때 거한이 웬만한 남자의 허리보다도 넓은 대검을 뽑아 들더니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대로 휘둘렀다. 하마터면 대검에 그대로 목이 달아날뻔한 순간, 누군가 마드의 뒷덜미를 훅 잡아당겼다. 사리안이었다. 대검의 끝이 아슬아슬하게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검이 밀어낸 뜨거운 바람이 마드의 얼굴에 훅 끼쳐들었다.


"잘했소! 앞만 보고 계속 달리시오. 생각할 필요도 없소. 저 자는 내가 막을 테니, 어서!"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 것을 칭찬받아 마드는 얼떨떨했지만 한가하게 좋아할 틈은 없었다. 다시 무게 중심을 앞으로 확 옮기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회심의 일격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거한이 숨을 뿜어내며 (투구에 가려져 알 수는 없었지만 당연하지 않은가!) 그녀를 향해 움직였다. 그 앞을 사리안이 달려 나와 막아섰다.


"달리시오! 계속해서! 북극의 성에 맹세코 쉬지 말고 달리시오!"


그녀는 뛰었다.


뛰고 또 뛰었다. 숨이 턱에 차고 쉴 새 없이 땅을 박차는 다리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질렀다. 산소를 원하는 폐가 쪼그라들어서 갈비뼈가 부러진 듯 아팠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앞을 가리고 있던 병사들이 사라질 때까지 고꾸라질 듯 위태롭게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때 뒤에서 산의 바위가 무너져 떨어진 듯 무겁고 둔중한 소리가 들렸다.


'뭐야? 무슨 소리지? 사리안이 설마 당한 거야?'


마드의 뒤에서 병사들의 함성이 올랐다. 마드는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민병 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사리안의 기대에 끝까지 부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마드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포연이 피어오르는 세이마르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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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4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7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9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6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8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 Re 54. 침공 2 +9 20.07.12 1,063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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