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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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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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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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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글자수 :
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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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9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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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9.

DUMMY

리시버와 김민서는 어떤 숲 속의 지면 위에 안착했다.


철푸덕, 이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글자로 쓴다면 말이다. 민서는 엉망 진창의 자세에서, 그대로 지면 조금 위에 나타나서 뺨으로 흙바다과 거친 해후를 나누었다.


“펍.”


김민서는 입 안으로 들어오는 흙모래 따위를 뱉어냈다. 시베리아 동토의 얼어붙은 흙은 맛이 썩 좋지는 않았다. 차갑고 딱딱한 지면은 그를 거칠게 밀어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만히 있는 땅에 그가 지나치게 다가간 것 뿐이다.


김민서가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할 때, 최길우는 멀쩡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비슷한 자세로 나타나기는 했다.


최길우는 자신이 스스로를 이동시킨 자세를 짐작하고 있었기에 여유롭게 선 채로 안착을 했고, 김민서는 경황이 없는 때에 이동을 했기에 허우적 거리다가 다시 한 번 넘어진 것이다.


리시버는 굳이 잡아 주지는 않았다. 이동해 온 시점에서 잡았던 팔을 가볍게 놓았다.


“흙, 맛있습니까?”


리시버의 말에 김민서는 흙바닥을 밀어내며 간신히 일어서고 이이기했다.


“궁금하시면 좀 드려 봅니까?”


오른 손에 얼어붙은 흙의 부스러기가 뭉쳐져서 잡혔다. 최길우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넘어가죠.”


최길우나 김민서 모두 가죽옷을 입은 채였다. 안감이 잘 들어가 있는 고급품이라 방한 기능이 탁월하다. 손에는 역시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고.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전체적으로 톤을 맞춘 차림새였다. 신발은 산악이나 트래킹용에 적합해 보이는 종류다.


머리에는 둘 다 비니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귀까지 내리면 머리 부위의 추위 대책도 완벽해지는 만능 모자다.


최길우는 팔짱을 끼고, 그들이 자리한 숲을 바라보았다. 툰드라 지방의 침엽수림이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고 사위는 어두운 편이다. 그늘지고 추운 자리에 그들은 있었다.


“다시 가죠.”


최길우가 잠시 텀을 두더니 김민서에게 말했다. ‘에?’ 김민서가 제대로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가 김민서에게 다가갔다. 김민서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일어섰다.


“성격이 왜 이리 급합니까. 준비도 좀 하자고요.”

“뭐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일단 총을 피해서 한 번 뛰긴 했지만 다른 승객들을 생각하면 한 시도 낭비할 수는 없죠.”


최길우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들은 점퍼 조직에서 내려온 의뢰를 위해 움직이는 중이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나, 다른 해외 기구에서 의견을 모아 그들에게 당부한 의뢰였다. 해외 기구의 경우에는, 러시아의 열차 내에서 금품을 갈취당하고 고통받는 외국인들의 모국들이 포함된 기구들이었다.


국제적인 경찰 기구에서도 그들에게 연락을 해왔다. 최근에 지나치게 활개를 치기 시작한 그들을 잡는 일은 다소 어려워 보였다. 그들 개개인은 그렇게 강력한 존재들이 아니었지만, 움직임이 지나치게 신출귀몰 하다는 정보였다.


알리바이, 트릭, 상식적인 범행 수단이 결여된 완전 범죄의 경우 ‘점퍼’ 조직이 생각하는 한 가지 결론이 늘 있었다. 현실적으로 중간에 정보의 왜곡이나 누락이 있었거나, 혹은 완벽한 상황 조건이 전달이 되었음에도 불가능한 일이 현실에 벌어졌다면 그건 점퍼가 개입되었을 확률이 있었다.


점퍼의 능력을 대입해 보았을 때, 가능한 일이라면 더욱 더 확실시 된다. 이번 경우에도 그러했다.


러시아가 아무리 국토가 넓고, 한국처럼 치안이 좋고, 공권력과 행정력 따위가 전국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대단위의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이 공공연하게 살아있는 건 무리가 있었다. 국영 사업을 방해하고 나라의 이미지 형성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는 범죄자 무리가 있다면, 그야말로 군대라도 동원이 되어서 잡아낼 것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비정기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현실적인 수단으로는 잡아낼 수 없는 그들만의 특별함이 있기 때문일 확률이 높았다.


이런 범죄자 무리를 잡기 위해서 공군 전력을 사용하는 것 보다는, 러시아 정부의 관계자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하는 해외 여러 국가의 관계자들이 ‘점퍼 조직’에 먼저 문의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점퍼 조직은 이들의 행태를 살펴 보았고, 개중에 ‘점퍼’가 끼어 있다면 나름대로 말이 되지 않는가,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것이 최길우와 김민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이유였다.


“잠깐만요. 적어도 일어나서, 마음의 준비랑 자세를 취할 정도는 주셔야죠.”


김민서가 말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한 손은 턱에, 한 손은 슬쩍 앞으로 뻗는 복싱의 기본 자세였다. 최길우는 그 모습을 다소 한심하게 처다보았다.


“총 들고 난리 피우는데 뭐합니까. 방탄구나 뒤집어 쓰고 구석에 숨어 있을 생각이나 해요.”


그렇게 말하며 최길우 역시 가죽 옷의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전투용의 방탄모, 비슷한 것이다. 방탄모라고 하기에는 가볍고, 재질도 부드러우며, 질긴 천 같은 질감의 무엇이었지만. 강력한 복합 소재가 들어있는 물건으로 총에 뚫리지 않는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두개골과 뇌를 보호해주기도 하고, 나름대로 총알을 미끄러뜨리는 역할도 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캡처럼 생겼다. 녹색빛깔의, 마치 플라스틱 투구처럼 생긴 외형이다. 그것을 비니 모자를 벗고 머리에 뒤집어 쓴 다음에, 다시 그 위에 비니를 걸치는 것이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방편들이었다. 점퍼들은 늘 가볍고, 몸에 달라붙는, 방탄구들이 많이 필요하다. 그들이 뛰어다니는 전장은 늘 가장 험악하고 위험한 곳이었고, 그들이 몸에 걸칠 수 있는 도구들은 그 부피가 크지 않았다.


최첨단의 기술력의 대부분은 이런 방탄 도구들이나 가벼운 무기들 따위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최길우의 말에 김민서도 자신의 머리를 더듬었다. 그는 이미 방탄구를 끼고 있었다. 기지에서 출발할 때부터. 그는 겁이 많은 성격이었고, 자신이 점프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드잡이질 같은 훈련을 해왔다지만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인간이라는 걸 잘 인지하고 있었다.


김민서는 침착하게, 최대한 침착하게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아까 열차 밖으로 떨어져 내려왔던, 그 총 든 강도들이 득실거리는 전장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쉽게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현실감에 조금 둔하고, 감정이나 감각을 뒤늦게 느끼는 편의 김민서였지만 본능적인 트라우마나, 몸에서부터 드러나는 반응들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을 속이고 침착하게 있으려고 해도, 손부터 조금 떨려 왔다.


최길우는 시원스럽게 웃었다.


“죽기야 하겠습니까.”

“보통 그런 말 다음에 제일 많이 죽지 않습니까?”

“그건 보통이고. 난 보통은 아닙니다.”

“씁···.”


김민서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뛰어난 인간들은 자기 입으로 저렇게 지껄이진 않는다. 간혹, 자기 입으로 지껄이는 괴짜들 중에 진짜가 섞여있긴 하지만.


최길우가 말했다.


“어쨌든 임무는 임무입니다. 조직에서 파악한 바로는, 아마 한 명의 점퍼 정도가 적들 조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명이라면 보다 더 빠르게 도주하고 사라지고, 신출귀몰 했을텐데. 강도단이 움직이는 건 어느 정도 한계가 있고 반드시 그 사이에 텀이 있습니다. JE가 그리 많지 않은 평균적인 수준의 점퍼 하나, 정도가 강도단을 돕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1명의 점퍼가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도약의 한계는 보통 100에서 200회 정도였다. 100회가 최하치, 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도리어 많은 수의 점퍼들이 100이나 100근처의 한계 횟수를 지닌다. 150을 넘어가면 그는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의 도약 한계를 지닌 점퍼이다.


그렇기에 200을 넘은 홍인수나, 그조차 넘은 리시버가 특별한 경우로 취급되는 것이다. 보통 200이 넘는 점퍼들은 동시대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한 경우다. JE가 낮은 편일 때는 100회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점퍼 조직들이 상대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의 경우는, 평균적으로 JE의 보유량이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상정하는 적대적인 점퍼의 스펙 역시 100-200 사이를 예상하고 대응한다.


자신의 능력이 어느정도 깜냥이 되고 능력이 있을 때에, 범죄같은 대담한 짓거리를 저지르기에 그러하다.


“한 명의 점퍼가 수십 명의 인원들을 데리고 이동한다면··· 적어도 그 딜레이가 수십 초는 있을 겁니다. 한 번의 도약에 한 호흡은 걸릴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인원들이 정해진 장소에 멈춘 채로 있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야 할 테고요. 20명의 인원들을 정해진 먼 곳에 데려다 놓는다면, 양손을 써서 두 명씩 편도로 열 번. 도착지에서 이동지까지 왕복하기 위해서 열 아홉 번···. 하루에 다섯 번 이상 거점을 옮기지 못합니다. 대단위의 조직을 데리고 완벽하게 군대를 피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은 아니죠.”


최길우가 브리핑을 하듯이 미리 듣고 온 내용을 민서에게 한번 더 설명했다. 민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래서 상대가 점퍼를 가지고 있는 것치고는 소극적으로 움직인다고.”

“맞습니다. 부정기적이고, 범죄 행각 사이의 텀이 깁니다. 그들이 갈취하는 금품도 여행객들의 것들이고 사람을 죽이지는 않습니다. 열차나 철로를 손상시키지도 않고요. 본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 조직이 고용이 된 것이고···.”


김민서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습니다. 아까 그 때로부터 고작해야 몇 분, 정도면 대강 상황이 진척이 될 것이고··· 다시 얼마가 지나면 도주가 시작하겠죠. 우리한테 남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바로 돌입합니다. 준비 됐습니까?”


리시버, 최길우가 길게 김민서에게 쓸 데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 놓은 건 그가 긴장을 풀게 하기 위해서였다.


최길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레 따라가던 김민서가 마지막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 아뇨 조금만 더···.”

“시끄럽습니다.”


최길우가 달려들었다. 김민서는 피하고 싶었지만, 최길우의 동작은 레슬러의 태클만큼이나 빠르고 강력했다. 그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채 붙잡혔다.


“커억.”


결국 그렇게 강렬한 충격을 받은 직후로,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후욱, 하고.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숲 속의 어느 자리에 그들의 발자국이나,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

joris-beugels-QjrntoujpHE-unsplash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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