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4,640
추천수 :
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10.19 01:29
조회
77
추천
2
글자
21쪽

27. 여름

DUMMY

어떻게든 호흡을 가져와야 했다.


상대의 예측을 뛰어넘는다. 그 외의 수는 거의 가망이 없었다. 김민서는 턱을 당기고, 가드를 올리고 달려들었다. 밀려난 뒤에 회복이 금방이었다. 보호장구 덕분도 있었고, 그 동안 훈련을 받은 종류가 거진 구타에 가까운 것이었어서 터프함이 는 것도 있었다.


적어도, 맞는 일에 대한 두려움은 극한으로 사라졌다. 칼이나 총이 등장하면 또 다른 일이 되겠지만.


송일우는 앞차기를 날리고 그대로 뒤로 덤블링을 했다. 몸을 접어 날려서 한 바퀴 돌아 일어섰다. 김민서와는 거리가 몇 걸음 자연스레 더 멀어진다. 가벼운 몸동작이라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불편한 자세에서 일어난다고 치면, 본인이 쿵푸에 일가견이 있는 무용가라는 전제 하에 해볼만한 방법이었다.


송일우는 그런 경력은 없었지만 비슷한 신체 능력은 갖고 있었다. 김민서가 달려들 거리가 더 늘어났다. 점퍼와의 싸움에 있어서 거리란 한없이 불리한 조건이다. 비슷한 순발력을 갖는다면 거리에 대한 이점은 결코 가질 수 없었다.


송일우는 점프를 사용하는 것 까지는 자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단순하게 격투기를 배운 상대와 근접 전투를 하는 정도의 상황만 전제하고 있는 듯했다.


둘 다 글러브를 끼고 있어서 잡기 기술은 불가능했다. 물론 팔에 엮고 끼우는 따위의 응용은 가능했지만. 김민서는 달려들면서 거리가 참 멀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굳이 자신이 가야 하나. 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금세 고쳤다. 자신이 가야 한다. 가만히 있는다고 카운터를 날릴 수 있을 정도의 노련함이나 반사신경이 자신한테 없었다.


일단, 날아차기를 해보았다. 상대의 근력이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을 던지는 성인 남성을 받아내기란 쉽지 않을 테였다. 아마 피하게 되겠지. 그리고 누가 먼저 자세를 회복하고 기회를 잡느냐의 싸움이었다. 민서는 나름대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한 두세 걸음 앞에서 몸을 던졌다. 발을 앞으로 쭉 뻗고 뛴다. 높이는 상대의 명치 부근. 맞으면 타격은 꽤 있을 테다. 민서는 그래도 운동신경이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 훈련을 했다고, 이런 동작을 써볼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송일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민서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느린 화면으로 보듯이 자세가 드러나는 동작들과, 변수나 속임수 없이 그대로 실행되는 움직임에 도리어 신선한 기분을 느꼈다.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덤벼드는 인간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일정 수준이 지난 이후부터는 꽤나 노련한 싸움을 반복해온 탓이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반 걸음을 옆으로 빼면서 몸을 돌렸다. 많이 움지일 필요도 없었다. 민서가 노리고 달려든 곳은 송일우의 시점에서 왼쪽 가슴 근처다. 나름대로 운동 신경이 있는 모양이지만 송일우는 머릿속에서 그를 요리할 방법을 서너가지 떠올린 뒤 고르느라 고생을 했다.


타다, 탁. 정도가 될 것이다. 농구를 할 때처럼, 정해진 춤을 출 때처럼 스텝을 밟고 뛰어올라 날으는 소리가 말이다. 송일우는 몸을 빼며 길게 뻗어진 상대의 오른발을 피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뒤로 갔다가 김민서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힘을 주어 움직였다.


왼팔로 타이밍을 맞추어 래리어트을 걸어 날렸다. 송일우의 움직임은 임팩트가 정확하고 빨랐다. 김민서가 추락할 때 즈음에 맞추어서 움직이는 목에 초점을 맞추고 온 몸을 돌리며 갈겼다.


쾅! 하는 소리가 났다. 팔과 몸이 부딪히는데 말이다. 그만큼 송일우가 파워풀한 체력의 소유자라는 이야기다. 돌렸던 몸을 그대로 원상복귀 시키며 앞으로 뻗어가듯 날렸다. 김민서는 공중에서 팔뚝에 걸려 넘어졌다.


그대로 중력의 방향대로 걷어 차인 사람처럼, 뒤통수가 꽂히며 내려왔다. 쿵! 하고 이어서 바닥에 떨어진다. 훈련실의 바닥은 소재가 좋았다. 김민서로서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짐작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이곳에서 대체 몇 번을 굴렀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 뼈가 아작나지도, 전치 몇 개월의 부상을 입지도 않은 걸 보면 분명 외부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신기술의 집합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뒤통수를 박은 그대로 얼마간 뛰어 올랐다. 바닥은 반탄력이 좋아 세게 넘어지면 조금쯤 튀어 오른다. 송일우는 마치 자비가 없는 잔인한 격투가, 혹은 싸움꾼처럼 굴었다. 그대로 움직임이 멎은 김민서에게 다가가 발을 들이댔다.


온 힘으로 래리어트를 갈긴 뒤에 다음 공격을 하는 데까지 텀이 길지 않았다. 그는 타고난 운동 선수였고, 격투가였다.


그대로 태권도에서 화려한 찍기를 하듯이, 몸을 관성대로 조금 더 돌려 제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잃지 않고 이번에는 오른 발을 위로 들어서 넘어진 김민서의 몸통 부위를 그대로 찍는다. 높이 들어 올려진 발바닥이 가차 없이 중력과 함께 꽂힌다.


김민서는 어질어질한 시야 속에서 송일우가 무언가 하는 걸 보았다. 뒤통수와 등으로 내려 앉았지만 보호구와 훈련실의 바닥 사이에서 충격은 크지 않았다. 다만 지나치게 빠른 속력으로 몸뚱아리가 굴러 다니고, 또 아예 데미지가 없는 건 아니라 눈이 돌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다시 싸울 수는 있는 상태였다.


그런 김민서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싸움을 끝내려는 듯 송일우가 군다. 오른 발이 명치를 찍었다. 쿵! 하고. 김민서가 공중에서 떨어질 때나 비슷한 소리가 났다. 최소한의 도의는 있는지 맨몸보다 장구를 낀 부위를 때렸다.


"크억."


김민서는 소리를 제대로 뱉지도 못했다. 너무 극심한 타격에 비명이 나오기보단, 그저 몸이 눌려서 헛숨이 뱉어졌다. 이 정도가 되면 보호 장구 너머로 어느 정도 충격이 뚫고 들어온다. 핀포인트로 찍은 탓이었다. 송일우는 발 뒤꿈치만을 사용해 그를 찍었다. 훈련실에 들어올 때는, 전용의 신발로 갈아 신고는 한다. 밑창이 물렁한 고무신 비슷한 것이었다.


송일우가 그대로 그 몸통 위에 발을 대고 있었다. 김민서는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기세가 꺾이는 수준이었다. 사실 꺾이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할 동작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 이길 수 있을까. 뒤엉켜서 난전으로 가면? 아마 백 번을 덤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


김민서는 크게 헛숨을 뱉은 뒤에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보호 장구는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 맨 몸이었다면 갈비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최악을 상상해보자면 내장이 다쳤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순간적으로 눌린 충격에 몸과 정신이 놀랐을 뿐이지. 그는 축 늘어진 오징어처럼 힘을 뺀 채 누웠다. 전의가 솟아나질 않았다. 송일우는 그 상태에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홍인수를 향해서였다.


"...더 합니까?"


끄덕, 하고 홍인수가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입을 꾹 다문 채였다. 훤칠한 키와 용모에 장난기를 보이곤 하는 사내. 홍인수는 웃음을 참는 건지, 진중한 건지 애매한 표정으로 낮게 말했다.


"이 정도는 아직 시작이지. 오늘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딱 세 시 까지만 하지?"


지금 시간은 한국의 기준으로 오후 1시였다. 김민서 역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순간 욕을 하려다가 간신히 가슴으로 눌렀다.


"어... 평소보다 조금 빡센 거 같은데요? 이거 송일우 씨한테 평소 우리가 어느 정도인지 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홍인수와 김만철과 훈련을 할 때 역시 고강도였지만, 살기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훈련을 목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둔하고 강한 충격이 반복되는 와중에 그런 것들을 느낄 정신도 없었지만, 적어도 손속에 망설임들은 두는 편이었다. 이번의 송일우처럼 실전에서 적을 상대하듯이 집요하게 찍어 누르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김민서가 따라 움직여야 훈련의 효율이 극대화되기에 그러하다.


송일우는 훈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여기저기를 쏘아 다니며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고 근 몇 년 동안은 온갖 범죄 조직의 싸움꾼들과 근거리에서 실전을 벌였던 인간이다. 아직 기세가 흉흉한 면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전 경험이야 홍인수나 조직의 인물들도 뒤지지는 않겠지만, 훈련으로서의 감각이나 경험은 송일우에게 부족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이 홍인수로서는, 김민서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느낌이었고 말이다.


"아니 지금 딱 좋은데요. 3시 까지. 못 움직이는 거 아니면 쉬는 시간 없습니다. 계속 반복이고, 스탠딩에서 시작."


홍인수의 말에 송일우는 제법 잘 따르는 편이었다. 그는 발을 치우고 바닥에서 어벙한 표정으로 있는 김민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어...."


김민서가 마주 손을 뻗으려고 하자 더 다가와서 손을 쭉 뻗는다. 그는 그대로 김민서의 내민 손을 무시하고 그 멱살 부근을 잡았다. 정확히는 구명 조끼처럼 패드로 이루어진 몸통 갑옷의 목 근처 구멍을 잡고 일으켰다.


"쿠억."


민서는 훈련실에서 똑바로 말을 내뱉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헛숨을 들이키거나 눌린 목 사이로 신음이 튀어나오는 때가 훨씬 많았다.


송일우의 완력은 상당했다. 체급도 작은 편이 아니었고, 근질도 뛰어났다. 순간적인 폭발력, 사람들이 용력이라고 할만한 기세가 대단하다. 굵은 팔뚝으로 한 번에 일으키자 반강제로 민서가 들려 올라왔다. 본인이 넘어지기 싫다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자세를 잡아야만 했다.


다시 일어난 그는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다.


'양 측, 자리로.'


홍인수가 조용하게 손을 뻗으면서 중얼거렸다. 송일우는 알아 듣고 거리를 벌렸고, 김민서는 그 자리에서 약간 입을 벌린 채 팔을 내리고 있다.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하는게 좋겠지. 딱히 벗어난다고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준비, 시작."


여상스러운 말투와 함께 다시 격투가 시작되었다. 김민서는 이번에는 눈빛을 달리 했다. 자세를 낮추고 태클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노골적이었다. 단숨에 끝내리라. 그는 급소를 노렸다.


송일우는 몇 초는, 김민서의 자세와 움직임에 여유를 보이다가 몇 걸음이 지나자, 그 기세에서 무언가 깨달은 듯 표정을 바꾸며 전력으로 움직였다. 그대로 달려드는 김민서의 면상을 오른 무릎으로 찍어버렸다.


쾅!



*



"고생이 많네."


김민서는, 김수정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음... 어 그렇지."


그들은 커피숍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평일. 대학가 근처. 사람들이 평범하게 지나다니는 시간대의, 거리의 커피숍이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였다. 나쁘지 않은 맛의 커피를 팔고, 가격도 비싸지 않다.


커피샵이라면 으레 그래야 할 것 같은 우드 톤의 인테리어였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듯한 갈색이었고 내부는 한 스무 명 정도가 들어오면 한계일 것 같았다. 그들은 창가 근처의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민서는 에스프레소를 종종 마신다. 커피 맛은 알지 못하지만, 그냥 잠도 좀 깨고 쓴 걸 먹고 싶을 때 마실 뿐이었다. 지나치게 양이 많은 건 먹기 불편하기도 했고.


후룹, 씁. 민서는 천천히 테이블에 놓여진 작은 잔을 들어 입가에 댔다. 쓰다. 취향은 아니었다. 말했듯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해야 하고, 속이 더부룩할 때 골라서 마시곤 한다. 뭔가를 많이 속에 때려넣기 불편할 때.


카페인이 들어간다고 잠에 들지 못하는 체질도 아니었다.


카페의 내부는 실내등이 약간의 주황 빛을 띄면서 분위기를 만든다. 잔잔한 클래식 느낌의 경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카운터에는 자주 보게 되는 주인장 아저씨가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손님은 둘 외에, 대학생 몇 명이 시험 공부를 하고 있는 게 전부였다. 누가 보아도 그들이 다녔고, 다니는 성현대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대학교 점퍼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고 공부하는 여학생과, 슬리퍼를 끌고 나와서 전공책을 파고 있는 남학생이었다.


김수정은 그런 주변을 둘러보다가 김민서를 보고 입을 열었다.


"요즘엔 그래서 운동만 하고 있는 거야?"

"음, 어 그거랑 아르바이트를 하나...."


그들이 학창 시절에도 자주 오고는 했던 카페였다. 둘 다 취향이 비슷한 편이라서, 우연하게 자주 다니는 곳이 겹쳤다.


김민서는 김수정에게, 자신의 신변에 대한 이야기를 대강 둘러대었다. 저번 일도 그렇고, '점퍼'라는 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적당한 비유들로 말을 얼버무렸다.


어딘가에 있는 체육관 관장님이랑 우연히 친해져서 그 곳에 다니고 있다.... 주말마다 운동을 하는데 하드하게 굴려져서 몸이 조금 고달프다. 주중에는 체육관 관장님이랑 아는 분 일하는 데서 아르바이트를 조금 하고 있다. 짧게 짧게 일하며 규칙적으로 생활만 하고 있다.


수정은 주말마다 굴려져서 몸이 고되다, 라는 부분까지 듣고 한 말이었다. 고생이네, 라는 말은.


김민서는 눈빛을 흐리며 어딘가 먼 곳을 처다보았다.


"뭐 다 좋은 사람들인 거 같기는 해...."


김수정은 그런 민서의 표정에 살풋 웃었다. 답이 없는 친구였지만 유머 감각은 있는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는 유머를 한 게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수정에게는 웃음기를 주는 행동들이었다. 그다지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은 표정이나 행동거지가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수정은 모든 것들을 계획에 넣고 움직여야 했고, 그래서 늘 고달픈 면이 있었다.


최근은 그녀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특별히 더 상실감이 있는 기간이었고 말이다. 국문학과는, 제대로 된 취업을 하기 어려웠다. 국어 선생님이라도 준비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 때 가랑이를 확실히 부숴버렸어야 했는데...."


민서가 사무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김수정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들이키다 뱉을 뻔 했다. 말이 거친 탓이었다. 보통은 누구라도 가랑이 사이를 부수면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대상이 남성이라면 더 사태가 보기 끔찍할 테였고.


"뭐, 누구 원수라도 졌어?"


수정의 물음에 민서가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민서의 표정은 한껏 찌푸려져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생기가 돌았다. 재미있는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활기가 있는 민서의 모습은 오랜 시간을 아는 동안 자주 보지 못하던 것이었다.


"아니.... 아무래도 그러지 않으면 내가 당할 것 같아서 그랬지."


체육관 관장님에게 매주 스파링 훈련을 당하고 있는데, 어느 지독한 관원에게 걸려서 고되다는 투로 설명을 했다. 민서는 그 이후로도 송일우와 종종 대련을 하게 되었다. 홍인수는 최대한 날카로운 감각을 그에게 주고 싶어 했다. 실전에서 그를 데리고 다니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던, 자기 몸을 보호하고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된다면 전략적으로 민서의 가치가 훨씬 올라갈 것은 분명했다. 설령 후방에서 지원만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느덧 5월 말이 지나 6월이 되었다. 민서의 기능 연구도 상당히 진척이 되었다. 그는 일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데 의외로, 정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는 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랬기에 홍인수를 불러들인 걸지도 모른다. 민서는 마지막 실험에서 집중 시간의 2분 30초를 기록했다. 마지막에 그가 점퍼의 이동을 왜곡시킨 건 50m정도였다. JE2의 역장이 어디까지 미치는가, 에 대해서는 조금 애매한 문제였다.


아마 그의 근방 수십 m를 기본값으로 하고 있었고, 추가적인 집중 상태의 누적으로 범위가 넓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민서의 주위에는 늘 ME가 발현될 역장이 있었고, 그의 일정한 상태의 변화에 따라서 JE2가 누적이 되어서 왜곡 효과가 발현이 되는 것이다.


늘 예산 계획이 항시적으로 잡혀 있고, 재정 상태가 풍족해지면 바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랑 비슷한 것이었다. ME와 JE2의 관계는.


JE2와 민서의 멍 때리는 상태와의 상관 관계는 비례였지만, 그 그래프가 정확한 정비례는 아니었다. 가속도가 붙듯이 많은 수가 불어날 때가 있었고, 한동안 정체되는 구간들이 있었다. 특별한 법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초에서 분 단위로 넘어갔을 때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으니 예컨데 시간 단위가 될 때, 등 일정한 구간에서 계단식으로 변하지 않는가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를 자유롭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정해진 점퍼의 점프를 원하는 대로 왜곡시킬 수 있다면, 점퍼 간의 전투에서 거의 치트키와 마찬가지인 능력이었다. 홍인수는 그런 능력을 바라고 있었다. 민서가 있다면 그들의 작전 자체의 난이도가 대폭 내려갈 테였다.


아직까지 민서는 정신 상태를 일정하게 유도하는 것도 어려웠고, 더군다나 그것을 특정한 개체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끔 하는 건 더욱 감도 잡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상태에서 실전으로 끌려가 그가 능력을 발휘한다면, 최선의 결과는 그런 모양일 테였다. 가까스로 멍을 때리다가, JE2가 발현이 되어 그 현장에서 점프를 한 모든 점퍼들의 도약을 왜곡시키는 것.


미리 방향성과 왜곡 정도를 짐작하던 조직의 점퍼들만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테였다. 그리고 사실 그 정도만 하더라도, 소드 마스터나 리시버의 경우에는 확실한 승기를 잡는 데 써먹을 자신들이 있었다.


타이밍만 가늠한다면. 근접전에서의 점프를 자제하다가 상대가 왜곡으로 당황할 때 우위를 잡아채면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근접전에서 베테랑 점퍼들 간의 싸움은 아주 작은 오차로도 승패가 갈리는 것이었다. 윤민혁과 리시버의 전투에서처럼 말이다.


손을 대지 않고도 상대의 점프에 영향을 준다, 는 건 해당 범위 내에서는 점프 전용의 전략 무기와도 같았다, 이미.


그런 바람이 민서로서는 다소 고생스러운 일과로 변화가 되었다. 송일우와의 훈련이 민서 내면의 난폭성을 조금 자극했는 지도 모른다. 민서는 전 날 훈련에서 송일우의 남성적 급소를 망설임 없이 노렸고, 그대로 정면 발차기에 면상을 맞고 날아가 오후 훈련이 끝났다.


부상은 없었지만 일시적으로 강력한 충격이 헤드기어를 뚫고 들어와서, 잠시 기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송일우의 앞차기에, 본인이 전력으로 들어가던 태클이 겹쳐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무튼 그러고 있어. 넌 어떤데?”


민서가 묻자 김수정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빛을 피했다. 애매한 표정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민서에게 알리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수정은.


그리고 그녀에게 있어 현재 자신의 상황은 나약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평소에 잔소리를 해대고, 똑바로 살라면서 잘난 척을 해대다가 이렇게 된 꼴이라니.


공들여서 준비했던 취업 면접에 전부 실패했다. 마치 짜기리도 한듯이 다들 사정이 있었다. 그녀의 조건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었는데. 심지어 꽤나 자신도 있었고.


어느 출판사, 어느 중소 기업, 전공을 조금 살릴 수 있어 보이는 컨텐츠 계열의 어느 대기업, 심지어 아는 사람의 추천으로 준비한 일자리도 갑자기 사정이 변했다면서 그녀에게 사죄의 말을 전했다.


모든 게 잘 풀리지 않았다. 당연히 잘 되기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조금 심했다. 그녀는 온 세상이 자신을 미워하는게 아닌가,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정답은 아니었다. 그녀가 느끼기에, 세상은 그녀에게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뭐. 졸업 학점은 마저 채워야지.”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민서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졸업 학점은? 뭐 준비하고 있다며.”

“뭐를.”


김수정이 짐짓 모른 척을 했다. 민서가 그것을 따라가듯 묻는다.


“저번에 너 나한테 취업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냐. 자기는 준비 중이라면서.”

“어어···.”


저번에 만난 건, 고작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사실은 그 때도 본인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김에 신나서, 들떠서 친구를 갈구느라 그랬을 뿐이었다.


“잘 안됐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수정아. 인생은 취업이 다가 아니지. 저번에 너는 나한테 그게 다라고 그랬지만. 인생은 기차처럼 탄탄대로가 아닐 수도 있는 거야. 저번에 네가 나한테 철로에서 떨어진 사고 피해자라고 했던 것 같지만.”


민서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었다. 수정이 집요하게 해댔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다. 수정은 왜인지 낯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어 아메리카노만 홀짝 거렸다.


차고 쓰다. 속이 타들어갈 때는 좋은 것 같았다.


“···.”


민서는 눈을 흘겨 뜨며 그녀를 쳐다보고는 아무 말 않았다. 대신 남아 있는 에스프레소만 마저 마신다.



*

gabi-miranda-niAkR1H24tE-unsplash.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4 30. 22.10.20 61 2 14쪽
33 29. 22.10.19 58 2 11쪽
32 28. 22.10.19 69 2 18쪽
» 27. 여름 22.10.19 78 2 21쪽
30 26. 22.10.18 69 2 14쪽
29 25. 22.10.17 79 2 24쪽
28 24. 22.10.17 80 2 15쪽
27 23. 22.10.16 81 2 20쪽
26 22. 22.10.15 97 2 13쪽
25 21. 22.10.15 95 2 15쪽
24 20. 22.10.14 95 2 19쪽
23 19. 22.10.14 101 3 15쪽
22 18. 22.10.14 98 2 17쪽
21 17. 옥상에서의 이야기 +4 22.10.13 131 2 27쪽
20 16.(2) +2 22.10.12 123 3 15쪽
19 16.(1) 22.10.12 118 2 15쪽
18 15. 22.10.11 122 3 25쪽
17 14. 22.10.11 124 3 20쪽
16 13.(2) 22.10.09 139 4 13쪽
15 13.(1) 22.10.08 168 4 13쪽
14 12.(2) 22.10.08 192 4 14쪽
13 12.(1) +3 22.10.07 236 3 15쪽
12 11. 22.10.07 257 4 27쪽
11 10. 22.10.04 277 7 16쪽
10 9. 22.10.03 285 8 12쪽
9 8. 22.10.02 332 7 17쪽
8 7. +2 22.10.02 385 9 22쪽
7 6. 22.10.01 429 10 19쪽
6 5. 22.09.30 535 9 18쪽
5 4. +2 22.09.28 719 10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