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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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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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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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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Re 70. 마스칼 1

DUMMY




01.

유마가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달이 밤하늘을 건너는 동안 내내 이야기를 전한 젊은 무법자 대장은 이제 침묵할 차례라는 듯 조용해졌다.


사자는 까만 판초 우의를 입은 남자와 빚었던 해프닝을 (아, 해프닝이라는 단어로 옮기기에는 참 무거운 일이었으나) 이야기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유마는 이 거북한 사내에게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두 사내가 나름의 고민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마드가 입을 열었다. 언제나 용감한 것은 여성이니까.


"유마님의 이야기 정말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는군요. 제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유마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세이마르 민병대는 앞으로 어쩔 거요?"


"...... 무엇을 묻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요. 세이마르의 민병대가 목표로 한 것은 제국에 대한 반란이 아니었소. 황제의 목이라도 딸 마음이었다면 그건 또 유쾌한 일이겠지만. 하지만 당신들의 목적은 제단에 있었소. 그건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제국조차도 알고 있는 일이지. 이제 당신네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와해됐소. 이 상황에서 세이마르 민병 대장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오."


"...... 저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시는 겁니까?"


유마는 굳이 대답하지 않고 그저 마드를 바라보았다. 마드는 그의 눈빛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제단은 사막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제단은 유마님의 형제뿐만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까지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막의 제국민 전부를 잡아먹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참하게 도망을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힘을 빌려주겠소." 유마가 말했다.


"네?"


"나와 함께 하자는 것이오. 빌어먹을 제단을 부수는 것."


마드의 눈이 달처럼 동그래졌다.


"나는 까만 판초 사내에게 복수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목표였소. 하지만 놈들이 모래를 이불 삼아 썩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새삼 깨달았소. 사막에는 여전히 판초 같은 놈들이 많을 거요. 그리고 놈들을 부리는 윗대가리가 분명 있을 테지."


유마가 계속 말했다.


"이 유마 올리오는 이제 그 윗대가리의 목을 따는 것이 삶의 목표요.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밀고 나갔을 것이나, 우연히 같은 뜻을 가진 이를 만났으니 어쩌면 하늘의 뜻이오. 그 섬뜩한 유머 감각을 가진 신 말이지."


유마가 웃었다. 마드는 그 미소를 보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02.

마드와 사자는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고 역사를 빠져나왔다. 유마도 바로 대답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돌아가서 생각해 보시오. 생각해 보면 볼수록 나쁘지 않은 제안일 테지만." 이라고 말했다.


사자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덥석 물 수 있는 제안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사리안?" 돌아가는 길에서 마드가 물었다.


"제물 사냥에 얽힌 절절한 이야기는 충분히 가슴까지 와닿더군. 저 남자는 무대에 오르는 재담가나 장사치가 훨씬 어울릴 것 같소. 제단 파괴에 그들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드오. 아무튼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니까. 저들이라면 기동력도 아쉬울 것이 없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불안한 거지?"


"말하다마다. 제단과 제물 사냥에 대한 복수심이 진짜라고 해도 얼마나 지속력이 있을지는 알 수가 없소. 하물며 밑의 부하들에게까지 목표 의식이 제대로 퍼져있는지도 미지수요.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그들은 제물 사냥에 직접 당했던 이들이 아니고 추후 판초 일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새로 모은 자들이지. 과연 그들이 얻을 것도 없는 제단 파괴에 계속 힘을 빌려줄까?"


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법자들에게 너무 많은 신뢰는 금물이라는 듯이.


"...... 알 수 없는 일이오."


사자의 말에 마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엇보다 난 이 무법자 대장의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만약 그가 보는 것이 제단에 있지 않고 더 '멀리'에 있다면......"


마드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길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달은 여전히 하늘을 지배하듯 떠 있었다. 창백한 얼굴로 모래땅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눈에 담으려는 듯 내려보았다.


"하지만 시민들을 위해서는 분명 좋은 제안이오. 그들이 이 성을 시민들에게 빌려준다면 당장 사막의 밤을 피할 곳을 찾지 않아도 될 테니. 성에는 수원도 있고 역사에는 시민들이 모여서 생활할 수 있는 시설들이 풍부하오. 사실 그들이 정착하기에 다른 곳을 생각하기 힘들 정도지."


"맞아. 하...... 고민할 게 정말 많네. 뭐가 더 나은 선택일지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


마드와 사자가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그날은 그렇게 지났고 다음 날, 놀라운 이가 찾아왔다. 마스칼이었다.



03.

"이게 누구야! 마스칼! 정말 마스칼이야?"


마드가 달려갔다. 비드 하란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성 주변을 수색하라고 비드가 명령을 내린 민병 대원들도 그를 보고 모여들었다. 그를 알아 본 몇몇의 시민들도 그에게 다가갔다.


세이마르 민병대의 척후 대장이었던 마스칼이었다. 사자만 그에게 다가가지 않은 채 멀찌감치 서서 새롭게 등장한 남자와 먼지와 피곤으로 찌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말 여기에 계셨군요, 대장님!"


마스칼이 팔을 번쩍 치켜들며 마드를 끌어안았다. 항상 점잖고 진지한 남자의 격한 스킨십에 마드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반가움이 당황스러움을 뒤덮었다. 마스칼의 눈이 그렁그렁했다. 부옇게 먼지 뜬 우물처럼 그의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그를 바라보는 마드도 비드도 마찬가지였다.


"무사하셨군요. 그럼요, 아무렴요! 척후 대장님이 그렇게 쉽게 당하실 분이 아니죠!"


비드 하란이 감격에 겨워 목소리를 높였다. 살아남은 또 한 명의 동지를 만났으니 어찌 감격적이지 않으랴.


"그래. 어떻게 된 거야, 마스칼?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 마드가 물었다.


"여태 세이마르에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참입니다. 눈을 떠보니 모든 것이 끝나 있더군요."


마스칼이 대답했다.



04.

마스칼은 세이마르에 첫 포탄이 떨어졌을 때 척후대 본부에 있었다. 마드가 그날 아침 이야기를 꺼낸 민병대 해체와 이후 게릴라 활동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첫 포격이 도시 성문에 직격했을 때 그는 책장 위에 올려놓았던 남동부 사막 지형도를 꺼내던 중이었고 책장이 그대로 무너지면서 그를 깔고 뭉갰다. 저 멀리 먹먹하게 울리는 포격 소리를 들으며 그는 정신을 잃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포격도 전투도 끝난 뒤였습니다. 날이 저물었고 제국의 계엄군들이 세이마르 안으로 들어왔더군요. 다행히 그들은 무너진 본부 내부를 살피지 않았고 저는 그들의 눈을 피해 본부를 빠져나왔습니다."


마스칼은 아무런 무장도 하지 못한 채 세이마르 시내로 빠져나왔다. 계엄군은 수색조를 편성해 도시 곳곳에 남아 있을 민병대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시민들이 붙잡혔고 부상당한 대원들도 끌려갔다. 그중에는 비골라도 있었다.


"뭐! 비골라 아저씨가 잡혔다고?" 마드가 소리쳤다.


마드의 머릿속에 세이마르 시내를 가로지르며 보았던 무너진 수색대 본부가 떠올랐다.


"제기랄, 설마 했는데!"


"저와 같은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포격이 수색대 본부를 직격한 것이죠. 아이작님은 바로 빠져나오지 못하셨고 그대로 계엄군에게 잡히신 겁니다."


마스칼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 많이 다치셨어?"


마스칼이 고개를 저었다.


비골라와 수색대 대원들이 팔을 뒤로 묶인 채 계엄군 병사들 사이에 무릎 꿇렸다. 비골라의 주름진 이마 위로 피가 말라붙어 있었지만 큰 상처로 보이지는 않았다. 병사들이 그에게 뭐라고 크게 소리쳤지만 마스칼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병사들이 그들을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마스칼이 그 뒤를 몰래 따라갔다.



05.

비골라는 민병대 사령소로 갔다. 포승줄에 등 뒤로 손이 묶인 채로 끌려가는 동안 병사들이 그의 등에 대고 계속해서 뭔가를 소리쳤지만 마스칼은 듣지 못했다. 그들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계엄군 사령관은 민병대 사령소에 있었다. 계엄군은 세이마르 청사 대신 민병대 사령소를 주둔지로 삼았다. 그날 낮 민병대 해체를 결의했던 바로 그 회의실이 계엄군 사령관의 임시 거처가 되었다. 비골라는 적군의 포로라는 신분으로 한때는 그들의 사령소였던 곳으로 끌려갔다.


오사르 알렉사이가 직접 비골라를 만났다. 마드가 이름은 새까맣게 까먹고 망둥이 장교로만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계엄군 사령관이었다. 마스칼은 그의 이름을 몰랐지만 보자마자 직감했다.


저자가 세이마르의 최후를 빚어낸 인물이었다.


"사령소까지 따라붙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사령소 맞은편 2층 건물로 올라갔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1층에 마른 육포며 훈제 고기를 팔던 가게. 주인 이름이......"


"아르만. 주인 이름이 아르만이었죠." 비드가 얼른 덧붙였다.


비드는 민병대 활동에 매우 협력적이고 항상 호탕했던 그곳 주인을 떠올렸다. 민병 대원들은 사령소 회의가 끝날 때마다 우르르 몰려가 그곳의 육포를 사 먹곤 했었다.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였지만 대회의실 내부가 아주 잘 보였습니다. 사령소 2층 창이 모두 깨져버려서 시야를 가리는 것도 없었죠."


마스칼은 세이마르가 무너진 와중에도 척후 활동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비록 그가 숨어들어야 했던 곳은 적의 근거지가 아니라 아침까지만 해도 아늑하고 위태로웠던 그들의 둥지였지만.


마스칼의 눈에 오사르가 비골라에게 자리를 권하는 장면이 들어왔다. 오사르가 손을 들자 병사들이 재빠르게 비골라에게 다가가 손을 묶은 포승줄을 풀어주었다. 비골라가 선뜻 일어서지 못하자 뒤에 서 있던 병사 두 명이 다시 다가와 의자를 끌어당기고 비골라를 부축해 앉혔다.


비골라가 욱신거리는 손목을 연신 매만지며 앞에 선 사령관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몹시 우호적인 분위기였으나 말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스칼은 그저 비골라가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계엄군의 사령관은 거의 정중하기까지 한 태도로 민병대의 수색 대장을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역을 한 민병대에게 허용하는 인내의 범위가 어디까지일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시각 정보만으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것이 심문인지 대화인지조차 알 수 없었죠. 그래서 저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드가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일을 결심했냐는 듯 나무라는 듯한 표정으로 마스칼을 바라보았다. 마드는 그 뒤로 이야기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재촉하지 않고 참았다.


마스칼은 달이 더 기울기를 기다렸다. 책장에 깔려 부러진 왼쪽 손가락이 부어오르기 시작했지만 참을 만했다. 아니, 참아야만 했다. 창백한 달이 그림자를 지워줄 만큼 충분히 기울었다고 판단됐을 때 세이마르에 남은 마지막 민병대 부대장이 활동을 시작했다.


달은 어설프게 떠서 그의 그림자를 제대로 땅에 드리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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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0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7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6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0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6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6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4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2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6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1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8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7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29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0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0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7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1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7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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