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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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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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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1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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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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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20.

DUMMY

*


김민서, 를 피실험체로 한 연구는 나름대로 진전이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했다. 요령은 결국 '단체 도약의 거절'과 같았다. 머릿속에 가상의 컴퓨터 따위를 상상하면 조금 더 편리하다. 가상의 기계에 유효한 입력 장치로 정해진 코드를 입력하면 되는 일이다.


원리는 그러했고, 그것에 쓰이는 코드가 다소 난해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정확한 조절은 어려웠지만 말이다. '멍 때리는' 상태를 의식적으로 만든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리적으로도 힘을 빼는 동작은 여러 동작 중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힘을 빼려고 의식을 하면 할수록, 해당 부위에는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일시적인 것도 아니고, 장시간 유지를 하려면 더욱 그러하다.


김민서는 스스로에게 자신을 멍 때리기의 천재라고 세뇌시켰다.


"후."


짧은 숨을 불어 쉰다. 머릿속을 비운다. 사실 전혀 비워지지는 않는다. 요령은 그것이었다. 멍 때리기의 반대 상태를 극한으로 하고야 마는 것. 곧, 온갖 잡생각과 스트레스가 들만큼의 과도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극렬한 운동 후에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빠지는 것처럼 탈력적인 상태를 유지하기에 쉬웠다.


다행히 김민서는 평소에도 생각이 많은 편이다.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나 표정을 하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까웠다. 그는 다양한 고민들의 끈을 놓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하며 해소하지 않고 혼자서 답을 찾는 편이었다. 때로는 답을 찾을 때도 있었지만, 때때로 여러 문제들은 그의 머릿속에 깊은 자국처럼 남아서 정신력을 갉아 먹었다.


그에게 찾아오는 탈력감과 정신적인 무기력의 상태는 그런 고민들의 반작용이었다.


민서는 그런 반작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정신적으로 뇌파가 안정적인 상태일 때, 일정한 상태를 유지할 때 반대급부로 타인의 점프 현상에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어떤 위력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 끝을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것이 파괴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라면야. 그리고 그 한계를 찾아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야 말이다.


실험은 여느 날처럼 스위스의 연구소에서 지속되었다. 다만 시간은 조금 늦은 때였다. 한국 시간으로. 평소에 한국 시간으로 점심 무렵에 시작해서 오후 2, 3시 쯤 끝나는 실험은 연구소의 시점으로는 새벽녘에 시작해서 아침 무렵에 끝이 난다. 오늘의 실험은 쉬는 시간을 갖고 이후까지 이어졌기에 스위스의 시간으로 늦은 아침, 오전까지 진행되었다.


정규적인 계약 상의 연구 협조 시간 외의 일이었다. 그것은 그가 찾아가던 일정한 탈력 상태에 탄력이 붙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발휘하는 점프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커졌기에, 연구소의 인원들이 그에게 지속적인 협조를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간 외 수당도 조직으로부터 약속받았다. 그저 그런 규모의 돈을 받던 편의점 아르바이트보다는, 훨씬 나은 취급이었다.


주에 15시간을 할애해서 월에 40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 계약이었다. 시간 외 수당은 그가 피실험체로서 겪을 피로도와 집중력의 소모를 감안해,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시급으로 책정되었다. 민서로서는 일할 맛이 나는 상황이었다.


실험실의 내부. 여느 때와 같이 앉는 자리였다. 흰 방에 격자무늬로 얇은 줄이 나 있었고, 그 외에는 별다른 가구가 없다. 하얗고 넓은 실내. 김민서의 시야에서 앉은 자리 정면은 벽의 거의 전체가 넓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다. 보기에는 유리지만, 물론 다양한 실험 상황에 대비해서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있다. 아마 정면에서 소총을 쏴도 끄떡없을 테였다.


다른 벽과 천장은 모두 흰 바탕에 격자무늬뿐이다. 조금 좁게 쓰면 농구 경기라도 정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크기다. 정사각형의 구조였고, 천장 역시 층고가 높아서 위를 처다 보면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 한 가운데 덩그러니, 의자가 놓여 있었다. 별다른 특색이 없는 물건이었다. 어딘가 학교 강의실에 두어도 그다지 이질감이 없을 법한, 평범한 색깔의 의자.


연구용으로 쓰는 물건이니만큼 나름대로 내구성은 튼튼하겠지만, 생김새는 평범했다. 민서는 그 위에 앉아 있다. 그 안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여러가지 패치처럼 보이는 물건을 이마 부위에 붙이고 있었다. 머리에는 맨질맨질한 질감의 모자를 쓰고 있었고, 그 위로도 이상한 더듬이처럼 보이는 것들이 돋아나 있었다. 짧은 안테나 종류처럼도 보인다.


여느 때처럼 연구소에 오면 입게 되는 흰 가운을 걸치고, 안에는 평범한 푸른색 반팔 티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몸에 힘을 뺐다. 대부분의 경우, 신체의 상태와 정신은 연관을 갖게 된다. 신체적으로 괴로울 때, 정신 역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신적인 일정한 상태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먼저 유사한 방향을 유도해보면 효과가 있을 때가 많았다.


비슷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연기론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감정과 생각을 주도해서 행동을 이끌어 내는 메쏘드와 행동의 변화로 감정을 유도하는 접근법.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육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감각이 곧 생각은 아니지만, 때로는 생각을 위해 감각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었다.


통창 너머의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사실 잘 들리지 않는다. 내부로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서 말할 때나 내용을 들을 뿐이었다. 직전에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힘을 빼고 탈력 상태를 유지하라'였다. 민서는 지시에 충실했다. 그는 단락적인 집중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다. 좋은 말로 하면 순간순간에 열정적이라는 것이었고, 나쁜 말로 한다면 집중력의 지속이 길지 않았다.


현재 실험의 과제도 그런 것이었다. 일시적인 탈력 상태, 소위 멍 때리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그다음은 그런 의식의 긴 유지였다. 오랜 시간 평이한 정신파를 유지할 수록 그가 주변의 점퍼들의 점프에 관여하는 영향력이 커져갔다. 실험의 데이터는 그 증가 폭이 기하급수적일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곧 이론적으로, 김민서가 '멍 때리기'라고 인정되는 일정한 상태를 70일간 연속으로 유지할 수 있다면 ME라고 불릴 현상은 전 지구적인 범위를 덮게 된다.


전 세계에 어디에 있는 점퍼이든, 점프 에너지를 사용해서 도약을 하는 순간 그가 있는 위치를 향해 강력한 인력으로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가 물리적인 것에 근간을 두는게 아닌 정신적인 상태에 따라 발생하는 종류였으므로, 한계 없이 늘어날 것을 상정한다면 일시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점퍼들을 소환할 수도 있어 보였다.


물론, 민서가 현재까지 유지 가능했던 탈력 상태의 기록은 초 단위였다. 1분을 넘기는 것조차 지금으로선 요원한 일이다.


그는 익숙한 루틴으로 자신의 몰입 상태를 유도해갔다. 직전에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을 떠오르는 대로 놔두고, 도리어 더 머릿속을 헝클어뜨렸다. 평소에 잘 의식하지 않던 고민까지도 들추어내서 자신의 내면을 자극했다.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와 두통이 머리를 잠식할 때쯤, 그 반대급부로 생각을 줄인다. 당장은 해결할 여지가 없는 다양한 고민들에 대해서, 그저 그렇게 놔두는 것이다. 일부러 자극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 둔다. 자신의 몸도, 머릿속의 생각도.


그렇게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면 제법 나쁘지 않은 현재가 눈에 보이게 된다. 그는 사지가 멀쩡했고, 두 부모님도 살아 계셨다. 곧장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 만한 원한을 산 적도 없었고, 빚쟁이가 그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올 걱정도 없었다. 고작해야, 앞날이 불투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이 시대의 모든 동년배들이 똑같이 겪고 있는 고민이었다. 별 것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묶인 줄을 풀듯이, 엉킨 실타래를 풀듯, 혹은 무겁게 들어 올렸던 바벨을 내려 놓듯이 생각의 속도를 천천히 늦춘다. 그러다 어느 지점이 되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운동을 하고 쉴 때가 있듯이, 생각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라지만 그건 삶을 갉아 먹는 고통이었다. 스트레스가 문제의 해결을 위한 방안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했다.


의미 없는 고통을 자처한다고 반드시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천천히 걷는 걸음이 훨씬 멀리 갈 때도 있는 법이다.


민서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리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고의 흐름은 먼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것처럼 큰 기승전결을 다루고 돌아왔다. 의식적으로 유지하던 신체적인 탈력 상태가 자극을 받는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자연스럽게 힘이 빠진다. 몇 번의 한숨을 내쉬고 잠시 앉아 있어도 좋았다. 그는 평이한 신체적 흐름을 만들며 정신 역시 자연스러운 탈력 상태에 돌입했다.


까딱하면 잠에 들 수도 있는 처지였다. 조금만 의식을 깨우면서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아마,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가는 것이 맞을 테였다.



*



연구실의 외부에서는 다양한 소리들이 있었다. 소근대며 말하는 소리, 조금 더 키워서 토론하는 소리, 기침 소리나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발소리. 스마트 패드를 다루는 기척과 종이로 이루어진 서류를 만지는 소리. 그 사이에 흐르는 일정한 소리가 있다.


실험실은 주임 연구자, 곧 연구소장의 취향에 따라 가끔 특이한 물건들이 있었다. 실험실을 두고 실험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공간에 흐르는 희미한 음악 소리도 그것 중 하나였다. '바하'의 선율 중 하나였다. '예수,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라는 클래시컬한 곡이었다. 잔잔하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좋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결코 큰 음량은 아니었지만 미약하게 지속된다.


소리의 의미는 '실험 잘 되고 있음'이라는 뜻이었다. 실험실 내부의 다양한 상황들 중, 조건에 맞추어 신호 따위를 실험자가 설정할 수 있었는데, 소장은 때때로 실험의 순항을 의미하는, 연구 중 의도하는 조건이나 상황이 제대로 유도되고 있을 때의 신호음으로 클래식 음악을 넣어 놓았다. 보통의 실험실이나 연구소에선, 비상 상황일 때 귀를 찌르는 듯한 사이렌 소리를 넣고는 말 뿐이었지만. 소장은 일일이 프로젝트 때마다 다양한 상황들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위기에 따른 BGM들을 선별해서 넣어 둔다.


실험실에 있을 때의 과학도답지 않게, 여유를 잃지 않는 감성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은연중에 연구소의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그것이 올바른 창조성으로 인도된다고 믿는 편이기도 했다. 그것이 정말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연구소 내의 분위기가 다른 곳에 비해서 부드러운 편이 있다는 건 사실이었다.


어딘가에 처박혀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몰두해야 하는 그들의 특성 상, 어느 정도의 발작은 막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아주 심한 수준으로는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았다. 대개, 성격이 좋은 편이라고 표현해도 좋았다.


연구소장은 희끗한 금발을 하고 있는 장년과 노년 사이의 사내였다. 자주 부드러운 미소를 의식적으로라도 지어 보이곤 하는, 풍채가 좋은 남자다. 키는 홍인수보다 조금 작았으니, 180대의 키였고. '윌리엄 왓슨'이라는 미국인이다. 스위스의 주요 연구소의 책임자가 타국인이라는 것도 의외이기는 했으나, 그는 관련한 분야에 대체자가 없는 수준의 탁월한 학자였다. 기본적인 물리학 분야에서도 권위자 중 하나였으며, 특히 '점퍼'들과 얽힌 부분에서는 가장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는 사내였다. 훌륭한 설비를 갖춘 최고의 연구소에서 그를 스카웃했고, 자신의 연구를 도와줄 뛰어난 인프라를 원했던 그는 스위스에서 오랜 시간 헌신 중이다.


또한 필연적으로, '점퍼 조직'의 인원들과 가장 친분이 깊은 과학자이기도 했다.


윌리엄은 느긋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실험실의 가운데를 걸었다. 목적이 있는 걸음은 아니었고, 그 상황을 즐기듯이 천천히 같은 자리를 반복하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그가 듣는 것은 소리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지속 될 수 있을까. '김민서'라는 한국인 청년은 그의 연구 인생 후반에 중요한 키 포인트로 나타난 선물이었다. 가느다란 바늘 끝보다도 앞길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연구를 계속 해왔는데, 뜬금없이 여태까지의 모든 연구에 변화를 줄 만큼 색다른 변인이 등장한 일이었다.


하나의 단서를 찾기 위해서 무수한 실험을 찾기 위해 걸어왔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JE에 대해서 더 알아낼 수 있는 뚜렷한 요소가 제 발로 다가오다니. 몇 개의 단계를 건너뛰고 시간을 아낄 수 있었던 걸지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


실험의 세부 실무를 담당하는 부하들은 동분서주하지만, 그는 이 자체로 대개 만족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들 맞춰서 입는 흰 가운을 걸친 채 천천히 움직이는 그에게 홍인수가 다가왔다.


"윌리엄 소장님. 실험의 속도는 예상보다 순항인 겁니까?"


홍인수는 그가 조직의 지휘관, 그리고 연구부의 책임자인 스미스 다음으로 많이 마주치는 사내였다. 윌리엄은 유달리 점퍼에 관련한 연구를 하면서 한국인들과 자주 교류를 하게 되었다. 그는 이 젊고 예의 바른 청년에게 웃으며 말했다.


"소드 마스터. 그렇다네. 애초에 앞길이 보이지 않는 과제였는데 저 친구가 나타난 이상 아무리 느려도 순항이지 않겠나. 나는 한 없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네."

"호오."


소드마스터, 홍인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이어서 부인했다.


"그 별명은 쓰지 마시라니까요. 발음이 어려우면 데이브라고 부르세요."


그가 적당히, 자주 사용하곤 하는 영어식 이름이었다. '소드 마스터'라는 코드 네임은 대외적으로 불리기에는 다소 민망한 호칭이었다. 어린 시절에 장난감 칼을 들고 설칠 때도 아니고. 그는 그 이름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호칭인지를 잘 안다. 우스운 투의 농담기를 뺀다고 하더라도, 모든 임무에서 승리를 끌어내야 하는 근접전의 정복자라는 별명은 지나치게 무거운 칭호였다. 그는 그만큼 전능하지 못했고, 가진 모든 재능과 능력을 사용해도 고작 남들보다 더 잘 싸우는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마스터'였다면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그의 손으로 놓친 범죄자, 테러범이 없었을 테였고 그가 있는 자리에서 임무 중 다친 동료들 또한 없었을 것이었다.


홍인수가 물었다.


“그래서··· 전에 설명하신 대로 이 바하의 음악이 어디까지 연주가 되면 1차적인 목표에 달성하는 겁니까?”

“글쎄··· 일단은 1분을 1차 목표로 보고 있네.”


윌리엄이 답했다. 1분이라, 마지막으로 기록된 지속 시간이 34초였다. 물론 최근 들어서 계속 호전된 상세를 보이고, 오늘에 이르러 ‘김민서’가 최고의 집중력을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 정도의 시간을 갈 수 있을까. 홍인수는 자문했다. 어차피 알 수 없는 질문이라 답을 할 수 없었다. 근육의 움직임이라면 이전까지의 것과 다음 운동이 긴밀한 상관 관계를 지닐테지만 정신력의 문제라면 몇 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


물론 운동만큼은 아니어도 이전 회차의 시도와 충분한 연관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선율은 늘 초반부의 고조를 넘지 못하고 끊어지고는 했다. 그렇게 튀는 음색이나, 음량이 아니어서 신경에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반복되며 뚝뚝 멈추는 음악 자체에서 오는 애절함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감질나는 기분이나 애가 타는 느낌일 것이다. 속 시원하게 음악이 이어지려면 끝까지 갈 것이지···.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실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소리만 듣고 있자면 인내심이 조금 필요한 작업이었다.


반면 윌리엄은 한 땀 한 땀, 음악을 빚어내는 장인처럼 그 과정에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한 끈기를 가졌다. 음악은 완성될 것이다, 는 믿음을 갖고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민서의 탈력 상태의 유지가 이어져야만, 점프 에너지에 대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지식의 발전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 연구자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단계를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톡톡. 윌리엄을 제외한 연구자들은 모두 분주한 모습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미약한 상태 데이터에 집중하고 어떤 요인이 그들의 실험에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지 분석한다.


여러 논리를 이끌고 또 서로 기록하고 토론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한 명의 젊은 연구자는 손가락을 두드리며 음악의 박자에 맞추어서 기다림을 가졌다. 톡톡.


금발의, 눈빛이 약간 충혈된 듯한 청년이다. 그 역시 훤칠한 키를 갖고 있었고 제자리에 선 채 손가락만 까딱이며 유리창 너머를 주시한다. 귀로는 음악 소리의 다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조엘 왓슨이었다.


민서가 느끼기에 연구자들 중에서 괴짜 중의 괴짜처럼 보였던 청년. 그는 연구소장인 윌리엄의 차남이었고, 그의 아들 중에서 유일하게 학자의 길을 걸어 아버지와 같이 일하고 있는 자식이었다.


윌리엄의 겉으로 보이는 성격과는 다소 다른 행색이었지만, 어쩌면 내면은 닮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외면또한, 젊은 시절의 윌리엄은 사실 그랬을지 모르고 말이다.


그는 공격적이지는 않았지만, 때로 한 가지에 지나치게 몰두를 해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야말로 TV에서 볼법한 괴짜 과학자의 모습이었다. 가꾸지도 않아 대충 걸쳐 입는 옷가지에 부스스한 머리였으나, 연구소 직원들 중에서는 기혼자 파티에 속한 멤버였다.


그의 아내는 먼 미국에서 작은 딸 아이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 역시 가족은 만나보고 싶었으나, 미국에 다녀오는 기점은 이번 프로젝트의 결말을 보고 난 다음으로 잡아두었다. 그는 성공이든 실패든, 어떤 식으로든 민서의 분발을 응원했다.


작가의말

https://www.youtube.com/watch?v=bPPeHd1Mm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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