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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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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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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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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1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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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DUMMY

점퍼의 점프, 도약은 하루에 약 100에서 200회 정도가 한계였다. 점프를 점프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라고 보았을 때, 그 총량은 개인이 아무리 크게 가져 봐야 200회 근처가 최대치였다. 일반적인 기준이었다.


‘조직’은 여태껏 힘을 보탰던 모든 조직원들의 개인 데이터를 기록하고 있었고, 그들과 연이 닿았던 많은 점퍼들의 기록도 갖고 있었다.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200회 이상의 도약 한계를 가진 이들은 1% 미만이었다.


한 시대에 파악된 점퍼가 백여 명을 넘는 때가 많지 않았던 걸 생각해보면, 동시대에 있을까 말까한 확률이었다.


개중에서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점퍼들 중 특출난 인원들이 몇 있었다. 주로 개인 임무에 많이 활용되는 인원들이다. 단독 전투력이 높은 인원들. 근접 전투도 능숙하고, 무엇보다 점프 에너지의 보유량이 많아서 도약 한계 횟수가 높은 이들이 그렇게 다루어졌다.


‘소드 마스터’라는 별명을 가진 홍인수와, ‘리시버’라는 별명의 최길우가 있었다. 일단 둘만 놓고 보더라도, 통계적 확률은 뛰어넘는 수가 나온다. 두 조직원 모두 한계 횟수가 200회가 넘었다. 홍인수는 210여 회였고, 리시버는 그것을 한참 뛰어넘었다. 돌연변이처럼 기이한 보유량을 가진 점퍼가 새로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아마 근 몇십년 간은 최길우가 가장 많은 한계 횟수를 보유한 점퍼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는 점에서, 점프로 이루어지는 지루한 추격전을 벌일 때 리시버가 질 확률은 거의 없었다. 평균적인 점퍼들의 도약 한계 횟수에서 두 배를 넘는 수치라면, 심지어 몇 번이나 실수를 하고 다른 식으로 이용을 한다고 해도 넉넉하게 남는 수였다.


더군다나 최길우는 정밀한 도약을 비롯해 점프 자체에도 숙련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상대에 비해 횟수를 낭비할 확률도 적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하루에 두 명 이상의 점퍼를 총력을 다한 추격전으로 잡아낼 수 있는 요원이었다.


‘리더’는 두 명의 바톤 터치를 하는 추격자들과 꼬리 잡기를 하는 셈이었다.


”후.“


리더가 가파른 숨을 내쉬었다. 점프를 하는데 체력이 소모되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집중이 도약의 발동 트리거라고 하면 정신력이 소모되는 기분이 들 수는 있었지만. 컨디션에 따라 난조가 있을 수 있어도 연속 도약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여태껏 사례가 없었다.


점프 외에 잠깐 잠깐의 몸싸움을 시도했던 일이나, 과하게 긴장을 했던 탓에 숨이 올라온다. 허벅지의 총상도 깊지는 않지만 피가 나기는 했다. 다행히도 상대가 쏜 총이, 그로서는 정확히 알지 못해도 위력이 감소된 종류의 총이었고 또 바지의 옆 주머니에 습관적으로 넣어두는 금속품들이 그것을 막아주었기에 단번에 다리가 아작나지는 않았다.


물론 더럽게 아프고 지혈도 해야 했지만 당장 기동성을 상실하거나 정신을 잃을 정도의 쇼크는 없다.


그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연속 도약을 했다. 아프리카의 어느 초원에서, 북반구로 갔다가 남반구로 이동한다. 다시 몇 개의 대도시를 거치면서 빠르게 이동했다. 미국의 인적 없는 골목가에 나타났다가, 다친 다리를 끌고 몇 초간 더 움직여서 근처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의 어두컴컴한 자리에서 다시 이동을 한다. 그렇게 단순한 도약이 아닌 몇 번의 도주를 섞어 점프를 시도했다. 그가 6번째의 도약으로 다다른 곳은 인적 없는 무인도였다. 태평양 어딘가에 있는 곳이었다. 그도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이런 일을 대비해서, 알음알음 알려지는 비밀 거처 중에 한 곳이었다. 은밀하게 점퍼들 사이에서 단체 도약을 통해서 오가며 위치 정보를 기억해두었다가, 도주 시에 섞어서 사용하고는 하는 것이다.


기후로 보자면 열대에 가까웠다. 후덥지근한 날씨. 흔하게 상상할 수 있는 울창한 자연림이 있는 그런 무인도였다. 먹을 것이 모자라지는 않는다. 동식물도 나름대로 있었고. 맹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지만. 아무튼 넓이도 꽤나 있는 이름 없는 무인도였다.


사위四圍는 캄캄한 어둠으로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는 익숙한 자리로 이동을 한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아무리 연속으로 도약을 해도 고작 몇 초 정도의 텀을 벌 뿐이다. 상대가 노련하다면,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는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허벅지가 아리다. 피가 배어 나온다.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더했고 군복 바지에 붉은 자국이 넓어져 갔다. 한 번에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생각보다 상처가 얕을지도 몰랐다. 상대도 고작해야 제압용으로 총을 쏜 것일지 모른다. 상대가 준비한 총이 보통보다 훨씬 위력이 경감된 종류였고, 자신이 주머니에 넣어둔 쇠판이 깨나 방탄 역할을 잘해 준 모양이다.


울창한 수풀. 열대수의 넓다란 이파리 따위가 길을 막고 있었다. 그는 피로감이 올라오고 있는 팔다리로 그것들을 슬쩍슬쩍, 치우고 잎사귀에 맞으면서 전진했다. 발아래로도 풀이 길게 자라 있어서 통행을 막는다.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고, 흔적을 감추어야 했다.


자신이 도착한 곳은 울창한 열대 숲의 한 가운데였다. 상대가 이곳에 도착한다면 먼저 어둠과 수풀 속에서 방향을 찾아내야 할 테였다.


점퍼가 보통 점퍼의 기척을 느끼는 건 도약 시에 사용되는 점프 에너지의 탓이 컸다. 그 외에는 그들도 평범한 추적술을 발휘해야 한다. 발자국, 주변의 지형 지물이 훼손된 상태, 혹은 단순한 추리와 감각.


수 초의 시간동안 다친 다리를 이끌고 수준 높은 은신술을 보일 수는 없었다. 다만 이럴 때 사용하려고 마련해 둔 비처였으므로, 사용할만한 좋은 지형은 있다. 그는 끙끙대며 빠르게 움직였다.


앞으로 몇 걸음, 걷자 아래로 떨어지는 경사가 있었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몸을 대고 굴렀다. 후두둑, 하고 수풀 따위에 몸이 걸렸지만 그대로 굴러 떨어진다. 그리 높지 않은 경사였다. 울창한 수풀이 다시 지나갔던 흔적을 감추며 원래의 모습을 자랑했다. 나무가지 따위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낮은 수풀이 길게 자란 것 뿐이었다.


그대로 떨어지면, 마치 함정에라도 빠지는 것처럼 작게 파둔 구덩이에 몸이 들어가게 된다. 수풀과 어둠, 갑자기 나타나는 경사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야말로 자신처럼 누운 채로 굴러서 그 구멍의 높이에 딱 맞게 몸을 집어 넣는다면 모를까. 바깥에서 시선으로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그대로 그 구덩이에 몸을 넣었다. 축축한 흙이 온 옷을 적신다. 물기를 머금은 땅이었다. 물론, 생명이 풍부한 열대의 숲이나 그늘진 구덩이에는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신경 쓸 새는 없었다. 아주 집요하고 또 능력이 좋은 추적자로부터 도망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쿵, 하고 다소의 소리가 났지만 어쩔 수 없다. 무인도로 이동을 하고 채 십 초가 걸리지 않아 그는 구덩이 속에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포복을 한 것처럼, 엎드린 자세로 그 안에 있다. 입가에 흙 부스러기 따위가 들어와서 씹혔다. 텁텁했지만 크게 티를 내지는 못했다. 그저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바람을 불 뿐이다. 조금 호흡을 정리하고, 위치를 가늠한 다음에 그가 움직였다.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그대로 옆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높이가 낮은 구덩이는 사람이 애써 움직이면 들어갈 수 있는 깊이였고, 그 뒤에 동굴로 이어진다. 큰 굴은 아니었지만 잠깐 쉴 수 있는 거처 정도는 되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하면 충분히 움직일 만한 높이의 굴.


그에게 이 무인도의 위치를 알려 준 점퍼나, 혹은 그 윗대의 점퍼들이 조금씩 만들어낸 은신처에 가까웠다. 포복 자세로 약 1, 2m정도를 옆으로 이동하면 몸을 펼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머릿속 지식에 의존해 가는 움직임이었다.


슬쩍, 굳은 몸을 일으켜본다. 허리에 닿는 것이 없는 구간이 있었다. 그는 그대로 몸을 더 밀어 넣어서, 빈 동굴에 무사히 몸을 집어넣었다. 시커먼 어둠이었다. 다른 동식물이 자리를 잡지는 않았다. 동물들이 싫어하는, 인위적인 냄새를 가진 물건들을 두거나 스프레이 따위를 뿌려두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동굴은 그대로 낮은 자세로 이동을 하면 바깥으로 통하는 통로였다. 그는 곧바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잠시간, 그 빈자리를 더듬대며 익숙한 자세를 잡는다. 금방 몸으로 기억하는 자리를 찾았다. 평평한 돌이 있고, 그 뒤에 흙벽이 있다. 돌에 엉덩이를 대고 앉고 등을 기댄다. 축축한 굴 속에서 뭐가 기어 다닐 지 몰랐지만, 적어도 그를 추적해오는 점퍼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이곳에서 잠깐 상처를 치료하기로 했다. 지나치게 밝은 불빛은 틈새를 통해 바깥으로 새어 나갈지도 모른다. 그는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볼펜처럼 생긴 것을 꺼냈다. 은은하게 시야를 밝혀 주는 수준의 라이트였다. 달칵, 하자 푸른 빛이 나왔다. 윤곽을 확인하고 또 자신의 근처를 보기에는 충분하다.


볼펜대의 거는 부분을 재킷의 목 부분에 걸었다. 그는 다양한 장비나 도구들을 챙기고 다니는 편이었다. 가죽 재킷은 그가 특수하게 제작한 종류로, 겉으로는 별 주머니가 없지만 품이 크고 안쪽으로 다양한 물건들이 수납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는 더듬거리면서 지혈제와 소독약, 붕대를 꺼냈다.


각기 그리 크지 않은 크기였다. 지혈제는 고형의 젤이 튜브에 담겨 있는 물건이었고, 소독약은 작은 병에 담겨 있었다. 손가락 두 마디를 넘지 않는 정도의 크기의 병이었고, 그냥 뚜껑을 까고 내부에 담긴 것을 전부 부어서 사용하는 식이다. 그는 이런 류를 여러개씩 챙겨서 다니는 편이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그러고 보면 상대가 상체를 쏘지 않고 다리를 노린 것도 기가 막힌 변수였다. 재킷은 겉으로는 별 것 없지만 안쪽으로 질긴 안감을 덧대었다. 나름대로 방탄의 효과가 있는 재질이었고, 덕분에 더럽게 무거웠다. 근접 박투에서는 그런 무게감이 힘을 실어주기도 하지만 조금 속도가 필요한 싸움에서는 여지없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런 물건을 늘상 입고 다니니만큼, 그는 상당히 조심성이 큰 부류였다. 언제나 추적자가 쫓아올 지 모른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실제로 마주치리라는 예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오늘 말이다.


송일우가 최근에 연락이 잘 되지 않았던 것도 의심을 했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언제나 망아지처럼,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니면서 제대로 통제 속에 있지 않던 녀석이긴 하지만. 근래에는 그 비율이 조금 더 심했다. 아마 그 녀석이 잡힌 다음에 이렇게까지 타고 들어온 일일 테였다.


그들 내부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갈 곳이 별달리 없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들 소수로 언제나 모든 일들을 준비하고 실행했고, 대부분의 경우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동남아 쪽의 공권력이나 행정시설의 빈틈이 많은 곳으로 가서 금품을 대량으로 탈취하고 잠적을 하려고 했는데··· 이런 꼴이다.


주기적으로 접선 장소도 바꾸어야 했을까. 그래, 그랬을지 모른다. 완벽하게 내부 인원만으로 일을 도모했다고 방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콧대가 높이 행동하던 송일우가 어떤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잡힐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반항을 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었을 텐데···. 조직의 추적자를 깔보고 호기를 부리다가 멍청하게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조금 더 용의주도하고, 면밀했다면 예상 외의 변수를 맞닥뜨린 순간 바로 팀에게 연락을 했을 터였다. 팀의 다른 인원들에게 조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런 조직이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되면, 결국 팀이 와해 되고 만다. 조직이 강대한 능력자들을 보유하고 또 막강한 연합 단체를 여러 곳 가지고 있다는 걸 알지만, 결코 전능하지 않다는 것 또한 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눈치를 채고 간섭하기 전에 빠르게 일을 치고 아예 손을 떼버리면 별 수 없을 줄 알았다.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시간을 재는 싸움이었는데, 결국 그 시간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현장 전투원으로 가장 신뢰하던 놈이 변변찮은 꼴로 잡혀 버린 것이 큰 변수였다.


리더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마저 하지 못했던 분석을 하며, 고통을 의도적으로 멀게 생각했다. 상처가 쓰라리다. 그는 곧바로 엉거주춤 일어난 자세로 바지춤을 풀렀다. 벨트는 없었다. 그냥 딱 맞게 사이즈를 입고 있었고, 버클이 튼튼해서 흘러내리진 않는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버클이 풀린다. 그는 허벅지까지 바지를 내리고 상처 부위를 살폈다.


천이 상처 부위에 쓸리자 고통이 밀려왔다. 말했듯, 쇼크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군복 바지의 왼쪽 허벅다리 부분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지를 벗고 안감을 확인하자 거기까지 구멍이 당연히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총알의 머리 부분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큭.“ 작게 튀어나온 총알이 살을 뚫은 것이다. 그리 깊지 않은 상처였다. 고작해야 손가락 반 마디?


그 주위로 상처가 조금 퍼져 있었다. 전체적인 위력은 낮아도, 관통력이나 회전력이 강한 총알인 모양이다. 얕은 상처가 주변으로 퍼져 있었다. 거기에서도 피가 배어 나온다.


그는 그대로 바지를 조금 더 편하게 내리고 소독약의 뚜껑을 깠다. 그대로 살에 들이 부었다. ‘크으···.’ 견디기 싫은 쓰라림이었다.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적당히 붕대를 조금 찢어서 부위의 피나 흘러내린 소독약을 닦았다.


조금 더 붕대를 수건처럼 써서 주변을 닦아낸다. 상처 부위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는 붕대를 버리고 튜브 형의 지혈제 역시 따서 상처에 발랐다. 하얀 응고제가 나와 상처 부위 전반에 고루 편다. 둥글게 말려 있던 붕대 역시 마저 풀어서 허벅지 부위에 빙글빙글 감는다.


꽤나 힘을 주어서 강하게 압박을 해준 뒤에 지혈대 하나를 더 꺼내 들었다. 검은 천으로 된 물건이고, 세게 힘주어 두른 뒤에 흔히 찍찍이라 불리는 접착부로 고정을 해주는 것이었다. 손가락 세 마디쯤 되는 폭의 거칠거칠한 천 재질이다. 그는 능숙하게 붕대 위로 한 바퀴를 감아 고정했다. 한 바퀴를 돌리고 남는 마디가 다시 한 바퀴를 두를 만하다. 남는 부위가 전부 고정부라서 다소 격하게 움직여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재빠른 처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희미한 불빛만이 비치는 동굴 안이다. 점프를 써서는 안 된다. JE의 잔향은 시야에 들어오는 거리,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수십 걸음까지도 그 기척을 느낄 수 있다. 일반인이라면 JE의 존재 자체를 모르기에 대다수가 넘어가지만, 점퍼처럼 그것에 익숙하고 발달된 감각을 가진 이들이라면 주변에서 누군가 도약을 할 때 알아체게 마련이었다.


추적자가 자신이 떠났는가, 아니면 그러지 못했는가를 고민하며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 역시 선택지가 제한되었다. 이대로 긴 시간을 버티던가, 혹은 두 다리로 걸어서 은밀하게 빠져나가던가. 까마득한 거리로 위치를 옮긴 다음에 점프를 사용한다면 완벽하게 추적망에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리더는 잠시 고민했다. 상대의 행동을 예측한다. 그리고, 상대가 아주 노련하고 적극적인 추적자이리라는 짐작을 했다. 그는 동굴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JE의 잔향을 따라 상대는 이곳까지는 늦든 빠르든, 도착을 했을 테였다. 그리고 집요하고 적극적인 추적자이기에, 일시적으로 도주자를 놓쳤다고 포기할 리는 없었다. JE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그 자리에 머물며 두 발로 도망갈 수 있는 인근을 수색할 테다.


열대의 자연림이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그런 추적이 용이하지는 않겠지만, 섣불리 상대의 능력을 속단하지도 않았다. ‘조직’의 점퍼라면 이런 숲속에서의 추적술 따위를 익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건 그가 미리 만들어둔 루트의 은신처에 숨어서 쥐죽은 듯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상대의 짐작을 벗어날 정도의 시간. 도저히, 이 근처에서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식 밖의 행동 경로로 움직인다면 간신히 추적을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작 몇 미터 옆, 몇 미터 아래의 굴이 있어서 움직이지도 않고 일日단위의 시간을 보낸다면 상대의 추적에 혼선이 올지도 모른다.


리더는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행히 이곳은 그가 이런 유사시에 사용하기 위해서 은신처로서 준비해둔 장소로, 다양한 비상 물자들을 숨겨두었다. 예컨대, 그가 있는 곳은 서면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이고 걸어야 하는 정도의 높이였다. 넓이는 작은 방보다 더 작았다. 몸을 누이면 간신히 눕고, 한두 바퀴를 구르면 끝에 닿는 공간. 그가 앉아 있는 바위 외에는 대개 흙바닥이었다.


그가 앉은 바위의 근처에는 그가 둔 비상품이 있다. 손을 더듬어서 바위의 윤곽을 따라간다. 앉아 있는 자리에서 왼쪽으로 더듬어 내려가자 바위와 흙벽의 사이에 인위적으로 튀어나온 굴곡이 느껴졌다. 인위적이라 함은, 다른 흙벽과는 질감이 다르고 조금 만지면 바로 알 수 있는 매끈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다친 다리를 신경쓰며 자세를 바꾸고, 몸을 낮춘다. 옷깃에 달아둔 펜 라이트가 희미하게 동굴 내부를 비춘다. 흙으로 덮혀 있는 벽을 손가락으로 슬쩍 쓸자 부스러기가 쉽게 떨어져 나갔다.


마찬가지로,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그 흙벽을 매만지며 파고 들어갔다. 무른 흙으로 주변에 쌓여 있어서 손으로 파도 충분히 발굴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는 잠시간 그렇게 흙벽을 파헤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거기에 끼워져 있던 인공적인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품 안에 들어갈 만한 사이즈의 철제 상자였다. 튼튼하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내부가 잘 보호되는 고급품이었다. 그는 이런 용품들을 종종 찾고 구매하고, 사용하는 취미를 가진다. 양손으로 상자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고 작물이라도 뽑듯이, 힘을 주어 흔들었다.


몇 번인가 덜컹거리며 흙먼지를 털어내던 상자가 뽑힌다. 그는 간신히 자세를 바로하며 상자를 무릎 위에 두었다. 소매로 몇 번인가 털어내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외부가 드러났다.


철제 상자 안에 밀봉되어 들어간 물건들은 대개 식량이었다. 내부에 진공 차폐 기능이 있어서 몇 번의 손잡이를 돌리고 조작하면 외부와는 접촉이 없게 되는 특수한 상자였다.


네모난, 약 15cm정도의 변을 가진 상자로 높이도 얼추 그 정도 된다. 달칵, 드르륵 하고 오랜만에 만지는 상자를 조작하자 버클 형식의 잠금장치가 열리고, 그 근처에 튀어 나와있는 버튼들이 돌아간다. 순서에 따라 버튼을 조작하니 금세 내부 장치가 열렸다. 그 다음에 뚜껑을 연다.


오래도록 만지지 않은 물건이었지만 그렇게 손상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열린다. 그가 마지막에 이곳에 와서 점검을 하고 물자를 놓아둔 게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동안 어느 열대림의 동굴 한가운데 이것이 멀쩡하게 있던 것도 다행이다.


그가 들어온 루트 외에 걸어서 나갈 수 있는 출구 쪽에는 침입자를 반기는 간단한 트랩들도 설치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에게 작동되는 물건이었고, 나가는 쪽에서는 안전하다.


그렇다 해도 갖은 생명들이 넘치는 숲속에서 어떤 종류의 동식물이 움직이거나, 혹은 기후 상의 변화로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르는데 다행히도 상자가 멀쩡하다. 바위와 동굴의 흙벽 사이의 틈바구니에 고정하듯 파묻어두었고, 무게가 제법 나갔기에 위치의 변함도 없이 버텼던 모양이다.


리더는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

jose-urbano-Rmp3qc71x10-unsplash.jpg

적당한 무인도의 숲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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