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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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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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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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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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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17. 옥상에서의 이야기

DUMMY

5월 3일의 저녁은 꽤나 길었다.

 

특히, 점퍼 조직의 어느 단독 행동 요원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들은 수준 높은 범법자를 추적해 잡아들이기 위해 수고를 했다. 개중에서도 '리시버'라 불리는 인원은 근래에 손에 꼽히는 개고생을 해야만 했다. 어지간한 의뢰나 상황에서 그에게 부상을 입힐 만한 건 극도로 적었는데, 어중간한 여러 개의 위협보다는 하나의 수준 높은 대적자가 그에게 시련이 되기에 더 알맞았다.

 

점퍼의 조직원들은 수많은 실전들을 통해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갈고 닦는다. 개인의 역량은 계속해서 갈고 닦아지고 향상된다. 어느 시점의 최전성기를 지나서 기능이 떨어지는 나이대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리시버는 그런 와중의 상태였다. 지금 역시도 훌륭한 솜씨와 역량을 지닌 요원이었지만, 연달아 오는 많은 의뢰가 그를 더욱더 노련한 조직원으로 만들어갈 것이었다.

 

그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계속해서 갈고 닦이고, 경험을 쌓다가 차후에는 조직의 수뇌부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현장의 요원에서 조직 전체를 관리하는 위치에 서고 조직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며 나아갈 인원들. 점퍼 조직의 점퍼들은 소수의 인원이었고, 그들 모두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힘이 닿는 순간까지 조직에 헌신하지만 모든 이들이 직급이 올라가고 조직의 헤드가 되는 건 아니었다.

 

소수의 특별한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보통 현장에서 물러나면서 은퇴를 하거나, 교관, 후방 지원, 보조 행정 따위를 보게 되며 중추에서 멀어진다. 굳이 따지자면, 높은 개인 임무 수행 능력을 가진 '리시버'나 '소드 마스터' 등은 많은 경험을 쌓으며 동시에 조직의 수뇌부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에 있는 인원들이었다.

 

그들에게 조직의 수뇌부 인원들이 특별한 관심과 교육의 노력을 들이는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리시버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수업 과정을 하나 헤쳐 나간 셈이었다. 5월 3일의 임무에서 말이다.

 

시간은, 조금 지나 5월 3일 다음의 이야기였다.

 

그동안 조직의 인물도에는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3월에서 4월의 어느 날, 홍인수의 답지 않은 도약 중 오류로 인해 어느 민간인이 조직에 연이 닿게 되었다. '김민서'라는 이름의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그는 침착하고,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태도와 성격으로 조직에 비교적 쉽게 녹아들었다. '점퍼'가 아닌 비능력자 인원으로서 눈에 띄는 유연함과 납득의 과정이었다. 일명 '뺑소니'라 불리는 점퍼들의 도약 중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민간인 접촉자들을 괜히 타이르거나 암시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었다. 김민서가 제대로 점퍼 조직이라는 집단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어떤 외부적 이유가 있든 조직은 그와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을 테였다.

 

물론 눈에 닿지 않는 곳에서 그 민간인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지원 정도는 지속됐겠지만 말이다.

 

김민서가 연속적인 도약 중 접촉 이후에 조직의 내부에 들어와 조직원들과 교류하며 삶을 지속하는 건 그의 선천적인 적성이나, 후천적인 태도에 따른 일이었다. 그는 이후로 얼마간 '코치'와 '소드 마스터'에게 훈련을 받으면서 정기적인 방문객이 되었다가, 조직의 관련자 정도로 입지가 바뀌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예비' 비능력자 요원 정도로 조직원들에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김민서로서도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고, 소드 마스터나 코치도 그를 훈련 시키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기에 꽤나 확정적인 앞날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조직과 관계가 생긴 외부인이 하나 더 있었다.

 

'송일우'라는 한국인 청년이었다. 점퍼 조직은 최초에 통일된 단체가 한국에 생기기도 했고, 여러모로 한국과 관련이 많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세대를 거듭하면서 한국인 중 점퍼의 발생 비율 또한 점점 높아져 갔고.

 

'송일우'는 그런 한국에서 자연 발생한 후세대(80년대 후반 이후에 출생한 점퍼들)점퍼 중 하나였고, 조직과는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던 자였다.

 

독립적인 점퍼로 지내며 범죄적인 팀의 일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여유로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던 중 자금 추적으로 꼬리가 잡혔고, 홍인수에게 직접 붙잡히기에 이른다.

 

길지 않은 회유와 신문 끝에 팀에 대한 정보를 불고 그는 새로운 길을 도모했다. 비열한 배신자라고 욕하기에는, 비교적 바른길을 찾은 것이었으므로 그다지 그를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송일우는 팀의 정보를 팔고 조직에서 방생되듯 풀려났다. 점퍼로서 범죄를 저지르고 조직에 처음 걸렸던 인물이라는 점도 있었고, 그가 저지른 일들이 민간이나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해악을 끼쳤다기보단, 그래도 선처 가능한 지점이라고 조직은 판단했다.

 

그는 대규모 절도 행각에 참여하고 아시아의 범죄 조직들을 순방하며 무력행사를 자행했으나, 일반적인 민간인들에게 이유 없이 피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그래, 조직은 그가 싸이코이지만 비교적 온순하고 통제가 가능한 싸이코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점퍼가 아니면서 정신이 나간 자들도 아주 많았고, 점퍼이면서 악의적으로 돌아버린 이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어지간하면, 회유하고 자유 의지를 존중하며 갱생의 여지를 두는 게 조직의 방침이었다. 효율적인 대응 자원의 절약이라는 점에 있어서 쓸만한 정책이었다.

 

물론 최소한의 처치 정도는 하게 된다. 송일우는 아직도 강제로 해제할 수 없는 전자 구속구를 몸에 지니고 있었다. 얇은 팔찌 형태의 그것은 겉으로 보면 전혀 구속구라 보이지 않는다. 겉 면의 광택이 보석의 재질처럼도 보여 악세사리라고 착각할 만하다.

 

다른 기능은 없고 간단한 위치 추적 기능과, 물리적으로 부수려 할 때 착용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 외에는 조직은 터치하지 않았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던, 뭘 하던. 사회의 기준에서 똑같이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면 그의 행동을 제약하지 않았다. 위치만 볼 뿐이었고, 실제로 감시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완벽한 ‘방임’ 이전에 ‘주시 경계’ 상태이므로 근처에서 점퍼의 능력으로 보이는 범죄 사건이 벌어진다면 먼저 용의선상에 오르기는 한다. 그때 동시에 구속구를 해제하고 잠적하게 된다면, 조직의 블랙 리스트에 이름을 두는 것이다.

 

조직의 자신감은 결국 전 세계 곳곳에 뻗어 있는 협력 단체들의 지지와 협조였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결코 따라올 수 없는 방대한 정보망이 그들에게 있었고, 결국 꼬리를 잡힌다면 조직의 점퍼들이 가장 잘 하는 일을 다음 수순으로 할 뿐이었다.

 

추적과 구속, 그리고 다양한 첨단 물품들을 이용한 자유의 제약이었다.

 

어쨌든··· 도저히 방생 불가능이라 판단되는, 이유 없이 공격성을 띠는, 연쇄 살인마 같은 놈이라면야 당장에 특별 보호 감옥 따위에 쳐넣고 평생을 살게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한 번의 기회 정도는 더 주는 편이었다.

 

점퍼 조직은 공적인 단체는 아니었고, 법적인 사법권司法權이 있는 무리들도 아니었다. 현장에서 뛰며, 그저 최소한의 조치를 취할 뿐인 단체였지.

 

결론적으로 송일우는 조직에 묶여 신문을 당한 이후로 비교적 고분고분해졌다. 천지가 어디 있는 줄 모르고 날뛰던 망아지에서, 자신의 위에 비슷한 솜씨를 가진 점퍼들을 거느리는 조직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사회에 대한 감각을 익힌 모양이었다.

 

누구든지, 어느 미래의 고양이 로봇이 나오는 만화에서처럼 ‘어디로든 문’ 따위를 건네준다면 법적인 제약을 넘어서 사욕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선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든지 실수는 할 수 있다, 라는 격언이 조직을 세운 초대 지휘관의 모토였으며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마음가짐이었다.

 

이후로 잭 더 나이프, 송일우는 조직의 일손을 돕는 위치로 옮겨갔다. 아직 전적인 신임을 받지는 못했지만 김민서와 마찬가지로 견습이나 예비 정도는 되었다. 점퍼가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심부름 따위들을 맡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 큰 문제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리어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에게 빠진 면도 있었다. 그동안 자신을 꺾거나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고 느꼈던 어린 청년이었던 그는 무력감을 느끼고 그에게 감화되었다. 그 능력에 매력을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조직을 드나들고 종종 소식을 접하는 김민서와도 간혹 마주치며 얼굴을 익히게 되었다. 비록 첫 만남은 좋지 못했지만.

 

데면데면 할 지언정 인사를 하고, 일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그래서 김민서에게 지금, 조직의 전달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송일우가.

 

서울, 어딘가. 빌딩 옥상.

 

바람이 불어온다.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는 지면에서 느끼지 못하는 칼바람이 종종 분다. 높은 산이나 절벽에 오른 것과도 비슷하다. 김민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람을 맞아대고 있었다. 눈이 따갑다. 결국 그는 방향을 틀어 바람을 등지고 섰다.

 

빌딩의 옥상에는 별다른 구조물들은 없었다. 넓게 펼쳐진 자리가 공터처럼 있었고, 옥상으로 올라오는 출입구가 있는 네모난 건물이 작게 하나. 그 외에 뭔지 모를 실외기 따위의 설비들이 한 구석에 모여 있다. 그들은 빌딩의 옥상 공터, 한복판에 있었다.

 

옥상은 민서도 꽤나 추억이 깊이 새겨진 곳이었다. 처음으로 ‘점퍼’라는 놈들을 만나서 끌려온 곳이었으니. 이곳은 홍인수가 자주 도약의 중간지로 사용하는 서울의 포인트였고, 조직 소유의 건물이기도 했다. 김민서는 정확한 위치까지는 몰랐다. 그저 조직의 점퍼들이 와서 데려가면, 얌전히 단체 도약으로 끌려갈 때 오곤 할 뿐이다.

 

송일우는 기지의 내부로 도약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이런 임시 거점들 따위는 오가면서 정보의 전달이나 여러가지 잡다한 심부름들을 하고 있었다.

 

5월 4일. 수요일.

 

22년도는 민서에게 다사다난한 해였다. 세상엔 늘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상식 바깥의 존재들과 만나서 교류하게 되기도 했고. 고작 한 두달 만에 익숙해졌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였다.

 

'익숙'해진 데는 짧은 시간이지만 고밀도의 만남을 가진 것이 큰 요인이었다. 고밀도라고 해도 좋았고, 고강도라고 해도 좋았다.

 

민서는 4월 첫째 주에 시작해서, 벌써 다섯 번의 훈련을 받았다. 군사 훈련이라고 해도 괜찮았지만, 전투 훈련에 더 가까웠다. 조직의 비 점퍼 요원들이 통상적으로 받는 코스나, 혹은 그것을 넘어서 전투에 참여하는 백업 요원들이 받는 코스로 혹독하게 받았다.

 

민서는 체력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자세나 습관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타고난 근질이나 체격은 영 쓸모 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젊은 남성이기도 했고.

 

그럴 의지나, 환경이 받쳐준다면 노력에 따라 어느 정도 상당한 피지컬을 뽐낼 수 있는 요소가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민서는 물론 자발적으로 원하지는 않았지만, 홍인수와 김만철이라는 조직의 콤비에 의해 강제적으로 단련 되어가고 있었다.

 

무식하게 얻어맞는 것도 한도 없이 맞다 보면 살기 위해서 어느 정도 몸이 반응을 익히는 모양이었다. 민서는 이제 웬만한 주먹에는 움찔하지도 않게 되었다. 보호 장구를 찬 상태에서 맞았다고는 하지만, 홍인수의 손과 발은 정말로 빠르고 강력했다. TV에서나 볼법한 빠르기, 혹은 그 이상의 속도로 눈앞을 뭔가 가린다 하면 저 멀리 나뒹굴고 있는 것의 반복이었다.

 

일반적인 사람 이상의 체력에, 아낌없이 점프를 사용해서 근접전의 타이밍을 잡아가자 민서로서는 최대한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놀라운 수준의 성장이었다.

 

실제로 실전에서 이런 시간들이 얼마나 발휘가 될지는 미지수였지만, 어쨌든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다. 몇 시간이고 지치지도 않고 던져지고 맞고 하다가 보면, 중간중간 김만철에 의해 생각도 없던 PT를 받으면서 기초 체력을 끌어올리게 된다.



자신이 별다른 계획 없이 시간을 보내는 처지이기는 했지만··· 느닷없이 운동선수의 스케줄을 보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간혹 뭐 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처음으로 그와 홍인수의 싸움을 구경했던 장소에서, 다시 송일우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처지였다. 고작 한 달 만에 일어난 관계성의 변화였다.

 

"조직의 연구부에서 아마 김민서 씨, 에 대한 유의미한 사실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의 친구, 김수정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그가 그녀와 만난 것이 이틀 전의 일이다. 별안간 예상 밖의 상황으로 김수정이 그들과 마주친 것도 같은 날의 사건이었고.

 

그 때는 다소 급하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 듯한 투였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헤어지고는 말았지만. 홍인수가 다시 올 줄 알았는데, 송일우가 다시 그를 찾아왔다.

 

그는 늘 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 오전 시간에 연락을 하고 온 송일우를 맞아 단체 도약으로 이 곳에 이동한 참이었다.

 

"유의미한 사실이라고요."

 

민서가 대답했다. 얼결에 되물었다. 머리로는 단박에 이해가 가지 않는 문장이었다. 연구부라, 자신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었다. 기계 공학을 전공했지만, 마음을 쏟지는 못했다. 그리고 화학과 생물 쪽이라면 더욱이 연관이 없는 편이다.

 

기계류가 들어가는 분야라면 익숙한 느낌이야 나겠지만 수업도 못 쫓아간 학부생의 시선으로 '조직'같은 곳의 연구소가 다루는 일이 이해가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그가 보기에 '점퍼'의 능력은 인체나 생명공학, 의학과 밀접해 보였다. 짐작 뿐이지만.

 

"예, 그냥 전달할 말을 죽 읊자면···."

 

송일우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이야기했다. 그는 늘 비슷한 복장이다. 두껍고, 활동적인 복장. 혹시 어딘가에서 싸움이라도 벌어지거나, 땅바닥에 굴러도 잘 다치지 않을 것 같은 옷차림. 보통 질긴 재질의 바지나 외투 따위를 걸치고 두꺼운 신발을 신고 있었다.

 

체육 계열의 대학생이나, 혹은 건설 노동 현장에서 일하곤 하는 젊은이처럼도 보인다. 그가 날카로운 눈매를 빛내며 이야기했다. 민서는 저 인상이 더러운 사내가 더 이상 칼을 들고 누군가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소드 마스터, 홍인수 선배가 연간 점프를 하며 위치 오류를 일으키는 일은 극히 드뭅니다. 일 년에 한 번이 있을까 말까하죠. 하루에 백 수십회, 연간 만 단위의 도약을 꾸준히 하면서도요."

 

김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점퍼도 아니었고 도약이라는 신비로운 현상에 대해서도 아는 건 없었지만, 대강 홍인수가 뛰어난 실력자라는 사실에는 동의를 했다. 그는 그에게 훈련을 시킬 때도 단 한번도, 조금의 오차도 없이 3D게임에서 연타를 치듯이 자신을 몰아 넣고 타이밍에 맞게 갈구었다. 그런 묘기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사람이 실수가 많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임무 중에 도약을 시도하면서, 한달 여 만에 세 차례 위치 오류가 있었습니다. 조직의 점퍼들 사이에서 '뺑소니'라고 하는 사고로··· 점퍼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당신과 떡하니 마주쳤죠. 어떻게 얼버무릴 틈도 없이 정면으로."

 

지난 이야기를 해주듯한 이야기에 민서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친절한 설명이었다.

 

"이건 연구부의 데이터로 볼 때 꽤나 이상한 일입니다. 점프가 다른 요인에 의해서 방해를 받는 건 이때까지 관측된 적 없는 일이거든요. 점프를 시도 중인 점퍼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거나, 혹은 다른 점퍼가 접촉한 상태에서 점프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면요. 이미 시행된 점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있었다고 연구부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일우가 이어 말했다. 그는 충실한 조직의 전달자였다. 빌딩 옥상은 여전히 바람이 분다. 그들은 선 채로 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민서는 아주 잠깐, 이럴 거면 어디 실내에서 하는게 낫지 않을까 지나가는 생각을 했다.

 

일우는 주변의 영향에 둔한 모양인지 별 꺼리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이 요인에 대해 밝힐 수 있다면 점퍼들에 대한 획기적인 장비를 만들 가능성도 있게 됩니다. 여태까지 다른 요인으로 점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기에, 그들에 대한 대우가 거칠어 지는 것도 있었으니까요. 범죄적인 성향을 띠는 점퍼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동일한 수의 점퍼들이 고생을 하는 것도 조직의 오랜 고민이기도 합니다."

 

민서는 이제 '재밍'이라는 기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비능력자는 단체 도약에 대한 거절이라는, 소극적인 범위의 재밍만이 가능했지만 점퍼들끼리는 상대의 도약을 저지하는 공격적인 재밍이 가능했다. 각자의 도약 횟수를 소모하는, 점프 에너지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무조건 상대의 몸(옷가지 따위 위에라도)에 손이 닿아 있는 때 가능한 일이었고 반사회적인 싸이코 성향을 지닌 점퍼들을 구속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점퍼 요원들이 그들을 감시하며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한 명의 점퍼들 신문하고 구속하기 위해서 한 명의 점퍼가 필요함으로, 세계에 파악된 점퍼들의 수가 많지 않은 걸 감안하더라도 조직의 인원 구성에 큰 출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 명의 점퍼가 사고를 치고 그에게 조치를 가하기 위해서, 다른 수 많은 의뢰와 세계의 사건들에 대해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드물게도 조직에 반하듯 여러 명의 점퍼들이 범죄 행위를 위해 연대를 했을 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여러 명의 점퍼들을 죽이지 않고, 물리적으로 구속하며 신문을 하기 위해서 그 배는 되는 인원들이 기지 내에 죽치고 대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쉬거나 교대 시간 없이 한 명이 하나의 구속 인원을 담당하며 24시간 손을 대고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송일우는 그런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요인에 대해서 말하는 듯했다.

 

"선배가 이야기하기를, 분명히 정상적으로 점프를 시도했는데 무언가에 유도 되듯이 그 장소로 이끌렸다고 하더군요. 여태까지는 그런 일이 없었고, 기록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없었습니다만. 처음에는 그 '장소'가 특별한 요인이 있는가 해서 당신의 예전 원룸을 조직에서 샅샅이 조사를 했지만···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민서는 그 말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홍인수가 한 번 말한 것 같았다. 자신의 집을 조사하겠다고. 집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민서가 위험할 수 있으니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라는 말과 함께.

 

덕분에 조직의 자금으로 조금 더 깔끔하고, 넓은 신식의 원룸에 머물게 되었다. 예전 원룸만큼의 월세와 계약금만을 지불하면서. 애초에 계약했던 원룸의 기간만큼 그 집에서 사는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민서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집구석에서 말도 안되는 사고를 당한 느낌이 들었었지만, 동시에 이야기를 해보고 상황이 나아진 것이었으니.

 

다소 위험한 상황이 있었고, 조직에 대한 건 여전히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았지만··· 길 가는 부자에게 실수로 실례를 당한 뒤 그 보답으로 바라지 않던 목돈을 얻은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결과적으로 행운에 가까운 체감이라고 할까.

 

송일우의 말이 이어졌다.

 

"조직은 그 원룸 건물이나, 위치에 대해서 특이점을 찾기보다, 그 다음에 당신에게 집중을 했습니다."

"저라고요."

 

송일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예. 어차피 당시에 있었던 변인은 당신과 그 장소 뿐이지 않습니까. 도착지에 어떤 요소가 있는 거라면요. 그 동안 조직에 계속 출입하면서··· 주말은 늘 기지 내에서 보내셨었죠."

 

민서가 긍정했다. "어, 그렇죠."

 

"저도 들은 거지만 기지의 훈련실 내는 눈에 안보이는 첨단 장비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내부 인테리어도 부상이 나지 않도록 값비싼 자재로 만들어져 있고."

 

첫 번째 이야기는 그로선 확인할 수 없었지만, 두 번째 말은 민서로서 아주 잘 체감하는 부분이었다. 그가 5주간의 주말 동안 아주 잘 확인을 했다. 온 몸으로. 보호구를 끼지 않아도 보호구를 낀 듯한 효과가 나는 바닥이나 벽의 소재였다. 그도 공학도로서 나름대로 소재에 대해서는 호기심이 있었지만, 그 상세에 대해서 잘 짐작도 가지 않는 물건이었다. 기지의 훈련실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들이 전부 말이다.

 

"첨단 장비들은 대개 조직의 구성원들, 특히 점퍼들의 상세한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관측 장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에게서 현대 과학 기술로 뽑아낼 수 있는 신체적 데이터는 연구부에서 모두 갖고 있습니다."

"으억."

 

그는 왜인지 모르게 질겁을 했다. 굳이 따지자면 별 일 아닐 수도 있었으나, 그런 사실을 몰랐다가 알았다는 것에 충격이 있었다.

 

"뭐 그리고··· 간혹 이상한 패치 따위를 붙이고 내부에서 훈련을 한 적도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쓰는 보호 장구 따위도 다 전자 장비가 들어있는 관측용 물건들입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이 최첨단의, 비밀스럽고 알 수 없는 집단에서 하는 일이기에 뭐 하겠거니 하고 넘어간 것들이 많이 있었다. 다시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점퍼라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들을 다루는 단체에서, 온 세계의 권력자와 유력 단체들과 협업을 하고 있는데 상식선을 조금 넘나드는 기술들이야 뭐. 민서는 생각을 정리하며 대강 납득했다.

 

"당신의 뇌파는, 점퍼는 아니지만 특수한 형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훈련에서 보여준 성과도 그 사실을 대변하죠. 보통 일반적인 사람은, 선 자리에서 '단체 도약의 거절'을 알려준다고 그 개념 그대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당신 스스로에게는 점프 에너지JE가 없으며 점퍼도 아니지만, 일반적인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 확연히 틀린 종류의 정신파를 가지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점퍼들이 이용하는 JE에 손쉽게 접촉하고 영향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상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메인 유저라면, 당신은 컴퓨터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주변에 그들이 있을 때 손쉽게 접촉하고 조작을 할 가능성이 있는 서브 유저 정도는 된다는 겁니다.“

 

송일우의 말은 단박에 모두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이야기였다. 민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머릿속으로 질문을 몇 가지인가 골랐다.

 

”점퍼들의 뇌파는 JE라는 미지의 에너지, 혹은 물질에 꼭 알맞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키와 같습니다. 그들 자신의 정신이 아니라면 점프는 발동되지 않죠. 당신은 그런 JE에 딱 맞아 떨어지는 성질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민간인들 보다는 훨씬 더 그들에 가깝고 또 특이한 영향을 나타내기까지 하는 희귀한 것입니다.“

 

뭐··· 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하려니 이해하는 쪽은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민서는 적당히 상상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받아들였다. 점퍼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으며 JE라는 물질로 만들어진 듯한 가상의 컴퓨터 기기를 다룬다. 각자의 정신, 뇌파가 입력 장치이며 그것으로 조작을 하면 내장된 프로그램인 점프가 발현된다.

 

일반적인 비능력자들의 정신, 뇌파도 그런 점퍼들의 가상 컴퓨터에 영향을 줄 수는 있었다. 허나 그 컴퓨터에 꼭 맞는 입력 장치인 점퍼들의 것과 아주 달라서, 둔하고 미약한 수준의 영향만이 가능하다. 직관적인 비유로 글러브를 끼고 타자를 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집중이나 훈련이 있다면, 딜리트 키 하나 정도는 구분해서 누를 수 있을 지 모른다.

 

그것을 프로그램의 발현 타이밍에 맞춰서 해낼 수 있다면 점프의 단체 도약에 대한 거절이 성립되는 것이다.


반면 민서는 그러한 타인의 능력에 대한 간섭과 조작을 훨씬 간단하게 해내었다. 그는 점퍼들이 자신의 개인용 가상 컴퓨터에 맞는 입력 장치를 갖는 것처럼, 꼭 알맞은 형태의 손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비능력자들보다는 훨씬 섬세한 구조의 손을 다루며 간섭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해킹에 용이한 툴, 혹은 마스터 키를 갖고 있는 것과도 비슷했다. 물론 마스터 키나 해킹에 성공했을 때의 위력보다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의 힘이었지만.

 

”뭐 그것도 그렇지만··· 더욱이 연구부에서 주목한 건 그래서 어째서 소드 마스터의 도약이 실패했느냐, 입니다. 당신의 뇌파는 여태까지 다른 이들이 보유하고, 점프에 대해 반응하던 것과는 전혀 궤가 다른 성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점퍼가 가상의 선을 그리며 공간을 도약할 때(점프 가설에 따르면, 순간이동은 물리적 공간에 접한 가상의 공간에 들어가 이동한다. 흐르는 시간이 다른 그곳에서의 이동으로 순간이동이 가능하며, 순식간에 일어나지만 A에서 B지점으로 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존재하며 물리적 세계에도 접하는 부분이 있다)당신 주변으로 방대한 역장을 펼치고 있다가 점프의 과정에 간섭을 하게 됩니다.“

”엥.“

 

민서는 신음처럼 질문을 던졌다. 질문조차 되지 못하는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였지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역장이요?

송일우는 아랑곳않고 말을 이었다.

 

”뭐, 그렇게밖에 볼 수 없습니다. 실제로 당신이 기지에 있을 때 기지 내외에서 점프를 하는 이들에게 미약한 수준의 떨림이 있었습니다. 전자 기기로 점프의 시작지와 도착지를 파악해서 가상의 선을 그리고, 점퍼 스스로의 증언으로 실제 점프의 과정과 비교해봤을 때 약간씩의 오차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점퍼가 예상하는 도착지로의 오차보다 더 큰 오차 범위로 하나같이 도착을 했다는 겁니다. 당신이 주변에 있을 때.“

 

일우는 잠시 침을 삼키며 말을 끊었다가 다시 뱉었다. 여전히 옥상에서는 바람이 분다. 늦봄의 바람. 고층 옥상이라 그런지 제법 춥다. 민서는 옷깃을 적당히 여몄다.

 

”도식적으로 표현을 해보면, 점프시에 만들어지는 가상의 선의 도착지 부분이 모두 당신 쪽으로 약간 굽어져 있었습니다. 당신은 점퍼들을 끌어들이는 인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무의식 중에.“

”······?“

 

민서는 옷깃을 여민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다시 한 번 생각한 문장을, 이번에는 말로 뱉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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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6 tron
    작성일
    22.10.20 12:19
    No. 1

    어째 같은 내용의 반복?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살생금지
    작성일
    22.10.20 16:32
    No. 2

    엄… 그러게유 상상력의 한계인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살생금지
    작성일
    22.10.20 16:37
    No. 3

    아니 뭐 그렇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도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살생금지
    작성일
    22.10.20 16:38
    No. 4

    아마 그냥 제가 떠오르는
    좋아하는 느낌의 반복일거라서… 걍 시트콤 같은 겁니다. 그러고 아마 쓰고싶을 때까지 쓰고 나면 적당히 해피엔딩으로 끝낼거고영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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