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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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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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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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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Re 71. 마스칼 2

DUMMY




01.

마스칼이 사령소 맞은편 건물에서 내려왔다.


가게의 주인이었던 아르만 바리울라는 도시를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엄군에게 사로잡혔고 그가 자랑하던 마른 육포와 훈제육의 냄새만이 가게 안에 남았다. 이날은 달이 어설프게 뜨고 날도 흐려서 그림자가 길 위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마스칼은 몸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구석구석 침착하게 살폈다. 부러진 왼쪽 세 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은 이제 주먹을 쥘 수도 없을 만큼 퉁퉁 부었지만 나머지는 이상 없었다. 무리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을 확인한 마스칼은 민병대 사령소로 갔다.


삼엄하게 경비를 선 계엄군들이 보였다. 5인 1조로 모두 5개 조였다. 제국군의 경비 태세는 독특한 체계로 유명했다. 5인 1조로 경비를 서고 5인 중 1인은 정해진 시간마다 다른 조로 이동해 서로의 경계 상황과 정보를 공유했다.


전쟁 중 개발된 경비 체계는 철저한 경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각 조가 서로 인원을 바꾸기 때문에 어느 한 조가 불의의 습격을 당해도 즉각 알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경비 태세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칼이 사령소 안으로 잠입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그게 이 일에서 그렇게 중요한 거요?"


마스칼이 이야기를 하다 말고 사자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슬쩍 다가와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사자였다.


"아니,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오. 그냥 좀 궁금해서. 제국의 경비 태세는 효율적이기로 유명하고 대륙에서도 그 체계를 가져가 사용하는 국가들이 몇 개 있다고 들었소. 그걸 어떻게 뚫은 것인지 궁금해서 그만."


사자가 그답지 않게 조금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마스칼이 그나저나 넌 누군데,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사실 마스칼은 사자가 사령소에 이틀 동안 구금을 당하는 동안 그를 실물로 보지 못한 유일한 부대장이었다. 그는 척후로서 내부의 사정보다 바깥의 사정에 정신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건 됐어. 어쨌든 사령소 안에 무사히 잠입했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지. 맞지? 그 안에 들어가서 비골라 아저씨가 그 망둥이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계신지 확인한 거지?"


마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스칼을 재촉했다. 마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들어가는 건 과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격으로 사령소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진 잔해들을 따라 그들의 경계가 일부 흐트러진 곳이 있더군요. 저는 그 빈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자가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드가 슬쩍 바라보니 사리안의 눈에 탐탁지 않은 빛이 역력했지만 (또 밉살스러운 말을 내뱉을 게 뻔해 보였지만) 그는 가만히 있었다.


마드는 다시 마스칼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02.

마스칼이 사령소에 잠입했다. 지치고 불안한 표정의 민병 대원들이 애써 밝게 웃던 자리에 계엄군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언가를 찾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사령소 안을 분주하게 오갔다.


사령소 내부 역시 포격의 피해로 무너져 내렸다.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은 병사들이 뒤집어엎어서 엉망이었다. 그들은 사령소에 민병대의 잔당을 소탕할 수 있는 정보가 있으리라 믿는 모양이었다.


마스칼은 계단 대신 (당연하지만) 무너진 외벽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1층 식당에 접한 화장실 벽이 부서졌고 부서진 잔해들을 딛고 2층으로 올라갈 만했다. 뭔가를 숨기기에 화장실은 아무래도 적합한 곳이 아니다 보니 병사들은 그 주변을 얼씬도 대지 않았다.


2층은 1층보다 병사들이 많지 않았다. 복도 기둥마다 달려있던 등불은 모두 꺼졌고 내부를 밝히는 건 깨진 창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전부였다. 마스칼이 2층 대회의실을 찾았다. 병사들이 대회의실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마스칼은 대회의실의 옆 옆방에서부터 테라스를 타고 넘어 접근했다.


대회의실에는 바깥으로 난 테라스가 있었다. 포격의 후폭풍으로 창들이 모두 깨졌다. 달의 손길이 닿지 못한 테라스의 그림자 속으로 척후 대장이 숨어들었다. 그 안에 오사르와 비골라가 있었다.


"제국 대학의 비골라 아이작 교수를 여기서 만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꽤 긴 안식년을 지내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여기에 계셨군요."


"교수?"


조용히 듣고 있던 마드가 물었다.


"비골라 아저씨가 교수였어?"


"네. 모르셨습니까? 아이작님은 제국 유일 대학의 교수셨습니다. 제국은 물론 사막의 토속 신앙과 민속사를 연구하시던 분이었죠." 마스칼이 대답했다.


"아니, 전혀 몰랐어. 그저 학자라고만 알고 있었지. 원래 세이마르 분이 아니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원체 본인 이야기를 안 하시던 분이니까요. 저도 우연한 기회에 알았습니다. 세이마르 시민들 중에 성도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이 있거든요. 시민 학교의 미스랑 선생님 말이죠."


비드가 덧붙였다. 마드는 놀란 눈으로 마스칼과 비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왜 나만 몰랐어? 뭔데? 나 민병 대장이었던 거 맞아?"


마스칼이 고개를 으쓱거렸다. 비드도 으쓱했다. 사자는 웃음을 조금 참는 듯 보였다. 마드가 사자를 살짝 (얄미워) 흘겨보았다.


"그래, 그럼 나만 몰랐던 걸로. 아무튼 그 망둥이도 비골라 아저씨를 알고 있었단 말이네. 그럼 혹시 아저씨를 해치지 않을 수도......"


물론 마드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03.

"저도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사관학교 출신이었고 그저 청강에 불과했습니다만 교수님의 강의가 무척 인상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부 사막 이민족들의 민속사와 보존 방안에 대해'라는 강의였죠."


오사르가 말했다. 계엄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아니라 마치 교수 앞에 선 학부생처럼 다소곳한 표정이었다. 대회의실에 켜 놓은 등불이 그의 하얀 얼굴 위로 일렁였다.


"...... 나 역시 당신을 기억하오. 믿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오사르 알렉사이. 내 수업에 청강을 들어온 주제에 몹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던 어린 사관 생도가 있었지. 당신이 던졌던 질문조차 생생히 기억이 나는군. 이민족들의 민속사와 전통을 지켜주는 것이 과연 제국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느냐고, 도발적으로 물어왔던 기억이 나."


오사르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맙소사.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제 위치와 임무를 생각하자면 이래선 안되지만 기쁘지 않을 수 없군요.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옛 은사를 모시고 술이라도 대접해야 할 텐데요."


비골라는 입을 다문 채 한때는 그의 수업을 듣던 학생이었던 자, 지금은 자신의 명줄을 틀어쥔 계엄군 사령관인 남자를 바라보았다. 오사르가 계속 말했다.


"어쨌거나 교수님. 어쩌다 제국의 반란군에 가담하게 되신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저의 일을 해야겠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 것이요." 비골라가 말했다.


"그저, 간단한 질문에 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정보를 캐내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저희가 알아보아도 될 일이니까요.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교수님께서 알아내신 제단에 대한 정보. 또 누가 알고 있습니까?"


오사르가 물었다. 그의 질문이 옛 은사에게 제대로 전해졌는지를 가늠하려는 듯 비골라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비골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만 대답해 주시면 됩니다. 교수님이 알아내신 것을 누가 알고 있는지 말입니다. 민병대의 모두가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민병대의 대장, 마드 세라자드 그녀만이 알고 있습니까?"


마스칼은 비골라가 입을 꾹 다문 채 의연하게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골라는 곧장 입을 열어 대답했다.


"자네 모친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군."


마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04.

비골라가 계엄군 사령관에게 의연하게, 그리고 경솔하게 내뱉은 말을 듣고 마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스칼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마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작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계엄군의 사령관 앞에서 그토록 대범하게 대처하실 수 있다니. 솔직히 좀 많이 놀랐습니다. 저나 로엘처럼 군인 출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마스칼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두리번거렸다.


"...... 그런데 로엘은 어디 갔습니까? 정찰이라도 간 건가요? 안 보이는데."


창백했던 마드의 얼굴이 이번엔 불타는 장작처럼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비드로 말할 테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유일하게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얼굴을 한 사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마스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멍청할 정도로 착해빠진 양반이...... 잃은 게 너무나 많군요. 로엘은 그렇게 쉽게 가선 안됐습니다."


마드가 입술을 꼭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응. 그러니 더 잃을 수는 없어. 단 한 사람도. 그러니까 말해줘, 마스칼. 아저씨는 그리고 어떻게 된 거야?"


마스칼이 썩은 고기를 씹듯 입을 다시다가 말을 이었다. 가장 중요하고 하기 힘든 이야기가 남았던 것이다.


비골라 아이작이 계엄군 사령관을 향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을 때 오사르는 화를 내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사실 맥빠진 대답을 하신다면 실망할 뻔했습니다. 어쩌면 이 역시 제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요."


비골라는 여기에 대해서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관두었다. 오사르가 그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군인이 되고서 저는 사막과 제국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국은 전쟁으로 유능한 이들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아쉽지만 그들의 빈자리를 채울 이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꾸준하게 저를 실망시키고 있지요."


이날 아침의 전투가 떠올랐는지 오사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전히 교수님 같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수님처럼 겁 없이, 아니 겁이 나도 의연하게 견디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죠. 저는 그것이 좋습니다. 제국에, 아니 사막에 아직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기쁜 일입니다."


오사르가 힐끗 비골라의 등 뒤를 쳐다보았다.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골라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이를 지켜보는 마스칼의 표정이 굳어갔다.


"하지만 옛 은사라고 해서 제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계엄군의 사령관이고 제국의 군인이니까요. 교수님께서 지금은 입을 열지 않으시지만, 글쎄요."


오사르가 손을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남자 둘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창백한 얼굴에 아무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는 나무 막대기 같은 사내들이었다. 병사와 달리 장교처럼 정복을 입었고 칼이나 창 대신 두꺼운 쇠사슬과 빈 것으로 보이는 큼지막한 물통을 들고 있었다.


그들이 비골라의 양옆으로 와 서자 비골라의 눈이 흔들렸다. 오사르가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말을 맺었다.


"아마 길지 않을 겁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고분고분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말을 잘 듣게 되기까지 말이죠. 이 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십시오. 그리고 다시 내 앞으로 오는 겁니다. 그때는 꼭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무미한 표정을 가진 사내들이 비골라를 양쪽으로 부축하듯 들어 올리고는 끌고 나갔다. 비골라는 여전히 의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손끝부터 발끝까지 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스칼은 그 이후로 비골라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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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77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4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7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9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8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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