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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의 서재

사막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922
작품등록일 :
2020.05.11 21:30
최근연재일 :
2021.01.18 22:00
연재수 :
1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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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4,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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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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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Re 77. 양동 작전 2

DUMMY




01.

마드와 유마가 사령소 안에 발을 들였다. 마드는 확신했다. 아, 나는 사령소가 아니라 다른 곳에 들어왔나부다.


며칠의 외유 끝에 들어온 사령소는 아무래도 그녀가 알던 곳 같지 않았다. 마드 세라자드는 일찍이 로엘 아가킨, 비골라 아이작과 함께 이곳에서 민병대 창설을 결의했다.


"여기가 우리의 본부입니다. 제단이 바로 뒤에 떡 하니 있는 시청보다 여기가 좋겠어요. 우리는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겁니다. 그리고 빌어먹을 저 달을 과거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려놓자고요."


그때, 마스칼도 함께 있었나?


'모르지, 그딴 자식. 그 자리에 있었는지 어쨌는지.'


그랬던 민병대 사령소는 까만 어둠에 잠겨 너무도 생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뭔가 잔혹한 꿍꿍이를 감춘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겨우 사나흘 남짓 비워둔 것이 아니었던가.


건물의 소유권이 확실하게 넘어가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원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었지만) 그렇다곤 해도 너무 낯설어서 마드는 혼란스러웠다.


"대장, 이제 어디로 가면 될까? 여기 유치장이 지하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유마가 물었다. 마드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지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조차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깜깜해도 너무 깜깜했다. 이미 사령소에 기름이 전부 동난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어둠은 어딘가 인위적인 느낌이 났다. 마치 거인이 내부를 온통 까만 장막으로 뒤덮고 선 것처럼.


'제국군들은 원래 이렇게 깜깜한 걸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그 망둥이 사령관의 취향인 건가? 어두워도 너무 어두운데.'


마드는 세 갈래로 갈라진 길 중에 맨 왼쪽 길을 일찌감치 제외한 후에 (그곳은 병기창이었다) 신혼부부가 서로의 몸을 더듬듯 기억을 열심히 훑었다.


"가운데! 가운데 길로 가야 해요. 오른쪽은 식당으로 가는 방향이었어! 가운데로 가면 계단이 있을 거예요."


"진정해요, 대장. 어차피 사령소 안에 남은 병사들은 별로 없는 것 같으니. 당신의 감각을 믿어요."


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운데 길게 난 복도를 조금 따라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은 마치 먹잇감을 기다리듯 시꺼먼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02.

"이만치 뛰었으면 된 것 같은데......"


사자가 혼잣말했다. 그는 한참을 여유롭게, 그의 평소 달리기로 보자면 거의 조깅하듯이 어두운 길 위를 달렸다. 오늘따라 달은 유난히 힘이 없어서 도시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달은 마치 요도염에 걸린 남자가 변소 위에 힘겹게 흘려놓는 오줌 방울처럼 찔찔거리며 빛을 뿌렸다.


사자가 그토록 여유롭게 달렸는데도 경비조들은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럴 기미도 없었다. 분명 쫓아 달려 나오는 걸 보긴 했는데......


'뭐가 이리 느긋한가?'


사자가 괜스레 분통을 터트렸다. 사실 병사들이 태연하고 한가하게 굴수록 그들의 양동 작전에는 좋은 일이었지만 사자는 왠지 짜증이 났다. 병사들의 하품 나올 만큼 한가한 작태가 화를 돋운 것이다.


사자는 요크를 떠올렸다. <검의 길>을 걷기로 한 공화국 소년과 소녀들을 가르쳤던 그의 스승. 모든 공화국의 검들이 모시고 따르며 미워하고 사랑했던 그 남자를.


요크 앞에서 저렇게 한심한 모습을 보인다면? 아마 일주일이 지나도록 뜨거운 음식은 쳐다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우악스러운 주먹이 소년들의 얼굴을 다져놓았을테니.


적을 쫓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옷장에서 치마를 꺼내는 일을 없을 것이다. 소녀들의 보드라운 종아리는 퉁퉁 부어 걷기도 힘들었을 테니.


사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폭력적인 교육이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엔 몸으로 익혀야 하는 신념도 있는 것이다. '전장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죽는다.' 와 같은 것 말이다.


그때 계엄군 경비조들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물론 그들이야 나름 열심히 뛰고 있었겠지만 사자의 눈에는 한가로워 보였다. 두 명의 다른 경비조 병사도 그 뒤를 따라 나타났다. 사자는 간판이 부서져 뭘 팔았던 가게인지 알 수 없는 건물의 그늘에 모습을 숨기고 그들을 기다렸다.


병사들이 사자의 사선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03.

마드와 유마는 계단을 한 단씩 조심히 디디면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역시 1층 로비처럼 아무 불도 켜 놓지 않아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마드는 계단 난간을 소중한 찻잔 다루듯 조심스레 잡으며 관절염에 걸린 노인처럼 내려갔다. 반면 유마는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다는 듯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다.


한참을 내려가던 (마드는 원래 계단이 이렇게 길었나, 의아했다) 유마가 갑자기 뒤로 팔을 뻗었다. 하마터면 가슴에 닿을 뻔했던 것을 마드가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어디, 이 남자가!'


"쉿!" 마치 마드의 생각이 들리기라도 한 듯 유마가 작게 속삭였다.


"밑에 병사들이 있소. 그런데...... 젠장, 뭐지?"


"왜요? 병사들이 많나요?" 마드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뭔가 이상하오. 병사들이 있긴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해."


"그게 뭔 이상한 말이에요?"


마드가 답답해하며 유마 옆으로 내려와 섰다. 지금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녀의 눈에 어둠 속 광경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 유치장에는 역시 아무 등불도 켜져 있지 않았지만 어슴푸레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길게 난 복도를 따라 오른쪽에는 3개의 유치장이 늘어섰고 왼쪽은 벽이었다.


'지하에 창이 나있을리 없는데. 이 빛들은 뭐지? 달빛이라기엔 너무 파랗고......'


마드가 빛에 홀린 듯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자 유마가 재빨리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마드가 유마를 돌아보았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대장, 과감한 것도 좋지만 조금만 살펴보고 내려가실까? 병사들 얼굴을 잘 보시오. 어딘가 이상하지 않소? 술이라도 진탕 먹은 표정이잖소."


유마가 손을 들어 병사들을 가리켰다. 병사들은 눈을 뜨고는 있었으나 보는 것이 없었다. 깨어 있는 것 같았지만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드와 유마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람?


그때 그들이 결국 가야 할 방향에서 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거기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가? 이만 내려오시게."


누군가가 그들을 불렀다. 낮고 그윽한 목소리. 그리고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04.

병사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왔다. 사자는 여전히 건물의 그늘에 숨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달빛이 워낙에 흐려서 사자의 넓은 어깨와 먼지로 지친 로브를 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나저나 정말 이상한 날씨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데도 달빛이 이토록 흐릴 수가 있는가? 아무리 반이 넘도록 기울었다고는 하나, 마치 꺼져가는 등불 마냥 어설픈 빛 밖에 내지 못하다니.'


사자는 도시에 누군가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드와 유마가 지금 지하 유치장에서 누굴 만나게 됐는지 전혀 몰랐다. 그러니 그저 이상할 뿐이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날씨가 아니었다.


'이대로 놔두면 결국 나를 찾지 못하고 돌아갈 판이군. 도망친 자가 어떤 일을 벌일지 확인도 않고 태연하게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이대로 병사들이 돌아가버린다면 마드와 유마에게 좋지 않을 것이다. 더 멀리 끌어내는 것도 문제였다. 수색대 본부에 모여있는 병사들까지 끼어든다면 소란이 생길 테니까. 이쯤에서 '발각'될 필요가 있었다.


'사막이 변질한 것은 알았으나 이토록 병사들의 기강이 무너졌을 줄은. 전쟁을 끝까지 버텨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그늘 밖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생각했다.


'달의 침식만 없었더라면 제국은 금세 패망했을 것이다. 5년 전 어느날 갑자기 창백한 달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사자가 마침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랬는데도 병사들은 한동안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어이가 없어 사자가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병사 하나가 순박하고 어리석은 목소리로 외쳤다.


"어? 저깄다!"


'그래, 여깄다.'


사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자를 발견한 여섯 명의 병사들이 신이 나서 그에게 달려왔다. 여전히 여유로운 몸짓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이 불길한 예감으로 주춤대고 안일하고 나른했던 표정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사자로부터 몇 걸음 안 남았을 때였다.


그리고 사자를 보고 수상함을 느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었다.



05.

마드와 유마가 계단 밑으로 내려왔다.


지하는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어슴푸레한 파란빛이 공기 중을 둥실 떠서 (빛이 떠다닌다니 어색한 비유였지만 꼭 그렇게만 보였다) 마드와 유마의 눈앞을 비추었다. 지하 유치장의 복도가 늘어선 세 개의 유치장 앞으로 이어졌고 그 복도의 끝에 그들을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이 서 있었다.


서 있었다? 그건 알 수 없었다.


복도 끝에 단단히 틀어박힌 어둠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1킬로미터 바깥에서도 말의 갈기를 볼 수 있다고 자신했던 유마의 눈조차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마드는 그녀 앞에 둥실 떠오른 파란빛들이 어디서 들어오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차마 돌릴 수가 없었다. 복도 끝의 어둠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감히 고개를 돌릴 수가 없으리라.


마드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꼴깍하고 침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컸다. 커다란 바위를 호수에 냅다 던져 넣은 것 같았다. 마드는 자기 침 삼키는 소리에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그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어둠 앞에서 감히 움직일 수 있었는지는.


유마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릴 적 일족들과 보냈던 잠깐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억세고 예의 없는 무법자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았던 유마조차 입을 열지 못했다.


거기 누구냐고. 아니, 거기 '누구시냐고' 최대한 예의 바르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도 끝의 어둠이 다시 입을 떼어 그들에게 묻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리라.


유마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어둠 앞에서 차라리 눈이 멀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고 부릅뜬 눈이 조금씩 빨갛게 충혈되고 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게. 이거야,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로군. 물론 편하게 있으라 한다고 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지만. 아무튼 너무 두려워 말게. 누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복도 끝 어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드와 유마는 신경이 쭈뼛 섰다. 시릴 정도로 차가운 오아시스 물에 담근 듯 손과 발이 얼어붙었다.


몇 마디 되지 않는 그의 말이 지하 유치장 안을 무겁게 내려앉았다. 목소리에 무게가 있어 그들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마드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주저앉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드와 유마는 그저 얌전히 처분을 기다리는 어린 양처럼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복도 끝 어둠이 한발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걸음을 앞으로 옮겼을 뿐인데 바람에 안개가 벗겨지듯 어둠이 스스로 남자로부터 물러섰다. 이윽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꺼슬꺼슬한 은발의 머리를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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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Re 81. 비골라 2 +10 20.08.20 691 31 12쪽
80 Re 80. 비골라 1 +4 20.08.19 688 32 12쪽
79 Re 79. 양동 작전 4 +4 20.08.16 707 30 12쪽
78 Re 78. 양동 작전 3 +6 20.08.15 701 35 12쪽
» Re 77. 양동 작전 2 +6 20.08.14 707 36 12쪽
76 Re 76. 양동 작전 1 +4 20.08.13 717 30 13쪽
75 Re 75. 생매장 +4 20.08.12 715 33 12쪽
74 Re 74. 구출 작전 3 +6 20.08.09 773 36 12쪽
73 Re 73. 구출 작전 2 +6 20.08.08 776 31 13쪽
72 Re 72. 구출 작전 1 +6 20.08.07 783 34 13쪽
71 Re 71. 마스칼 2 +4 20.08.06 778 35 12쪽
70 Re 70. 마스칼 1 +4 20.08.05 856 31 12쪽
69 Re 69. 유마 3 +8 20.08.02 817 38 13쪽
68 Re 68. 유마 2 +4 20.08.01 813 36 12쪽
67 Re 67. 유마 1 +2 20.07.31 857 37 13쪽
66 Re 66. 무법자들의 성 2 +8 20.07.30 843 38 12쪽
65 Re 65. 무법자들의 성 1 +6 20.07.29 852 36 12쪽
64 Re 64. 퇴각 2 +8 20.07.26 899 41 12쪽
63 Re 63. 퇴각 1 +9 20.07.25 898 32 12쪽
62 Re 62. 세라자드 4 +10 20.07.24 925 42 12쪽
61 Re 61. 세라자드 3 +6 20.07.23 930 38 12쪽
60 Re 60. 세라자드 2 +10 20.07.22 931 41 12쪽
59 Re 59. 세라자드 1 +5 20.07.19 1,006 39 12쪽
58 Re 58. 침공 6 +7 20.07.18 1,007 42 12쪽
57 Re 57. 침공 5 +9 20.07.17 1,027 40 12쪽
56 Re 56. 침공 4 +11 20.07.16 1,011 44 12쪽
55 Re 55. 침공 3 +9 20.07.15 1,038 44 12쪽
54 Re 54. 침공 2 +9 20.07.12 1,062 42 12쪽
53 Re 53. 침공 1 +4 20.07.11 1,102 39 12쪽
52 Re 52. 세이마르 5 +4 20.07.10 1,118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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