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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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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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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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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9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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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2)

DUMMY

최길우는 도망자를 따라, 어느 아프리카의 평야 지역에 나타나면서 그런 상황을 순식간에 인지했다. 그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고 움직였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생각보다 노련하고, 실력이 좋은 자였다. 어쩌면 점퍼 조직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보들을 알고 있는 이일지 몰랐다.


그런 이이기에, 도리어 이렇게 대담하게 근래에 일을 벌일 수 있던 거였겠지. 그렇다면 조직의 추적을 예상하지 못했나? 혹은 추적을 당하고도 따돌릴 수 있을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팔다리를 내어 주듯이 팀원들을 제물로 바치고 자신의 신변 정도만 수습할 생각이었을 지도 모르고.


한국은 밤이었으나, 초원은 한낮이었다. 자리를 옮기자마자 최길우가 느낀 건 지나치게 뜨거운 햇살이었다. 옷을 다 입고 있는데, 가려지지 않은 맨살은 따가울 정도다. 다행히 태양빛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구도는 아니었다. 초원의 어느 나무 아래. ‘리더’는 그 그늘에 있었다. 몇 걸음 앞에 최길우가 햇빛을 받으며 있었고.


바람이 불어오고 자연의 냄새가 났다. 건조한 공기. 도심에서 맡을 수 없는 풀 내음이었다. 어딘가에 짐승이 변을 쌌는지 그런 냄새도 섞여 있는 듯하다. 후덥지근하고 오래 견디기엔 싫은 날씨였다.


주위엔 짐승의 기척도, 사람의 기척도 없었다. 넓은 초원 평야에 그들뿐이었다. 멀리로 야트막한 산 따위가 보인다. 드물게 나무가 서 있다. 바람에 따라 건조한 풀들이 잎사귀를 흔들어 댄다.


그야말로 임팔라나, 사자 따위가 있으면 알맞을 듯한 광경이었다. 리시버와 리더. 누가 맹수이고 사냥감인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다. 물론 최길우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작전 중에는 상대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된다. 온 신경을 추적 대상에게 쏟고 그 손짓과 발짓 하나에도 반응을 해야했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치면 곧바로 등 뒤에서 칼을 박을 수 있는 게 전투에 익숙한 점퍼들이었다. 그들에게 서로 간에 놓인 거리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사각을 찌르는 칼날은 때로는 총알보다도 사람을 쉽게 없앨 수 있었다.


”푸.“


최길우는 그런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밝게 행동했다. 밝게, 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운 행동들은 그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여유를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 긴장으로 조금이라도 몸이 굳지 않도록.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게 전투에서의 생환률을 높이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그는 유난스럽게 입으로 바람을 뱉으며 말을 건다.


”더워 죽겠네. 이런 곳은 또 언제 와본 거요? 아니면 도주로로 쓸만한 곳들 좌표를 외우고 다니나?“


보통 점퍼가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위치 정보가 필요했다. 그건 수식적인 위치 좌표, 숫자일 때도 있었고, 혹은 자신이 직접 가보고 느낀 장소일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점프에 이용 가능하다. 수식을 외우는 데 젬병인 사람은 직접 발로 돌아다닌 곳들을 도약의 위치로 삼는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점퍼들의 점프에는 ‘편향성’이 생기게 마련이다. 진정한 의미로 지구상 어디에나가 아니라, 자신이 자주 이동하는 곳, 혹은 머릿속에 기억하는 몇 가지 좌표들을 중심으로 도약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도약은 필연적으로 시각적인 기이함을 동반하니만큼, 다른 사람의 눈에 닿지 않는 곳으로 제한된다면 때로는, 아주 드문 확률로 점퍼끼리 마주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었다. 어느 어스름한 골목의 구석 따위를 점프로 이동하다가 마주치고는 하는 것이다.


이전에, 조직이 없던 때에 그런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서로 마주치고 서로를 확인하고, 다른 점퍼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럴 때 당장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호전적인 성향이라면 모르겠지만, 한쪽이라도 싸움을 회피한다면 점퍼는 잡아내기가 지독히 어려운 부류였다. 서로에게 서로가 말이다.


그런 어려운 일을 주업으로 삼고 살아가는게 현대의 조직 내의 점퍼들이었고, 개중에서도 리시버, 최길우였지만.


리더는 변변찮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극도의 경계 상태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전 순간에서, 그의 포획을 벗어난 방법도 기가 막힌 수준이었다. 조직 내에 점퍼들을 잡는 전문 추격자에 대한 정보가 그에게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보통 반응하기 어려운 조심성이었다.


점퍼 조직의 조직원들은 보통 실없는 모습을 가장한다. 최대한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고서라도, 점퍼를 잡는 데에 실패 확률이 늘 동반하는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본신의 능력들을 개발하는데 힘을 다하는데··· 그런 갭에 속지 않고 조직원들의 실력에 곧바로 대응하는 상대는 아주 드문 경우였다.


보통 점퍼 조직의 젊은 인원들보다 오랜 시간을 점퍼로서 살아오고, 전 세대의 조직원들과 마주한 적이 있는 인간들이 그렇게 움직인다.


길우는 상대가 그런 인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용케도, 조직에 편입되지도, 제압되어 통제 아래에 있지도 않고 개인적인 움직임을 계속해온 모양이었다.


길우가 상대를 마주한 채로 여러 추리들을 이어갈 때 리더가 움직였다. 그는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려서 뒤로 바지춤을 잡았다. 품이 넓은 옷차림새에서는 어떤 장비가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권총류라면 바지틈 어느 쪽에나 숨길 수 있었다. 길우는 최대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대비했다. 상대가 이쪽으로 겨누는 동작을 할라치면, 곧바로 이동해야 했다. 총알은 빠르지만 그것을 위한 사람의 움직임은 눈으로 보고 대비할 수 있다.


상대방과 반사 속도를 겨루는 일이었다. 지금 그는 방탄 소재의 내의를 위아래로 껴입고 있기에, 맞아도 죽지는 않으나 더럽게 아플 거고 적어도 잠시간은 움직임이 멈출 테였다.


섣불리, 다가가서 상대를 자극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꺼내드는 물건의 정체를 확실히 파악하고 그에 따라 대응을 해도 늦지 않는다. 리시버는 이러한 류의 일에 프로라고 해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 정도의 여유나 침착함은 갖고 있다.


리더의 두꺼운 팔이 허리춤을 잡고, 한 빠르게 몸을 뒤튼다. 어깨가 움직이는 모양을 봐서는 발사 무기였다. 이쪽을 재빠르게 겨누려는 동작처럼 보인다. 총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보이기 전에, 그 예비 자세만으로 리시버는 일단 도약을 했다. 멀리 갈 필요는 없었다. 요는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으로 방향을 바꾸면 충분하다.


순간 이동의 재빠른 발동에는 약간의 요령과 준비, 연습과 재능이 필요했다. 점프 에너지라 불리는 미상의 에너지는 도약을 발동할 때 움직이며 작용한다. 도약은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점퍼가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과정이 있었다.


머리로 점프를 인식하고 발동하는 생각의 단계에서, 그 다음 순간에 점프 에너지가 외부로 발출되며 준비 상태에 들어간다. 그리고 곧바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 준비 상태까지는 임의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에 도약의 시전을 잠시 늦추거나, 지연시킬 수 있다. 잘못하면 그대로 점프가 발동되거나, 혹은 도약이 되지도 않았는데 도약 횟수가 줄어드는 참사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의 반응을 미리 해둔다면, 지정한 장소로 재빠르게 점프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이전 야산에서 리더가 했던 일과 결국 비슷한 일이었다. 조금 더 세분화된 요령이 필요했지만, 미리 타이밍을 계산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원래 눈 깜박하는 속도, 혹은 한 호흡을 짧게 뱉는 속도보다 타임을 줄일 수 있지만 이런 요령이 있다면 거의 노 딜레이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진정한 의미의 노 딜레이는 아니겠지만, 상대하는 적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리시버는 그런 요령으로, 상대의 움직임의 기세를 보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맞추어 준비 상태를 만들어두었다. 결국 상대가 허풍을 치는 거든 뭐든, 시야의 사각으로 움직여서 허를 찌를 수 있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이미 사용한 점프를 공격적으로 이용해 기회를 만들어내면 된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최길우의 신형이 사라졌다. 바람 소리 탓에 점프의 전조음이 들리지는 않았다. 최길우는 리더, 사내와 5-6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가,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치는 리더의 시야에서 왼쪽으로 90도가 넘게 이동한 자리였다. 왼쪽 측면보다 조금 더 돌아간 자리.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면 오른팔로 꺼내 들던 무언가를 사용하기 위해 몸을 반회전 시켜야 했다.


길우는 리더의 오른손에 들린 무언가를 경계하며 그것의 정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점프의 다음 위치를 예상하는 건 거의 본능에 의지하는 일이었다. 수많은 경험으로 단련된 점퍼끼리의 전투에서, 시야의 사각 어디로 이동해야 상대에게 가장 까다로운 지를 숙지하고 있다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다.


자신도, 스스로에게 가장 취약한 사각이 어딘가를 상상하며 움직여야 했다. 리더는 그런 일에 재주가 있는 편인 모양이다. 다소 늦기는 했지만, 금세 길우가 움직인 자리를 예측하고 몸을 돌렸다.


돌아오는 몸과 팔에 잡힌 무언가가 힐끗 보였다. 멀리서 보기에도 총처럼 보이는 물체다. 리시버는 그 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 도약의 전부터 머릿속에 생각해두었던 동작을 바로 실행한다. 그 역시 허리춤에 간단한 원거리 무기 정도는 달고 움직인 상태였다.


공기총, 그렇게 크지 않은 부피의 권총형이다. 맞아도 죽는 정도는 아니다. 잘못 맞으면 물론 결과적으로 죽겠지만. 최길우는 사격 솜씨도 쓸만한 편이었다. 이 정도 거리의 정지 표적이라면 원하는 자리에 순서대로 골라 맞힐 수 있었다.


가장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홀더에서 총을 빼 들었다.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상대를 겨눈다. 물리적인 반사 속도는 리시버가 조금 더 나은 듯 했다. 리더가 몸을 제대로 틀기 전에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깡! 폭음이 들리며 탄이 날아갔다. 화약총이 아니라지만 위력은 상당했다. 조직의 연구소와 연이 닿은 곳들에서 특제로 만들어준 물건이기도 했고, 가볍고 연사 능력도 좋다.


”컥.“


탕!


하고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최길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짧은 정면 승부의 피해자는 리더 뿐이었다. 그는 허벅지의 측면에 총알을 맞았다. 관통상까지는 아니었다. 대퇴부에 총알이 파고든 것 같았다. 일부러 위력을 극한까지 높이지 않은 물건이었다.


리더는 아주, 충격에 익숙한 인물인 듯 대퇴부가 파이는 고통에도 쓰러지진 않는다. 그 격통 속에서도 침착하게 길우가 있던 자리를 쏘았으니. 권총탄이 허공을 가로질러 초원의 너머로 사라졌다. 지평선 끝까지 아무도 없는 평야였다.


후욱, 하고 점프의 전조음이 느껴진다. 리더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점프가 느껴진다는 건 근처로 이동했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총구를 노려볼 수 있었다. 혹은 가까이에서라면 체중을 실어 제압을 해보는 것도 가능했다. 허벅지의 격통과 쇼크는 강했지만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총에 맞았지만 피가 드라마틱하게 터져 나오지 않는다. 리더의 군복 바지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가 많이 들어 있었다. 개중에 금속제의 물건들도 있었고, 그것들이 어느 정도 공기총탄의 위력을 줄여준 모양이었다. 더럽게 아파 보였지만, 단숨에 회복 불가능한 중상을 입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는 도박수를 던지지 않았다. 조금 더 가까이서 드잡이질을 해보기 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이동을 택했다. 훅, 하고 그의 신형이 곧바로 사라졌다. 최길우가 옮긴 위치는 리더의 뒤였다. 그는 나무 그늘 아래, 리더가 있어야 할 자리로 이동했지만 그저 빈 자리만 확인했을 뿐이다. 본능적으로 JE(점프 에너지)를 확인했다.


곧바로 연속적인 도약의 준비 상태로 들어갔다. JE가 가리키는 상대의 목적지는 먼 곳이었다. 이 자리에서 전투가 종료되었음을 알고 곧바로 따라간다. 땡볕, 아프리카의 한낮, 흙먼지와 짐승들의 변 냄새 따위가 나는 초원에서 둘 모두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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