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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점퍼Jumper, 순간이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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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2.09.27 18:20
최근연재일 :
2024.06.21 01:24
연재수 :
1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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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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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글자수 :
908,591

작성
22.10.0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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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2쪽

9.

DUMMY

*


“어서오세요.”


민서는, 여상스럽게 인사를 했다.


오후의 편의점. 손님들이 많이 드나드는 지점의, 많이 드나드는 시간대였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청량리의 반지하에서, 버스를 조금 타고 가면 있는 근처 동네. 대개의 편의점이 그렇지만, 찻길이 근처에 있고 오가는 행인들이 많이 물건을 사러 들어왔다.


또한 대개의 편의점이 그렇듯, 바깥이 훤히 보이는 통창 너머로 오후의 햇살이 따사로웠다. 실내는 늘 등을 켜놓고 있었지만, 바깥에서 들이치는 햇빛이 광량을 더하고 노동 중의 한가로움을 주었다.


낮이라고 늘 손님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 몰릴 때도 있고, 없는 타임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게 다소 넋을 놓고 바깥은 바라보다가, 누군가 들어옴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민서는 나름대로 훤칠한 체격이다. 편의점의 유니폼 조끼를 걸치고 계산대에 서 있었다.


들어오는 이는 한 사내였다.


"여. 히사시부리."


손을 들며 괴상한 인사를 하는 인간이 들어왔다.


늘 깔끔하게 다듬어진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내. 다소 어두운 톤의 상 하의에 안에는 붉은 색 셔츠를 입고 목 주위는 푼 차림이었다. 또각거리며 걷는 구두 역시 명품의 종류 같았다. 겉이 반짝이며 촌스럽지 않은 광택을 낸다. 손목에는 역시 비싸 보이는 금빛의 시계.


이목구비가 훤칠한 미남, 홍인수였다.


"억."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먼저 성대에 걸려 어설프게 튀어나왔다. 아니 물론, 상대의 자유가 있는 법이었지만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던 면상이었다.


"거, 썩 반가워 보이지 않는 얼굴입니다?"


홍인수가 뻔뻔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민서가 그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악감정은. 다만 몸이 기억하는 고통이 있을 뿐이었다. 그가 어딘지도 모르는 기지와, 한국의 서울, 청량리의 자취방을 오가며 훈련(고문의 강도)을 일삼은 지도 어느덧 몇 주가 지났다.


그동안 민서는 자신의 체력의 한계를 알아볼 수 있었고, 사람의 신체라는 게 꽤나- 많은 고통을 당해도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이 계속되면 살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도.


굳이 따져서 비슷한 걸 찾아보자면··· 지독하게 굴림 당했던 군대 선임을 만났을 때 오는 PTSD와 비슷했다. 분명 거리낄 게 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자동반사되는 기억들.


"여긴 어쩐 일로······."


굳은 채로 가만히 있던 민서가 입을 열었다.


홍인수는 다가오며 적당한 물건을 하나 집었다.


"요새 잭이 망가졌는데 편의점 게 오래 쓸런지 모르겠습니다."


판매대에서 스마트폰용 충전 잭을 집어든 그가 계산대에 올려 두었다.


"별 일은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져서."


민서는 얼굴을 구겼다.


"거 두 번 보고 싶었다간 사람 심장 떨어지겠습니다."


한가한 평일 오후에 마주치기에는 놀랄만한 얼굴이었다. 홍인수의 인상이나, 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언제나 그를 만날 때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이 함께였던 탓이다. 처음 그를 본 게, 점프라는 걸 알지도 못한 때 갑자기 삶에 난입한 괴한으로여서 더 그럴지 모른다. 더군다나 세번 째는 칼을 든 진짜 괴한과 함께 나타난 모습이었고.


일상과 다른 당황스러움과 놀라움의 대명사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홍인수는.


홍인수가 입을 열었다.


"어째, 요즘은 별일 없습니까? 살면서 저희 같은 이상한 놈들은 또 마주친 적 없겠죠? 여태 조직의 연구소에서 당신의 전 자취방을 검사했는데도 특이사항을 못 찾았습니다."


삑. 민서는 홍인수의 말을 들으면서, 성실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자세로 물건을 바코드기에 찍었다. "어··· 5,000원입니다. 별 일은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면서 덧붙였다.


"오늘 댁이 나타난 게 요 근래 있었던 것 중 가장 별 일입니다."


4월 27일. 수요일이었다. 별안간 자취방에 들이닥친 괴- 능력자에 의해 다양한 구경을 하고, 기이한 조직의 기지에 들어갔다가 온갖 육체적 고통을 느꼈지만 평일의 일상에 남다른 일은 없었다. 덕분에 좀 더 넓고, 깨끗한 신식 빌라의 원룸으로 이사간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홍인수가 그에게 설명해주며 말했듯, 조직은 꽤나 괜찮은 규모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 같은 별 관련도 없는 피해자에게까지 이 정도로 친절한 자본적 수혜를 베풀다니. 홍인수가 '뺑소니', 라고 표현한 사건이(점퍼가 의도치 않게 민간인과 마주치는 경우를 말함. 보통 문제 없지만, 간혹 도약 과정의 실수로 면전에서 마주치는 드문 경우)얼마나 자주 있는 건진 알 수 없었으나··· 그로서는 체감상 큰 혜택이었다.


난방도 잘 되고,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곳도 없었고. 빌트인 된 가구나 세탁기도 신식이었다. 무엇보다 본래 월세를 초과하는 부분은 조직에서 전액 감당해주기로 해서, 난방이나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것도 소박한 행복이었다. 관리비나 냉난방비도 초과분에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카드로 할게요.' 홍인수는 안주머니에서 카드 지갑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반복되는 일정 현상에는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원인이 당신 방의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만일 그게 아니라면 당신에게 무언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생각해 봐요."


홍인수가 목소리를 다소 깔며 물었다.


"여태 살면서 점퍼를 마주친 일이 한 번도 없습니까? 희미한 기억 속이나, 혹은 일부러 잊은 기억 속에서라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라고, 말을 하면서도 민서는 반사적으로 머릿속으로 지난 날을 돌아봤다.


점퍼. 순간이동.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잊을 수 있는 종류의 일도 아니었고. 아주 어릴적을 제외하면, 상식이 존재하는 순간부터는, 어떤 식으로든 깊은 인상이 남아 삶에서 분리할 수 없는 기억이 될 테였다.


혹은, 자신이 순간이동이라고 인지하지 못했지만 목격했을 수도 있다. 혹시 그건가? 어렸을 때 어떤 아저씨를 눈으로 쫓다가 잠시 놓쳐서, 다시 걸으며 바라보니 사라져 있던 기억. 아니··· 그런 기억까지 친다면 분간할 수 있는 기준이 전혀 없었다. 순간 이동이라···.


그가 알기로 그런 일은 없었다. 그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났을 지라도.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요. 그런 일을 보통 사람이 잊을 수 있겠습니까?”


홍인수는 계산이 끝난 상품을 손톱 끝으로 토도독, 두드리며 말했다.


“···뭐 좋습니다. 정말로 없는 거거나, 기억이 없거나.”


카드를 포장된 충전기 잭의 종이 팩을 재킷의 안주머니에 챙기며 입을 열었다.


“혹은 감추는 거라고 해도.”

“···.”


민서는 아주 약간, 심기가 불편했다. 감춘다, 라. 내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 물론 아주 이질적이고, 서로 다른 처지이기는 했다. 그래도 서로 간의 어느 정도 신뢰를 쌓아가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점퍼고 뭐고, 사람 대 사람으로.


“일단 가끔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애초에 당신한테 단체 도약에 관한 재밍이나, 전 방위에서 뻗어오는 공격에 반응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어떤 싸이코 같은 점퍼가 다가올 지 몰라서 하는 일이에요. 원하든 원치 않든, 세 번이나 점퍼의 도약이 당신 앞으로 유도 되었습니다.”


홍인수, 소마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이었다.


“적어도 제가 점퍼로서 도약을 실패하는 일은, 수십만 번의 한 번도 있을까 말까 한 일입니다. 그게 고작 한 달 내에 세 번이라니. 명백하게 제가 인지할 수 없는 인자에 의한 유도입니다. 그리고 세 번 일어난 일은,”


홍인수가 말한다.


“앞으로 몇 번이던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진 점퍼일지 알 수 없는 거고요.”


점퍼Jumper.


이 사회에 살아가는 비상식적인 인자를 일컫는다. 김민서는 솔직히 말해, 그런 그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다. 조금도 관계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무엇을 해서 벌어먹고 살까, 막막하던 20대일 뿐이었다.


고작해야 남은 저금으로 식비를 충당하고, 광열비나 핸드폰 비를 내고, 저금이 떨어져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다니던.


그 정도의 고민을 하던 그에게 나타난 거대한 조직은 솔직히 큰 부담이었다. 김민서는 일상적인 고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자신의 삶을 다루고 싶었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어떤 거대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건, 취향은 아니었다.


김민서가 아주 마뜩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드 받아 가시죠.”

“······.”


홍인수가 마찬가지로 아주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드를 뽑았다. 그가 카드 지갑에 돈깨나 쓸법한 멋들어진 신용 카드를 넣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점퍼 조직은 영 빈궁한 집단은 아니었고 홍인수는 그런 단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나름대로 높은 연봉이나 수당을 받는 듯했다.


홍인수가 입을 열려 했다.


딸그랑.


편의점의 유리문에는 작업 중에도 손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종으로 된 알람이 있다. 홍인수가 들어올 때도 난 소리였다. 자연스럽고 반사적으로 김민서는 출입구를 보며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깔끔하고 숙련된 인삿말이 왜인지 모르게 홍인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는 새롭게 들어와 물건을 고르는 어떤 아가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경각심을 갖고 대비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도 시간과 자원이 무한하지는 않아요. 가급적이면 당신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지만. 스스로 준비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의사와 상관없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당신을 스카웃해서 고용할 용의도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민서에게 있어서 당면한 주된 과제는 뭐 먹고 살지, 라는 의문을 해결하는 일이었으니.


‘그리고···’


홍인수가 뭐가 많이도 들어가고 나오는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손바닥 안에 딱 들어가는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색의 폴더폰이었다. 아주 구형에 뚱뚱한 종류. 대신 크기가 시중에서 볼 수 없던 소형이라 불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받아 두십시오. 죽을 정도의 위기나, 혹은 그 세 번 일어났던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열어서 아무 버튼이나 눌러요. 어차피 다 똑같은 신호가 우리 쪽으로 오니까. 위성 통신이니까 아무 데서나 편하게 쓰고, 기기 배터리만 충전 잘 해주고.”


김민서는 일단 쥐여주는 피쳐폰을 받았다. 전문가가 주는 걸 마다해서 좋을 건 없었다. 그가 만일의 사태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거부감과, 정신적인 방어기제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물건을 가져두어서 손해볼 일이 없었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김민서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홍인수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미소라도 입가에 있는 듯도 했다.


“예, 아무튼. 이런 일까지도 가능하다면 처리 하는게 저희의 업무입니다. 가능한 한이요. 조직의 자원이 무한하지는 않으니.”


홍인수는 당부의 말처럼, 몇 마디를 더 남기곤, 계산대를 똑똑 두드리며 편의점을 나섰다. 민서는 여상스럽게 뒷모습에 인사를 했다.


“안녕히 가세요. 오늘 하루 잘 보내시고요-.”


인삿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물건을 고른 여성 손님이 다가왔다. 민서는 그들이 이야기 하는 걸로 손님에게 눈치를 주었는가, 불안하게 살피며 바코드기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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